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12. 29. 12:33

<햄릿>

일시 : 2013.12.04. ~ 2013.12.29.

장소 : 명동예술극장

원작 : W. 세익스피어

윤색 : 이양구

연출 : 오경택

무대 : 정승호

출연 : 정보석, 남명렬, 서주희, 김학철, 박완규, 이지수 외

제작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주)쇼플레이

 

정보석이 배우로서 가장 하고 간절하고 하고 싶었던 역이 "햄릿"이란다.

하지만 도저히 함부로 도전할 수 없는 역이라 매번 망설였단다.

그런 그가 드디어 "햄릿"을 도전했다.

그런데 연습하는 과정에서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여러번 하차를 생각했단다.

이해된다.

역시 세익스피어의 "햄릿"은 어렵고 난해한 텍스트임에 분명하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연극으로 제대로 본 게 이번이 두번째다.

(내 첫번재 "햄릿"은 김영민이었다. 좋았다.)

"To be or not to be!"

아마도 이 대사는 지구가 명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을 유일한 명제가 아닐까!

사실 나는 이 대사를 햄릿의 입으로 듣게 될 줄 알았는데

(누군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제대로 허를 찔렸다.

 

젊은 연출가 오경택의 <햄릿>은 놀랄만큼 파격적이었다.

양철 합판(?)을 이용한 무대는

결코 발설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담아내야하는 울부짖음처럼 들렀다.

빛과 소리를 적절하게 활용한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고...

그런데... 이 작품...

정말 난해하다.

텍스트 보다 훨씬 더.

솔직히 첫 장면에서 락음악에 맞춰 해드뱅잉을 하는 클로디어스를 보는 순간 당황했다.

현대의 옷을 입은 <햄릿>.

그런데 대사는 자주 신파조였고 

참 미안한 말이지만 배우들은 너무 올드했다.

현대적인 해석을 보여줄거였다면

무대도, 시대도, 분위기도 더 완벽하게 현대적이었으면 좋았을것 같다. 

배우 정보석의 열연은 확실히 아름다웠다.

공연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아 목소리가 많이 잠겨있는 건 안타깝더라.

정말로 정보석은 이 작품에 모든 걸 다 걸었던가!

혤쑥해진 몸피가 <햄릿>이 되기 위해 노력한 

정보석의 고뇌와 집념을 보는 것 같아 가슴 한 끝이 뭉클해왔다.

 

사실 이 작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서 기대를 많이 했었다. 

기대보다 느낌이 덜 했던 건

아마도 내가  정통 고전극 <햄릿>을 그리워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관람하면서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가 많이 떠올랐다.

새로운 해석과 파격적인 표현.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욕심이 너무 컸던 것 같다.

배우들 간의 연기의 갭도 너무나 컸고

전체적으로 어딘가 균형감이 자꾸 어긋나는 느낌.

게다가 객석 바로 앞에서 오르락 내리락 거리던 무대는 참 거슬렸다.

 

그냥 좀 모르겠다.

현대적인 해석이라고 해도  진중하고 묵직한 <햄릿>을 느끼고 싶었는데 

내겐 전체적으로 너무 산만하게 다가왔다.

아쉽다. 많이...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1. 14. 08:15

<멸(滅)>

부제 : 2012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일시 : 2012.11.03. ~ 2022.11.18.

대본 : 김태형

연출 : 박상현

출연 : 정보석, 신덕호, 정나진, 우미화, 이동준, 이상홍, 김민하 외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

이거 정말 엄청난 물건이다!

지금까지 네 편 모두를 봤는데 이 대단한 상상력들과 대단한 연기에 감탄 그 이상을 하게 된다. 

작가와 연출, 배우와 무대가 거의 엄청난 몰입과 집중으로 완벽하게 나를 유혹하고 붙잡는다.

관람하는 동안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결코 탈출은 꿈도 꾸지 못할 극형의 죄수가 되어 옴짝달짝 못하게 사로잡혔다고 할까? 

 

연극 <멸>은 "삼국유사 가이 제2" 가운데 김부대왕편을 모티브로 만들었단다.

좀 경력이 되는 작가의 대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예 작가(김태형)라서 놀랐다.

역사의 빈틈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날개를 달아 준 느낌이다.

사촌인 경애왕을 죽이고 신라 56대 왕에 오른 김부대왕(경순왕)의 종말로 향하는 욕망과

후삼국의 은밀하고 치열한 이권다툰,

마의태자의 비극적인 비화를 표현한 독특한 발상이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거라고 했나!

그렇다면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다른 해석을 해보고 싶다.

역사는 상상하는 자에 의해 기록된다!... 라고

그런 의미에서 작가 김태형은 역사가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후삼국의 고대사를 현대적인 복장과 무대로 표현한 건 파격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심지어 실용적이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연극에 "실용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릴지는 모르지만...)

