읽고 끄적 끄적...2016. 4. 21. 08:59

타인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족의 이야기다..

윤대녕이 11년 만에 쓴 장편 <피에로들의 집>엔 바람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바람"이란건 기실 "헛 것"에 불과하다.

그것 자체의 실체를 볼 방법은 도저히 없다.

바람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주변의 것들을 흔들뿐이다.

햇살 좋은 봄날 순한 낮잠같은 평온함이기도 하고

거대한 건물을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쓰나미이기도 하다

마치 "가족" 처럼...

가족이라는 관계가 주는 무조건적인 애정이

나는 아주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궁금하다.

정말 믿어서 믿는건지, 이해가 충분히 돼서 이해하는건지,..

가족도 타인도 내겐 경계가 참 모호할 뿐이다. 

어쩌면.나란 사람도 집을 싸서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들어가는게 인간적으로 사는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들을 유사가족이라고 불렀던가!

하지만 나는 이 말에 절대 동의하고 않는다.

오히려 철저한 타인들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자기 앞가림 하나 못하는 인간들이 펼치는 오지랖 퍼레이드.

그런데... 그게 참 슬프고 아프다.

어딘가 하나씩 부러지고 고장난 소위 말하는 잉여인간들.

그런데 심지어 이들은 버티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것도 아니다.

유령같은 사람들.

심하게 표현하지면 살아있는 시체들이다.

생이 없는 삶.

죽은 채로 사는 삶.

그런데 어쩌자고 나는 또 그게 하나도 낮설지 않다.

 

다름이...

같음이 되버렸다.

피에로는 오늘도, 내일도춤을 추고 노래 부른다.

그게 누구의 생인지도 모른채 마냥 웃고 있다.

 

하여,

참견하지 말자.

간섭하지 말자,

이해하지 말자,

기억하지 말자.

그 어떤 것도.... 하지 말자!

누구라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3. 17. 05:46

윤대녕의 글을 읽고 있으면 온 몸이 싸늘해진다.
김훈의 그것과는 또 다른 싸늘함.
김훈의 소설 속에 바람을 읽을 수 있다면
윤대녕의 소설 속에는 폭설을 읽을 수 있다.
쓸어도 쓸어도 집요하게 다시 쌓이는 거침없는 하얀 눈발.
그의 소설은 세상의 모든 길을 묻은 길고 오랜 폭설,
그 하얀 풍경(설경)이 담긴 오래된 묵화같다.
그의 소설 속에는 그 폭설을 뚫고 시간을 천천히 통과하는 사람이 있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찾아오는 그런 시간, 그리고 그런 사람.
동시에 찾아오는 그 두가지를 대면하는 건
오래오래 침묵하게 하고, 오래오래 집중하게 한다.
그의 글들은 앞으로도 얼마나 더 그림같을 것인가!!!
내게 그의 글은 바로 "옛날 영화"다.


연(鳶)
제비를 기르다
탱자
편백나무숲 쪽으로
고래등
낙타 주머니
못구멍
마루 밑 이야기


윤대녕의 네 번째 소설집엔 담긴 8편의 중,단편의 그림들.
(그의 소설은 그림처럼 읽힌다. 그것도 아주 또박또박...)
이 그림들을 읽으면서
나는 책 속에 있는 인물들이 다 내 오랜 피붙이같이 마다마디가 저릿했다.
피붙이에 대한 이야기를 풍문(風聞)으로 듣는 건 또 얼마나 괴로운 일이던가! 
인간사(人間史)!
윤대녕의 단편들에도 장편에서처럼 "시간"이 보인다.
그대로 멈춰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간.
혹은 상관있어야 하는데 부러 무시하고 계속 흘러가는 시간.
그 시간속에 그들이 있다
..... 낮에 잠깐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여자처럼 보였다. 이미 굳어버린 콘크리트 반죽처럼 도대체 아무 표정이 없는 ......  그들은
이렇게 삶이 뜻하지 않은 각도로 인생을 바꿔놓은 사람들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계기로 작용해 생의 전모를 바꿔놓는 수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삶의 원리이자 저마다 이면에 감춰진 속박이자 굴레이기도 하다.

