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4. 3. 21. 09:08

요즘 최도성의 "일생의 한번" 시리즈에 빠져있다.

여행이 그리운 것도 이유지만

최도성의 글에선 그만의 색채와 뉘앙스가 있어 참 좋다.

허세와 현학이 쏙 빠진 단백한 글도 맘에 들지만

여행에 대한 다른 관점을, 다른 사고를 갖게 한다.

예술과 문학이 주는 힘과 위로.

최도성의 글 속엔 그게 있다.

느리게 걸을 수록 느리게 느껴지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풍경들.

warking and warking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적인 움직임과 호흡.

plan이 아니라 그냥 눈에 보여지는 veiw를 따라 걸음을 옮기고 사고하는 그런 여행.

거기에 최도영의 글에는 반짝이는 지식까지 품고 있다.

그야말로 "Because it is there"

 

예전에 어떤 책에서 프로이드가 요리사였다는 걸 읽고 놀랐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다빈치가 왼손잡이고 채식주의자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의 원고를 '거울원고'라고 불리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재미있다.

베니스, 로마, 피렌체의 숨겨진 이야기뿐만 아니라

모나리자 도난 사건과 음식과 마을 이름에 대한 기원 등이

비밀의 화원이 열리듯 자꾸자꾸 열린다.

게다가 그 여행길을 세익스피어와 미켈란젤로가, 다빈치와 바사리가 함께 한다.

그것도 내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느낌.

(솔직히 황홀하더라)

<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에서는 베토벤과 모차르트, 쇼팽이 내 옆에 있더니

이번에는 화가들이 길라잡이가 됐다.

그렇다면 아직 읽지 않은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은 만나라>의 또 누가 가이드가 되어 줄까?

이 책은 기대감을 품고 열심히 아껴놓고 있는 중이다.

책 겉장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려서...

 

그래, 결국은 또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짝사랑이 너무 깊다.

이러다간 조만간에 상사병에 빠지겠다.

상사병엔 약도 없다는데...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21. 10:55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그녀가 낸 작품들은 모조리 읽었습니다.

하다못해 산문집까지도...

제게 있어 신경숙은 질투의 대상이이기도 했고,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고, 그리고 실망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과 글쓰기에 얼추 젖어버렸다고 할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제 느낌들이 작가로서의 그녀에 대한 종착역은 결단코 아닐 거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

평범한 일상을 너무 아프게 써 어느 날은 혼자 화가 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뜨끔한 자괴함과 부끄러운 속내를 들킴에 대한 막무가내의 억지였던 건 같네요.

“풍금이 있던 자리”

가령 그녀의 글쓰기는 그렇습니다.

풍금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풍금이 있던 자리인 거죠.

화자가 바로 <나>여야 하는 이야기를 그녀는 <당신>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녀의 모태 신앙 같은 도시 정읍, 그리고 차마 분명한 이름조차 갖지 못한 체 등장하는 이니셜의 인물들...

게다가 대화조차도 문장부호 없이 그대로 써버리는 당혹감...

<리진>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잠깐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했던 그녀가 다시 초기작으로 돌아왔네요.

지극히 “신경숙다운” 소설과 함께요...


철들기 시작한 딸들 중 “엄마”라는 이름에 가슴 아프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이 책은 모태로부터 시작된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총 5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지독한 두통과 점점 잃어가는 기억들,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을 숨기고 노부부는 자식이 있는 서울로 올라옵니다.

예전의 우리네 아버지들의 발걸음.

아내와 같은 속도로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게 마치 무슨 대단한 흉이라는 되는 냥 성큼성큼 앞서 갑니다.

자식들의 마중을 마다하고 지하철을 탄 남편의 등골이 순간 오싹합니다.

글조차 읽지 못하는 그 아내가 열차를 타지 못했던 거죠.

성급히 남편은 남영역에서 되집어 전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4명의 다 큰 자식들은 속수무책으로 어미를 잃습니다.

 

각각의 장은 큰딸, 맏아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다시 큰딸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큰딸의 이야기는 “너(2인칭)”의 시점으로, 맏아들의 이야기는 “그(3인칭)”의 시점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는 “당신(2인칭)”의 시점으로,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는 “나(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엄마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기 위해 모인 가족들은 서로에게 긁힌 상처를 드러내며 새로운 상처를 만듭니다.

그들에게 던져진 화두 두 가지!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

“엄마가 홀로 남겨지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이제 그들은 전단지를 보고 연락한 내용을 따라 엄마를 찾아 헤맵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예전에 그들의 첫 직장이 있었던 곳이고, 본인 명의의 첫 집을 장만했던 곳 등, 모두 그네들의 흔적이 스친 곳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정말 그 곳을 다녀갔던 걸까요?

파란 슬리퍼에 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한 발을 끌고...


우리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엄마에겐 사연이 없다고... 엄만 그냥 처음부터 엄마일 뿐이라고...

어쩌면 이해할 마음조차도 미처 갖지 못할 만큼 자식으로서의 이기심이 너무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엄마에게도 돌아가 편히 쉬고 싶은 집이 있었을 테고, 그리고 그 엄마에게도 무릎을 베고 누우면 다독여 줄 엄마가 일평생 필요했을 거라는 걸, 우리는 정말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 엄마가 어느 날,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갈란다... 잘 있으시오”


엄마를 잃어버린 지, 9개월째...

작가인 큰딸은 이탈리아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녀는 그 곳에서 여동생의 편지를 떠올리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앞에 섭니다.

