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3. 09:35

술탄 아흐멧 1세 자미.

2012년 이스탄불을 처음 방문했을때

아쉽게도 이곳 내부를 못봤었다.

이스탄불에 머무는 동안 한번쯤은 보겠지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결국 내부를 못보고 돌아와버렸다.

아마도 그게 내내 마음에 남아있었나보다.

아테네에서 이스탄불로 넘어와서 처음 간 곳이 이곳인걸보니...

 

블루 모스크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자미 내부 창문을 장식하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이지니크에서 생산된 푸른색 타일이 유명하다.

한낯의 햇빛을 그대로 흡수되는 이곳의 내부는

왜 이곳이 꿇어 엎드리는 "자미"인지를 실가케한다.

그들의 신에 대한 경외심이 때문이 아닌 쏟아지는 빛이 주는 경외심 때문에 무릎이 저절로 꺾인다.

그리고 엄청난 인원의 관광객들에게 또 한 번 무릎이 꺽이고...

   

블루모스크는 내부와 외부에서 느낌이 너무 달라 개인적으론 좀 당혹스러웠다.

외부의 모습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수도원처럼 고요하고 장중한데

내부는 여기저기에서 수근대는 느낌이다.

햇빛때문인지, 사람들 때문인지, 기도하는 소리 때문인지는 명확히 모르겠지만...

(어쩌면 내가 이곳에서 환청을 듣었던건지도!)

예전에는 정해진 기도 시간엔 광관객이 아예 들어가지 못했던 모양인데

지금은 구별없이 오픈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미 안쪽의 기도하는 곳은 오로지 "only man"의 공간이라 여자 관광객은 들어갈 수가 없다.

(남자 관광객들은 자유롭게 들어가더만...)

현지 여자들도 기도하기 위해선 자미 외벽에 별도로 설치된 공간만 이용할 수 있다. 

신기한 건,

검은 히잡으로 몸피를 가리고 기도하고 있는 여자들을 보면

그 모습이 그대로 하나의 종교처럼 느껴진다.

가만히 그 옆에서 함께 무릎 꿇고 기도하고 싶어지는 마음.

나는 그때 그들 옆에서 어떤 간절함을 기도하고 싶었을까?

블루모스의 햇빛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상태로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왜 나를 이곳을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그리워했을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할 이유는 없을 거다.

지금도 그곳엔 내가 남겨둔 내가 나를 계속 부르고 있다.

빨리 돌아오라고...

기다리고 있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9. 05:23
터키여행에서 길과 함께 내 눈을 많이 사로잡았던 건
이슬람 사원인 "자미(Cammi)"였다.
유명하고 큰 규모의 자미부터 어디를 가든 보였던 이름 모르는 동네의 조그마한 자미들까지
그 독특한 모양과 건물을 보고 있으면 묘한 아우라가 느껴지기도 했다.
터키어로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자미(Camii)
둥근 천장의 돔과 뽀족하고 긴 첨탑의 미나레.
모든 걸 감싸안는 대지같은 둥금과 뭔가를 향해 매섭게 찌르는 날카로운 예리함.
건물을 보고 있으면 포용과 통찰,
지성과 이성의 조합이란 생각이 든다.



이집션 바자르 바로 옆에 있는 예니 자미(Yeni Camii)는
이스탄불의 자미 중 가장 오랜 공사시간이 걸렸단다.
메흐메트 3세의 어머니이자 술탄 셀림 2세의 부인이었던 사피예의 명으로 짓기 시작했는데
건립 도중 술탄이 세상을 떠나면서 재정적 문제가 겹쳐지면서 공사가 중단되는 비운을 겪었다.
중단된 기간만도 무려 56년!
그러다 메흐메트 4세에 의해 1663년에 비로소 완공되었다.
완공기념 개막 기도회 때는 술탄과 술탄의 어머니, 재상, 많은 학자들이 참석했는데
축하의 의미로 금으로 된 동전을 시민들에게 뿌렸다고 한다.
묘하게도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블루 모스크)를 떠올리게 한다.
월요일의 자미는 한산했고 세족을 위한 수돗가의 빈자리는 문득 평화로웠다.
자미 내부는 쏟아지는 햇빛으로 보석처럼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조용하고 고요한 자미 내부의 이방인도 그 움직임이 조심스럽고 잔잔해진다.
평화로웠고 그리고 따뜻했다.




