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10. 15. 07:36

<꽃이다>

부제 : 2012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일시 : 2012.09.22. ~ 2012.10.07.

장소 : 백성희장민호극장

극작 : 홍원기

연출 : 박정희

출연 : 정재진, 이용이, 서영화, 이승훈, 김정호, 유병훈, 호산,

        이서림 외 9인

 

2012년 국립극단에서 기획한 삼국유사 프로젝트.

두번째까지 올려진 지금까지의 작품을 보고 난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전율" 그 자체다.

극본에서부터 연출, 출연하는 배우와 그 배우들의 무대 의상, 

심지어 무대셋트와 음향, 조명 하나하나까지 전부 심혈을 기울인 티가 역력하다.

과연 이렇게 정성이 담 작품을 한 편당 달랑 3만원을 내고 봐도 되나 싶어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게다가 나는 조기예매 30% 할인까지 받아 2만원 조금 넘는 금액으로 관람했으니 미안한 심정은 더 크다)

이런 호사를 이런 가격으로 누려도 정말 되는 걸까!

관객을 자꾸 미안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니...

국립극단이 이 가을에 나를 색다른 경험으로 이끄는 중이다.

고전을 새로운 시각과 관점으로 해석하고 푼다!

실제로 작품들이 올려지기 전까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이 이야기들이 표현될까 궁금했었는데 

최종 결과물들은 경의에 가까운 신비와 신선함이다.

객원 배우들이 많이 출연하긴 하지만 한 무대에서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오랜 믿음과 모종의 끈끈함이 작품 속에 묻어 있다. 

(이런 은밀함, 정말 매력적이다!) 

 

삼국유사 "헌화가"의 주인공 수로부인.

절세미인으로 유명한 수로부인은 그 빼어난 미모때문에 여러번 신물(神物)에 납치되기도 했단다.

이 작품 속에서도 용신(龍神)의 제물로 자진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 재미있는 건,

음모와 계략으로 이용할 신물의 암약이 한 여인의 정체성을 찾는 의외의 결과를 낳는다는 거다.

용신의 뜻 선포와 함께 여자에서 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수로부인.

깨달은 여인에게 꽃을 받치는 행위(헌화)는 어찌보면 지극한 당연한 일이다.

"꽃"은 그러니까 "깨달음"의 다른 의미이리라.

꽃은 어디서나 한순간에 피고 진단다.

그러나 피어 있음에 취하지 말고 그 향기와 열매를 다음 세상에 나눠줘야 한단다.

꺽지 말고 꺽이지 읺으면 이 세상은 한 송이 꽃!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만과 기만의 꽃을 버리고 스스로 꽃이 되란다.

네가 꽃이라고! 우리 모두가 꽃이라고!

이렇게 교훈적(?)인 내용을 이렇게 시(詩)적이고 몽환적으로 풀어낸 신비가 놀랍다.

한판 걸판진 굿판같은 작품이고, 구구절절 한많은 살풀이 춤 같은 작품이다. 

 

지겹다, 못난 것들의 안달.

역겹다, 가진 것들의 뼛댐.

더이상 게워낼 것도 없는 구역질 세상!

 

극에서 무당 검네가 내뺕는 대사가 가슴을 친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내곡동 사저 관련 기사를 봤다.

 MB의 형님 이상은이 출국금지 조치가 나기 1루 전에 알아서 이미 출국하셨단다.

 그야말로 진정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다.

 뭘 좀 아는 놈이란 MB 형제를 두고 하는 말이 분명하다

 정말 지겹고 역겹다. 구역질 나는 세상!

 껌껌바다 용신님께서 꽉 좀 물어가셨으면 좋겠다.)

 

힘과 권력의 상징인 순정공과 수로부인,

그리고 민초의 상징인 마을 아낙네와 무당 검네.

이 두 상징은 묘한 대립과 힘겨루기를 반복하년 극을 긴장감으로 이끈다.

