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7. 5. 2. 16:20

 

<세일즈맨의 죽음>

 

일시 : 2017.04.12. ~ 2017.04.30.

장소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원작 :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연출 : 한태숙

출연 : 손진환, 예수정, 이승주, 박용우, 이문수, 이남희, 민경은, 이화정, 이형훈, 김형규, 최주연

제작 : 예술의 전당

 

이 작품은 나이가 들어서 보는게 이해하는게 용이하다.

이론적인, 표면적인 이해가 아닌 몸과 마음의 이해도 모두가 나이를 먹을수록 훨씬 진중하게 다가온다.

한 십 년 전 쯤인가!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땐 지금 만큼의 절절함은 없었다.

슬프다.... 안됐다.... 의 감정이었는데

지금은 치명적인 통각으로 묵직하게 자리 잡는다.

 만약 나이를 더 먹어서 또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공연 내내 울먹이다 결국엔 통곡으로 끝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작품을 보고 나오는데,

마음 깊숙한 곳에 커다란 바위덩어리 하나가 같이 따라 나왔다.

 

아서 밀러는 결말을 꼭 이렇게 비극적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세일즈맨의 죽음이 아닌,

세일즈매의 좌절, 혹은 절망이었으면 견디기가 좀 수월했을텐데...

과거에세 보낸 현재의, 아니 미래의 청사진 같다.

비참하다.

너무...

 

점점 허물어지고 일그러지는 저 얼굴.

이건 연극이 아니다.

픽션이다, 사실이다. 진실이다.

그래서 또 다시 비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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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6. 11. 11. 13:25

 

<두 개의 방>

 

일시 : 2016.10.20. ~ 2016.11.13.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극본 : 리 블레싱 (Lee Blessing)

번역, 연출 : 이인수

무대 : 여신동

출연 : 전수지(레이니), 이승주 (마이클), 배해선 (앨렌), 이태구 (워커)

제작 : 예술의 전당, 노네임씨어터

 

무겁고 처절한 작품이다.

보는 내내 마음 아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다.

내가 모르는 고통이고, 앞으로도 결코 내가 모를 고통.

하지만 지금도 중동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만 하는 현실 속 이야기.

하필이면 이런 때 이런 연극이라니...

또 다시 이 질문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개인에게 어떤 존재인가!

국가의 잘못을 왜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가!

 

정부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기다리세요.

대중 앞에 나서는건 일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이, 그리고 흔히 들어본 대사 앞에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보는 내내 자주 울컥했다.

눈이 가려진채 두 팔이 묶여있는 남편,

러그 하나만 남겨놓고 텅 비어있는 남편의 방 안에 있는 아내.

그리고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이야기하는 두 사람.

정부는 말한다.

쓸모없는 희망을 하지 말고 조언에 따른 희망을 하라고.

언론 역시 아내에게 말한다.

현실은 정부가 당신의 남편을 죽게 내버려둘거라고. 그러니 목소리를 내라고.

한쪽은 침묵을 한쪽은 공개를 부추긴다.

 

그냥... 다 무섭고 잔인하다.

이게 정말 최선이었대도 잔인함이 사라지는건 아니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게 장기, 단기 프로젝트로 취급되고

이번 순서가 아니니 기다리라고 말하는 정부.

신이 하는 일도 있단다. 신이...

그래도 지금 여기보다 연극 속 세상은 훨씬 더 나은 세상이다.

오프 더 레코드였긴 했지만 진실을 고백했으니까.

...우리는 마이클의 목숨이 국제정세에 영향을 미칠만큼 가치잇는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틀렸어요. 우리 계산이...

우리에겐 자신이 틀렸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운이 나빠서일 뿐이라고.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수많은 마이클들이  매번 죽어나간다. 

아주 아주 고요하고 무덤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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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6. 8. 18. 07:35

 

<글로리아>

 

일시 : 2016.07.26. ~ 2016.08.28.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작가 : 브랜든 제이콥스 - 젠킨스 (Branden Jacobs-Jenkins)

번역 : 여지현

연출 : 김태형

출연 : 이승주(딘&데빈), 손지윤(켄드라&제나), 임문희(글로리아&낸), 정원조(로린)

        오정택(마일즈&숀&라샤드), 공예지(애니&사샤&캘리)

제작 : 노네임씨어터컴퍼니

 

노네임씨어터컴퍼니 7번째 작품 <글로리아>는

근래 내가 본 작품 중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끔직했다.

