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6. 2. 19. 07:54

 

<얼음>

 

일시 : 2016.02.13. ~ 2016.03.20.

장소 : 수현재씨어터

대본, 연출 : 장진

출연 : 이철민, 박호산 (형사1) / 김대령, 김무열 (형사 2)

제작 : 문화창작집단 수다, (주)수현재컴퍼니

  

나는 장진의 영화보다 장진의 연극을 훨씬 더 좋아한다.

장진 특유의 유머도 좋지만 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기발한 모호함을 아주 좋아한다.

(얼마나 좋았으면 장진 희곡집까지 찾아 읽었을까!)

특히 신작 <얼음>은.

지금까지 장진의 영화와 연극을 통틀어 손에 꼽을 수 있는 수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랫만에 번특이는 장진스러움이 빛을 발하더라.

게다가 박호산과 김무열의 연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혁"이라는 인물을 마치 내 눈 앞에 실제하고 있는 사람처럼 만들었다.

무대에는 단 두 명의 배우만 등장하지만

1인극 같기도, 2인극 같기도, 때로는 3인극 같기도 한,

아주 기묘하고(?) 특이한 작품.

특히 초반부에 혼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박호산의 힘은 엄청나더라.

객석을 바라보고 앉아서 대사를 하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혁"이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실제 마주앉아 대화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들어맞는 타이밍과 시선처리를 보면서

귀신같다는 생각까지 했다.

김무열 역시도 제대 후 정말 오랫만에 인생 케릭터를 만난것 같다.

(제대 후 첫복귀작이었던 <킹키부츠>는 여러모로 좀...)

박호산, 김무열 두 배우의 환상적인 케미에 여러 번 감탄했다.

김무열의 혀짧은 김순경과,

박호산의 입 튀어나온 윤계장의 변신도 아주 재미있고 기발했다.

그야말로 장진 연출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장면 연결과 배우 활용(?)이라 하겠다.

 

"얼음"이라는게 그렇다.

액체 상태의 물이 영하의 온도에서 고체의 상태로 변하는 게 얼음이다.

그리고 이 작품 속에서 이 "얼음"이라는 단어는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조형사(박호산)에 취조에서도 잠깐 언급되긴 했지만

"혁"이라는 인물은 mental disorder의 하나인 "다중인격" 처럼도 보인다..

"나"이기도 하고 "나"가 이니가도 한.

그래서 작품을 보고 난 후 진짜 범인이 누군지 더 혼란스러울 수 있다.

물인지, 얼음인자 아니면 또 제 3의 무엇인지...

장진의 의도적인 연출이 제대로 관객들에게 적중했다.

성공적인 트릭에 오감이 짜릿하더라.

(생각해보니 이 작품과 유사한 자릿함을 장진의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도 느꼈었다.) 

 “관객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볼지 50억짜리 대작 영화보다 긴장이 된다. 살면서 이런 순간이 있다는 것이 즐겁다. 본의 아니게 요즘 대학로에 예전 내가 쓴 공연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내가 무얼 할 수 있는, 지금 쓸 수 있는 작품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하는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

장진감독의 말에 절대, 절대, 절대 찬성하는 바이다!

장진의 똘기는 연극에서 빛을 발한다.

아마도 당분간 그의 신작 소식이 들리면 귀글 쫑긋 세우게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꽃의 비밀>도 꼭 챙겨봐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2. 5. 08:20

<December>

일시 : 2013.12.16. ~ 2014.01.29.

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대본 : 장진

연출 : 장진 

출연 : 김준수, 박건형 (지욱) / 오소연, 김예원 (이연/화이)

        박호산, 이창용, 이충주 (훈) / 김슬기, 조연진 (여일)

        임기홍, 김대종 (성태) / 송영창, 조원희 (아버지) / 홍륜희 외

제작 : (재)세종문화회관, NEW

 

12월 초반에 본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혹평에 장진 감독도 엄청난 자괴감을 느꼈겠지만 어찌됐든 이 작품은 성공적인 작품은 아니다.

