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12. 12. 08:16

<로맨티스트 죽이기>

부제 : 2012 국립극단 삼국유사 프로젝트

일시 : 2012.11.24. ~ 2012.12.09.

장소 : 백성희장민호 극장

극작 : 차근호

무대감독 : 변오영

무술감독 : 이국호

연출 : 양정웅

출연 : 한윤춘(김달), 전중용(임종), 정승길(도화), 오민석(진평왕),

        이승주(비형), 이국호, 김남중, 성민재, 계지현, 김도완, 풍성호,

        권신우, 송준석, 이창규, 영인

 

<루시드 드림>의 차근호 작가와 <한여름 밤의 꿈> 양정웅 연출의 만남!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마지막 작품은 정말 마지막답게 끝장이었다.

2시간 동안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서 황홀하고 또 황홀했다.

이로써 9월 <꿈>으로 시작된 3개월간의 삼국유사 프로젝트 대장정도 모두 끝났다.

<꿈>, <꽃이다>, <나의 처용은 밤이면 양들을 사러 마켓에 간다>, <멸>, <로맨티스트 죽이기>

이상하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내가 뭐라고 가슴 한 켠이 휑~~하다.

황홀했고, 경외감이 들만큼 엄청난 여행이었다.

이 여행의 종착지였던 <로맨티스트 죽이기>

이 작품은 삼국유사 "도화녀와 비형량" 설화가 그 모티브란다.

작품의 거대함과 묵직함은 가히 언급하기 힘들 정도의 묵시론이었다.

뭐라고 운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속.수.무.책.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는 확실히 그런 상태였다.

 

로맨티스트가 꿈꾸는 세상과 리얼리스트가 꿈꾸는 세상!

우리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왕족과 귀족의 나라, 그 1500년전 신라가

우리가 사는 이 아비규환의 세상과 똑같은 현재의 모습으로 무대 위에 그려진다.

(게다가 같은 편 같은 왕족과 귀족은 또 자기들끼리 권력을 위해 또 열심히 싸운다.)

감각적인 영상과 심플한 무대.

클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조명과 음악.

그리고 15명의 남자들이 보여주는 현란하고 격동적인 아크로바틱의 세계는 눈을 휘황찬란하게 만든다.

(저건 사람이 할 수 있는 몸놀림이 아니야... 등짝을 열면 분명히 에너자이저가 들어있을거야...)

개인적으로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작품을 싫어하는데

이 작품은 거부감 전혀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봤다.]

 

로맨티스트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단다.

그래서 로맨티스트는 언제나 리얼리스트에게 죽임을 당한단다.

섬뜩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했던 로맨티스트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라서... 

로맨티스트는 수평과 대칭의 세상을 꿈꾸는데

리얼리스트는 수직과 대립의 세상을 꿈꾼다.

리얼리스트의 세계는 그래서 자기 밥그릇이 중요하다.

그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그렇게 기를 쓰고 남의 밥그릇 뺏기에 혈안이다.

그 밥그릇 싸움에 국민들 등짝은 갈라지고 피고름이 흐른다.

명예라는 건 개나 물어가라지!

리얼리스트의 세계에서는 로맨티스트는 도깨비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탈을 쓴 귀면(鬼面)의 도깨비.

도깨비로 태어나 도깨비로 죽는 이 땅의 숱한 풀잎들의 흔들림이 서럽다.

 

세상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로맨티스트, 리얼리스트, 그리고 로맨티스트를 가장한 리얼리스트.

김달과 비형, 그리고 도화로 대변되는 그 세계가,

어쩌자고 이 세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가 말이다!

조직폭력단의 비호를 받는 건설사업과 끊이지 않는 통치자의 친인척 비리.

정치와 경제의 오래고 끈질긴 유착관계.

그래서 사보타주(sabotage)가 생존의 필수조건이 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로맨티스트 죽이기>

이 작품은 어쩌면 이 세계를 향한 격정적이고 간절한 외침이자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배우가 무대 크루이기도 했던 이 작품.

아주 의도적인 구성이었다는 걸 작품을 보고 난 후 이해했다.

