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2. 23. 05:47
김두식, 그가 쓴 <불편해도 괜찮아>를 읽었었다.
법조인이 쓴 인권 영화 이야기.
그 자체로도 내겐 쇼킹한 일이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는 더 쇼킹했다.
"야! 이 사람 정체가 뭐지?"
법을 전공한 사람이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뼈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신비로웠다.
그래서 다른 책을 읽어보자 찾아봤고 그 선택이 <불멸의 신성가족>이다.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이 사람 이 책을 쓰고 법조관련인들에게 완전 블랙 리스트로 확실히 찍혔겠다 싶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만 해서...
우리나라 법조계만큼
인맥, 학연, 그리고 그로 인한 청탁이 잘 통하는 곳이 있을까?
도제관계의 연수는 소위 말하는 "연수원 몇기냐?"라는 질문앞에
당당하고 정당하려는 권위를 추락시키고 끌어내린다.
다른 사람이 아닌 사법 종사자 당사자의 입으로 말하는 법원과 검찰의 고질적인 불친절.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은 맞는데
어쩐지 뒷통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찜찜하고 서글프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타자성의 세계에 속할 수밖에 없는 사법계.
우리의 사법계의 시스템이라는 건,
약자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 처절한 행동 자체를 불법으로 만들어버리단다.
약자가 권리를 침해받고 있을 때는 침묵하던 법이, 견디다 못해 약자가 그걸 세상에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늦게 개입하여 약자만을 처벌한다.
사회의 최고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의사소통 능력의 부재는
소 귀에 경읽기의 수준을 능가한다.
이런 로얄패밀리 정신은 조폭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먹고 죽자는 폭탄주 술문화 발전에 지대한 이바지를 한 곳이 사법부와 조폭, 이 두 곳이 아니던가!)
변호사가 돈을 버는 것은 판사들에게서 받는 모욕에 대한 댓가라지만
내 돈 내고 변호를 의로했음에도 모욕을 당하는 사람은 이 보다 훨씬 더 많고 모욕의 정도도 더 심하고 추하다.
판사를 하다 변호사로 개업하는 전관변호사는
"용돈"이라는 이름으로 후배 법권들에게 통 큰 선배 행새를 한단다.
그게 바로 "거절할 수 없는 돈"으로 법조계에서는 관행으로 이어져왔단다.
...... '거절할 수 없는 돈'은 판검사들이 변호사에게 용돈을 받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합리화 수단으로 오래도록 활용되었습니다. 나는 원치 않으나 '남들이 다 받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받는다'는 공동의 보호장막 아래에서 모두의 잘못이 면죄부를 받아온 셈입니다 ......
전직 판검사 출신 변호사인 전관 변호사가 현직 판검사 후배에게 주는 돈을 거절하면
오히려 평판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니 참 어이없는 세상이다.
거기다 전관 변호사의 은근한 청탁까지...
그래서 법조계 주변에서 나누는 우정은 보험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말한단다.
...... 실력 있는 변호사보다는 청탁할 수 있는 변호사를 선호하는 경향, 그래서 판검사 출신, 장관 출신, 헌법재판관 출신이 아닌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는 결국 브로커를 통해서라도 사건을 수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변호사 수임료가 턱없이 비싼데는 브로커에 대한 소개비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매우 큰 몫을 차지합니다. 그리서 큰 수임료를 받을 수 없는 변호사는 탈세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견고한 내면의 성벽을 깨기란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면서 법조계 문제점의 핵심으로 지적한 것이 다음의 두 가지다.
'의사소통의 부재'와 '원만함이라는 신성가족 이데올로기'
그래도 지금은 예전에 비해 법원과 검찰이 많이 깨끗해젔다고 하는데
평범한 우리가 보기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일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답답했다.
사법에 대해서 쥐뿔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옥죄어오는 갑갑함과 점점 숨을 조이고 들어오는 일방적인 권위의 위상!
참 어렵고 힘들구나.
우리나라 사법계의 로얄 패밀리 그 심장을 관통한다는 것은...
개천에서 용이 났다면 정말 장하고 대단한 일인데
어쩌자고 용들은 그 개천을 아주 싹 잊어버린다.
잊어버리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일텐데 아예 부정까지 한다.
나는 애초부터 당신들과는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라고...
개천은 이래저래 참 서글퍼지고 말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2. 30. 06:08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라는 부제를 달고
81편이라는 상당한 분량의 영화와 드라마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책을 쓴 김두식이라는 사람의 이력이 특이하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고 군법무관과 검사를 지냈다.
지금은 경북대 법대에서 헝법, 형사소송법, 여성과 법률 등을 가르치고 있고
와이프가 공부 중에는 2년 정도 모든 걸 멈추고 전업주부로 나선 경력까지 있다.
법조인이 쓴 영화 이야기!
왠지 상당히 고리타분하고 이론적으로 옳은 소리만 따박따박 할 것 같은 생각.
그런데 이 사람의 글은...
확실히 시각이 다르고 무엇보다도 무거운 부분을 건드리면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꽤 예리하고 날카로워 정신이 번쩍 들기까지 한다.
이 영화 속에, 이 드라마 속에
사실은 이런 인권 문제가 내포되고 숨어있었구나,
내 텅 빈 시선을 후비고 파내는 것 같아 솔직히 민망하고 무안했다.
책을 읽고 생각했다.
"정말 불편해도 괜찮은가?" 를... 

