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9. 9. 08:30

<클로져>

일시 : 2013.08.31. ~ 2013.12.01.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극본 : 패트릭 마버 (Patrick Marber)

연출 : 추민주

출연 : 이윤지, 진세연, 한초아 (앨리스) / 신성록, 최수형, 이동하 (댄)

        서범석, 배성우, 김영필 (래리) / 김혜나, 차수연 (안나)

주최 : 악어컴퍼니

 

딱 1번 관람으로 끝낼 작품이라 캐스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래리와 망설임 없이 김영필이었고,

그리고 그 선택은 역시나 탁월했다.

두번재 앨리스를 하게 된 이윤지와 사전지식 전혀 없는 안나 차수연도 괜찮았다.

군복무 후 이 작품을 복귀작으로 선택한 신성록은 그럭저럭 ^^

사실 댄이라는 인물 자체는 참 찌질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기적인 인물이라 매력적이 않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기에 중요한 배역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해야만 하는...

신성록의 댄은...

오랫만에 무대로 돌아온 배우의 감회와 잘하고 싶은 욕망, 두려움이 끝없이 부딪치는 모습이었다.

<클로져>의 댄보다는 배우 신성록을 더 많이 보여준 느낌.

다행인건,

<클로져>이기에 뭐가 됐든 "흔들림"이 보였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이마저도 없었다면...글쎄.

배역 댄이 아니라 배우 신성록의 코믹함이 자주 느껴져 난감했다.

그야말로 낯선 남자!

누구라도 무장해제 시킬 여자를 곁에 두고도

사랑만 가지고는 안 되는 낯선 남자!

그래서 결국 진짜 "제인"은 끝끝내 알지 못한채 앨리스만 본 낯선 남자!

 

차수연 안나는 단아하고 이지적이며 때때로 우아했다.

특히 대사톤은 정말 좋더라.

그런 톤으로 성적인 단어들을 서슴치않고 내뱉는 모습이라니!

개인적으론 일종의 반전이었다.

이윤지의 앨리스는 사랑스럽고 귀엽고 열정적이었다.

(클럽씬이 좀 더 과감하고 노골적이었다면 좋았을텐데...)

간혹 신성록의 감격에 따라가는 우(愚)를 범하긴 했지만 거슬리지는 않는 정도.

재미있는 건 신성록 댄과의 장면보다 김영필 래리와의 장면이 훨씬 감정도, 연기도 좋았다.

아마도 김영필의 힘이 아니었을까!

김영필 래리가 나오는 장면들은 나도 모르게 집중력이 극대화 되면서 상체가 저절로 앞으로 쏠린다.

이윤이 앨리스와도 차수연 안나와도 그리고 신성록 댄과도 호흡이 너무나 좋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진행되는 3막 컴퓨터 체팅 장면도 정말 좋았다.

함께 있는 신성록 댄이 투명인간처럼 느껴질 정도다.

역시나 시선의 여백과 공간의 틈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는 배우다.

안나가 댄과의 관계를 고백하는 장면에서도

그 무수한 감정들의 충돌과 표현을 보면서 객석에서 정말 짜릿짜릿했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래리가 돼서 절망하고, 매달리고, 분노하는 모습!

솔직하고 거침없고 정확하다.

보면서 나는 래리를 내게 투사(投射)시켰던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노골적인 대사를 쏟아내며 으르렁거리며 맹렬하게 원초적으로 싸우고 싶은 욕망.

거짓과 숨김 앞에서 인간은 충분히 이성을 버린다.

이성를 버린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조롱"이다.

폭력보다 더 무시무시한 조롱.

스스로에 대한 조롱과 상대방을 향한 조롱.

그러나 나는 래리를 절대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의 비열한 비겁함마저도 충분히 이해되기에...

 

- 왜 그랬어요?

- 우린 사랑에 빠졌거든!

- 당신은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유혹에 넘어간거야!

- 그럼, 넘?

- 난 선택했어!

 

안나와 앨리스와의 이 대화.

이상하게 계속 가슴 속에 박혀있다.

이 대화 후 안나는 선택이 바뀐다.

영향을 끼쳤던걸까?

나는 그랬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첫번재 조건은 "타협"이란다.

사랑을 통해 각자 바라는 게 구원이든, 위로든, 유혹이든, 사랑 그 자체뿐이든

"타협"할 줄 모르면 사랑은 끝이다.

왜냐하면.

사랑만 가지고는 안되는 거니까!

 

사랑은.

언제나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

당신을 떠날 준비,

나를  떠날 준비가...

잔인하지만, 그게 사랑이다.

