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12. 30. 06:08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라는 부제를 달고
81편이라는 상당한 분량의 영화와 드라마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책을 쓴 김두식이라는 사람의 이력이 특이하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고 군법무관과 검사를 지냈다.
지금은 경북대 법대에서 헝법, 형사소송법, 여성과 법률 등을 가르치고 있고
와이프가 공부 중에는 2년 정도 모든 걸 멈추고 전업주부로 나선 경력까지 있다.
법조인이 쓴 영화 이야기!
왠지 상당히 고리타분하고 이론적으로 옳은 소리만 따박따박 할 것 같은 생각.
그런데 이 사람의 글은...
확실히 시각이 다르고 무엇보다도 무거운 부분을 건드리면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꽤 예리하고 날카로워 정신이 번쩍 들기까지 한다.
이 영화 속에, 이 드라마 속에
사실은 이런 인권 문제가 내포되고 숨어있었구나,
내 텅 빈 시선을 후비고 파내는 것 같아 솔직히 민망하고 무안했다.
책을 읽고 생각했다.
"정말 불편해도 괜찮은가?" 를... 

 



<목   차>
청소년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 인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검영로가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의 문제
차별의 종착역, 제노싸이드


9개로 나눠진 각 챕터들은 개인적으로 "무지"보다는 "무관심"에 대한 일침이었다.
모든 인간에겐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지랄 총량의 법칙"
그래서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기 "지랄"을 쓰는 것이겠니거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단다.
생각해보면 사춘기에 "지랄"을 쓰는 게 그래도 낫지 싶다.
다 커서 늦바람나듯 지랄을 쓴다면 그게 더 초난감이지 않을까?
"우리 부모는 둘 다 서울대 나왔어!"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단다.
"똥 밟았네!"
이런 이야길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법조인이라...
무지 낯설지만 한편으로 통쾌하고 후련하기까지 하다.
더불어 내가 무지 재미있게 봤던 영화들이
단지 재미로만 볼 영화가 아니었구나를 생각하니 민망해진다.
저자는 말한다.
...... 영화를 볼 때마다 자신을 누구와 동일시할 것인지 조심스럽게 선택해보십시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불편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면, <300>이 10원자리 팬티를 입은 타잔 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저질임을 개닫게 될 것입니다 ......
모든 사회문제는 양면성을 있단다.
그래서 헷갈리는 상황일 때는 이렇게 생각해보란다.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 해석하라!
그러면 누구의 입장에 서야 할지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조기유학에서부터 대한민국의 고질병인 엘리트주의까지.
대처리즘에서 정치파업, 비정규직 문제까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장애인 인권,
그리고 영화등급 문제와 흑맥갈등의 인종주의, 종족의 멸종이 목적인 제노싸이드까지.
이 책에서 아우르는 이야기는 넓고 광대하다.

영화등급 역시 논리의 무제라기보다 권력의 문제일 때가 많다.
모든 검열은 자의성의 함정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검열자들은 언제나 자신이 누구보다도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고 부모의 마음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그런 독선이 '제 마음대로'의 검열결과를 낳습니다. 이런 한계를 인식하고 검열사는 최소한의 역할에 그쳐야 합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검열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과 감시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은 우리 권리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늑대에게 넘겨주는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입니다.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에 대한 마음속 깊은 우월감, 편견, 경멸은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습니다. 지하철에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백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국어를 하는 동남아 출신이나 중국 출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다릅니다. 중국어, 태국어, 몽골어, 파키스탄어 등이 들리면 한국사람들의 얼굴에는 당장 불쾌감이 스쳐지나갑니다. 그런데도 인종차별문제가 나올 때마다 "우리나라만큼 외국인에게 온정적인 나라가 없다" 든지 "외국인노동자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있는 서민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온정적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서선을 외국인들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판단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슨 시혜를 베풀자고 그들을 불러들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불러들여 저임금으로 주로 3D에 속하는 일을 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대로
나는 참 많이 불편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무지와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읽으면서 점점 더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며칠전에 본 <황해>가 목구멍에 걸려 좀처럼 넘어가질 않는다.
내가 김구남이 될수도, 
면가가 될수도,
충분히 있는 세상이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4. 12. 06:28


일 시 : 2010.04.06 ~2010.05.05
장 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출 연 : 박지일, 서주희, 김세동, 오지혜
극 본 : 야스미나 레자
연 출 : 한태숙



수컷들의 수다, 연극 <아트>의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또 다른 사회 풍자 코메디 연극 <대학살의 신>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그 치열(?)하고도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히스테릭한 이야기다.
출연하는 배우들의 내공만으로도 기대가 됐던 작품이다.
초연이라 망설이지 않았느냐고?
대답은 "Never!"다.
배우도 그렇고 연출가(한태숙)도 그렇고 기본 이상은 일단 베이스에 깔고 생각해도 무방한 작품.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100분 동안 두 부부의 기상천외한 행동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이 코메디가 웃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현실이라는 걸 절감하게 만드는 그 씁쓸함이라니...
글쎄, 이게 우리나라 상황이라면,
미안하지만 솔직히 상상만으로도 겁이 난다.
결코 코메디가 아닐 것만 같아서...
(아이 문제라면 왜 부모들은 이성과 상식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