그 이유는...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그야말로 지금 이곳에서 다반사로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비극이다.

15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 한 명 없는 "글로리아"는

내 모습일 수도 있고, 당신들 모습일 수도 있다.

글로리아의 극단적인 선택이 나는 이해가 되고 심지어 용납이 된다.

확실히 인간은 뒷담화와 함께 진화했다.

인간에게 뒷담화의 능력이 없었다면

문화도, 예술도, 기술도 발전하지 못했을거다.

(뒷담화라는건 언제나 상상력이 가미돼 실제보다 훨씬 더 부풀어지게 마련이니까!)

인간을 왜 그토록 쉽게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걸까?

사무실 직원 5명을 살해하고 자신의 머리통까지 날려버린 "글로리아"는

어어없게도 죽어서야 존재감이 급상승된다.

그리고 시작되는 주변인물들의 사생결단 트라우마 쟁탈전.

"이 이야기...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이 대사에 소름이 돋았던건 비단 나 뿐이었을까!

 

...... 그녀는 평범했어요, 조금 어색했달까. 낯을 좀 가렸어요. 사람들이랑 많이 안 어울리고 플로리다에서 왔던 거 같아요...... 평범했어요, 평범한 일들을 했고 뭐 굳이 얘기하자면, 직장에서 늘 혼자 있었어요, 그게 진짜 그지 같은 거죠. 직장은 곧 그녀의 삶이었으니까, 어떤 면에서는, 그녀가 그런 일을 했다는게 그렇게 놀랍지 않아요. 아주 건강한 환경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우리 중 누구든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이 어땠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글로리아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게 아니다.

단지 존재하고 싶었을 뿐이다.
존재...라는거,

참 목이 매인다.

개인적으론 이런 작품을 보고나면 후폭풍이 오래 간다. 

젠장!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조용히 살고 싶다.

진심으로.

 

로린의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좀 웃기지 않아요? 이런데가 다 똑같다는게... 사람들까지 다 똑같아요. 왜 그럴까요?"

대답할 말이 없는 나는,

로린처럼 조용히 헤드셋을 끼고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글로리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

혹은 글로리아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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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끄적 끄적...2015. 11. 30. 08:40

 

<살짝 넘어갔다 얻어맞았다>

 

일시 : 2015.11.05. ~ 2016.11.18.

장소 : LG 아트센터

원작 : 츠치다 히데오 

번역 : 이홍이

각색 : 김은성

연출 : 김광보

출연 : 유연수, 김영민, 유병훈, 이석준, 유성주, 한동규, 이승주, 임철수

제작 : LG아트센터

 

작년<사회적 기둥>에 이어 올해 11월에도 김광보 연출과 LG 아트센터가 만났다.

그것도 드림팀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김광보 연출의 몹시도 아름다운 8명의 남자배우들과 함께.

(이 8명의 배우를 교차 캐스팅이 아니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것도 신비였다)

작품은,

재미있고 유쾌했지만

단지 유쾌함으로만 끝나지는 않았다.

횔림과 쏠림이라는 인간의 본성과 그 이면을 유머러스하지만 정확하게 끄집어냈다.

누구 한 명 정상적인 인간도 없지만

누구 한 명 똑똑하지 않은 인간이 없다.

"편가르기"라는 인류의 위대한 대립구조는

모든 이유를 불문하는 막강하고 치열한 "파워게임"이다.

나는 그 사생결단이 순간순간 진저리치게 끔직하고 무서웠다.

단지 가상의 "선" 하나가 생겼을뿐인데

자연스럽게 이 편 저 편이 갈리고,

편이 갈리니 없던 분열도 생기고.

분열이 생기니 희생을 부르는 싸움이 벌어진다.

확실히 "쏠림"은 일종의 "광기"가 맞긴 맞더라.

 

개인적으론 스토리보다는

fade in, fade out 이 명확한 8명의 배우들이 보여준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8명의 배우들 중 배역이 정해졌던 사람은 간수였던 유연수와 한동규 두 사람 뿐이었고

나머지 배역은 모든 배우들이 모든 역할을 리딩하면서 역할을 정했단다.

김영민은 내 안의 치졸함을 최대한 끌어냈다고 말했는데

그 뿐만 아니라 8명의 배우들이 뿜어내는 치졸함은 누구 한 명 우열을 가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참 들 못났네, 못났어.... 그랬더랬다....)