그런데 공연 중에 피드백을 하면서 계속 수정을 했단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기대하기엔 베이스부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수정을 헸다는 말에 재관람을 선택했다. 

박호산이 김광석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도 궁금했고,.

그랬더랬는데...

수정을 거듭했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은 참 견디기 힘든 작품이다.

여전히 난잡하고 산만하고 수다스럽다.

보는 내내 민망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장진식 유머는 연극에서는 모르지만 뮤지컬에서는 정말 아니다.

이런 쓸데없는 유머코드만 줄어도 런닝타임이 확 줄어들겠다.

"난 알아요" 가사로 되도 않는 말장난을 하는 거 군인들,

개를 끌고 다니며 "점프"를 외치는 억지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도,

사투리리 쓰는 서울 아이나 페라로로쉐 초콜렛, 아저씨 운운하면서 원빈을 들먹이는 것도, 공연장의 좌석찾는 장면도

참 참기 힘든 유머다.

이런 식의 유머... 개인적으론 관객 모독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장진 작품에 매번 나오는 불멸의 여주인공 이름 "유화이"도 뮤지컬에서까지 만나니 어쩐지 식상하고!

성태의 장면들은 전부 없애버렸으면 좋겠다.

그 좋은 "서른 즈음에"를 이렇게 싹뚝 잘라내버리다니...

여전히 보고 난 후에 기억에 남는 노래가 없다.

이럴 수 있나?

김광석 노랜데...

이 작품을 보면서 <그날들>이나 <광화문연가>가 아주 괜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었구나 뒤늦게 감탄했다.

새로 추가된 편지 장면과 훈 아버지 요양소 장면은 그 장면 자체로는 나쁘지 않았는데

앞뒤 연결되는 부분들이 영 매끄럽지 않다.

왠지 급하게 짜맞추려고 했던 의도가 여실하게 보여서...

요양소에서 훈과 아버지가 나뉜 대화가 참 좋던데

장면 자체가 은근히 묻혀버려서 효과적으로 살지 못했다.

송영창의 담담하면서도 쓸쓸한 대사톤도 참 좋았는데 아쉽다.

...... 없어진걸 찾는게 죄냐? ...... 너희한테서 사라졌다고 모두에게서 사라지는거 아니다. 시간이 오래 되었다고 기억에서 멀어져간다고 다 잊혀지는 거 아니다. 난 잊을 수가 없는데... 내 눈앞에 보이고, 내 손끝에 만져지는데 왜 잊으라고만 하냐? 난 잊을 수가 없는데......

김준수와 박호산이 친구로 나오는건 연기래도 참 민망하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저 병풍에 불과했던 훈의 캐릭터는 안습이었고...

(참 초라하고 의미없더라.)

 

그냥 다시 보지 말 걸 그랬다.

이렇게 또 다시 실망하고나니 더 막막하고 답답해졌다.

솔직히 이 작품 개인적으론 다시 올라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두루두루 못할 짓이다.

관객에게도, 배우에게도, 김광석에게도!

 

비어있는 객석을 보면서

장진의 발연출은 김준수의 인기보다 훨씬 더 강력했음을 알았다.

JYJ 준수만으로도 안되는 게 있다는 거,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2. 19. 08:38

<December>

일시 : 2013.12.16. ~ 2014.01.29.

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대본 : 장진

연출 : 장진 

출연 : 김준수, 박건형 (지욱) / 오소연, 김예원 (이연/화이)

        박호산, 이창용, 이충주 (훈) / 김슬기, 조연진 (여일)

        임기홍, 김대종 (성태) / 송영창, 조원희 (아버지) / 홍륜희 외

제작 : (재)세종문화회관, NEW

 

원래 나는 티켓예매처에 후기나 이벤트 같은거 쓰는 타입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인터파크에 폭풍 후기를 남겼다.

이 작품...

정말 어마어마하다.

올해 최대의 문제작이자 대재앙이다.

솔직히 처음부터 기대라는 걸 안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다.

산만과 저급, 조잡과 추례함의 총재적 난국이다.

이쯤되면 이건 쓰나미급 재앙이다.