포석사의 교합제 모습도 박정희 정권의 삼청동 안가를 떠올리게 하고

마피아나 일본의 아쿠자의 세력다툼을 떠올리게 하는 왕위쟁탈전과

쿠테다로 정권을 잡고 장기집권을 꿈꾸던 김부대왕의 모습은

자꾸 우리의 현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보고 있으면 허를 찌름과 동시에 찬찬하고 부끄러운 복기(復記)를 하게 만든다.

 

어쩌면 역사 속에서 진실같은 건 정말 중요한 게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진실처럼 보여지는 게 중요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작품 속 김부의 대사처럼 성군(聖君) 따위는 애초에 없다는 말도 옳다!

어떻게 보여지는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게 진실이고, 그게 역사가 된다.

세상에 영원한 단 한 가지.

욕.망!

그러나 욕망의 끝은 "잃음"이다.

그것도 모든 것을 온전히 잃어야 진정한 끝장이다.

아무 것도 남지않음을 알면서도 인간은 왜 끝없이 욕망하고 욕망할까?

어쩌면 인간은 욕망을 쫒는 게 아니라

파괴됨을, 무너짐을 쫒는 게 아닐까?

다 잃어봐야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극한의 쾌감.

그래서 기꺼이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권력을 잡기 위해 애쓰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타인의 피를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속성이란 벰파이어의 그것과 같다.

그러니 웃.어.라.

 

대사들의 팽팽함이 대단하다.

그리고 그걸 표현하는 배우들의 내공 역시 기막히다.

이건 매력적이라거나 매혹적이라는 말 외의 단어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런 작품 다시 만나기란 배우 입장에서도, 관객 입장에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떠오르게 하는 아비와 아들의 관계(김부-일, 견횐-신검),

마치 연인같은 모자 관계.

묘한 대립을 이루는 형제들(일-굉, 신검-금강).

온갖 애정과 애증의 관계들이 활어처럼 펄떡인다.

모든 인물들이 마치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전투용 칼같다.

무대 위를 종횡무진 사납게 찌르면서 격하게 파고드는 걸 보고 있으면 순간 아득해지진다.

권력의 가파른 상승과 몰락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대도 의미심장했고

이런 비극적(?)인 내용에 의외로 생기발랄(?) 음악을 사용한 것도 이색적이다.

극의 초반부 교합제를 올리는 신모의 대책없이 어색한 랩과

장난감 총소리같던 조잡한 음향 따윈 충분히 용서될만큼 멋진 작품이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은 도저히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극장 옆구리가 열리면서(?)

강풍기로 낙엽이 날리는 장면은 지금껏 이 작품에 갖던 경외감을 일순간 무너뜨렸다.

욕망을 쫒던 김부의 허망하고 초라한 역사적 퇴장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건 알겠는데

보는 입장에서는 참 코믹하고 황당하게만 느껴졌다.

심지어 강풍기 옆에서 최대한 몸을 숨기고 낙엽을 뿌리고 있을 스텝의 모습까지 떠올라 혼자 민망했다.

스텝들이 잘 막고 있어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문이 열렸는데 의도치 않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배우도, 관객도, 문 앞의 사람도 참 황당하겠다 싶다.

이것 좀...

어떻게 해주시면 안 될까?

 

모든 배우들이 다 아름다웠지만

특히 정보석, 이동준, 이상홍의 연기가 각인되듯 남는다.

목소리톤과 딕션, 감정 표현이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배우 정보석인 이 작품이 "시대를 파괴하면서 배우에겐 많은 자유를 줬다"고 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겠다.

 

이 작품.

치열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깊다.

아마도 한동안은 거듭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기억에서 결코 쉽게 멸하지 않을 작품이다.

滅하지 않을 滅이라...

이 또한 모순이겠지만 어쩌라!

그게 진실인 걸.

 

* 이제 삼국유사 프로젝트 한 작품 남았다.

  "로맨티스트 죽이기"

  역시나 무지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엔 잊지 않고 조기예매를 했다.
  <멸>은 조기예매를 놓쳐서 문화릴레이티켓으로 예매했었다.

  (당연히 조기예매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예매를 아예 안 했더라.)

  게다가 당일날 티켓을 안 가져가 6000원을 현장 지불했다.

  지갑 속에 <꿈>, <꽃이다>, <처용은...>을 계속 가지고 다녔었는데

  공연 보는 날 아침 뭐에 씌였는지 3장 전부를 티켓 모아놓는 가방에 곱게 넣어버렸다.

  아침에 내가 한 일도 기억 못하고 막상 공연장앞에서 티켓을 찾다가 잠깐 맨붕 상태가 되버렸다.