김광보 연출의 전작 <나는 형제다>처럼 영화적인 뉘앙스가 풍긴것도 재미있었

무대와 조명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빨갛게 점등되는 좌우 출입 문 위의 불빛과

공중에 매달린 9개의 전등이 위태롭게 보였던건 비단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을거다.

균형감이 묘하게 기웃둥하던 무대도 극의 느낌과 잘 맞아떨어지더라.

 

권력의 줄다리기란 참 무섭다.

그게 교도소든, 직장이든, 학교든, 가정이든.

그리고 그 크기가 크든, 작든 간에.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구허의 마지막 대사가 아직도 메아리처럼 들린다.

......선은 분명히 있었어. 내 마음 속에 있었어.

      지금도 있겠지...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9. 17. 08:21

<나는 형제다>

 

일시 : 2015.09.04. ~ 2015.09.20.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극작 : 고연옥 

연출 : 김광보

무대 : 황수연

출연 : 이승주, 장석환, 이창직, 강신구, 유성주 외 서울시극단

제작 : 서울시극단

 

김광보 연출과 고연옥 작가의 일곱번째 작품이자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으로서의 김광보 연출의 첫번째 작품 <나는 형제다>

이 작품은 2013년 미국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테러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그때 터진 압력솥에는 범인들이 하나씩 모은 쇠조각들이 들어있었고

김광보 연출과 고연옥 작가는 그걸 영화의 컷처럼 연출했다.

 

인정머리없이 툭툭 끊기는 장면들은 두 형제의 성장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였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테러리스트가 되는가!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이야기의 내면은 그러나 너무 아프고 슬프다.

세상의 악과 부조리를 이해하고 견디기에

형제는 여러 의미로 너무 많이 무지했다.

그들이 보여준 선행을 악행으로 갚는 사람들이 나는 꼭 환상같았다.

영화같은 현실들.

현실을 피하기 위해 영화를 본다는 형의 말이 비극적으로 들렸던건

결말이 그려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연결되어 있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그렇다면 두 형제의 테러에 우리 모두는 공범이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형제고, 우리 모두도 역시 형제다.

 

"난 오래전부터 여기에 서서 죄악 위에 또 다른 죄악의 집을 짓는 너희들을 보았지.

 그 집에 들어갈 수 없었던 덕분에 나는 꽤 착한 사람이 되었어.

 사람의 마음은 선과 악을 함께 살아.

 그 속에서 선은 악이 되고 악은 선이 돼.

 그게 마음의 활동이야

 ..............

 기억해!

 너희들은 날 버렸지만 난 혼자가 아니야.

 끝까지 나는 형제다!"

 

폭탄이 터지기 직전 형의 마지막 대사는 이런 뜻이기도 하다.

"너와 나는 끝까지 함께다! 너와 나는 형제다!"

Bumb!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 역시 주제도 모르면서 잘난 사람 욕이나 하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일 수 있고

터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와 비슷한 인간을 찾아 나대신 그를 경멸하는 인간일 수 있고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한 존재일 수도 있다.

 

인간의 가치라는게 뭘까?

이 작품을 보고 난 후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다.

많이... 불편하다.

내 등 뒤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 작품 속에서 이승주는 정말 끔찍하게 아름다웠다.

  '관객들이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다던 바람은 이제는 확실히 이룬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그의 이름 석자가 들어간 작품이라면 지금처럼 앞뒤불문하고 무조건 찾아볼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서 김영민과 이석준의 필모그라피가 함께 보인다.

  그건 유사성이나 카피의 개념이 아니라

  두 배우의 장점을 흡수해 자신만의 다름으로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이번 작품을 보면서도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감탄사을 내뱉었는지...

  아름다운 힘을 가진 배우고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배우다.

  사실 작품의 시놉을 보고 김광보 연출이 이승주를 형으로 선택하겠구나 짐작했는데

  예상은 적중했고, 그 적중은 또 다시 옳았다.

  역시 김광보의 배우다.

  그래서 11월 LG 아트에서 올려질 작품이 엄청나게 기대된다.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

  김광보의 배우들 모두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어쩌면 내가 연극 제목과 똑같은 상태가 될 수도 있겠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4. 17. 08:12

<M.Butterfly>

 

일시 : 2015.03.11. ~ 2015.06.07.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극본 : 데이비드 헨리 황(David Henry Hwang)

무대미술 : 이태섭 

연출 : 김광보

출연 : 김영민, 이석준, 승주 (르네 갈리마르) 

        김다현, 정동화, 전성우 (송 릴링) / 빈혜경, 김보정 (르네)

        손진환, 유연수 (똘룽) /  유성주, 한동규 (마크) 

        정수영, 이소희

제작 : 연극열전

 

"매혹 자체가 제국주의다"

연극 속 그네와 송의 대사는 정말 사실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대사들이, 의미들이, 그 겉잡을 수 없는 느낌들이 자꾸 떠올랐다.