도대체 이 따위로 만든 작품을 당당히 무대에 올린 몰염치는 어디서부터 비롯된걸까?

장진의 자만심과 허영심?

아니면 김준수 등에 옆혀 가려는 안일함?

물론 아무리 관람평이 형편없어도 끝까지 티켓을 불니나게 팔릴거고 손익분기점도 당연히 넘길거다.

내용과 상관없이 우리 오퐈가 나오니까 무조건 봐줘야 하는 김준수 팬의 수는 또 어마무지하니까.

(이 대목에서 더블인 박건영이 상당히, 심각하게 걱정된다.)

김광석 탄생 50주년 기념작이라는데

진심으로 김광석에서 미안했다.

몰랐다.

김광석의 노래를 이렇게 저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3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은(1막 90분에 인터미션 20분, 2막 80분)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어버린 장면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제발 생각 좀 하고 만들지 어쩌자고 이 지경으로 작품을 만들어서 무대에 올렸을까?

개인적으로 김준수 팬도 아니지만 김준수 아니면 어쩌려고 했는지 답이 전혀 안 나온다.
스토리, 무대, 셋트, 조명... 다 심하다.
B급 유머도 아니고 중간중간 개그도 아니고 슬램스틱도 아닌 것들의 난발...
이게 장진식 유머라고?
그거 전혀 안 통한다.

왠만하면 내 돈 내고 본 공연 나쁜 소리 정말 안하는데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공연을 난생 처음이다.
솔직히 배경도 90년대는 정말 아니지 않나?

(나 90년대에 대학 다녔다. 과가 다르긴 했지만 심지어 장진이랑 같이 다녔다.)

새마을 운동 하던 때도 아니고...
<고스트>에 <아이다>에, <번지점프를 하다>에 여기저기 이미지 짜집기한 거 너무 티나고
그나마 김광석 노래를 한 곡이라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면 참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뭘 그렇게 이것 저것 섞어놨는지...
김광석 노래로 콜라보레이션이라도 하려 했던 건가?

결국엔 "디셈버" 외에는 단 한 곡도 기억에 남는 노래가 없다.
그 와중에 배우들은 연기를 제대로 해서 더 황당했고 진심으로 배우들이 불쌍했다.
이런 발연출을 연기로 커버하느라고 무지 애들을 쓰더라.

차리리 김준수 한 사람 세워놓고 김광석 헌정공연을 했더라면 갈채를 보냈을텐데...

전광판에 곡제목과 연도를 보여주는 것도 황당했다.

어차피 우리 오퐈를 보러 온 팬들은 그 곡이 무슨 곡인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을거고

김광석 팬들은 이미 제목뿐만 아니라 가사까지도 다 알텐데 쓸데없는데 친절했다.

거기에 신경 쓸 시간에 발연출을 해결을 하시지...

중간중간 이 전광판이 꽤 신경쓰이게 하더라.

<그날들>을 보면서도 좀 아쉬웠는데 이 작품(이걸 작품이라고 해도 되나???)을 보고 나니

<그날들>은 정말 엄청난 완성도를 보여준거다.

3시간 넘게 앉아 있다 나오니 심신이 완전이 녹초가 되버렸라.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정말 답이 없다.

재앙도 이런 재앙이 없다.

 

김준수!

난 당신 팬은 아니지만 정말 애썼다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아마 다른 배우가 했다면  관객들 원성으로 불미스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겠다.

더불에 이 작품을 고사한 남자 뮤배들(류정한, 임태경, 홍광호)은 아주 현명한 선택을 한거다.

20대의 김준수가 40대를 연기하는 모습을 되다니....

(<천국의 계단>에서는 분장이라도 했지!)

게다가 40대의 뮤지컬 연출가와 20대 여배우가 사랑이라니...

이건 뭐 장진의 개인적인 로망인가????

안티를 부르는 소리긴 하겠지만

김준수는 장진 감독때문에 그야말로 제대로 똥밟았다.

장진은 정말 김준수에게 두고두고 미안해 해야겠다!

(나 개인적으로 장진 영화 매니아다...)