이집션 바자르 입구 오른편에 위치한 뤼스템 파샤 자미(Rustem Pasa Camii)
자미 아래가 전부 상점이라 입구를 찾기위해 조금 헤맸다.
상점들 사이로 조그만 통로가 보여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거짓말처럼 자미 마당이 나왔다.
(1층의 상가 임대료로 자미 유지비믈 충당하고 있다니 상점들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뤼스템 파샤 자미는 쉴레이만 대제 당시의 재상 뤼스템을 기리기위해 1561년 미마르 시난이 건립했다.
술탄이 뭐 재상까지 친히 기념할까 싶었는데 이 사람이 쉴레이만 대제의 사위란다.
사위가 도대체 얼마나 이뼜길래 장인어른이 이런 엄청난 자미를 지었을까???
'파샤'란 단어도 오스만 제국의 고관을 지칭하는 뜻이란다.
사윗님께서도 장인어른에게 무지 감격해서 처갓집 말뚝에 골백번 절을 했겠다 싶다.
(이런 단순 무식하고 아주 관념적인 상상이라니...)
뤼스템 파샤 자미는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타일이 유명하다.
정원의 외벽과 내부 기둥, 벽에 사용된 꽃모양의 타일은
타일의 명산지 이즈닉에서도 최고급으로 치는 제품이었다고 한다.
특히 사원의 남동쪽에 있는 '토마토 레드'라 불리는 붉은색 타일은
현대의 기술로도 만들기 힘든 당대의 명품이었라고...
복장규정이 엄격하다는 에윕 자미도 반바지 입고 들어갔었는데
이곳은 입구에서 아저씨 한 분이 치마를 건네주셨다.
왠지 발걸음을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은 느낌!
자미에 대한(정확히 말하면 종교에 대한) 터키인들의 경건함과 신성함을 보노라면
꿇어 엎드려 동그래진 돔같은 몸피에서 깊은 신뢰감마저 느껴진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일정에서까지 굳이 자미를 찾았던 건,
아마도 자미가 주는 신뢰감과 아우라를 기억에 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화(精化)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었는지도...
터키는 내겐 길의 나라다.
그리고 동시에 신성한 자미의 나라다.
그래서 터키는 내겐 두 개의 신성(信性)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13. 05:24
1시간 30분 소요된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에서 내려
갈라타 다리 아래에서 유명하다는 고등에 케밥(5TL)을 하나 샀다.
흔들리는 작은 배 위에서 열심히 고등어를 구워 빵에 끼우는 모습도 신기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걸 사기위해 줄을 선 모습도 이색적이었다.
너무 비리면 어쩌나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짝 구워진 고등어는 비린맛보다 고소한 맛이 더 많다.
홍합밥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길거리에서 그걸 하나하나 까먹고 있을 자신은 없어서
이번 여행에서는 아쉽게도 못 먹어봤다
(맛있다는데...쩝!)
고등어 케밥은 양이 상당히 많아서 그냘 하루종일 가방에 넣어두고 허기지면 꺼내서 한 입씩 먹으면서 다녔다.
오래 두고 먹어도 별로 비리진 않았고
대신 지느러미하고 가시를 발라내는 게 좀 귀찮은 정도 ^^
에미뇌뉘 버스 정류장에서 카리에 박물관을 찾아가기 위해 책(프렌즈 터키)에 나와 있는 버스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근데 이건 버스 정류장이 너무 커서 또 다시 헤매기 시작했다.
결국 책에 적힌 노선을 포기하고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봤다.
친절한 아저씨 한 분이 직접 데려다가 버스에 태워줬다.
안타깝게도 막 출발하려는 버스에 올라탄거라 몇 번 버스인지는 모르겠다.
내리면서 봐야지 했는데 내릴 때가 되니까 사람들이 다들 빨리 내리라고 해서 허겁지겁 내리느라 또 못 봤다.
버스 창문으로 목까지 내밀고 저쪽으로 가라며 손짓을 해준다.
그 사람들 눈에도 내가 영 미덥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해한다! 그 심정!)