그래서 결국 참지 못하고 르네가 송을 찾아간 것처럼 고작 삼일만에 <엠나비>를 찾아갔다.

즉흥에 가까운 선택을 하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매번 이 작품에 이렇게까지 맥을 못출까?

왜 이렇게 끌려다닐까?

그 이유가 궁금했다.

<에쿠우스>, <엠나비>, <레드>, <프라이드>

생각해보니 나를 속수무책으로 건드린 연극들에게선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나"에 대한 이야기라는거.

그리고 "너"에 대한 이야기라는거.

그래서 나는 이 연극들에게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거라고...

그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깊은 내면의 아픔을 공감하고 마침내 견뎌내는거.

그게 내가 감당해야할 몫이라고...

 

 

전성우는 비밀을 품고 있는 송이다.

너무 조심하고 있어서 그게 오히려 발각의 징후처럼 보여 내내 불안했다.

관계에 대한 진실 보다도 스파이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더 많이 부각되더라.

그래서 자신의 남성을 르네에게 보여줄 장면도 르네를 조롱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정말 그렇다면... 르네는 참 불쌍한 사람이구나...) 

이승주 르네.

나는 이 패기넘치고 뚝심있는 젊은 배우가 정말 좋다.

그래서 한 작품이 끝나고 나서 다음 작품에 대한 소식이 없으면 혼자 전전긍긍 한다.

혹시라도 이 좋은 배우를 브라운관에 뺏기게 되는건 아닐까 싶어서...

사실 2014년 재연에서 르네에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더랬다.

지금까지 연극무대에서 성실하고 든든하게 이력을 쌓아오긴 했지만 

이승주라는 이지적인 배우에게 이 역할이 과연 어울릴까 싶었다. 

그런데 결론은... 비루한 내 오지랖이더라.

이승주 르네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르네다웠다.

삼년만에 돌아온 김영민은 처음부터 환상에 살고 있는 르네처럼 보인다면,

이승주는 현실에서 환상으로 점점 사라지는 르네다. 

김영민 르네의 결말은 자발적인 선택같은데

이승주 르네의 결말은 어쩔 수 없는 절망이 부른 파국이다.

그래서 더 절박하고 침혹하다.

내내 그게 마음에 쓰이더라

어쩌면... 내가 대상포진 때문에 육체적으로 많이 아파서였는지도 모르갰지만

날카롭게 찔러대는 육체적인 통증에 이 작품의 내적인 통증까지 겹쳐지니 견디는게 많이 힘들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잠깐 후회도 했다.

 

상관없다.

스스로 나비부인이 된 르네의 이야기는

어차피 처음부터 끝까지 내겐 다 후회다.

마담 버터플라이가 될 용기 따위,

전혀 없으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8. 20. 07:51

<유리 동물원>

일시 : 2014.08.06. ~ 2014.08.30.

장소 : 명동예술극장

극작 : 테네시 윌리엄스

연출 : 한태숙

출연 : 김성녀 (아만다), 이승주 (톰), 정운선 (로라), 심완주 (짐)

        최영(첼로)

기획 : 명동예술극장

 

우리에게 <욕망이란는 이름의 전차>로 유명한 테네스 윌리엄스의 또 다른 작품 <유리 동물원>

내가 이 연극을 관람한건 순전히 배우 이승주 때문이다.

연극배우 이승주.

20대의 이승주는 대견스러우면서도 솔직히 이해가 안되는 연기자였는데

지금 무대에 서있는 30대의 이승주는 아주 건장하고 단단한 배우가 됐다.

SBS 공채 연기자에 합격하고도 무대를 선택한 이승주.

(어떻게라도 TV에 한 번 나오려고 안달복달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이렇게나 많은데...)

이유는 어의 없을만큼 간단 명료했다.

TV보다 연극무대가 본인과 더 잘 맞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이 말은 젊음의 허세도 객기도 아니더라.

연극무대에서 한 인물을 살아내는 이승주를 보는 건 매번 짜릿한 기쁨이었다. 