 

장진 감독님!

다시는 창작뮤지컬에 직접 연출하겠다는 생각 버리시고
제발 부탁이니 영화나 연극 연출에 전념하세요.
아니면 뮤지컬에 대해 기본부터 충실히 공부를 하시던가요.
본인의 연출력에 너무 자만하셨네요.
아무 많이, 대책없이 무례하셨습니다.
본인도 눈과 귀가 있다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아시겠죠.
제가 다 부끄러워 몸둘 곳이 없네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9. 26. 08:11

<아버지> 

일시 : 2012.09.07. ~ 2012.09.30.

장소 :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

원작 : 아서 밀러 <세일즈멘의 죽음>

연출 : 김명곤

제작 : (주)아리인터웍스

출연 : 이순재, 전무송 (아버지) / 장은풍, 판유걸 (아들)

        차유경, 전선아, 문영수, 고동업, 계미경,

        우지순, 권재진, 설현석

 

2005년 남산예술극장에서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 공연됐었다.

그 당시 영화감독으로 한창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장진이 연출로 나섰었고, 배우진도 화려했다.

전무송, 전양자, 박상원, 민성현이 아버지, 어머니, 두 아들로 출연했었다.

개인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겨져 있는 작품이다.

특히 전무송, 전양자의 두 사람의 연기는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연극 <아버지>

지난 4월에 대학로에서 공연됐던 작품이 이번에 재공연됐다.

얼마전 드라마 "각시탈"에도 모습을 비췄던 배우 김명곤이 재공연에서도 연출을 맡았다.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산다는 것!

연극은 지난하고 피로한 이 땅의 아버지라는 삶을 짙은 비극으로 그려낸다.

 

“너희 아버진 돈도 많이 벌지 못했고, 신문에 이름이 난 적도 없지만 훌륭한 가장이다.

 평생토록 방방곡곡 다니면서 회사 물건을 팔아줬는데 이제는 나이 먹었다고 폐물 취급을 한단다.

 너희 아버진 폭풍 속에서 항구를 찾고 있는 조각배 같은 분이셔.”

 

극 중 어머니의 대사가 가슴을 친다.

이 땅은...

청년도, 아비도, 그리고 여자도(심지어 아직 어린 아이들조차도) 모두 살기 힘든 땅이 돼버렸다.

뼈아프게 슬프다.

해체되고 부서지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이.

 

대배우 이순재의 연기는...

감히 뭐라고 운을 때지 못할만큼 엄청난 존개감이었다.

1935년생, 77세라는 연세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만큼 어마어마했다.

열정적이었고 동작과 대사 하나하나가 꼼꼼했다.

마이크를 쓰지 않는 연극무대에 자신의 소리를 끝자리 관객에게까지 전달시켜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만 생각해서 모든 대사를 버럭버럭 큰소리 치며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간혹 묻혀버리는 대사들도 있긴 했지만

연세와 공연장 환경을 생각하면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니다.

단지 보면서 좀 이물감이 느꼈던건,

다른 배우들과의 발란스면에서 연세가 너무 많지 않았나싶다.

(아들이 아니라 마치 손주 같아서...)

출연한 배우들 전부 다 연기를 잘했지만 특히 아들 동욱역의 장은풍의 연기는 돋보였다.

너에겐 배짱이 있어서 무슨 일을 하던 다 잘할거라며 비행기를 태우던 아버지.

그러나 그런 아들은 자신의 인생이 시간당 4천 5백원짜리 싸구려 불량품이라며

자신이 이렇게 된 건 순전히 아버지때문이라고 소리친다.

우연히 목격한 아버지의 불륜 현장.

세상에서 가장 위대했던 아버지는 이제 아들에게서 남아있지 않다.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고 끝장나버리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아들의 오열은...

비참했다.

그런 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아버지.

2억 3천의 보상금이 아들에게, 

남겨진 가족들에게 과연 새 삶을 선사할 수 있을까?

 

연극 속에서 아버지가 죽은 형에게 읽어주는 마종기의 시는...