배우들은 한 번 무대 위로 오르면

공연이 끝날때까지 계속 무대 위에 머무른다. 

양쪽 사이드에 앉아서 무대 크루 역할을 하거나 의상을 교체하면서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

자칫하면 산만해질 수도 있었을텐데 동선과 무대 이용을 참 효과적으로 잘 다듬었다.

밥 딜런의 노래 "Knocking On Heaven's Door"도 끝장날만큼 멋진 활용이자 상징이었다.

(이렇게 멋져도 되는 건가!)

 

배우들의 연기는...

감히 뭐라 말도 못하겠다.

특히 김달 역의 한윤춘 배우는 경외심 그 이상이다.

단지 파격적인 노출을 했대서가 아니다.

왜 한윤춘이라는 배우를 지금에서야 알았나 가슴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완전히 장악했고 끝까지 놓치 않았다.

솔직히 무시무시한 공포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거대하고 위험한 배우, 한윤춘!

김달보다 배우 한유춘이 더 도깨비같다.

 

아무래도 난 도깨비불을 봐버린 것 같다.

오랫만에 제대로 홀렸다...

 

* 비형 역의 배우 이승수도 놀랍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도 인상적이었는데 어느 틈에 이렇게 멋진 배우가 되버렸을까?

  많이 놀랐다.

  이름은 그 이승수가 맞는데 정말 그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과 연기라서...

  이 작품!

  안 본 사람들은 땅을 치고 후회할거다!

  배우들의 목소리에 홀린 기회를 잃어버린 건 정말이지 애통한 일이 될거다.

  (작품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의 목소리... 와... 이건 정말 꿈이다!)

  갑자기 루저에서 승자가 된 듯한 이 승리감!

  정말 두고두고 손에 꼽을 작품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10. 24. 08:03

<벚꽃동산>

일시 : 20.12.10.12. ~ 2012.10.28.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작가 : 안톤 체홉 (Anton Pavlovich Chekhov)

연출 : 오경택

출연 : 이석준, 박호산 (로파힌) / 우현주 (라네프스카야)

        김태훈 (가예프) / 정수영 (바랴) / 전미도 (아냐)

        정동환, 최용민, 정승길, 권지숙, 이재인, 신용진, 박채원

주최 : 극단 맨씨어터

 

안톤체흡의 작품들은,

솔직히 어렵고 힘들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톤 체홉의 작품이 올라오면 꼭 챙겨보는 이유는 너무나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서다.

이야기와 인물들 속에 빠져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황홀해진다.

맨씨어터는 작년에도 지금까지와 약간 다르게 해석한 안톤 체흡의 <갈매기>를 올렸었다.

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예매를 해놓고도 보지 못해서 이번 <벚꽃동산>은 놓치지 말자 생각했었다.

안톤 체홉의 마지막 작품 <벚꽃동산>

안톤 체홉의 작품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작품을 체홉은 스스로 "코미디"라고 정의했고,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을 올린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비극"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이 작품을 화사하고 찬란한 비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원작을 읽고 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원작을 꼭 챙겨보는 편인데 이상하게 안톤 체홉의 작품은 무대뽀 정신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출연배우들!

도대체 이 대단한 배우들을 어떻게 이 한 작품에 전부 섭외할 수 있었을까?

분명히 이 작품엔 뭔가가 확실히 있으리란 기대감.

솔직히 출연진에 기가 팍 죽었었다.

 

20세기 초 러시아.

농노제 폐지로 시작된 러시아의 변혁은 러시아의 모든 것들을 빠른 속도로 바꿔놨다.

과거 부유한 영주의 자손이었던 라네프스카야(우현주)와 가예프(김태훈)의 벚꽃동산도

급기야 경매에 넘어갈 처지가 되버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 평온하다.

그런데 어쩌지!

난 이 오누이의 평온과 순수가 너무나 눈물겹게 아름답고 예뻤다.

벚꽃동산을 별장지로 임대해서 돈을 벌라고 권유하는 로파힌(박호산).