게다가 작품의 편수가 늘어날때마다 확실히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M. 버터플라이> 이후 배우 이승주를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군에 포함시켰다.

 

아만다, 톰, 로라, 심지어 짐까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는 세상을 피해 숨느라 급급하다.

수다와 잔소리, 과거의 영광 속으로, 영화 속으로, 유리 동물원 속으로,

혹은 거짓과 허세 속으로...

현재를 살아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웅켜쥐고 한사코 놓치 않는다.

또아리가 풀리는 순간 그들만의 세상은 유리로 만든 동물처럼 산산조각난다

작품을 보면서 손님에 불과한 "짐"에게조차도 연민이 일었다.

홀로 설 수 없는, 누군가에게 기대져야만 보이는 야망.

전 체하고 나쁜 남자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그의 삶 역시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삶이다.

빛을 비추면 화려해보이고 그럴 듯해 보이는 유리 동물원.

차라리 그대로 깨져버린다면 아무 문제가 안된다.

문제는 깨진 조각들이 서로 부딪치며 여기저기 남길 상처들이다.

연극을 보는 내낸 나는 그게 참 버겁고 무겁고 힘겹고 아팠다.

내가 톰이라면...

달아났을거다. 분명히!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참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덫이로구나.

 

아만다, 톰, 로라.

"톰"은 <유리 동물원>의 작중 화자이자 등장인물이다.

갈등관계의 중심에 있는 아들이면서 전지적 시점을 가진 해설자이기도 한다.

흐름을 잘못타면 혼란스럽고 산만하게 보일수 있었을텐데 배우 이승수는 참 페이스 조절을 잘하더라.

딕션은 정확했고 연기는 과정된 표현없이 자연스럽고 안정적이었다.

때로는 헐렁하고 개구진 소년같기도,

때로는 광기에 휩싸인 탕아같기도,

때로는 막다른 골목에 홀로 갇혀버린 사람 같기도 했다.

심정적으로 톰에게 참 많이 동화됐다.

상황이 아주 조금은 비슷하기도 했고...

너무 오래, 너무 자주 침묵중인 배우 정운선을 무대에서 봐서 개인적으론 아주  반가웠다.

그녀는 정말 딱 "로라"같은 분위기를 풍기더라.

작품은 전체적인 무대도, 조명도, 배우들 연기는 아주 좋았다.

간혹 뜬금없이 첼로 연주가 삐걱이는게 좀 흠이긴 했지만 ^^

 

테네시 윌리엄스는 확실히 안톤 체흡보다는 덜 난해하고, 더 재미있다.

조금 더 세련되고 모던하고 흥미롭다고나 할까!

혹시라도 너무 어둡고 너무 어려울까봐 걱정했었는데

묵직함과 유쾌함을 다 가진 아주 괜찮은 작품이었다.

재관람의 유혹이 강하게 느껴질만큼...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4. 23. 08:01

<M.Butterfly>

일시 : 2014.03.08. ~ 2014.06.01.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극본 : 데이비드 헨리 황(David Henry Hwang)

무대미술 : 이태섭 

연출 : 김광보

출연 : 이석준, 이승주 (르네 갈리마르) / 김다현, 전성우 (송 릴링)

        손진환, 정수영, 유성주, 이소희, 빈혜경

제작 : 연극열전

 

이석준 르네에 이은 이승주 르네 갈리마르.

SBS 연기자 공채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 연극배우의 길을 택한 보기 드물게 용감한고 뚝심있는 젊은 배우 이승주.

솔직히 치기어린 객기라고 생각도 들었고,

TV 신인 연기자의 연기수업, 혹은 얼굴 알리기용 멘트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김광보 연출의 <내 심장을 쏴라>를 보니 그게 아니더라.

대선배 김영민에게도 밀리지 않았고, 작품에도 끌려다니지 않았다.

그 후 다시 이승주를 무대에서 본 건 작년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에서였다.

처음엔 몰랐었다. 그가 그 이승주라는 걸.

<로맨티스트 죽이기>에서 그의 연기는 개인적으로 충격적일만큼 인상적이고 강렬했다.

불과 몇 년 만에 81년생의 이승주는 작품을, 배역을 온전히 책임지는 여엿한 배우로 무대 위에 서었다.

(개인적으로 <로멘티스트 죽이기>를 보면서 이승주에게 무지 열광했었다. 물론 혼자 조용히... ^^)

 

<엠나비>의 앵콜공연에 그가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출중한 외모때문에 당연히 "송 릴링"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르네" 란다.