이 작품 전체를, 이 사회 전체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씁쓸하고 참담한 시다.

이 시대의 모든 며루치떼들의 비명이 귓속에서 펄떡댄다.

생으로 잡혀 온몸을 비틀며 꾸덕꾸덕 말려지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가 눈물겹다.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 마종기

 

(아내는 맛있게 끓는 국물에서 며루치를

하나씩 집어내 버렸다. 국물을 다 낸 며루치는

버려야지요. 불썽도 없고 맛도 없으니까요.)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뜨겁게 끓던 그 어려운 시대에도

며루치는 곳곳에서 온몸을 던졌다.

 

(며루치는 비명을 쳤겠지. 뜨겁다고,

숨차다고, 아프다고, 어둡다고.)

 

떼거리로 잡혀 생으로 말려서 온몸이 여위고

비틀어진 며루채때의 비명을 들으면.

 

시원하고 맛있는 국물을 마시면서

이제는 쓸려나간 며루치를 기억하자.

 

(남해의 연한 물살, 싱싱하게 헤엄치던

은빛 비늘의 젊은 며루채떼를생각하자.

드디어 그 긴 겨울도 지나고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8. 29. 08:21

<허탕>

부제 : 장진의 풍자 심리극

일시 : 2012.06.15. ~02.12.09.02.

장소 : 도숭아트센터 소극장

대본 : 장진

연출 : 장진

출연 : 김원해, 이철민 (죄수1) / 김대령, 이진오 (죄수2)

         이세은, 송유현 (죄수3)

기획.제작 : 문화창작집단 수다

 

연극판으로 돌아온 장진은 참 바쁘다.

<리턴 투 햄릿>, <서툰 사람들>에 이어 <허탕>까지 쉼없이 세 편의 연극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대본에, 연출에, 그리고 때때로 관객과의 대사까지 아주 바쁘다.

투자자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이제 영화를 그만 하겠노라 했던가!

그 말이 그냥 한 번 해 본 말은 진정 아니었나보다.

어쩌다보니 장진매니아처럼 이 세 작품을들 전부 봤다.

일부러 챙겨서 본 편이긴한데 솔직히 <허탕>은 마지막까지 관람을 고민했었다.

부조리극이라니...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장진이 스물 한 살 군복무시절에 쓴 작품이라고 했나!

1995년 정재영, 정은표 두 배우에 의해 초연으로 올려졌고

4년 뒤 1999년 앵콜 공연에서 정재영, 신하균, 임원희, 정규수 등이 출연했었다.

바야흐로 장진사단이란 말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때가 아닌가싶다.

그리고 2012년 무려 13년 만에 다시 <허탕>이 무대에 올려졌다.

대본 수정이 약간 있다고는 하지만 1995년 공연됐을 때는 확실히 센세이션이라 불릴만 했겠다.

솔직히 욕도 좀 먹었을 것 같고...

장진은 확실히 남다른 사고와 시선을 가진 사람임에 분명하다.

(이직도 생각난다. SBS 영화프로그램에서 바바리를 휘날리며 한 코너를 책임졌던 그의 모습이...ㅋㅋ)

이십대 초반의 재기발랄한 장진식 상상력의 산물들을 생각하면

아직까지 좀 뿌듯하고 으쓱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류는 장진 스타일이 아닌가?)

장덕배, 유화이(이 작품에선 서화이), 유달수.

급기야 장진 작품 속 뮤즈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처럼 먀냥 친근하다.

이러다 장덕배, 유화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주책없이 아는 척 할지도 모른겠다.

 

<리턴 투 햄릿>의 김원해, 김대령이 죄수1(장덕배)과 죄수2(유달수)로 나온다.

전작에서도 느낀 거지만 김원해의 연기는 확실히 탁월하다.

어린 두 배우를 이끌어가면서 극의 중심을 잘 잡는다.

(어린 배우라는 건 어디까지나 김원해 입장에서.)

극의 후반부 심리드라마를 이끌어갈 때 목소리와 분위기가 확 바뀌는 걸 보고 섬득했다.

세 명의 인물 중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인물.

