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09. 11. 16. 05:52
 <기발한 자살 여행> - 아르토 파실린나


기발한 자살 여행 


처음으로 읽어 본 핀란드 작가의 소설입니다.

이 책을 알게 된 경로는 저에게는 참 특이합니다.

처음엔 일본에서 제작한 영화로, 그 다음엔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창작 뮤지컬로, 드디어 마지막으로 만난 게 원작소설이네요.

그냥 일본 작품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집단 자살이라는 코드가 동유럽의 코드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거든요.

작가 아르토 피실린나는 핀란드의 국민작가로 전 세계에 수많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이한 유머의 대가라고 알려져 있죠. 평범한 이야기를 별나게 쓰는 작가라고 하네요.

“별난 평범함”이라...

이해되지 않는 언어의 조합인데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아르토 파실린나... 출생부터가 참 별나네요.

1942년 길 위 트럭 안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의 가족이 독일군을 피해 도망치던 트럭 안에서요(그냥 웃어 넘기에는 좀 처절하죠.)

그는 스스로도 고백합니다.

“나는 유년기 초기에 네 곳의 나라를 경험했다. 그래서 도망은 늘 내 글에 등장하는 소재이다.” 라고요.

“피실란나”라는 이름은 “돌로 세워진 요새”라는 뜻으로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 안에는 마치 그들 가족의, 그리고 그의 소망이 담겨 있는 듯 하네요. “정착”과 “평온”에 대한 소망이 말이죠.

아들에게 이런 이름을 남기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해 그는 남겨진 어머니와 8명의 식구들을 위해 어릴 때부터 노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5살부터는 글쓰기를 시작했고요.

그는 이런 모든 경험들이 자신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말합니다.

어느새 핀란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 된 아르토 파실린나.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블랙 유머의 대가 “로알드 달”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유머”라는 것에도 다른 의미와 다른 표현 방식이 있구나 생각했죠.


“핀란드”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휘바 휘바!”를 외치며 건강한 치아를 위해 자기 전에도 챙기는 자이리톨 껌?

이렇게 치아 건강까지 생각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가장 고약한 적은 사실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하네요. 자신들이 우울한 민족이라는 걸 말이죠. 살인은 단지 100여 건인 데 비해 매년 자살 시도는 1500여 건이나 된다는 사실이 이런 핀란드의 우울을 대변한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에는 그런 자살의 이면을 제대로 뒤집어 삶으로의 자연스러운 복귀를 유도하는 멋진 블랙 유머가 깔려 있습니다.

그것도 강력한 충격이나 계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통해서요.

사실 이 책이 재미있는 건,

별 볼일 없는 군상들이 다름 아닌 우리들의 모습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바로 나 자신의 대역배우인 셈이죠.


빛과 기쁨의 축제날인 성 요한의 날.

4번의 파산과 4번의 자살 시도 이력이 있는 렐로넨 사장은 자신의 헛간에서 또 다시 자살을 결심하죠.

그런데 이런!

먼저 와서 목을 메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지랖 넓게도 일단 이 사람을 구해내죠. 그가 바로 현역 육군 대령 켐파이넨입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가 되고 “자신들처럼 자살하고픈 사람들을 한 번 모아보자!”며 이상한 의기투합(?)을 하게 됩니다.

그들을 교화해서 삶으로 복귀시키자는 건전한 의도가 아니라 함께 집단 자살을 하려는 의도로 말이죠.

그들은 신문의 부고란에 광고를 하고 답신이 오길 기다립니다.

놀랍게도 며칠 뒤 612통이라는 어마어마한 답신이 그들의 손에 들려집니다.

그 편지들의 공통점은 외로움과 쓸쓸함 일색이었죠.

일단 두 사람은 답장을 보낸 사람 중에 가까운 곳에 혼자 살고 있는 푸사리 부인을 비서로 고용해 자살 세미나에 참석하라는 초대장을 보내고 시내의 한 레스토랑을 빌립니다.

끝까지 세미나에 남은 사람들은 대령 켐파이넨을 지휘관으로 렐로넨 사장과 푸사리 부인을 보좌관으로 임명하고 버스를 대절해 함께 자살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하죠.

이동 중에 그들은 편지를 보냈던 사람들을 한 사람씩 탑승시킵니다.

의처증과 편집증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던 여인, 이미 고물이 되어 버린 배에 너무나 집착해 빈털터리에 되어 급기야 가족까지 떠나버린 육지선장, 전직 노동조합 간부, 오판의 희생양이 되어 교도소에 수감됐었다고 주장하는 밍크 서커스 단장에 세미나를 개최했던 레스토랑 종업원까지...

그리고 버스 운수 회사 사장 코르펠라의 동참으로 이들에게 40인승의 최신식 고급 버스까지 생기게 됐습니다.

이렇게 모인 33인의 첫 번째 단체 자살 현장은 실패로 끝이 납니다.

절벽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 탑승자 다수가 급정거 스위치를 눌러버렸거든요.

그들은 회의를 하고 장소를 바꾸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국경을 넘죠.

