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2. 26. 08:03

<해를 품은 달>

일시 : 2014.01.18. ~ 2014.02. 23.

장소 :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원작 : 정은궐 "해를 품은 달"

대본, 연출 : 박인석

작곡, 음악감독 : 원미솔

무대 : 오필영

안무 : 정도영 

출연 : 김다현, 전동석, 규현 (이훤) / 린아, 정재은, 서현 (연우)

        강필석, 조휘 (양명), 주민진, 최현선, 박시현 외 

제작 : CJ & M (주), (주)쇼플레이

 

고작 10여일 정도 공연을 못본것 뿐인데 금단현상이 왔다.

그러던차에 인터파크 모닝티켓으로 이 작품이 올라왔다.

그것도 60% 라는 아주 은혜로운  할인율로!

숨 좀 쉬자는 생각에 망설임없이 예매했다.

전체적인 무대를 보고 싶어서 일부러 2층을 예매했는데

조명과 무대, 의상은 정말 좋더라.

무대를  깊게 사용한 것도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

대신 깊이때문에 생긴 소리의 울림을 제대로 잡지 못한건 내내 아쉽다.

음악과 음향의 발란스가 안맞는 것도 아쉽고...

뮤지컬이 아니라 <쇼뮤직뱅크>를 보고 온 것 같은 이 느낌은 도대체 뭘까?

배우들의 등퇴장도 너무 많고 음악은 너무 과하다.

비유를 하자면 소극장에서 너무 욕심을 내서 대극장 스케일의 음악을 퍼부어댄 느낌.

이해될까???

넘버들은 어딘선가 많이 들었던 후크송같은 기시감까지 느껴진다.

심지어 <겨울왕국>의 "Let it go"도 생각나더라.

15초짜리 CF를 연달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론 좀 한국적인 느낌을 주는 곡들도 있었으면 싶었는데

스페니시 기타로 시작되는 인트로와

광활한 초원을 뛰어다니는 야생마을 떠올리게 하는 사바나 느낌(?)의 음악에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러니까 의상과 작품 속 이야기의 배경만 한국적이었던거였다.

아마도 "쇼뮤지컬"쪽으로 분류해야 할 듯.

 

캐스팅을 일부러 뮤지컬배우들로만 선택했는데 그건 탁월했다.

제일 먼저 염두에 뒀던 캐스팅은 앙명 강필석,

탁월한 건택이었고 역시나 과장없이 참 잘하더라.

넘버들에 감정을 넣는 것도 좋았고 대사와 액션의 타이밍도 늘 그렇듯 정확하고 자연스럽더라.

양명이라는 역할이 강필석이라는 배우를 만난 건 이 작품 최고의 행운이지 싶다.

연우 정재은도 좋았다.

역활과도 정말 잘 어울렸고 노래도 연기도 신인같지 않게 좋았다.

아게 칭찬일지는 모르겠지만 임혜영을 잇는 "공주과" 여배우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

(그래도 제발 공주과의 배우로만 머물지는 말아줬으면...)

사실 훤을 제일 고민했어야 했는데 선택의 여지가 참 없었다.

김다현의 과장된 연기와 목소리톤은 적응이 도저히 안될 것 같고

슈주의 규현은 그냥 감당이 안되니

소리와 노래가 좋은 전동석만 남더라.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소리와 노래만 좋다는 게!

일부러 설정을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리틀 김다현을 보는것 같았다.

도대체 대사를 왜 변사톤으로 한거지?

노래도 연기도 따지고 보면 나쁘지 않았는데

대사만 나오면 "이수일과 심순애" 아니면 "신성일"로 빙의되버려서 보는 내내 난감했다. 

내 기억에 예전엔 분명 이렇지 않았었는데...

(제발...제발... 설정이라고 해주라.)

 

배우 활용도가 주연 3인에게만 너무 집중된 것도 좀 아쉬웠다.

