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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9 <바람이 분다, 가라> - 한 강
  2. 2009.08.18 김대중 대통령 서거 - 2009.08.18. PM 1: 43
읽고 끄적 끄적...2010. 7. 9. 06:33

그런 책이 있다.
눈으로 읽다 보면 눈이 아파지는 그런 책.
그러다 마음이 아프고, 당연하다는 듯이 온 몸이 따라 아파오는 그런 책.
내게 한강의 4번째 소설이 꼭 그랬다.
자주 가슴이 먹먹해졌고 한참을 가만가만 쓸어내리며 다독여야했고
그러면서도 손에서 놓아지지 않던 책.
한강은 발레리의 시 구절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를 차용한 책의 제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생에 거센 바람이 불어 기울어지고 뿌리가 뽑힐 지경이 되어도 어떻게든 나아가라,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가라는 뜻에서 붙였다"
고...
4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질지게 동행하는 눈 덮인 미시령의 두 사고.
그리고 사람들, 관계들.
그 모든 걸 원했던걸까? 
어쩌면 인주는 모두에게 버림받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말을 쓰는 내 손 끝이 예리하게 아파온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까지 4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Breath Fighing.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스스로 숨을 쉬는 바람에
환자의 호흡과 인공호흡기의 호흡이 맞부딪치는 순간.
Breath Fighing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들숨과 날숨이 싸우듯이 인물의 감정이나 관계, 문체, 그리고 소설 자체도 들썽들썽 부딪히면서 격렬하게 싸우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어요"
소설의 계기에 대해 한강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찢겨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한 편에는 자연과학에서 보여주는 경외롭고 아름다운 세계가 있고, 다른 한 편에는 만신창이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조건, 나약함, 몸부림, 욕망, 간절한 사랑이 있어요. 찢겨진 채로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먹그림처럼 읽혀지는 이야기.
먹이 번지는 오랜 물길을 따라 가야 했었나?
낡고 오래된 흑백사진을 읽고 있는 것처럼 가슴 한켠이 무너진 기억으로 먹먹해온다.
그리고 때때로 시처럼 껑충껑충 텅 빈 여백을 읽어내야 했던 이야기.

고백해야만 한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고.
내 눈물을 믿지 않는다고.
내 진실을 믿지 않는다고.
내 기억을, 고통을 믿지 않는다고.




나는 너를 몰랐다.
네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
하지만, 어쩌면 너도 나를 모른다고 느낄 때가 있었을까.
내가 너를 몰랐던 것보다 더.


이런 이야기를 넌 이해하지 못하지.
끔찍하게 나약한 사람, 나약해서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겠니. 나약함이 죄의 시작일 수 있다는 걸.
간절함이 알 속의 죄를 깨어나게도 한다는 걸.
문밖이 낭떠러지인 줄 알면서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어리석음을.
모든 일들의 시작이 자신이었음을.
그러니 자신을 제거하는 것만이 단 하나의 논리적인 길임을 확신하는 순간을.
무의미로 무의미를, 어리석음으로 어리석음을 밀봉하려는 마지막 결단을.



네 번의 겨울을 이 소설과 함께 보냈다는 한강은 
이 소설 때문에, 여름에도 몸 여기저기 살얼음이 박힌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 조각조각 박힌 살얼음이 이번엔 어쩌자고 내게로 옮겨왔다.
난 아프고 싶지 않은데...
한 번 들어온 아픔은 오래오래 자리잡고 나를 흔드는데...

Dark side of the moon
달의 뒷면.
똑 같다.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동일하다.

내가 아픈 것은 달의 뒷면 같은 곳,
피 흘리는 곳도, 아무는 곳도,
짓무르고 덧나는 곳, 썩어가는 곳도 거기.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

인주는 정말 자살을 선택했을까?
아님 떠밀리듯 어쩔 수 없었던걸까?
사랑한다는 건, 
살아간다는 건
통증보다 더 선명한 아픔이다.
그렇다고 남겨진 사람이 덜 아플까?
인주의 마지막 일 년을 쫒아가며 정희는 인주가 되어간다.

“이런 바람이 불면 말이야.
 이만큼의 습기를 품은 바람이, 이만큼의 세기로 불면 말이야……
 혈관 속으로 바람이 밀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져. 모든 것이 커다란 전체로 느껴져.
 언제고 내 다리를…… 단박에 목숨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다는 게,
 무섭도록 분명하게 느껴져.“


적막에도 형상이 있단다.
어떤 형상이 그려지든 나는 그대로 오래 침묵하고 싶다.
책 장의 마지막은 ...
끝까지 한결같이 아팠다.
느릿느릿 게으르게 죽을 거라는 사람이.
마지막 호흡을 또렷히 느끼면서 최선을 다해 끝까지 침착하게 죽을 거라는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9. 8. 18. 15:41
오후 근무를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
동료가 전한 소식에 그만 멍해지고 만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조만간 이렇게 될 거라 생각은 했는데....
개인적으로 좀 더 오래 버티주시길 바랬던 소망이 무너졌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에서 끝내 어린아이처럼
온 몸으로 통곡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는 당신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으리라.
노구의 몸으로 견뎌내기에는 어쩌면 힘겨운 시련이었는지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분의 건강을 염려했었다.
독하게 버텨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깊게 깊게 생각했는데...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현 정권 앞에
절대로 약하게 허물어지는 모습을
끝끝내 보이지 않겠다 다짐한 것처럼
서러움 울음 끝에 그 분의 모습은 말없이 단단해 보여
그 서러운 통곡조차
나는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횡보현상, 기관지 절제, 폐렴, 인공호흡기 의존.....
그분의 소식을 알리는 뉴스들을 날마다 새로운 증상들을 더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아닌 나는
그분의 시간을 함께 조마조마하게 버텨냈다.
"폐렴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손상과 호흡곤란 증후군"
공식적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인!
다발성 장기손상,
그 말이 주는 섬뜩함에 덜컥 겁이 난다.
이재 다 지난 일인데도,
그분의 고난한 삶과 목숨을 건 모든 승부들이 
막막하게 다가온다.



부디.... 부디....
지금보다 더 좋은 곳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
이룰 수 없었던 것
결코 이 현 정권에서는 결단코 이뤄지지 않을 모든 것들
다 이루며 평온할수 있길 기도한다.

고난한 삶이었기에....
거대하지 않게 위대한 삶이었기에.....
그리고 고귀한 삶이었기에....

이루지 못한 것들 눈에 밟힐지라도....
부디 고난한 육신 누위고 편히 쉬시길....



당신은 이 곳,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한 사람이 개인으로는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열심히 끝까지 해내셨음을 이제 압니다.
그 발걸음과 흔적들 하나하나
이제부터 오래오래
그리고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
부디 깊은 평온과 안식의 세상으로 영면하시길....



45년을 그분과 생과 늘 동행해온 이희오 여사의 마지막 편지가 공개됐다.
이회오 여사가 쓴 자서전 <동행>의 속지에 친필로 쓰여진 편지.
참 가슴 아프고 뭉클한 내용이라 숙연해진다.
이희오 여사는 이 편지가 담긴 책 <동행>을 남편의 가슴에 안기면서
그의 사후의 길까지도 <동행>하겠노라 다짐했을까?
그 눈물이 깊이가 어쩐지 너무 깊고 서럽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그렇듯 모든 것을 용서하며 아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길 빕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 편히 쉬시게 하실 것입니다.
어려움을 잘 감내하신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씌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당신의 아내 이희호,
2009년 8월 19일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 입관식 모습



진심으로 진심으로
누구보다 평온하시길....
살아 그분을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 많은 분들까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