“.......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감히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엄마니까....엄마란 다 그런 존재니까....”

저는 죽어도 이렇게 말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소리조차 죽이며 흐느꼈던 내 어미의 아픈 통곡과 내 손을 붙잡고 놓지 않던 내 어미의 거친 손이 지금 저를 여기에 있게 했으니까요...

결국,

이 책은 또 제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네요.


피에타 상...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고통과 절망의 순간을 이겨내고 있는 성모 마리아.

어미의 무릎, 제 2의 모태 속에서 아들은 드디어 평온을 맞이합니다.

어미의 손길이 스치기만 하면 이제 모든 고통과 절망은 사라져 흔적도 없어질 테죠.

비로소 모든 잃은 생명 또한 비옥해져 싹이 틀 것이며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될 겁니다.

내 어머니...

어미의 생명은 그렇게 나에게로 옮겨옵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제 제 자신에게도 말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라고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12. 06:32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 조용헌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이 책은 한 네 번쯤 읽은 것 같아요.

뭐랄까. 읽으면 읽을수록 진국이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오래 묵은 빛깔 좋고 향 좋은 장 같은 느낌...

이 책은 우리 병원 도서관에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대출해서 읽고 있는 책 중에 한 권이고, 지금 현재도 제가 대출해서 가지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특별함은...

명문가(名門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해 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흔히 지금의 명문가는 재산의 정도에 의해 평가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많은데 4백, 5백년 동안 명문가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도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에는 “노블리스”의 개념이 “럭셔리”의 개념으로 이어지면서 졸부들의 부티크 문화 형태를 띄고 있긴 하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상류층(지적이든, 물적이든)의 도덕적 의무감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탈리아가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도 거상 메디치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듯이 우리나라도 그에 못지 않은 명문가가 있다는 건 참 어깨 으쓱한 일입니다.

메디치가가 이탈리아 정부에 가문 대대로 모아온 문화제, 예술품을 기증하면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는 걸 아시나요? 조건은 단 하나였다고 합니다.

“절대로 이 문화제를 다른 나라에 반출시키지 말 것”이라는 조건...

이쯤되면 그냥 거상이라고 하기에 너무 민망하지 않을까요?


이 책에는 그런 우리나라 명문가 15곳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먼저, 경주 최부잣집.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달성한 집안입니다.

어릴 때 어르신들이 “경주 최부잣집 재산이라도 못 남아 나겠다”라는 말을 하셨었는데 그땐 그게 무슨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인 줄 알았었습니다. 뭐 신화나 전설처럼요...

그런데 실제로 12대동안 만석의 재산을 유지한 유일한 우리나라 거부라고 하네요.

그러면서도 흉년에는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풍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흉년기에 논밭을 사는 일도 금지했구요.

심지어 재산이 만석이 넘어가면 무조건 사회에 환원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사회 환원 방법은 소작료를 낮추는 거였다네요. 그래서 소작인들은 최부잣집 재산이 늘어나는 걸 오히려 반가워했다고 하니 요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입니다.

결국은 그 모든 재산을 전부 영남대에 기부하고 지금은 필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조에 대한 자부심이 허뜬 삶을 살 수 없게 한다고 후손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명문이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재산이 아니라 자부심과 자긍심을 후손에게 남겨주는 거...

그런가 하면 하인들에게 쉴 수 있는 정자를 마련해준 가문도 있고, 재산이 아닌 지식을 남기기 위해 “인수문고”라는 문중 문고를 만들어 최고의 민간 아카데미를 만든 남평 문씨 문중도 나옵니다.

말로만 듣던 3년 시묘살이(부모가 사망했을 때 3년 동안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생활하는 것)를 직접 시행한 예산 이씨, 5대째 걸출한 화가를 배출하고 있는 양천 허씨 문중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신기하게 다가오는 것은,

“풍수”라는 사상이 그냥 허투루 생긴 게 아니구나 하는 겁니다.

책의 저자는 풍수에 관계해서 이 명문가들의 고택들을 해석하고 있는데요, 풍수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떠어떠한 지형은 구도자가 많이 나오는 지형이고, 어떤 지형은 문필가가 나오는 지형, 또 어떤 지형은 예술가가 나오는 지형이 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몇 대를 이어 그런 자손들이 나옵니다.

뭐 풍수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고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좋은 풀이로 고택들을 조망한 게 솔솔한 재미를 줍니다.

그리고 멋진 고택들을 찍은 흑백사진들이 참 아늑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찾아가 보고 싶다는 유혹이 느껴질 만큼요...

그러면서 종가나, 명성 있는 고택을 보전하고 유지한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저와는 하등 관계없는 문중들이라지만 그 존재들이 사라지는 게 참 안타깝고 씁쓸하네요.

진정한 명문가란 “고택을 유지하는 가문이다”라고 말한 작가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멋진 옛집들을 보면 “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라고 꿈꿨었는데...

그 말의 현실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알고 나서는 함부러 이런 말을 꺼내기가 송구스럽기까지 하네요.


혹 여러분들도 명문가를 꿈꾸시나요?

지금까지의 운명을 바꿔 진정한 명문가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릴까요?

4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① 적선(積善)     ② 명찰(明察)     ③ 풍수(風嗽)   ④ 다독(多讀)


위 방법들에서 제가 노려봄직한 것은 역시 ④번 하나밖에 없네요.

그런데 참 기분 좋은 일 아닙니까?

다독이 운명을 바꿔 명문가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니...
다...독...이...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