생에는 화해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하게 마련이란다.
그걸 인정하면 악마같던 삶이 관대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오래된 작부집의 늙어버린 문희나 고래등을 만든 아버지처럼
많은 시간들이 더 지나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나?
사람은 정화되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데...

윤대녕의 단편 속에 담긴 한 사람의
혹은 한 가정의 전 생애를 들여다보는 일은,
마치 누군가 내 등에 대고 직접 망치를 치는 것처럼 뜻밖의 고통이었다.
어이없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찌할 수도 없는 고통.
윤대녕이 말했다.
...... 나는 '그 모든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그리움을 자주 체험했다. 삶의 정체는 결국 그리움이었을까? ..... 나는 문학이 왜 내게 문학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새삼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들을 밖으로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또한 쓰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삶이 계속되는 한 그리움은 계속될 것이고 또한 누군가 조용히 숨어 글을 바라고 쓰는 일도 계속될 것이다 .....


그리고 누군가는 조용히 숨어 
시간이 담긴 윤대녕의 그림들을 또박또박 읽어나갈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이쪽과 저쪽의 시간이 서로 만나지는 날이 올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4. 19. 06:31
윤대녕의 소설을 읽으면 맘이 설렌다.
뭐랄까?
완벽함이 주는 불안감 대신 불안감이 주는 묘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윤대녕식 신파를 나는 긍정하고 그리고 이해한다.
손쓸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대설처럼
그렇게 몰아치듯 그의 단편집을 읽었다.
<대설주의보>



1. 보 리
2. 풀밭 위의 점심
3. 대설주의보
4.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
5. 오대산 하늘 구경
6. 도비도에서 생긴 일
7. 여행, 여름
7편의 단편들은 마치 단단한 눈덩이처럼 서로 뭉쳐있다.
어딘가 은밀한 사람들, 어쩐지 처연하기까지한 불륜들.
정말 그에겐 모든 우연이 "필연"이었던건 아닌가?
윤대녕의 불륜을 나는 도저히 손가락질할 수 없다.
그냥 질끈 눈 감아버리는 수밖에...



누군가는 말했다.
윤대녕의 인물들은 병들어 견디고 견디며 죽는다고...
내게도 그의 글들은 그렇다.
일몰무렵에 일출 명소에 와 있는 것 같은 막막함 같다고...
윤대녕의 일상은 폐허이면서 동시에 안도감이며 푸른 보리싹같은 생명력이라고...
어느새 나도 그에게 은밀한 공감을 느끼며
더 은밀한 협약으로 공모로 유대를 품는다.
폭설로 길이 끊인 곳에 덩그라니 남아 있어도
길을 떠날 수 있고 그래서
결국은 기다리는 혹은 기다렸던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푸짐한 눈발보다 더 푸짐하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차다.
그게 결국은 세상 모든 사람의 일생이다.

이 사람의 글은 내겐 그랬다.
아득하면서도 어딘지 모르는 평온함을 주는 느낌.
<은어낚시통신>도, <눈의 여행자>도,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도,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도...
그의 연애는 매번 분간할 수 없는 환상이고
일상은 파삭하게 건조한 무감(無感)이다.
그의 글은  그래서 미안하게도
너무나 나를 닮아있다.
폭설 속에 길을 잃었으면서 하얀 눈 속을 부작정 걷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꼭 나 같아 아프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5. 18. 06:30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 윤대녕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은어낚시통신>으로 유명한 작가 윤대녕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원래 1995년에 발표됐었는데 작년에 몇 군데 손을 본 후에 다시 개정판으로 출판했습니다.

좀 무서운 내용이죠.

왜냐하면 외면하고 싶은 그래서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을 들춰내는 이야기이니까요.

어느 한 때의 시간을 송두리째 도려내고 싶다는 소망!

그런 소망을 품었던 사람에겐 이 책이 참 아프고 힘든 책이 될 지도 혹 모르겠네요.