이렇게 멀쩡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거실이
(비록 그게 상대편에게 보여지기 위한 가식일지라도 말이다)
이야기의 끝엔 결국 난장판 초토화가 된다.
아주 고상하고 예의바르지만 그러면서도 묘하게 신경전으로 시작되는 연극 <대학살의 신>
이야기의 발단은 분명 11살 사내 아이들이었다.
"그러니까... 4월 3일 오후 5시30분 뒤낭 공원에서 막대기로 중무장한 열한 살의 페르디낭이 우리 아들 브루노의 안면을 정통으로 가격했습니다. 이 결과로 우리 아들 브루노는 앞니 두 개가 나갔고 그 중에서도 오른쪽 앞니는 신경이 끊어졌습니다."
검사가 사건 개요를 읽어나가듯,
피해자 브루노의 엄마 베로니카(오지혜)가 두 부모가 이렇게 모이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가해자 페르디앙 부모는 지금 그 "중무장"이란 단어가 몹시 거슬리는 중이다.
그러니까 브루노의 부모는 이 사건을 명백한 "아동 폭력 사태"로 보고
재발 방지를 위해 마녀사냥을 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있다.
그러나 모르시는 말씀!
자기 자식이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되는 걸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그 자식이 비록 야만인(?)일지라도 말이다.
페르디앙의 부모는 오히려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폭력의 원인을 누가 유발했는가?"가 중요하다는 입장.
(그 이면엔 당신 아들이 원인제공자라는 노골적인 질책이 담겨있다.)



연극은 다채롭고 그리고 확실히 재미있다.
자기 아들을 다치게 한 아이의 부모에게
우리는 이렇게 교양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일종의 기선 제압 목적으로...)
일부러 비싼 꽃을 사서 집안을 꾸미고 차와 파이를 대접하는 브루노 부부의 교양을 가장한 속물근성과
어찌됐든 사과하기 위해 찾아온 브로노 집에서
끊임없이 전화를 받는 변호사 알랭(박지일)의 모습.
게다가 페르디앙의 엄마 아네뜨(서주희)는 급기야 추대라고 할 수 있는 행동까지 보인다.
멋지게 꾸며놓은 거실에 토사물을 뿜어놓는가하면
젠 체하기 위해 꾸며놓은 꽃들로 거실 여기저기를 그야말로 완벽하게 패대기친다.
(근데 도대체 왜 내 속이 다 시원한거지??? 어찌됐든...)



품격과 교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네 사람.
(순전히 희망사항이지만)
그러나 이야기는 점점 어이없는 분노와 폭력성에 사로잡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고상과 교양이 서서히 분노와 이기의 본능으로 바뀌는 걸 바라보는 건,
유치하면서도 솔직히 뜨끔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의 문제에 관해서라면
명확한 이성과 지성의 작용이 쉽진 않겠지만
이런 상황이 심심치 않게 현실로 나타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다소(사실은 많이) 민망하고 부끄러워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부부로서 대비되는 두 커플의 성향(?)도 참 재미있지만
순간순간 편이 바뀌는 모습도 독특한 재미를 준다.
부부로서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어느 순간 남자 대 여자로 또 다시 으르렁거리고
약과 관련되서는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로 으르렁거리고...
이 연극은 일종의 거짓과 은폐.
그리고 교양인의 탈을 쓴 위선에 대한 유쾌한 조롱이라고 할 수 있다.
까발려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물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한 통쾌함은 솔직히 속을 시원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남편의 휴대전화를 화병속에 담그는 장면이라던가
붉은 토사물을 거침없이(?) 뿜어내는 야만에 가까운 분출이 주는 즐거움은
분명 엄청난 대체 만족을 주는 카타르시스다.
코믹하면서도 야비함까지 느껴지던 배우 박지일의 핸드폰 받는 표정이라든가
그걸 바라보며 어이없어 하던 브루노 부부의 표정,
그리고 민망해하면서도 어딘지 고소해하는 알랭의 부인 아네트의 표정까지
네 명의 표정 속에 스스럼없이 나 자신의 표정이 겹쳐진다.



<대학살의 신>이란 제목은 지성인인 척 고상을 떨지만,
결국 다들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인간의 잔인함을 조롱하는 말이란다.
연극적인 코믹이 주는 불편함과 유쾌함은
기본기 빵빵한 네 배우들을 만남으로써 그 재미가 한층 더해진다.
나 자신에 대한 속물근성과의 불쾌한 마주침이기도 하지만 
더불에 유쾌한 반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토사물...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제대로, 손 쓸 수도 없을만큼,
대책없이, 황당하게 뿜어낼 수 있었을까?
그게 연기라면... 이건 정말 완전 대단한거다. ^^



오늘 하루의 "지랄 같음"을 호소하는 아네트의 마지막 모습.
한쪽 알이 빠진 선그라스를 쓰고 철퍼덕 퍼져 앉아 있던 모습이 아직도 임펙트 강하게 남아 있다.
그 모습이 하도 나 같아서...
나 역시도 숱한 지랄 같은 하루 속에 대책없이 퍼질러 앉아 있는 중이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