 



<목   차>
청소년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 인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검영로가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의 문제
차별의 종착역, 제노싸이드


9개로 나눠진 각 챕터들은 개인적으로 "무지"보다는 "무관심"에 대한 일침이었다.
모든 인간에겐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지랄 총량의 법칙"
그래서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기 "지랄"을 쓰는 것이겠니거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단다.
생각해보면 사춘기에 "지랄"을 쓰는 게 그래도 낫지 싶다.
다 커서 늦바람나듯 지랄을 쓴다면 그게 더 초난감이지 않을까?
"우리 부모는 둘 다 서울대 나왔어!"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단다.
"똥 밟았네!"
이런 이야길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법조인이라...
무지 낯설지만 한편으로 통쾌하고 후련하기까지 하다.
더불어 내가 무지 재미있게 봤던 영화들이
단지 재미로만 볼 영화가 아니었구나를 생각하니 민망해진다.
저자는 말한다.
...... 영화를 볼 때마다 자신을 누구와 동일시할 것인지 조심스럽게 선택해보십시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불편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면, <300>이 10원자리 팬티를 입은 타잔 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저질임을 개닫게 될 것입니다 ......
모든 사회문제는 양면성을 있단다.
그래서 헷갈리는 상황일 때는 이렇게 생각해보란다.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 해석하라!
그러면 누구의 입장에 서야 할지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조기유학에서부터 대한민국의 고질병인 엘리트주의까지.
대처리즘에서 정치파업, 비정규직 문제까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장애인 인권,
그리고 영화등급 문제와 흑맥갈등의 인종주의, 종족의 멸종이 목적인 제노싸이드까지.
이 책에서 아우르는 이야기는 넓고 광대하다.

영화등급 역시 논리의 무제라기보다 권력의 문제일 때가 많다.
모든 검열은 자의성의 함정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검열자들은 언제나 자신이 누구보다도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고 부모의 마음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그런 독선이 '제 마음대로'의 검열결과를 낳습니다.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검열사는 최소한의 역할에 그쳐야 합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검열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과 감시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은 우리 권리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늑대에게 넘겨주는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입니다.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에 대한 마음속 깊은 우월감, 편견, 경멸은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습니다. 지하철에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백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국어를 하는 동남아 출신이나 중국 출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다릅니다. 중국어, 태국어, 몽골어, 파키스탄어 등이 들리면 한국사람들의 얼굴에는 당장 불쾌감이 스쳐지나갑니다. 그런데도 인종차별문제가 나올 때마다 "우리나라만큼 외국인에게 온정적인 나라가 없다" 든지 "외국인노동자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있는 서민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온정적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서선을 외국인들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판단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슨 시혜를 베풀자고 그들을 불러들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불러들여 저임금으로 주로 3D에 속하는 일을 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대로
나는 참 많이 불편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무지와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읽으면서 점점 더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며칠전에 본 <황해>가 목구멍에 걸려 좀처럼 넘어가질 않는다.
내가 김구남이 될수도, 
면가가 될수도,
충분히 있는 세상이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4. 21. 06:31
일  시 : 2010. 04. 17. ~ 2010. 04.25.
장  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극  본 : 노시노부 코죠우
연  출 : 류주연
출  연 : 남명렬, 예수정, 김정영, 오일영, 장용철, 권지숙, 김원진, 신용진, 신용숙,




"잠들지 못하는 아빠와 일어나지 못하는 나 중에서 어떤 쪽이 더 불행해?"
어느날 딸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아빠는 어떤 대답을 딸에게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 딸이 이미 3년 전 무참히 살해당한 딸이라면?
연극 <기묘여행>의 시작은 이렇다.
자신의 베개가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는 아빠와
꼭 그 자명종 소리여야만 잠에서 깰 수 있는 딸의 실랑이는
차라리 마음이 들뜨게 만들고 심지어 다정한 모습에 귀엽성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여행의 비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여행가방을 정리하는  아빠의 가방 속에
청테이프, 로프, 염산, 드릴, 전기톱이 하나씩 등장하면
극은 분위기는 묘한 반전을 이룬다.
그래, 정말 이 여행은 <기묘여행>이 되겠구나...