거기에 문예부흥으로 대국 신라를 꿈꾸는 득오와

무력으로 평양까지 치고 올라갈 야망에 젖은 호일랑 두 화랑의 대립,

권력의 두 주체(?)인 순정공과 수로부인의 대립.

수로부인과 용각시 아리와의 대립, 마을 아낙네와 검네와의 대립 등등등...

이 숱한 대립들은 마치 펄펄 살아있는 활어처럼 무대 위 여기저기를 펄덕댄다.

(무대 주변을 혜자처럼 물이 감싸고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헤다 가블러>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김정호와 호산의 연기도 너무 좋았고

검네 이용이, 수로부인 서영화, 득오 이승훈의 연기도 압권이었다.

경력과 내공이라는 건 정말 무시 할 수 없는 힘이구나.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또 다른 "권력"에 도취되고 매혹됐다.

 

연극 <꽃이다>는 "권력"과 "앎"에 대한 이야기다.

권력이란 놈은,

비천함의 정도에 정확히 비례하는 힘을 갖는다.

비천하면 비천할수록 그 힘은 크고 강하다.

그러나 비천한 권력은 또한 올곧은 "앎" 앞에서는 반드시 몰락한다.

그 몰락의 끝에 진한 향과 열매를 맺는 "꽃"이 핀다.

아니, 반드시 그렇다고 믿고 싶다.

삼국유사 프로젝트 두번째 작품을 보면서 나는 지금의 현실이 그대로 비춰저 암담했다.

 

우리는...

언제 꽃을 볼 수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2. 16. 06:26

"무대가 좋다" 여섯번째 작품 <대머리여가수>
존개감있는 배우 안석환이 각색, 연출, 출연하는 작품이다다.
그리고 부조리극이라는 참 부조리한 말을 달고 있는 연극이기도 하고...
원래 뮤지컬 <미션>을 예매했던 날이었는데
초등학교 학예회 수준이라는 둥, 관객모독이라는 둥, 소비자보호원에 신고를 하겠다는 등
열화와 같은 폭풍평가에 감동해서 과감하게 취소하고 선택한 작품이다.
그나저나 <미션>은 어쩔라나 모르겠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한차례 공연을 연기까기 해놓고
어쩌자고 이 지경을 만들었는지...
지금 암암리에 덤핑처리되고 있는 것 같다.
참 세종문화회관을 대관해서 이 무슨 행팬지....
엔리오 모리꼬네는 늙그막에 참 국제적으로 귀가 가려우시겠다. 더불어 그 아드님께서도...
"nella fantasia"하나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건 정말 fantasia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좀 거하긴 하지만 "경고관람주의보"를 그대로 숙지하고(?) 공연을 관람하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cult적이고 산만하다는 느낌이 들수도 있겠지만
서로 자기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함께 있지만 낯선 타인같은 딱 요즘 세태같은 연극이다.
개인적으로는 부조리극이라는 표현보다는 풍자극이라고 표현이 더 맞을 듯...
그리고 참고적으로 제목과 작품의 상관관계는 전혀 없다.
제목부터 철저하게 관객을 배반하고 등친다.
(표현이 좀 죄송하지만... 나쁜 의미는 아니므로...)
반짝빤짝한 민머리를 자랑하면서 노래 부르는 여가수를 만날 일은 전혀 없다는 뜻 ^^