터키인들의 친절과 호의 속에 도착한 카리예 박물관(Kariye MUzesi, 15TL)
11세기에 지어진 카리예 박물관은 처음 이름은"코라 수도원" 이었다.
"코라"는 그리스어로 "교외(郊外)"를 뜻한단다.
아마도 구시가지 서쪽 외곽에 위치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 터키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고 황홀했던 곳 중에 한 곳이다.
우선 건물이 주는 묘한 아우라에 입구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햇빛을 정면으로 받고 있어서 마치 건물 전체가 빛을 품어내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론 건물과 햇빛이 정면대치하고 있는 팽팽한 긴강감도 느껴졌다.
카리예 박물관은 비잔틴 시대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란다.
원래는 기독교 수도원이었는데 아야소피아와 마찬가지로 오스만 제국때 이슬람 사원인 카리예 자미로 바뀌게 된다.
그때 미나레와 미흐랍도 만들어졌단다.
종교적인 이유로 지금껏 본 프레스코화들은 얼굴 부위가 심하게 훼손됐었는데
이곳은 이슬람시대때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를 석고로 덮거나 원판으로만 가려놔서
비교적 손상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평화와 사랑의 대명사인 종교가 극단적인 배타성과 유일성만을 강조할 때
항상 몰살(歿殺)과 괴멸(壞滅)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낳는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박물관 본관 정중앙에는 황금색 성경을 든 예수 그리스도 프레스코화가 있다.
그리스어로 쓰여진 문장의 뜻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 외쪽에는 천국의 열쇠를 손에 들고 있는 사도 베드로가,
오른쪽에는 로마까지 3차 선교여행을 했던 사도 바울의 초상화가 있다.
동쪽 홀 끝에는 부활한 예수와 24원로들,
맞은편에 아담과 하와를 죽음에서 살리는 예수의 성화가 그려져있다.
실제로 눈 앞에 보고 있으면서 저 높은 곳까지 어떻게 그림을 그렸을까 그자 놀라울 뿐이다.
색채의 조화와 성화의 선명도는 마치 실제의 인물을 눈 앞에서 보는 느낌이다.
높은 곳에 그려진 저 아름답고 거룩한 성화들은 지극한 간절함이자 소망이며 진실한 기도다.
그렇다.
종교에는 간절함과 소망이 전부여야 한다.
권력과 지배가 전부여서는 안된다.
터키의 자미를 보면서 자주 생각했던 어쩔 수 없는 화두(話頭).
어쨌든 바라는 건,
한 종교의 문화가 다른 종교에게 더이상 불결한 이물질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몰살과 괴멸의 역사를 또 다시 갖지는 말자는 간절한 바람도.
빼앗고 말살함으로 권위가 유지되는 믿음이라면
더이상 믿음도 종교도 아니다!
카리예 박물관의 훼손되지 않은 성화를 보면서
낯선 이방인은 인고(忍苦)와 책임(策任)으로서의 상생(相生)의 믿음을 생각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9. 28. 05:49
Green tour에서 돌아온 후 괴레메 오도갈 뒷길로 올라간 sen set point.
Green tour를 함께했던 한국인들이 같이 올라갔다.
(터키여행동안 한국사람을 가장 많이 만났던 카파도키아)
사실은 내일 아침에 이곳에서 해 뜨는 걸 모두 보기 위한 사전 답사(?)였다.
새벽에 길을 몰라 헤매다 해가 다 뜬 후에 올라가면 대략 난감인 관계로...
우리가 올라간 곳이 정확한 sen set point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스름에 올라간 덕분에 해가 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조그만 자미를 따라 올라간 언덕 위에는
우리같은 가난한 여행자들이 묶는 숙소가 아닌 고급 프티 호텔들이 늘어서 있었다.
카파도키아 바위굴을 그대로 리모델링해서 만든 프티 호텔은
저물는 해를 받아서인지 더 예뼈보여 그야말로 "프티(pretty)" 하더라.



카파도키아는 sun set과 sun rise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 자체가 이국적인 신비감에 쌓여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특히 저녁과 새벽무렵 삐죽한 기암괴석들에 하나 둘 불이 밝혀지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언덕을 올랐더니 사람들이 이미 많이 있더라.
그곳에서 또 다른 한국사람을 한 명 만나고...
저녁이라 날씨가 많이 차가웠지만 꽤 오랜 시간을 머무르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어설픈 카메라 속에 담았다.
하늘색이 변하는 걸 내내 지켜보는 건
황홀할만큼 아름다운 목격(目激)이었다.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진화과정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장엄하고 화려하지만 위협적이고 거만하지 않은...
위대함의 정체가 바로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새벽 5시 15분 기상!
혹시나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고양이 세수만 하고 부지런히 오토갈로 향했다.
자미를 지나 어제 올랐던 언덕 길을 다시 오르는 우리들.
(터키의 작은 자미들은 참 이쁘다. 뾰족한 첨탑때문에 독특한 느낌도 주고)
나는 확실히 길치가 분명하다.
어제 왔던 길인데도 전혀 모르는 길같더라.
사람들 아니었으면 분명히 해 뜨고 올라갔을지도...
(어쩌면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갔을지도 ^^)