 

연극 <기묘여행>의 원작은 2004년 일본의 토시노부 코죠우가 쓴 작품이다.
살해당한 딸의 부모(남명렬, 예수정)와 딸을 죽인 청년의 부모(오일영,김정영)가 만나서
사형이 확실시 되고 있는 살인자의 면회를 위해 함께 교도소를 찾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극에선 묘하게도 살인의 동기나 정황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의도적인듯...)
그러니까 딸의 아버지는.
지금 여행가방을 싸면서 혹시 있을 기회를 위해 철저한 복수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무거운 가방은 그래서 이제 의미가 부여된다.
기회가 왔을 때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되니까,
그 짧은 순간에 가능한 모든 방법 중 한가지를 확실하게 선택해야 성공시켜야 하니까...
반대로 가해자의 부모는 지금 "희망"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중이다.
항소를 포기한 아들에게 "살아야만 속죄도 할 수 있다"고 설득하고
가능하다면 피해자 부모가 아들에게 이 말을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
(그것도 여러번...)

이들의 1박 2일의 여정은
지금 방금 이렇게 시작됐다.
죽이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의 동행...
  

 

우리나라 무대 배경은 일본의 배경과는 많이 다르지만
무대 뒤를 따라 둥그렇게 나 있던 길과 분위기 따라 달라지던 스크린 배경은
때론 아름답기도, 때론 섬득하기도 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살인과 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왠지 이질감과 동감을 동시에 주는 코믹한 설정들과 대사들.
교도관이었을때 사형집행 경험이 있다고 말한 코디네이터 "테라하라"의 한 마디가 귀에 선하다.
"인권이 도대체 뭡니까?"
연극은 피를 토하듯 섬득하면서도 평화롭고 고요하다.
이들을 감싸는 묘한 기운에 나는 평온함마저도 느낀다.
그러나 진짜 그럴까?
"눈 뜰 수 없는 난 너무 불행해!"
극에 나오는 모든 이들의 심정이 살해된 가오루의 심정과 같지 않았을까?
지금도 자신의 마음은 살의로 가득하지만 죽일순 없다고 말하는 아빠와
무표정한 얼굴로 사건을 지켜보다
살해자와의 면회에서 가오루를 돌려달라며 의자를 집어던지는 엄마 역시도
결국 눈 뜰 수 없는 사람들이었던 건 아닐까?
이들을 눈 뜨게 하는 방법은 아무래도 가오루라는 자명종 하나 뿐인지도...



이상하지?
난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를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느끼면서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살의를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의 시작은 딸이 아빠에게 들려주는 칼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이야기할 때부터였다.
"뜨거운 물을 끼얹는 것 같이 뜨거워져서 소리가 났어!
 칼이 밀리는 소리, 피가 막 흘러나오는 소리.
 몸안으로부터 직접 들리는 우물거리는 이상한 소리
 어떤 악기로도 낼 수 없는 소리. 잊자마!, 아빠!"

혼(魂)인 딸의 대사가 끝나고
무대 스크린이 피가 튀듯 검묽게 변해가는 장면에선 "번쩍!"
휴즈가 끊겨버린다.
강렬하고 치명적인 뭔가가 가슴을 그대로 들이받는 느낌이다.
그래, 이제 이 말(馬) 위에서 도저히 유턴할 수는 없겠구나....

 <연출가 류주연>

살해된 딸 가오루의 아버지역으로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끌고갔던
배우 남명렬 역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극의 마지막 부분을 꼽았다.
“살의로 가득하지만 도저히 죽일 수는 없다”
원혼(怨魂)인 딸 앞에선 복수하겠다 말하고 철저히 준비하지만 
결국 사형수 앞에선 무방비상태로 땀만 뻘뻘 흘리다 나오는 아버지.
인형을 찌르는 장면에서는 배우 입장에서 굉장히 연기하기 어려웠노라 그는 말한다.
더불어 관객들도 그 장면에서 배우가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까지도 전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머릿속에 있는 풍경 중 어떤 게 진짜일까?”
당신이라면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연극 <기묘연극>
생명과 인간 존엄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정확한 폭로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