  챙길 건 잘 챙기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2. 28. 20:06
요즘 경기도 예술을 총괄하느라 한창 바쁜 조재현이 오랫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연극열전 <민들레 바람되어>로...
이러다 제 2의 유인촌이 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바쁜 그의 일정 속에서 무대 위로 복귀가 나는 너무나 반갑고 즐거웠다.
(어찌됐든 배우 조재현의 연기도 뛰어나지만 기획자 조재현의 모습도 확실히 탁월하다.
 연극열전을 이렇게 자리잡아 놓은 것 보면 대단하단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꽤 오래전에 예매했었고
그리고 기대를 많이 했던 연극열전 작품.
조재현에게 "연극열전"이란 몸의 일부같은 존재가 아닐까?
영영 떠나버렸나 생각했는데 반가웠고 그리고 대학로 무대에서 연출가나 기획자가 아닌
배우로서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이노라 고백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죽은 아내의 무덤에 찾아가 그녀가 살아있을 때처럼 대화를 나눈다는 거...
왜냐하면 나도 가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니까.
마음 안에 오래 담겨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사람이 이미 세상에 있는 사람이든, 혹은 없는 사람이든
아직 이야기할 수 있다면 상대편은 기꺼이 살아 있는 존재다 될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애뜻한 마음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연극...
그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아내에게 비밀이 있듯 내게도 밀봉된 비밀이 있는지도...
"이 세상 모든 부부들에게 바치는 가슴 뜨거운 러브 스토리"
개인적으로 이 문구는 참 맘에 안 든다.
이 연극이 러브스토리었던가?
오히려 이 연극은 비밀과 밝혀짐, 파헤침의 연극이 아닐까?


        남편 : 조재현           아내 : 김성미                  노부부 : 이한위, 황영희

아내는 그대로인데.
아내의 무덤을 찾아가 이야기를 하는 남편은 시나브로 나이를 먹는다.
30대, 40대, 50대, 그리고 초라하고 누추한 노년이 되어버린 남편.
살아서는 한 번도 꽃을 사오지 않았던 남편은
아내의 무덤에 꽃을 들고 찾아와 이야기를 한다.
때로는 떼를 쓰고 어거지를 부리고,
때로는 불평과 부당함에 대해 하소연을 하고
때로는 분노와 화를 폭발한다.
아내는 묵묵했던가?
아니면 열심히 자기방어를 하듯 그에게 이야기했던가?
둘의 대화는 때로는 앞 뒤가 맞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다른 세계이기도 하다.
그래, 꼭 민들레 같다.
꽃이기도 하고, 나풀거리는 홀씨이기도 한 그런 민들레.
바람이 불면 홀씨는 흩어진다.
처음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꽃이었던 모습이 지워진 것도 이미 오래다.
부부는, 아니 사람은...
자꾸 가벼워져야 하는 걸까?
그래서 아내의 무덤이 민들레가 지랄맞게 지천인 곳이여야 했는지도...


  
“오늘 우리 결혼사진을 봤다.
 당신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나는 없더라.
 나는 없고 나였던 사람만 있더라.
 나는 이렇게 늙었는데… 당신이 과연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꼭 누군가를 먼저 보내지 않았더라도
살면서 이런 느낌 참 많이 받는다.
그럴 땐 세상 누구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자신의 모습.
이 연극을 보면서 뜬금없이 나는 나 자신을 봤고 느꼈다.
배우 조재현은,
참 잘 어울리더라.
아마도 그를 위한 연극이 아니었을지...
아내 역이 좀 어색하고 인위적이긴 했지만
조재현 덕분이 붕 뜨지 않고 그나마 안정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성미의 변사스러운 대사톤은 신파를 떠올리게 한다. 
"여보! 나 예뻤어~~~"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저 여자 지금 미쳤나 싶기도 했다.
내 생각엔 귀신이 오히려 더 차분하고 평온할 것 같은데
김성미가 표현한 아내는 코믹함마저 느껴져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였나?
남편의 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대사가 별로 충격적이지 않더라...



노부부 역의 이한위, 황영희는 정말 좋았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임산부로 나왔던 황영희를...)
두 사람의 타이밍과 대사의 호흡은 맛깔스럽고 일품이다.
왜 이한위를 명품조연이라고 표현하는지 연극 무대를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하긴 내가 별로 TV는 보지 않아서 TV를 통해 느끼기는 어렵긴 했겠다 ^^)
요즘 TV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는 배우 정보석이
남편 안중기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조재현과 함께 공연중이다.
덕분에 아주머니들의 폭발적인 관람이 이어지고 있단다.
(내가 본 날도 게모임에서 단체로 나오신 듯한 분들 많더라... 개인적으로 이런 모습, 아주 보기 좋다.)
3월부터는 이광기까지 가세해 공연장을 옮겨 오픈런으로 공연될 예정이란다.
솔직히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은 이 연극을 올리기에는 좀 넓긴 하다.
조금 작은 곳에서 더 애뜻하고 차분하게 공연되길 기도해본다.
연극열전의 좋은 레퍼토리니까...
"이지아" 가 부인으로 컴백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다.
한번 기다려볼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