무슨 이유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마씨 부부가 서씨 부부 집에 찾아오고
나중에 소방관 아저씨, 가사 도우미까지 거실 안에 모이게 된다.
서씨, 마씨 부부들 사이에 별 특별한 내용이 담긴 대화가 오고가는 건 아니다.
심지어 부부들 끼리도 그렇다.
불친절하게 종결어미를 톡톡 짤라먹는 몹시 섹시한 의상을 입으신 도우미 언니!
그리고 정신질환자처럼 횡설수설을 연발한는 국가공무원 소방수.
글쎄... 뭐랄까?
이게 다 뭐하는 짓이냐며 노려보면서 뭔가 의미를 꼭 찾겠다 작정하고 보는 사람은
황당한 시츄에이션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다.
(누가 뭐라든 상관하지 않게 제 길만 가는 현대인의 모습, 딱 그대로다.)
그냥 머리와 가슴을 그대로 놓고
보이는 그대로 보고, 웃기면 웃으면 되는 그런 작품!
개인적으로는 배우들의 표정을 읽는게 참 재미있었다.
그것도 상대편에게 포커스가 맞춰졌을 때 반대편 배우들이 짓는 살짝 장난기 담긴 표정들.
일반적으로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공연중에 사진 촬영 하는 걸 금지하는데
이 작품은 사진을 찍어도 상관없고 배우들도 찍으라고 친절히 포즈도 잡아준다.
심지어 핸드폰도 끄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전화오면 그냥 받으란다.
(실제로 받더라. 그리고 정말 전화를 받더라도 극에 아무 방해가 되지 않는다)
재미있지 않나?
이런 파격에 가까운 모습들이!



마임이스트 고재근의 제자들 3명(정한별, 조윤경, 윤대열)이 마임과 랩을 부르고
한글의 아름다운 모습을 패션에 접목시킨 그 유명한 디자이너 이상봉이 의상을 담당했다.
미술은 임옥상.
스탭진이 화려해서 무대나 의상이 궁금했었는데
솔직히 눈에 확 띄는 건 별로 없었다.
심플하고 재미있는 무대였고 의상이었다고만 해두자.
"겨울공주 평강이야기"의 온달 진선규를 오랫만에 무대 위에서 만나서 반가웠다.
이(爾)의 장생, 이승훈도...
자꾸 영화 <복면달호>의 트롯트 아저씨 모습이 보여서 혼자 웃었다.
(그 환상적인 2:8 포마드 바른 가르마... 근데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는 걸 사람들이 알까?)
연극이 모두 끝나고 열심히 공놀이(?) 하는 배우들의 모습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정말정말 초등생처럼 열심히 던지더라...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작품이긴한데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선 좋은 호응을 얻기가 험난하지 않을까 싶다.
"무대가 좋다" 시리즈 중에서 안타깝게도 가장 관객이 없다.
유명 연예인을 캐스팅한 것도 아니고
(이 작품을 하겠다고 나서는 연예인이 과연 있을지도 의문이다)
2차 티켓예매가 시작됐는데 할인율이 무려 50%를 넘기고 있다.
상당히 공을 들인 작품같은데
조금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뭐, 어쨌든 개인의 취향이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6. 30. 06:08


연극 <이(爾)>
작.연출 : 김태웅
2009. 06.09 ~ 07.08.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구 아르코시티극장)
평일 : 8시      토요일 : 3시, 7시            일요일 : 4시
출연 : 김내하/박정환 (연산) , 정원영 (공길), 진경/이화정 (녹수), 이승훈 (장생), 정석용 (홍내관)




<爾> 볼 때면 왜 항상 맘이 아플까?
난폭함을 가장한 갓난쟁이 연산의 슬픔도
연산을 휘두르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녹수도
끝끝내 자신을 버리지 않는 왕을 둔 공길도
그리고 그런 공길을 품는 장생의 마음도
모두 다 서글픔이고 안타깝다.



2006년 극장 "용"에서 봤던 <이>를
다시 만나다.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영화와 연극이 비슷할 거란 생각은 그러나 하지 않는 게 좋을 듯....
정말 다른 느낌이다. 물론 근복적인 차이는 아니지만)




아르코시티 극장을 들어서면
내벽이 온통 공연장이다.
약간 올려다보는 눈높이가 오히려 시야를 가리지 않아
기특하다는 생각도...



