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7. 2. 9. 14:45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일시 : 2017.01.18. ~ 2017.02.12.

장소 : 명동예술극장

대본, 연출 : 고선웅

출연 : 장두이(도안고), 김정호(조순), 하성광(정영), 호산(한궐), 이영석(영공), 이형훈(조씨고아, 정발) 외

제작 : 국립극단(주)

 

와... 이 연극 엄청나다.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데 소문보다 훨씬 강렬하다.

보는 내내 미쳤구나... 를 수없이 연발했다.

대본도, 연출도, 배우들도, 심지어는 관객들도 제정신은 아니지 싶다.

부퍠한 관료, 모함과 권력의 암투, 출생의 비밀, 은혜갚음, 원수를 향한 복수 그리고 용서.

작품의 표면적은 사건을 나열하면 정말 뻔하고 뻔한 내용에 불과한데

이 작품은 단 한 장면도 결코 뻔하지 않다.

심지어 소리내서 웃고 있는데 슬프다.

그것도 아주 가슴 저 밑바닥까지 울리는 슬픔이다.

웃긴데 슬프고, 슬픈데 웃긴 이야기.

대한민국과 비슷한 아이러니가 주는 무게감때문에 무심해지가 어렵다.

보는 내내 울컥울컥해서

눈을 감고 진정해야했다.

 

이 작품의 배우들은...

존재 자체로 위대하다.

스쳐지나가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대사와 표정, 그 몸짓들이 그대로 달궈진 화인(火印)이 되어 가슴팍에 꾹꾹 찍힌다.

무대 위에서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어야 해서 참 힘들겠다. 저 사람들은.

뭉턱뭉턱 피흘림도 없이 살덩이가 쪼개지는 느낌이지 않을까?

나같은 사람은 초장에 나가떨어졌을텐데...

 

"나는 어떤 기억으로 후세에 전해질까?"

징글징글하게 버티고 있는 누군가에게 나 역시 묻고 싶은 질문.

남겨질 기억이...

무섭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5. 5. 6. 08:13

 

<리어왕>

 

일시 : 2015.04.16. ~ 2015.05.10.

장소 : 명동예술극장

극작 : 윌리엄 세익스피어

윤색 : 고연옥

번역, 연출 : 윤광진

무대 : 이태섭

출연 : 장두이, 조명진, 서주희, 이영숙, 오동식, 이윤재, 이동준, 서은경,

        이갑선, 유상재, 이기돈, 송의동, 김성환, 홍아론, 이승헌, 송호진

제작 : 국립극단

 

<리어왕>은 1605년 세익스피어가 41세에 쓴 희곡으로 인간 영혼이 겪는 시련을 가장 절실하게 묘사한 비극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한결같이 지금 읽어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전혀 안들만큼 앞서간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다.

그러나 그 재미 속의 통찰력은 깊고 어렵다.

그래서 생각없이 책을 읽거나, 연극을 보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거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올라올따마다 관람이 망설여졌던건.

무식의 소치가 드러나는 것도 두렵고

또 다시 고전(古傳)앞에서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는 나를 보는 것도 안스럽고 해서...

그렇게 혼자만의 고민 끝에 관람을 결정한 작품이 바로 <리어왕>이다.

일단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이 다시 만났다는데 애정이 급상승했고

또 그냥 지나치기엔 배우진이 최상이었다.

작품 한 편에 이 모든 배우들을 다 만날 수 있다는건 다시 없을 기회고 잿팟이다.

걱정과 망설임따윈 던져두고 극장으로 향했다.

 

명동예술극장의 세계고전 시리즈 첫번재 작품 세익스피어의 <리어왕>

도대체 이 작품에 대해 내가 감히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엄청난 광풍(狂風)이었고, 페부를 부수는 일침이었다.

다시 없을 명작.

요근래 몇 년 동안 본 모든 작품을 통틀어 Top of the Top이다.

세익스피어의 대사들에 이렇게까지 직격탄을 맞고 너덜거리게 된 건 난생 처음이다.

연극이 아니라 현실이더라.

과거가 아니라 지금이더라.

보여지는게 아니라 오감으로 그대로 느껴지는 모든 순간이었다.

내가 아비를 배반한 거너릴이었고 리건이었고, 에드먼드였고 

내가 딸들을 저주하고 폭풍우치는 황야에서 미쳐 날뛰는 리어왕이었고  

내가 리어왕을 돕다 눈이 파내지는 클로스터 백작이었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넝마를 걸치고 미친척 위장한 에드거였다.

윤광진 연출이 그랬다.

리어왕은 에베레스트와 같아서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자리라고.

그래서 높이를 측정할 수 없다고.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뼛속까지 제대로 느꼈다.

 

위태롭게 허공에 매달린 무대 위로 그대로 쏟아져 내리던 2톤의 물줄기는

느닷없는 마주침이었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이런 무대가... 이런 표현이... 가능한 거구나...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는 공포심이 느껴질 정도로 섬득했다.

그야말로 광기(狂氣)가 광기(光氣)로 화하더라.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대로 하나의 만신전(萬神殿)이었다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특히 리어왕 장두이와 글로스터 백작 조명진, 에드거 이갑선의 연기는 정점에 또 다시 정점을 찍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세익스피어의 원작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그것도 아주 충실하고 꼼꼼하게 번역된 책을 찾아서!

 

세상에!

이 작품이 나를 고전의 폭풍우 속으로 들어서게 하려나보다.

그럴거라면 제대로 빠져봐야겠다.

또 다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될지라도...

 

"비야, 쏟아져 내려라!

 천지를 진동시키는 너 천둥아!

  이 세상 둥근 땅덩이를 납작하게 때려라!

 창조의 모태를 부수고 배은방덕한 인간의 씨를 말려 버려라"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