두 오누이의 환상을 현실에 끌어오기 위해 끝없고 집요한 설득을 거듭하지만

오누이는 너무나 태평해서 심지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마지 꽃비 내리는 따사로운 봄날 벚꽃동산에 피크닉이라도 와있는 느낌이다.

오히려 절박하고 간절한 건 로파힌이다.

오누이와 로파힌의 대비되는 모습이 연극을 보는 내내 참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주변의 사람들.

뭔가 깊숙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그냥 지나가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잠깐 시선을 주고 곧 제 갈 길 가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오직 로파힌만이 절박할 뿐이다.

실제로 이 "벚꽃동산"을 지키고 싶은 사람은 사실 로파힌 한 사람 뿐인 것 같다.

이 아름다움 벚꽃동산의 벚꽃들이 잘려나가든,

품위없는 별장지가 되어 사람들의 소란 속에 묻혀버리든 상관없다.

어쨌든 지켜낼 수는 있으니까.

 

박호산의 로파힌은 참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이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석준은 로파힌을 어떤 인물로 해석했을지 궁금하다.)

사실은 작품 속 인물 들 중에서

벚꽃동산을 제일 지키고 싶어한 사람, 너무나 벚꽃동산을 원했던 사람은 로파힌이 아니었을까?

변화를 보는 시선에 옳고 그름을 정의하긴 어렵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지금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잊혀진고 없어진다.

그리고 인간은 그 잊혀진 것들을 또 서럽고 아프게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정말 바보같이...

  

벚꽃동산에 있던 모든 사람이 떠나고 홀로 남겨진 피르스(정동환)의 독백,

그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그리고 별 비중없어 보이는 피브스에 왜 정동환이라는 배우가 필요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툭툭 베이지는 벚나무와 생의 마지막 안식을 향해 걸어가는 피르스의 발자욱 소리.

 "떠나셨어! 날 잊어버리셨어!

  괜찮아!, 그래!

  ...... 산 것 같지도 않은 게 한평생이 다갔군.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아무것도. 에이... 이런 바보"

피르스의 마지막 대사가 주는 무게감은

누워있는 피르스 위로 관뚜껑처럼 닫히는 무대 장치와 함께 가슴 속에 턱 얹힌다.

희극과 비극을 오고 간 <벚꽃동산>을 결국

이렇게 깊은 무게잠과 존재감으로 맘 속 깊이 파고 들었다.

파괴와 변화 뒤엔 그 폐허를 딛고 새로운 희망과 미래가 태어난다.

어쩌면 벚꽃동산에 춤추던 그 무수한 꽃잎들은 일종의 팡파레였을지도 모르겠다.

눈물나게 아름답고 서럽게 찬란한 결말을 보면서 나는 눈이 부셨다.

 

무대는 아름다웠고

배우들의 딕션은 정확했으며,

연기는 진중하고 섬세했다.

작품과 무대에 대한 깊은 경외심이 느껴졌다.

(정말 진심으로 멋있었다. 이 배우들...)

커틑콜에서 정동환 배우를 향해 출연 배우 모두가 박수치며 존경의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뭉클할만큼 감동적이었다. 

이 작품...

아마도 오래동안 간직될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5. 25. 08:29

<푸르른 날에>

 

 

부제 : 오월의 꽃바람 다하도록 죽지 않은 사랑...

일시 : 2012.04.21. ~ 2012.05.20.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극본 : 정경진

연출 : 고선웅

제작 : 서울시창작 공간 남산예술센터, 신시컴퍼니

출연 : 김학선(여산), 정재은(정혜), 정승길(오진호), 이명행(오민호),

        조윤미(정혜) 외

 

2009년 제3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 <푸르른 날에>

2011년 초연 공연 당시에도 엄청난 화제작이었던 작품으로 그해 대한민국 연극에 주어지는 모든 상을 휩쓸기도 했다.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 연출상에 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한국 연극 공연 베스트 7위.

남산예술센터와 신시컴퍼니가 2012년 공동제작으로 다시 <푸르른 날에>을 올렸다.