허염과 민화공주, 왕과 설희, 운 단지 병풍에 불과했고

민화공주와 운은 드라마의 설정을 그대로 카피하기만 했더라.

백댄서로 둘러쌓인 가수.

아마도 그래서 더 뮤직뱅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바나 주술사를 스카웃한 무녀도 너무 거했다.

자꾸 밀림에 와있는 느낌이라서...

뮺;칼 넘버도 적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딱히 기억에 남는 넘버가 없다는 것도 단점이다.

(양명의 넘버들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정도)

 

금단현상만 아니었다면 아쉬움으로 가득했을 작품.

그래도 오랫만에 숨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걸로 충분하다.

최고의 작품은 물론 아니었지만

최악의 작품도 아니었으니 그걸로 됐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2. 5. 25. 08:29

<푸르른 날에>

 

 

부제 : 오월의 꽃바람 다하도록 죽지 않은 사랑...

일시 : 2012.04.21. ~ 2012.05.20.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극본 : 정경진

연출 : 고선웅

제작 : 서울시창작 공간 남산예술센터, 신시컴퍼니

출연 : 김학선(여산), 정재은(정혜), 정승길(오진호), 이명행(오민호),

        조윤미(정혜) 외

 

2009년 제3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 <푸르른 날에>

2011년 초연 공연 당시에도 엄청난 화제작이었던 작품으로 그해 대한민국 연극에 주어지는 모든 상을 휩쓸기도 했다.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 연출상에 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한국 연극 공연 베스트 7위.

남산예술센터와 신시컴퍼니가 2012년 공동제작으로 다시 <푸르른 날에>을 올렸다.

화려한 이력이 오히려 과대포장일 수 있어서 조금 조심스러웠는데

이 작품...

정말이지 말을 잃게 만드는 수작이다.

공연을 보기 전에 반신반의했었다.

지금 이 시대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연으로 보여주겠다고?

얼마나 처절하게, 얼마나 사실적으로, 얼마나 집요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미 지금 세대들에게 5.18은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보다 더 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는데...

연극은...

처음에 너무 과장된 신파가 이어져 솔직히 불편하고 난감했다.

그 과장된 목소리와 그 과장된 행동과 그 과장된 감정들.

보면서 감당하기가 힘겨웠다.

 

희극이 비극보다 어려우며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했던가?

아마도 너무나 비극적인 사실이라 차라리 희극으로 표현해야만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민호의 물고문 장면은 섬뜩해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때까지 몰랐다.

무대 바닥 깊숙히 물을 담아 놓아서 참 인상적인 무대로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공포와 참혹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줄은 몰랐다.

그 장면에서 오민호를 연기한 배우 이명행의 눈빛 속에도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명행 배우에게 깊은 존경심을 보낸다. 이 배역... 힘들었겠다... 피하고 싶었겠다... 무서웠겠다...)

연극이 아니라 르뽀를 직접 목격하는 느낌이다.

본다는 게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버렸다.

비참했고, 미안했고, 구차했다.

마치 내가 그를 고문하는 고문관이라도 된 듯하다.

"무서워서 그랫어. 무서워서!"

죽은 사람들의 환상에 쫒기는 오민호의 외침이 먹먹하다.

나 역시도 너무도 무서웠다.

마치 생명의 위협을 내가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것만 같다.

김지하와 김남주의 시.

송창식과 남진, 핑크플로이드, 비틀즈의 노래조차도 섬뜩하다.

시민군이  김남주의 시 "학살"을 한 대목씩 읊는 장면은 뭐라 말을 할 수도 없다.. 

이 작품 정말 너무나 훌륭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끔찍하다.

다 현실이다.

다 진실이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나라의 역사가 이렇다.

어쩌나...이 작품!

나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학살 2

                        - 김남주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차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도시로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의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3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의 핏빛은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니 떨지 않는 비이 없었다

밤 12시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버렸고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