<이>의 첫 장면은
웅장하기도 하고 왠지 흉물스럽기꺼자도 하다.
문 뒤로 서 있는 커다란 탈과
7명의 무희들이 나와 마치 처용무를 생각케 하는 춤을 춘다.
음산하며 비밀스런 기운까지 감도는 곳



연산은 화로 앞에서 어머니 신주인 듯한 종이를 태우며
그 절절한 마음을 통곡한다.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광기의 한 표현이었을까?
아직 선택이 어렵다.
(역시 이 장면은 2006년 이남희 연산을 생각나게 한다. 충격적이었었는데.....)



희락원 광대들의 한판 굿!
살짝 현실을 꼬집는 위트까지.
같은 풍자가 항상 먹힐 수 있는 현실이 참 싫다.
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차라리 현실이 이런 놀이판이라면
적어도 열심히 박수는 칠 수 있을텐데.....
얼~~~쑤 하면서.



김내하와 더블로 연산을 연기하는 "박정환"
2006년 "공길"이 "연산"으로 돌아오다.
"공길"을 건너 온 박정환의 "연산"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다는 바램.
4대 공길의 행운을 잡은 "정원형"
오만석, 박정환, 김호영에 이은 공길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탐이 날 배역.
남자이면서 여자인 爾,
슬프게 매력적인, 그리고 모호한 이 사람.



장녹수의 옆을 지키던 또 한 남자(?)
홍내관 정석용,
베토벤 바이러스,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의 감칠맛 나는 연기를 보였던 분.
이 분의 감초연기는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계획된 애드립과 액션인 것 같은데 왜 매번
같은 대사와 몸짓을 해도 처음 보는 것처럼 재미있는거지?
신기해....
(이런 게 내공일까?)



폭군 연산이 궁중광대를 사랑했다는 파격적인 설정!
뭐 요즘 세상엔 이딴 건 파격도 아니긴 하지만...
임금의 자리에 요즘 시대의 인물을 올리면 파격이 될라나?
뭐 워낙에 그 분 자체가 파격이고 별종이라
이딴 것 정도는 파격도 아닐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
참 다양한 종류의 폭군들이 있구나 싶다.



장생의 "이승훈"
이 분의 장생 연기가 나는 너무나 좋다.
(이 분 역시 영화 <왕의 남자>에 나온다. 광대 3인방 ^^)
그가 연산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붓는 독설들....
"상감인지, 영감인지, 탱감인지...."
"저 대가리로 왕을 해도 될라나 몰라...."
(누군가 뜨끔하겠다.... ^^)
그리고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벌이는 한판 놀이판
"난 내 가슴이 벌렁거릴 때만 살아있다고 느껴!"
산송장처럼 살고 있는 내가
마치 연산이 된 것 같아 뜨끔하다.



"저 놈이 영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난 이 대사에서 "사과하십시오!"가 생각났다.....)
연산을 향해 내뺏는 공길의 말!
왜 나를 버리느냐고 묻는 연산에게
"내가 임금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라 답하는 공길!
처음으로, 다시 자유로,
물같은 자유로 돌아가는 공길의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나도 함께 눈물을 쏟게 된다.



"현실! 그런 게 있었나!"
공길을 끌어앉고 혼자 앉아 있는 연산은 공길의 손에서 빨간 천을 풀어낸다.
(장생의 눈을 가렸던 바로 그 천)
주위는 이미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고...
홀로 남아 유언같은 말을 남기는 연산.
"인생 한바탕 꿈! 그 꿈이 왜 이리 아프기만 한 것이냐....."



연기처럼 사라질 불길....
다.... 탔구나....

인생이 정말 한바탕 꿈인 건가?
그 꿈 속에 나 또한  내 놀이판을 잃어버린지 오래.
남는 건,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건가?
다 사라져 재만 남아
마침내 그것도
후~~ 불어 날아가면 그 흔적도 없어질텐데...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없다.
나를 향하는 대명사,
너 爾!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