조금 이해가 안됐지만 모델을 빰치는 그의 기럭지가 아무래도 송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싶긴 하다.

이승주와 김다현이 나란히 무대에 선다면?

미모에 관한한 제대로 포텐 터지겠다.

그야말로 관객들 안구정화시키는 All kill할 외모들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은 이번에도 전성우로!)

 

이승주의 르네를 보면서 스스로 "엠나비"가 되어야만 했던 한 남자의 진실이

아주 절실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건 이석준 르네와는 완전히 다른 표현이었다.

81년생의 젊은 배우가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배역이었을텐데 놀랍다.

끌려가지 않고 이야기를 품고 가더라.

확실히 배우더라. 이승주는!

 

이승주가 표현한 르네는,

겶코 자신의 욕망에 속거나, 환상속에 살았던 인물이 아니다.

극단적이긴 했지만 그 결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확고한 "르네의 선택"이었다.

송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르네가 정말 몰랐을까?

나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르네는 송의 정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고.

그래서 기꺼이 송의 "엠나비"가 되기로 작정했던 거라고.

그러니까 이 작품은 완벽한 여성을 만나 그 여자의 환상을 선택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했던 또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여자를 만나는 일이라는 르네의 말.

이 대사는 그냥 스치고 지나버릴 그런 대사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승주 르네에겐....

르네는 송 릴링에게 자신의 모든 수치심을 바쳤다.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그걸 이해한다면 르네도,

르네의 선택도 다 이해될 수 있다.

 

* 작품 속에 집중과 몰입을 다 바친 배우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이날 온전히 소진(消盡 )된 두 배우의 커튼콜 모습은 

  오랜 여운으로 남겨질만큼 깊은 감동이었다.

  나는 두 사람이 훨씬 더 좋은 무대배우가 될거라는 걸,

  더  큰 책임감과 아름다운 진념으로 무대를 지켜낼거라는 걸

  추호의 의심없이 믿는다.

  작품도, 배우도...

  참 독하게 아름답다.

  두 배우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그 눈빛!

  두고두고 못잊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4. 3. 08:33

<M.Butterfly>

일시 : 2014.03.08. ~ 2014.06.01.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극본 : 데이비드 헨리 황(David Henry Hwang)

무대미술 : 이태섭 

연출 : 김광보

출연 : 이석준, 이승주 (르네 갈리마르) / 김다현, 전성우 (송 릴링)

        손진환, 정수영, 유성주, 이소희, 빈혜경

제작 : 연극열전

 

2012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초연 당시 정말 인상깊게 관람했던 작품.

다시 올려지길 나 역시도 바랐는데 무려 2년만에 앵콜이 결정됐다.

조금만 흥행에 성공헤도 바로 앵콜무대가 올려지는 요즘의 추세를 생각하면 앵콜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린 셈이다.

초연이 워낙 인상적이라 그때 배우들을 다시 볼 수 있길 은근히 바랬는데 공개된 캐스팅은 김다현만 제외하고는 완전히 뉴페이스였다.

르네 갈리마리에 이석준, 이승주, 그리고 송 릴링에 전성우.

서운함과 동시에 와~~우! 를 연발하게 하는 캐스팅이라 망설임없이 예매했다.

이석준-전성우, 이승주-전성우 페어로...

(김다현 송 릴링은 이번에도 pass~~)

이 작품은 1986년 실제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스 외교관 '버나드 브루시코'와  중국 경극 배우 '쉬 페이푸' 사이에서 일어난 세기의 로멘스(?)이자 스파이 사건.

두 사람의 이 기묘한 관계는 무려 20년 동안 이어졌다.

(어쩌다보니 요즘 내 관극의 화두가 '기묘(奇妙)"가 되버렸다)

작품 속에서 송 릴링은 르네 갈리마르에게 이렇게 말한다.

"중국 경극에서 남자가 왜 여자 역할을 대신하는지 아세요?

 어떤 여자가 진짜 여자다운지 남자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죠"

르네 갈리마르는 그 말의 의미를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진실보다 자신의 환상을 지켜내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나를 속인 건 나의 욕망"

르네의 마음이 나는 또 어쩌자고 이렇게 이해되고 공감될까?

 

이석준의 갈리마르.

후반부로 갈수록 폭풍처럼 몰아치는 감정에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초연의 김영민과는 또 다른 르네다.