<기억>을 이야기 할 때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시간>일 겁니다.

나는 끝장이 나도 결코 끝장나지 않을 <시간>!

이 소설의 시작도 이렇게 시간에서 비롯됩니다.

되새떼... 

겨울이 되어 찾아온 이놈들은 이듬해 봄이면 다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또 겨울이면 찾아오죠. 어찌 보면 새라는 건 반복되고 순환되는 시간의 분신인지도 모르겠네요.


한 남자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번역 에이전시를 통해 간간히 들어오는 번역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듯 위태위태해 보입니다.

이 사람에겐 세 개의 시간이 있네요.

현실, 그리고 과거,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더 먼 과거.

과거가 없는 사람은 나이테 같은 성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멈춰 서면 곧장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다고요....

기억나지 않는 시간을 가진 사람의 삶이란 그렇다면 온전한 삶이라고 말할 순 없을 듯 하네요.

내가 날마다 남이 되는 삶...

이 사람, 그래도 잘 살아가는 듯 합니다.

머릿속 퓨즈가 끊어지기 전까진 말이죠.

어느 날, 에이전시를 통해 그에게 3개월의 기한을 준 번역이 의뢰됩니다.

그리고 그날 그는 “E"라는 이니셜의 인물로부터 한 장의 팩스를 받게 되죠.

E는 말합니다.

“과거로 돌아오는 벌레 구멍을 찾게....."

이제 그는 연속적으로 찾아오는 기이한 일들을 하나씩 겪으면서 잊어 버렸던 기억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고백하죠.

“먼 과거로부터 누군가 내게 다가오고 있어. 누군가 밧줄을 이용해서 나를 잡아끌고 있는 것 같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가 완전히 잠에서 깨지 않을 정도의 조용한 완력으로”

이 남자가 기억을 찾아내는 일은 참 더디고 그리고 심지어 몽환적이기까지 합니다.

순간순간 남자는 데자뷰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지독한 혼돈이고 그리고 더 지독한 고통이죠.

그러다 “꽝!” 하는 정오의 대포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곧 그가 잊었던 먼 과거는 어느새 “현실”로 성큼 다가와 버리게 되죠.


우리 몸속에는 누구에게나 시계가 하나씩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면 과거의 나를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단지 누구도 더 이상 돌리고 싶어 하지 않을 뿐.

그 기억이란 게 나를 움켜쥐고 할퀴고 상하게 한 기억이라면 차라리 시계바늘을 뽑아내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 정삼각형의 균형은 여지없이 무너지게 될테지만요.

(이런 생각들, 저는 참 공포스럽습니다....)

시간은 곡선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둥그렇게 말리면서 원을 형성한다고요. 그래서 그 시작과 끝이 서로 이어지면서 무한히 되풀이 된다고요.

“우리가 무엇을 하든 간에 시간은 끊임없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 아무리 무덤 속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시간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잃어버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분명 찾을 수 있지만 굳이 찾으려 하지 않는 거지도요.

하지만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그 소유에 대한 책임까지도 함께 잃어버려지는 건 결코 아닐 겁니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

영화를 보러 가기 전과 후의 세계는 이제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옛날 영화가 끝이 나면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회복된 새로운 공간 안에 서 있게 될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옛날”과 “오래된”의 차이.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둘 다 과거의 시점을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옛날“이란 단어가 왠지 더 구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된”이란 말 속엔 망각 혹은 잊음에 대한 일말의 허용이 보였기 때문이죠.

어쩌면 “옛날”을 “오래된”으로 교묘하게 바뀌고 싶은 제 내면의 고백인지도 모르죠.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내 “옛날”을 추궁하는 것 같아 맘이 많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

제 과거에 대해서 아직 전 관대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완전히 동일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그래서 과거의 나와 완전히 동일한 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고 우리 또한 모두 그걸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 “평등”을 믿는 거라고 하네요.

이제부터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겠다 다짐하면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용서되지 않는 시간, 이 추운 겨울의 막막함, 혼자라는 두려움 혹은 서툰 사랑 하나하나까지도 뜨겁게 가슴에 끌어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네요.