화려한 이력이 오히려 과대포장일 수 있어서 조금 조심스러웠는데

이 작품...

정말이지 말을 잃게 만드는 수작이다.

공연을 보기 전에 반신반의했었다.

지금 이 시대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연으로 보여주겠다고?

얼마나 처절하게, 얼마나 사실적으로, 얼마나 집요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미 지금 세대들에게 5.18은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보다 더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는데...

연극은...

처음에 너무 과장된 신파가 이어져 솔직히 불편하고 난감했다.

그 과장된 목소리와 그 과장된 행동과 그 과장된 감정들.

보면서 감당하기가 힘겨웠다.

 

희극이 비극보다 어려우며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했던가?

아마도 너무나 비극적인 사실이라 차라리 희극으로 표현해야만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민호의 물고문 장면은 섬뜩해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때까지 몰랐다.

무대 바닥 깊숙히 물을 담아 놓아서 참 인상적인 무대로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공포와 참혹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줄은 몰랐다.

그 장면에서 오민호를 연기한 배우 이명행의 눈빛 속에도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명행 배우에게 깊은 존경심을 보낸다. 이 배역... 힘들었겠다... 피하고 싶었겠다... 무서웠겠다...)

연극이 아니라 르뽀를 직접 목격하는 느낌이다.

본다는 게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버렸다.

비참했고, 미안했고, 구차했다.

마치 내가 그를 고문하는 고문관이라도 된 듯하다.

"무서워서 그랫어. 무서워서!"

죽은 사람들의 환상에 쫒기는 오민호의 외침이 먹먹하다.

나 역시도 너무도 무서웠다.

마치 생명의 위협을 내가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것만 같다.

김지하와 김남주의 시.

송창식과 남진, 핑크플로이드, 비틀즈의 노래조차도 섬뜩하다.

시민군이  김남주의 시 "학살"을 한 대목씩 읊는 장면은 뭐라 말을 할 수도 없다.. 

이 작품 정말 너무나 훌륭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끔찍하다.

다 현실이다.

다 진실이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나라의 역사가 이렇다.

어쩌나...이 작품!

나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학살 2

                        - 김남주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차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도시로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의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3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의 핏빛은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니 떨지 않는 비이 없었다

밤 12시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고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7. 12. 06:28


연극 <돐날>
연출 : 최용훈
기간 : 2011.06.03.~2011.07.10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출연 : 길해연, 홍성경, 서현철, 김왕근, 김은석,
        황정민, 
정승길, 정세라, 김문식 외.


극단 <작은 신화>가 차단 25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으로 3편의 연극을 대학로에 올리고 있다.
<가정식백만 맛있게 먹기> , <돐날>, <황구도>
<돐날>은 부제가 "돌아버린다" 란다.
"돐날"이라는 사랑스럽고 앙증맞고 행복한 단어 속에 이렇게 비루하고 비참한 일상이 담길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더 비참한 건 이 일상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적나라하게 사실적이라 할 말이 없다는 거다.


혁명을 가고 비루한 일상만 남다!
혁명과 변혁의 시대를 살았던 386세대의 자기파괴적인 종말!
8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연극 <돐날>은.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는 마지막 장면을 의도적으로 삭제해버렸다.
그런데 아마도 마지막 장면이 예전과 같았다면 난 아마도 이렇게 공감하면서 보진 못했을거다.
최용훈 연출 역시도 말했다.
"재공연을 준비하면서 10년 전 초연 때와 비교해보니 당시 아픔과 좌절이 해결되거나 좋아진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좌절하고 절망감을 느끼게 됐다"
그는 관객들이 위안을 얻어가지 않길 바랐단다.
그의 의도적은 결말은 아주 적절했고 그리고 절실했다.