환상 속에 머물기를 선택한 남자.

그리고 스스로 M.butterfly가 되어 영원히 그녀를 지켜내는 남자.

매일밤 머릿속에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연극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다.

당연하지 않나!

그녀를 만나서, 그녀를 사랑해서 인생의 모든게 완전히 바뀌어버렸으니...

"나는 상상 그 자체요. 그리고 그 상상 안에 영원히 머물겁니다!"

나는 이 대사가 르네의 최후변론처럼 들렸다.

그의 선택을...

나는 인정한다. 이해한다. 동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의 자살장면은 너무 아프더라.

(이석준도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보는 내내 안스러웠다)

이석준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섬세함과 다른 치밀함이 보인다.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

그러니까 배우 이석준이 내겐 <M.Butterfly>인 셈이다.

그래서 이석준이 연극 무대에 서면 나는 짜릿하다.

<스테디 레인>도 그렇고 <M.Butterfly>로 더 그렇고.

이석준이 김광보 연출의 새로운 뮤즈(?)가 됐음을 인정하게 된다.

(나야 너무나 좋지!)

개인적으로 배우 이석준이 연출에 도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드디어 연극 <섬걸즈>에서 연출을 한단다.

게다가 정상윤이 이석준이 했던 남자 주인공을 한다니

이 작품 여러가지로 관람할 맛이 나겠다!

 

송 릴링 전성우.

사실 캐스팅에 이름이 올랐을때 좀 걱정했었다.

아직 소년의 느낌이 강한 전성우가 역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런데 이 녀석.

무대 위에서 참 진심이더라.

한참 선배인 이석준의 서포트를 받는 게 아니라 송 릴링 장면에서는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았다.

법정장면은 담담하면서도 너무 슬펐고

전체적으로 감정 컨트롤도 잘해서 놀라웠다.

(생각보다 여장이 어울리지 않은 것도 놀라웠고...)

화장을 지우고 남자의 모습으로 서있을 때는 전성우 특유의 미소년 느낌이 강했는데

개인적으론 그게 작품 속에선 나쁘지 않았다.

그것 역시도 르네의 상상이었을테니까...

몰입과 집중으로 작품을 꽉꽉 채워내는 배우의 모습을 보는 건

역시나 큰 기쁨이고 행복이다.

이 녀석과 이승주가 만나게되면?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숭주가 출연하는 연극은 어쩌다보니 거의 다 봤는데 

볼때마다 놀랐다.

SBS 공채탈렌트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그냥 잠깐 연극무대에서 연기수업을 받는가보다 생각했는데

그를 TV에서 본 기억은 전혀 없다.

본인 스스로도 연극이 자신과 잘 맞는단다.

혹시 이 배우의 정체가 궁금해 예매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무대를 너무나 잘 알고 아는 만큼 책임질 수 있는 배우라고.

이승주의 작품을 보고 나면

어느새 그가 당신의 M.butterfly가 되어 있을 거라고.

 

이승주 르네와 전성우 송 릴링.

아직 확인하지 못한 두 사람의 무대가

지금 내겐 진실을 품은 환상이다.

 

M. Butterflay!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2. 12. 08:16

<로맨티스트 죽이기>

부제 : 2012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일시 : 2012.11.24. ~ 2012.12.09.

장소 : 백성희장민호 극장

극작 : 차근호

무대감독 : 변오영

무술감독 : 이국호

연출 : 양정웅

출연 : 한윤춘(김달), 전중용(임종), 정승길(도화), 오민석(진평왕),

        이승주(비형), 이국호, 김남중, 성민재, 계지현, 김도완, 풍성호,

        권신우, 송준석, 이창규, 영인

 

<루시드 드림>의 차근호 작가와 <한여름 밤의 꿈> 양정웅 연출의 만남!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마지막 작품은 정말 마지막답게 끝장이었다.

2시간 동안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서 황홀하고 또 황홀했다.

이로써 9월 <꿈>으로 시작된 3개월간의 삼국유사 프로젝트 대장정도 모두 끝났다.

<꿈>, <꽃이다>, <나의 처용은 밤이면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 <멸>, <로맨티스트 죽이기>

이상하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내가 뭐라고 가슴 한 켠이 휑~~하다.

황홀했고, 경외감이 들만큼 엄청난 여행이었다.

이 여행의 종착지였던 <로맨티스트 죽이기>

이 작품은 삼국유사 "도화녀와 비형량" 설화가 그 모티브란다.