“살아가야지! 살아가야지!”

이 책은 그렇게 나를 다독거리며 응원합니다.

그렇다면,

응원 받은 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도 당신이 대답할 차례가

이제 온 것 같습니다.


부디 산 자가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4. 6. 05:57
<연금술사> - 파올로 코엘료

연금술사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윤대녕의 소설 제목입니다.
<연금술사>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전 이 소설 제목이 떠오릅니다.
그렇다고 <연금술사>가 무슨 오래된 고전 소설도 아닌데 말이죠.
우리나라에 미지의 문학처럼 여겨졌던 중남미 문학의 붐을 만들어냈던 소설.
그리고 작가는 참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직업, 그리고 다양한 방황(?)과 다양한 구도(?)의 길을 만난 사람입니다. 산전수전에 소위 공중전까지 전부 겪은 셈이죠.
처음에 이 사람의 책을 읽었을 때 분명 게이일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문체가 여성스러웠던 건 아닌데 어쩐지 섬세하고 다정한 것이 따뜻한 양모를 뒤집어쓰고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따스함의 전달 혹은 적당한 안식이라고 말할까요???
제가 알기론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책은 전부 9권입니다.
그의 첫 책을 비롯해 11권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상태고 가장 최근 번역작은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개인 산문집입니다.
1982년부터 지금까지 27년 동안 열심히 작가의 길을 가고 있네요.
이 사람의 경력은,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직업을 가지는 게 가능할까 의심스러울만큼 다양합니다.
그것도 한번 스치는 직업이 아니라 소위 한 분야의 전문가 소리를 들을 만큼 실력을 발휘했던 사람이죠.
그런 사람의 마지막 정착지가 작가인 셈이네요.
1947년 출생, 이제 60 고개에 접어든 나이니까 혹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연금술사>
파올로 코엘료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소설입니다.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원한다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의 내용은 몰라도 이 구절은 이제 하나의 명언처럼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단서가 있다는 걸 혹시 아시나요?
“단, 자신이 원하는 게 무언지 언제나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잘 아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잊어버린다는 사실이죠.

이 책,
 
첫 페이지부터 은밀함을 품고 있습니다.
.....위대한 업의 비밀을 알고,
그 비밀을 사용할 줄 아는 연금술사 J에게....
어쩌면 그냥 스쳤을지도 모르는 이 문구가 이 책의 맨 앞에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는 동안은 이 “J"가 되기로 작정을 했죠.
주인공 산티아고의 순례의 길을 함께 따라갑니다.
“J"인 나는 꿈을 해몽하는 집시가 되기도 하고, 늙은 왕이 되기도 하고, 크리스털 가게 주인이 되기도 하고, 영국인이 되기도 하고, 낙타몰이꾼이 되기도 하고, 오아시스에 남겨둔 그의 여인이 되기도 하고, 연금술사 스승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물론 산티아고 자신의 모습이 되기도 하죠.
함께한 순례의 길은,
자아의 신화, 위대한 업 혹은 만물의 정기, 그리고 하나의 언어로 명명되어지는 “사랑”에 대한 비유와 상징의 보물 찾기였다는 걸 깨닫습니다.
결국 이 책,
“소통”과 “조화” 에 대한 충고였던 셈이네요.
크리스털 주인의 꿈은 메카로의 성지순례였습니다.
산티아고 덕에 부자가 된 그는 떠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못합니다.
그는 말하죠.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혹시 이 모습이 내 모습, 혹은 당신의 지금 모습은 아닌지......)
가게 주인은 꿈의 길 그 끝에서 마지막을 보게 될 사람입니다.
그가 만약 진정한 연금술사를 꿈꿨다면 아마 다르게 말을 했겠죠.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일에는 결국 치러야 할 댓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래 앓고 난 사람처럼 힘들게 하는 일이 있나요?

어쩌면 이 책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아는 길을 되집어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따뜻한 봄날,
당신의 영혼에 파이팅을 외칩니다.
이제 꽃으로 피라고....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