가깝지만(closer)

영원한 낯선 사람(stranger)...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1. 13. 05:54

연극 <프루프>

장 소 : 대학로예술마당 3관
기 간 : 10월 12일(화)~12월 12일(일)
극 본 : 데이비드 어번

연 출 : 이유리
출 연 : 로버트 - 남명렬, 정원종, 
         캐서린 - 윤지, 강혜정 
         클레어 - 하다솜, 김태인
         해롤드 - 김동현



나무 액터스와 악어 컴퍼니의 야심작(?)
"무대가 좋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자
타블로와 결혼 후 아기를 낳고 한동안 쉬고 있던 강혜정의 복귀작 연극 <프루프>
그러나 난 이윤지 캐서린을 선택했다.
2 년 전에 김지호와 남명렬이 부녀로 나왔던 <프루프>를 보면서 그 느낌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때 이 작품을 보면서 김지호가 나이가 좀 더 어렸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김지호 자체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연기를 잘했었고 집중력도 놀라웠었다.
단지 그녀가 25살로 나오는 게 나홀로 어색했었는데...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윤지의 캐서린을 선택한 건.
그리고 왠지 그녀는 똑 부러지고 야무지게 연기를 할 것 같았다.
아버지 로버트역은 전혀 망설임이 없이 배우 남명렬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무대 위에서 존재감 있다는 표현,
배우 남명렬만큼 적절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그의 딕션과 톤은 가히 환상적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로버트가 내 아버지가 아니라는사실에 불같이 질투가 났다.
(이게 말이 되느냐 말이다)



천재 수학자 로버트는 20대에 이미 학계가 깜짝 놀랄 수학적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천재성이 오히려 그에게 견디기 힘든 독이었을까?
말년은 정신분열 증세와 불안장애로 혼란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캐서린의 보호를 받으며...
아버지의 수학적인 천재성을 물려받은 캐서린은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학업도 포기한다.
...... 캐서린은 분명 내 삶을 구원해주었다. 
       그 아이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결코 그 아이에게 보답하지 못할 것이다 ......

캐서린의 21살 생일에 쓴 로버트가 일기.
문득 두 부녀의 관계에 또 다시 질투가 난다.
로버트에게 딸 캐서린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연극은 우리에게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우울증마저도 너무나 수학적인 딸 캐서린,
아버지 로버트는 혼자 남겨진 그 딸에게 환영으로라도 나타나
새 삶을 시작할 힘을 남겨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겟다.
네 삶에 새로운 삼페인을 스스로 떠뜨리라고...
스스로를 죽은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퇴장하는 아버지의 탈육체화된 모습을 보면서
난 그 어떤 실체보다 더 현실적으로 만져지는 로버트의 존재감를 느꼈다.
마지막 유산, 혹은 찬란한 유산이라는 식상한 표현이라도 꼭 해야할 것 같다.
부재가 분명한 한 사람이 버젓이 현실로 변하는 그 시점.
아버지는 딸에게 모든 걸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모녀관계에만 익숙했는데 무대에서 만나는 부녀관계는 참 뜨겁고 사랑스럽고
그리고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부녀의 사랑은 할과 캐서린의 사랑마저도 유치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캐서린과 클레어의 관계까지도.
캐서린은 정말 그랬을까?
아버지의 천재성이 가장 번득이던 20대 중반,
지금 그 나이를 지나야 하는 자신에게도 혹시 아버지의 정신병이 유전되는게 아닐까 불안했을끼?
작품 속에서는 그런 뉘앙스가 아주 많이 풍기지만
난 결코 아니라도 말하련다.
딸이자 보호자이자 협력자이자 간병인이었던 캐서린.
그 부녀의 관계는 무엇으로도 증명될 수 없고
그 누구라도 감히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연극은 마치 그것을 증명하는 어렵고 난해한 공식 같다.


연극 <프루프>는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천재수학자 존 내쉬와 그의 가상 딸을 소재로 쓰여진 작품이다.
2001년 드라마부문 퓰리처상과 토니어워즈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데이비드 어번의 극본은 아름답고 치밀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부녀를 제외한 다른 두 사람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언니 클레어 역의 하다솜은 너무 신경질적이여서 오히려 정신과적인 진료를 받을 사람은 캐서린이 아니라 바로 그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2년 전 봤던 클레어는 이지적으로 도시적인 느낌이 강했었는데...
초반에 캐서린과 머리 영양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미장원 종업원이 손님에게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강매하는 느낌까지 들더라.
그리고 그 옆에서 손톱 손질하면서 함께 수다떨기에 딱 제격이었던 캐릭터 할까지!
목소리와 외모에서 지석진을 떠올리게 했던 김동현 할은,
아무리봐도 수학자같은 이미지는 아니여서 보는 내내 당혹스럽웠다.


클레어와 할 덕분에
순간순간 이 연극이 이렇게 수다스러운 작품이었나 생각했다.
(놀랍도록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윤지 캐서린은...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앗다.
목소리 톤이 급작스럽게 변한다거나 과장되게 표현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첫 연극 무대라는 걸 감안한다면 앞으로의 모습도 기대가 된다.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 하는 캐서린.
그 역할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끊임없이 감정의 변화를 조율하는 일도 쉽지 않았으리라.
스스로도 어느정도 대견해하고 있지 않을까?
젊은 배우들의 연극 무대 도전!
지금까지 "무대가 좋다" 시리즈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다 됐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야!'
연극 속에서 논문 초고를 들고 찾아온 할에게 로버트가 던진 말이다.
모든 증명의 완성은 항상 이런 반추가 아닐까?
살면서 우리가 증명해야 하는 모든 것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지는 화두!
그게 사랑이든, 학문이든, 집착이든, 두려움이든. 정신병이든,
다 됐다고 생각하는,
가장 위험한 그 때를 지나오는 증명만이
오직 위대하고 완벽한 증명이 될 수 있듯이...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어쩌자고 또 다시 이렇게  멀리 와버렸는지...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