김대령과 송유현은 20대 배우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두 배우 다 나이가 제법 있어서 놀랐다.

김대령은 <리턴 투 햄릿>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처음엔 동일인이 아닌 줄 알았다는...)

후반부 송유현과 김원해의 연기는 서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보는 느낌이었다.

대사가 주는 재미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의외로 철학적이고 약간의 고발적인 요소도 있다.

 

내가 이해력이 떨어져서인지는 모르겟지만

결말은 좀 이해가 불가다.

(난해라고 표현하기에도 좀 그렇고...)

열린 결말이라는 설도 있긴 하던데 글쎄...

여자와 아이는 죽고,

죄수1인 어디 갔다 올 데가 있다면서 문을 열고 나가버리고.

혼자 남은 죄수2는 자신이 죽인 여자에게 톱날을 갈아달라고 말한다.

(혹시 여자 안 죽은건가? 죽은 거 맞는데....)

혹시 이래서 부조리극이 된건가???

이 모든 게 일종의 트루먼쇼는 아닐까 강한 의심도 들었다. 

사방에 설치된 카메라도 그렇고...

연극을 보고 나오는데 이유도 모른채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 같 같은 황망함이 들었다.

 

문득 죄수1의 대사가 맴돈다.

"얼마나 억울하니? 신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헤맨 나날들이..."

장진한테 제대로 한 방 먹은 건가!

그런건가....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4. 9. 06:01

 

 <서툰 사람들>

 

일시 : 2012.02.11 ~ 2012.05.28.

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출연 : 정웅인, 류덕환, 조복래 (장덕배) / 예지원, 이채영, 심영은 (유화이) / 김병옥, 홍승균 (멀티맨)

대본 : 장진

연출 : 장진

제작 : 문화창작집단 수다

 

장진이 만든 코믹 소란극 <서툰 사람들>

<장진 희곡집>을 읽어서 그랬겠지만 정말 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이다. 

상황과 이야기 전개, 인물의 성격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희곡으로만 읽어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정웅인, 예진원 캐스팅이라니.

두 코믹의 대가가 무대 위에서 서로 지지 않고 맞부딛칠 걸 상상하니 어찌 아니 즐거울소냐!

그런데 잠깐!

이 작품의 주인공의  나이를 생각하곤 설마... 하는 걱정이 앞섰다.

26살 도둑 장덕배와 26살 집주인 유화이.

배우들 나이도 나이인만큼 아마도 주인공들의 나이를 30대로 설정하지 않았을까 혼자 예상했는데 

여지없이 내 예상이 무너뜨렸다. 

하기 30대라면 이런 대화가 오고가기는 좀 어렵겠지 싶다.

참 미안한 말이지만,

연극 초반부 유화이(예지원)이 자신의 집이 너무 높다며 "내 다리~~~~"를 울부짖을 때

난 유화이 어머님이 따님 집에 방문하신 줄 알았다.

어! 극본엔 안 나오는 어머님이 이번엔 나오시나보다... 혼자 생각했다.

한참 뒤에야 어머님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유화이인 것을 알고 혼자 무지 식겁하고 말았다.

확실히 예진원을 26살로 설정한 건 무리수가 많이 따른다.

어려보이려고 머리도 컷트한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사진 속 모습이 훨씬 어려보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혼자 무리수가 아니라 정웅인도 역시도 무리수라 그런 면에서 궁합은 잘 맞는다.

 

연극은 기대만큼 재미있었다.

끝나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그러더라.

"광대뼈 터지는 줄 알았어!" 라고.

아마도 두 배우의 역량이 그만큼 크게 작용했으리라.

(개인적으론 극본이 더 재미있었지만) 

두 주인공이 나이가 있어서인지

김추락, 서팔호, 유달수 역을 한 홍승균이 상대적으로 어려보여 나름대로 코믹했다.

유화이역의 예지원은 목이 괜찮은지 모르겟다.

매번 소리를 지르면서 그렇게 과하게 울부짖으면(?) 그 성대가 남아날까?