 

모든 게 자신만만하고 적개심마저도사랑했던 젊은 시절은 사라지고
사는 게 지겹고 신물나는,
그래서 맨하탄 쌍둥이빌딩처럼 한 방에 무너뜨리고 싶은 삶으로 전락해버린 일상!
마치 그 일상을 비웃든 극악스럽게 웃어대는 사람들.
(돐잔치에 모인 사람들의 괴기스럽기까지하던 웃음소리는 공포로 다가온다.)
폭탄처럼 쏟아지던 빗소리와
어지럽게 흩어지던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그리고 엄마의 포악과 저주 속에 사생결단처럼 울어대던 아기.
잔칫날의 주인공이여야 할 아이는 마치 갓난아이처럼 강보에 싸여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아기는 아마도 자라기를 거부한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면 점점 익숙해지는 게 당연한데 왜 사는 건 그렇지 않니?"
정숙이 친구에게 묻는 질문은
우리를 일상의 공포로 몰고간다.
그리고 이 대사는 우리 모두의 독백이자 처절한 고백이다.
후줄근한 삶을 연명해야 하는 우리는,
반미운동하던 사람은 미국이 만든거라 안전하다며 피라이드 주방세제를 팔고
땅투기 아비 덕에 돈푼 꽤나 만진 놈은
인맥형성을 위해 다니는 경영대학원의 학위 논문 대필을 거래한다.
(그 당당함이라니...)
뒷담화와 뒷거래의 찬란한 일상이여~~!
"너 왜 이렇게 됐니?"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하는 본인의 삶 역시도 모든 사람의 삶처럼 거짓과 감춤의 삶일 뿐이다.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소망은
정말 소망에 불과한건가?
몸 속으로 무딘 칼끝을 찔러넣는 인생.
만약 누군가 데려다 줄 수 있다면
엄마 뱃속으로 돌아가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고 싶지 않은 그런 인생!
세상 모든 남편들의 일생은 비참하고
세상 모든 아내들은 삶은 또 그만큼 박복하다.
그리하여 삶은 또 다시 언제나처럼 비루하고 비참하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서였나?
아니면 세상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였나?
자기분열의 결말을 지켜보는 관객에게
자기분열의 질문이 남는다.

피투성이 무대와 현란한 비발디의 사계 속에서...

 

8년 만에 재공연된 <돐날>은
길해연, 홍성경, 서현철 등 초연 때 섰던 배우들이 그 역할 그대로 돌아와 무대를 빈틈없이 채웠다.
그리고 배우 정승길.
이 멋진 배우들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더없는 행운이었다.
비록 비루하고 비참한 삶의 관음이었지만
그 비루함을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은 풍요로움 그 이상의 만찬이었다.
뭐라고 명명해야 할까?
이 거침없는 포만감을...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3. 20. 14:02

<디너>
원작: 도널드 마글리즈(Donald Marguiles)
연출: 이성열
공연기간: 2011. 3. 4 ~ 4. 3
공연장소: 대학로 예술극장3관
출연: 이석준, 정승길, 우현주, 정수영


작년에 산울림 소극장에서 초연됐을 때 꼭 보자고 생각하고 어이없이 놓쳐버린 연극이다.
미국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는 도널드 마글리즈(Donald Margulies)의 "Dinner With Friends’가 연극의 원작이다.
이 작품은 1998년 휴마나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이후 2000년 퓰리처 희곡상을 비롯해 루실 로르텔 상, 드라마티스트 길드 상, 미국 평론가 협회 신작희곡상 등을 수상했단다.
(참 모르는 이름의 상들이 많기도 많다...^^)
이후 미국 여러 도시에서 공연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단다.
물론 이런 이력들이 작품의 질을 전적으로 말해주는 건 아니겠지만(특히나 그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경우엔...) 제목만 들었을 때도 느낌이 좋았었다.

거기다 박정환을 오랫만에 뮤지컬이 아닌 연극 무대에서 볼 수 있어서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놓쳤다!
그의 게이브를 놓친 건 아무래도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아무래도 이래저래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보게 될 것 같다. 
 순전히 박정환 때문에...
 그가 부르는 이영훈의 노래들이 무지 궁금하다. 윤도현이나 송창익, 김무열 보다도 더...
 옛날 가요를 부르는 박정환의 모습은 참 좋다. 
 생각해보니 뮤지컬 <동물원>을 본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12년 차 부부 이야기!
산전수전에 공중전, 그리고 원수같은 지겨움과 묘한 동지애 등등등...
참 설정 자체만으로도 할 말 많기도 그리고 할 말 없기도한 구조다.
신선함도 떨림도 흥미진진함도 난해한 숨은그림 찾기 처럼 점점 찾기 어려워지는 시간의 경과!
사랑이라는 거, 부부라는 거, 가족이라는 거...
더불어 개인이 갖는 인관관계 전반에 대해 되집어 생각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을 소처럼 우직하게,
그리고 꾸역꾸역 되씹게 한다.