sun rise와 함께 덤으로 본 balloon들.
진담이 섞인 농담으로 말했다.
"이 좋은 곳 미리 알았으면 비싼 balloon tour 안 했을텐데..."
balloon 안에서 본 풍경과 외따로 떨어진 곳에서 본 balloon의 모습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쉭쉭 들리는 굉음에 가까운 공기 주입소리조차도 나쁘지 않더라.
멀리 우치히사르를 중심으로 새벽빛을 받으며 깨어나는 괴레메의 모습!
그건 보석보다 빛나고 빛보다  찬란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기 위해 새벽 일찍 모인 사람들의 표정.
정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더라!
사람이라면 참 징글징글한 내게조차
터키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오래 남겼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9. 16. 06:29
아야소피아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터키를 대표하는 이슬람 사원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
"자미(Camii)"는 터키에로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터키 자미는 둥근 천장의 돔과 미나레라고 부르는 뽀족한 첨탑이 있는 게 특징이다.
술탄 아흐메트 1세 자미도 하나의 대형돔, 4개의 중간 돔, 30여 개의 작은 돔을 가지고 있다.
6개의 미나레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술탄이 황금(알툰 Altun)으로 지어달라고 명령한 걸
숫자 6 (알트 Altu)로 잘못 알아들어서 지금과 같은 6개의 미나레가 만들어 졌단다.
(예나 지금이나 잘못 알아듣는 사람 꼭 있다!)
지금도 하루에 5번 있는 기도 시간인 "아잔(adhan)"에는 여행객이 입장할 수 없을만큼 신성시되는 곳이다.

 


자미 안에는 260개가 넘는 작은 창이 있고
그 창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이 들어오는 모습이 장관이라는데 확인할 수 없었다.
아야소피아에 너무 오래 머무르라고 개방시간을 지나버려서 내부를 보지 못했다.
다시 와서 봐야지 했는데 숙소 가까이 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너무 볼 것이 많아서 미루다가 그만...
(이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터키를 가봐야 할 것 같다 ^^)
만벨이라 불리는 설교단에는 섬세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는데 이것 역시도 못보고 말았다.
설교단의 가장 높은 곳은 마하마드의 장소라 설교하는 사람도 계단의 중간 정도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한단다.
그만큼 신성한 공간이라는 의미.
"블루 모스크(Blue Mosque)"라는 애칭이 있는데
자미 내벽에 파란색 타일이 사용되서란다.




자미 바로 옆에는 자미의 주인인 술탄 아흐메트 1세와 그 가족들의 묘도 있다.
역시 겉모습만 봤지만 규모가 상당하고 웅장해보였다.
(하긴 30여명의 묘가 있는 곳이니 작을 순 없겠다)
자미 앞에는 성소피아 성당과 마주보는 넓은 정원이 있는데
시원한 분수가 햇빛 속에서 보석같은 물줄기를 뿜고 있었다.
자미 안의 광장에도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곳 역시도 시민들과 여행객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비잔틴시대에 전차 경주가 벌어진 경기장이었다는 히포드롬(At Meydani)은 
현재 3개의 오벨리스크가 서있는 기다란 광장으로 변해있다.
세 개의 오벨리스크 중에서
하나만 완전한 형체를 갗추고 있고
가운데 있는 세 마리의 뱀 기둥은 파손이 심했다.
나머지 하나도 보수중인지 가림막에 가려져있어 정확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가운데 있는 뱀기둥에서 떨어져 나간  뱀머리 하나가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해서 찾아가서 봤다.
(하나는 영국 대영제국 박불관에 소장돼 있다고 하고...)
정말 물어서 물어서 몇 번을 헤매다 구석에 있는 청동 뱀머리를 봤다.
막상 찾아서 보고나니 왠지 허탈해졌다.
덕분에 그림으로였지만 세 개의 오벨리스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광장의 동쪽 끝에는독일 황제가 선물했다는 카이저 빌헬름 샘(Kaiser Wilhelm Fountain)이 있다.
지금도 수도꼭지에는 물이 나온다는데 소심한 여행객은 도촬하듯 사진만 몇 장 담았다.
특히 밤에 달빛 아래서 보는 카이저 빌헬름 샘은 참 예뻐서 오래 서서 쳐다봤다.

본 것도 많고, 그때그때마다 느낀 것들도 많은데
이 많은 단상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담을지 막막하다.
그저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읖조릴밖에...
그래도 수다는 좀 줄어야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