목소리톤 자체는 예전 <미드썸머>때가 훨씬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냥 자신의 목소리 그대로 유화이를 연기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일부러 설정을 그렇게 했는지 어떤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그게 좀 아쉽다.

(계속 듣고 있자니 귀가 점점 피로해져서...)

정웅인 장덕배는 연기도 성실하고(?) 애드립도 시기적절하게 잘해서 관객 반응이 너무 좋았다.

특히 다리 찢기~~~ 완전 예술이시다.

마흔이 넘은 연세에 일자로 다리를 찢는다는게 가당키나 하는냐 말이다.

보기에도 별로 유연해보이는 몸매도 아니신데...

(정말 오랫만에 진기명기 목격했다. ^^)

 

원작과 다르게 두 주인공이 점점 남녀관계로 다가가는게 부각이 되는 건 아쉽다.

원작은 끝까지 친구인데,

연극은 곧 불꽃이 튈 분위기다.

이 상태라면 <서툰 사람들> 2탄격인 <서툰 연인들>이 탄생해도 무방하겠다.

설마? 혹시? 아니겠지...

뭐 생각해보니 장진이 그런 희곡 한 편 써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유화이, 장덕배.

장진의 영원한 뮤즈들~~~

(좀 이상한가!)

 

* 사족 한 마디!

  류덕환 장덕배와 예지원 유화이 페어는 솔직히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두 배우의 어마어마한 나이 차이가 과연 연기력으로 온전히 커버될 수 있을까?

  띠동갑을 넘어 16살이나 차이가 나는데...

  그게 뭐 또 다른 웃음코드로 작용할 수 있긴 하지만 어쨌든 두 배우의 동갑 연기는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2. 3. 30. 05:54

문학적 기발함은 일종의 신의 축복일까? 아니면 부단한 습득에 의해 형성될 수 있을까?
맨 처음 장진이 SBS에서 영화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나타났을 때도
"와! 저 인간 엄청나네~~~' 하며 혀를 내둘렀더랬다.
뭐랄까, 일종의 부러움이었고 동경이었을 수도 있다.
갖지 못한 재능에 대한 탄식!
그의 영화들이 개봉될때마다 극장을 찾으면서도 이런 심정은 여전했다.
정만 난 놈이구나!
게다가 센 놈이구나!
동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을 때 우연히 장진 희곡집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4월 초에 <서툰 사람들>을 볼 예정이기도 했다. 
한번쯤 읽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대출책에 한 권을 추가했다.
지금 재판된 책은 장진이 얼굴이 크게 나와있지만 내가 읽은 2008년도 출판된 책은 붉은 색 표지였다.

모두 다섯 편의 작품이 실렸다.
이미 영화와 연극으로 본 작품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왠만한 소설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장진 희곡의 특징은 소위 지문이라고 하는 해설부분이 별로 없다는 거다.
인물의 행동을 설명이나 배경을 설명보다 오로지 대화가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한다.
간혹 실제 사람들의 대화에 내가 끼어 앉아있는 환상마저 느껴진다.
희곡집이 판타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읽으면서 재미있게 경험했다.
이제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영화 감독은 안 하겠노라였던가???) 했던가!
투자자의 본전을 생각하며 돈계산을 하는 걸 이제 하고 싶지 않노라 했던 것도 같다.
한창 활발히 활동할 나이에 그의 깡다구 서린 결심이 문득 부러워진다.
배가 불렀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장진이니까 그나마 가능한 일이다 싶기도 하다.
게다가 영화판 아니더라도 장진이 활약할 무대는 무궁무진하다.
난 놈에 센 놈 아닌가 말이다!
연극판에서든 영화판에서든 좋은 배우를 찾아내는 매의 눈은 또 어떤가!
덕분에 정재영, 류덕환, 신하균 같은 좋은 배우도 알게 됐다.
"킬러들의 수다" 원빈은 또 어떻고!
지금은 <리턴 투 햄릿>과 <서툰사람들>이란 작품에서 조복래라는 새로운 광대를 발굴(?)하기까지 했다.
책을 읽으면서 장진의 문학적 동반자라 할 수 있는 유화이와 장덕배가 정말 어딘가 살고 있는 실제 인물같다.
지금은 예지원이 만들어낸 유화이, 정웅인이 만들어낼 장덕배를 궁금해하며 기다리고 있다.
기발함은 엄청난 에너지다.
아마도 장진은 쉽게 늙지 않을거다.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 각색가, 그리고 배우까지 ...
그의 다재다능한 에너지가 부럽다.
이 무시무시한 놈이 진심으로 부럽다.
젠장!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 27. 06:23