작품의 거대함과 묵직함은 가히 언급하기 힘들 정도의 묵시론이었다.

뭐라고 운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속.수.무.책.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는 확실히 그런 상태였다.

 

로맨티스트가 꿈꾸는 세상과 리얼리스트가 꿈꾸는 세상!

우리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왕족과 귀족의 나라, 그 1500년전 신라가

우리가 사는 이 아비규환의 세상과 똑같은 현재의 모습으로 무대 위에 그려진다.

(게다가 같은 편 같은 왕족과 귀족은 또 자기들끼리 권력을 위해 또 열심히 싸운다.)

감각적인 영상과 심플한 무대.

클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조명과 음악.

그리고 15명의 남자들이 보여주는 현란하고 격동적인 아크로바틱의 세계는 눈을 휘황찬란하게 만든다.

(저건 사람이 할 수 있는 몸놀림이 아니야... 등짝을 열면 분명히 에너자이저가 들어있을거야...)

개인적으로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작품을 싫어하는데

이 작품은 거부감 전혀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봤다.]

 

로맨티스트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단다.

그래서 로맨티스트는 언제나 리얼리스트에게 죽임을 당한단다.

섬뜩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했던 로맨티스트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라서... 

로맨티스트는 수평과 대칭의 세상을 꿈꾸는데

리얼리스트는 수직과 대립의 세상을 꿈꾼다.

리얼리스트의 세계는 그래서 자기 밥그릇이 중요하다.

그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그렇게 기를 쓰고 남의 밥그릇 뺏기에 혈안이다.

그 밥그릇 싸움에 국민들 등짝은 갈라지고 피고름이 흐른다.

명예라는 건 개나 물어가라지!

리얼리스트의 세계에서는 로맨티스트는 도깨비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탈을 쓴 귀면(鬼面)의 도깨비.

도깨비로 태어나 도깨비로 죽는 이 땅의 숱한 풀잎들의 흔들림이 서럽다.

 

세상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로맨티스트, 리얼리스트, 그리고 로맨티스트를 가장한 리얼리스트.

김달과 비형, 그리고 도화로 대변되는 그 세계가,

어쩌자고 이 세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가 말이다!

조직폭력단의 비호를 받는 건설사업과 끊이지 않는 통치자의 친인척 비리.

정치와 경제의 오래고 끈질긴 유착관계.

그래서 사보타주(sabotage)가 생존의 필수조건이 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로맨티스트 죽이기>

이 작품은 어쩌면 이 세계를 향한 격정적이고 간절한 외침이자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배우가 무대 크루이기도 했던 이 작품.

아주 의도적인 구성이었다는 걸 작품을 보고 난 후 이해했다.

배우들은 한 번 무대 위로 오르면

공연이 끝날때까지 계속 무대 위에 머무른다. 

양쪽 사이드에 앉아서 무대 크루 역할을 하거나 의상을 교체하면서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

자칫하면 산만해질 수도 있었을텐데 동선과 무대 이용을 참 효과적으로 잘 다듬었다.

밥 딜런의 노래 "Knocking On Heaven's Door"도 끝장날만큼 멋진 활용이자 상징이었다.

(이렇게 멋져도 되는 건가!)

 

배우들의 연기는...

감히 뭐라 말도 못하겠다.

특히 김달 역의 한윤춘 배우는 경외심 그 이상이다.

단지 파격적인 노출을 했대서가 아니다.

왜 한윤춘이라는 배우를 지금에서야 알았나 가슴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완전히 장악했고 끝까지 놓치 않았다.

솔직히 무시무시한 공포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거대하고 위험한 배우, 한윤춘!

김달보다 배우 한유춘이 더 도깨비같다.

 

아무래도 난 도깨비불을 봐버린 것 같다.

오랫만에 제대로 홀렸다...

 

* 비형 역의 배우 이승수도 놀랍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도 인상적이었는데 어느 틈에 이렇게 멋진 배우가 되버렸을까?

  많이 놀랐다.

  이름은 그 이승수가 맞는데 정말 그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과 연기라서...

  이 작품!

  안 본 사람들은 땅을 치고 후회할거다!

  배우들의 목소리에 홀린 기회를 잃어버린 건 정말이지 애통한 일이 될거다.

  (작품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의 목소리... 와... 이건 정말 꿈이다!)

  갑자기 루저에서 승자가 된 듯한 이 승리감!

  정말 두고두고 손에 꼽을 작품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