벌써 다섯 번째 커플 연기란다.
이석준과 정수영의 탐과 베스.
추상미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두 사람, 정말 부부같다.
그것도 징글징글한 부부!
그러면서도 이 부부의 관계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공감된다.
분노가 최고의 최음제가 될 수 있다는 탐(이석준)의 대사도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10년 이상 된 부부들을 보고 있으면
일상이 싸움같과 그 싸움은 또 어이없는 슬랩스틱 코미디스럽다.
끝장과 새로운 시작!
뫼비우스의 띠처럼 참 오묘한 관계다.

 

게이브 정승길.
예전에 남산에서 <내 심장을 쏴라>에서 철학자로 나온 모습이 그와의 첫 대면이었다.
그때도 참 느낌이 좋았었는데
<디너>에서는 정말 맞춤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
(정승길의 <루시드 드림>을 봤어야만 했었다... 또 다시 때늦은 안타까움이라니...)
사실을 고백하자면 작품을 보면서
공감이 가장 많이 됐던 인물도, 그래서 위태로움을 가장 많이 느꼈던 인물도 게이브였다.
끝장을 선택하는 부부보다 피아노를 배우는 걸 선택한 게이브가 나는 더 측은하고 안스럽다.
그래도 그런 선택이 부부를, 가족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유지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탐과 베스, 게이브와 카렌.
두 부부 중 누구의 가치관과 선택이 옳은 건지는 알 수 없다.
또 옳다 한들 꼭 그게 정답이 될 수도 없다.
막막하지만 그게 삶이고 일상이다.
함께 식사를 하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놀라고 괴로워하지만
다시 또 다시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밥을 넘기게 되는 게 일상이다.

사랑과 음식!
이 두 가지는 공통점이 많다.
준비하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고, 적당한 장식으로 시각적인 즐거움도 줘야하며, 유쾌하게 함께 나눌 이야기도 한두개쯤은 꼭 생각해둬야 하고, 그리고 결국엔 꽉 찬 포만감으로 마무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다 유효기간이 지났음을 알게 되면,
선택이라는 것도 해야 한다.

‘사랑이...어떻게 안 변하니?’
영원히 함께함의 공포!
포스터의 문구들은 순간순간 그 선택이라는 걸 섬득하게 만든다.

부부라는 건,
그리고 부부로 산다는 건,
더 이상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인 성의 결합이 아니다.
어쩌면 부부는 제 3의 성(性)으로 새롭게 분류되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탐의 선택도 게이브의 선택도 나는 결코 인정하지 않으련다.
그리고 베스와 카렌도...
문득 차가운 물을 벌컥이며 사납게 마시고 싶어진다.
왠지 목구멍으로 달게 넘어갈 것 같다.
그들의 식탁속에 내가 잠시 끼어 앉아있었던 게
잘 한 짓이었을까? 아니면 그 반대였을까?
많은 생각을 두서없이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부부(夫婦)라는 인간관계의 접경지대가 문득 불모지처럼 황량하다.
불모지엔 생명이 없으리라는 확신은,
그러나 매우 위험하고 옳지 않은 믿음이다.
뜻밖의 일은,
어느 곳이라도 의외의 모습으로 파고들 수 있다.
그러니 확신은 끝장보다 더 황폐한 불모지다.

* 암전 속에서 끊임없이 그러나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무대 크루들의 모습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소음에 유난히 민감한 몹쓸 귀를 가진 나지만,
  이들이 내던 무지 조심스럽고 정성이 담긴 소음은 달콤한 디저트 같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