<리턴 투 햄릿>

일시 : 2011.12.09. ~ 2012.04.08.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대본 : 장 진
연출 : 장 진
제작 : 문화창작집단 수다, (주)연극열전
출연 : 김원해, 서주환, 김지영, 장현석, 김대령, 조복래, 이엘, 강유나


연극열전 4번째 시리즈 그 첫번째 작품인 <리턴 투 햄릿>
영화감독 장진의 연극 연출 복귀작으로 화재가 된 작품이다.
갑자기 연극판에서 부지런하기로 작정했는지
장진 연출은 이 작품 외에도 <서툰 사람들>이라는 연극도 2월에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역시 장진은 장진이다.
개인적으로 장진식 유머와 위트를 좋아한다.
재치있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예리함이 있다.
결코 과하지 않게 그러나 인상적으로.
오랫만에 대학로에서 젊은 배우와 젊은 연출가의 참신한 작품을 보게 돼서 개인적으로 기쁘다.
어찌보면 대학 워크샾 작품을 보고 있는 듯한 묘한 참신함과 신선함도 느껴진다.
비교적 젊은 배우들이 주가 된 작품이라 자칫 가벼워질 수도 있었는데
그 아교 역할을 배우 김원해와 조복래가 확실하게 붙잡아준다.
그래서 조금 걱정이 된다.
건축 디자이너(?)인 양진석이 과연 김원해가 하듯 무대 위에서 조율과 포용을 아우를 수 있을지가...
뭐 본인이야 더 캐릭터 분석하느라 고민에 고민이겠지만 말이다.



무대 뒤 분장실을 들여다본다는 설정은
관객에겐 엿보기라는 관음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모든 공연 예술은 일종의 관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의 색다른 해석은
대한민국의 지금을 풍자하고 까발리는 썩 괜찮은 도구로 활용된다.
햄릿의 비극성에 빗댄 대한민국의 희극성이라고 할까!
실제로 관등성명 운운하는 장면은 김문수 도지사의 어이없는 형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줬고
늘상 봐서 이제 오히려 식상한 대한민국의 청문회 장면 역시 이 연극을 통해 다시 들여다보니 재밌다.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이 말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개 특허 줘야 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 이분법적인 편가르기 역시도 익숙한 대한민국의 정치판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급기여 성질을 부르며 퇴장하는 모습까지도...
역시 장진식 코드와 유머로 작품을 꽉 채웠다.
다만 마당놀이 형태가 너무 길어졌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처음엔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너무 오래 계속되다보니 밑천이 드러난다는 느낌!
특히나 젊은 배우들의 사투리는 점점 민망할정도로 어색해진다.
엑센트로 느껴졌던 부분이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진다.
공연시간도 꽤 길어지면서
젊은 배우들과 노련한 배우들과의 집중력과 연기력 차이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도 단점!
처음엔 분명 참신하고 재미있었는데
그 참신함이 자칫하면 지루함으로 빠질 소지가 다분하다.
특히나 결론은 너무 신파적이고 교육적(?)이라 의외다.
(이건 장진식 스타일이 아닌 것 같은데...)



2012년 내 첫 관람작이 된 <리턴 투 햄릿>
어찌됐든 부담없이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연극임에는 분명하다.
연극을 지루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작품.
더불어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이 연극을 보고 있으면 코믹공화국 대한민국이 보인다.

개인적으론 끝까지 좀 더 실랄하게 까발리고
좀 더 노골적으로 보여줬으면 더더더 좋았을 작품!
(그랬으면 너무 추했을라나???)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