핀란드를 거쳐 노르웨이를 지나 스위스로...

이쯤 되면 이들이 마치 단체 관광 여행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들은 지나가는 곳에서 자유시간을 갖고 유명한 곳을 관광하기도 하고 야외 캠핑도  즐기면서 점점 진짜 여행자의 모습을 보여주죠.


“죽음을 위한 무명 인사들의 단체”

어느 틈에 이들에 대한 소식이 국가정보부에까지 들어갑니다.

현직 대령에, 전직 노동조합 간부에 최대 운수 회사 사장까지...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한거죠. 게다가 세미나에 참석했던 사람 중 몇몇이 밤을 지내기 위해 몰래 숨어 들어간 차고가 하필이면 남예멘 대사의 관저였던 겁니다. 술에 취한 그들은 그곳에서 자살을 시도하다가 급기야 화재가 발생되죠.

스위스에서는 독일 훌리건들과 집단 패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실종된 3명의 여자들은 프랑스에서 도덕적인 혼란을 야기시켜 24시간 내 추방명령을 받기까지 합니다.

국가정보부는 판단하죠.

그들이 필란드의 대외 관계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고 말이죠.

...... 핀란드 관광버스 한 대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을 싣고서 세상을 질주하고 있다.

그 비밀 자살 단체의 회원 몇 명이 외교와 군사 분야에서 적이 의심스러운 활동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 어쩌면 모든 회원이 휘말려들었을지도 모른다......

국가정보부는 비공식적인 자문회의를 열기로 결정을 하고, 정부 기관 산하의 여러 부처에서 관계자들을 초빙합니다. 외무성, 경찰청,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 관광공사 그리고 정보부에서 파견한 사람들까지 말이죠.

이런 사실을 알 길이 없는 그들은 어쨌든 계속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네요.

하나 둘, 하차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말기암 환자와 에이즈 환자가 버스에서 내려 두 사람만의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말하죠.

순간 사람들은 그들의 무책임성을 비난합니다.

하차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에이즈라는 사실을 숨기고 버스를 탔다는 사실을요.

아이러니 아닙니까?

어차피 함께 죽겠다고 그 버스에 동승했는데 에이즈 따위가 뭐 그리 대수라고...

하긴 뭐 홀리건들과의 집단 패싸움에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때도 흉측한 모습으로는 죽기 싫다고 죽음을 연기했던 사람들이니 곱게 죽고 싶기도 했을 겁니다.

하차 희망자는 점점 속출하고 그들의 집단자살의 의도를 알게 된 지역대표는 자신의 지역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다음날 아침까지 떠나줄 것을 요구합니다.

버스에 탑승한 사람들은 과연 굳이 집단 자살을 감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고향 핀란드에서 엄청나 보였던 문제들이 유럽의 다른 곳에서는 아주 사소해 보인다고 사실도 서서히 깨달게 되죠. 같은 운명을 짊어진 동료들과의 긴 여행은 다시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유대감은 자의식을 굳건하게 다져주기까지 했습니다.

좁은 생활 영역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게 된 자살 희망자들은 새롭게 삶의 재미를 발견하기에 이릅니다. 그들이 초여름에 생각했던 것보다 미래는 훨씬 더 밝게 보였던 거죠.

그리고 여행 중에 탄생된 여러 쌍의 연인들도 삶의 의욕을 부추키게 됩니다.

우리의 지도자 켐파이넨 대령과 보좌관 푸사리 부인마저도 그들 앞에서 결혼을 발표하네요.

삶은 결국은 그런 것이라네요.

계속해서 양파껍질을 벗겨내는 일이라고...


여기서 이 이야기가 끝이 난다면 무지 평범하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겠죠?

뒤에 기막히게 유머러스한 반전이 여럭 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 버스의 행방을 끈질기게 추적하기로 결의한 국가정보부 자문위원회의 모습이요.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회의를 이어가는 자문위원회.

비밀 단체의 흔적은 유럽 한가운데서 이미 사라졌지만 국가의 안전과 명성을 위해 이렇듯 중요한 회의를 절대로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들의 최종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회의를 거듭할수록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은 조금도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몇 년 동안 같은 회의를 계속해왔고, 그리고 현재까지도 심각한 위험성을 경고하며 회의를 계속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완전히 박장대소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든, 유럽이든 정치하는 분들은 늘 그렇게 남의 다리만 계속해서 그것도 지치지도 않고 긁어대는 것 같아서요.

“자살”이라는 무겁고 심각한 내용을 이렇게 유쾌하고 발랄한 마무리로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는 게 이 책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한때 유럽 전역에서는 실제로 이 소설을 패러디한 “즐거운 자살 희망자들의 모임”이 생겨나기도 했었다네요.

이 책이 금서(禁書)로 분류되지 않고 여전히 잘 읽혀지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그 모임들은 이 책의 내용처럼 단지 유쾌한 모임의 하나로 끝이 났던 것 같습니다.


왠지 조금은 우울해야만 할 것 같은 가을의 끝자락,

울증을 희망하는 모든 분들께 강력한 예방 백신으로 권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이들의 기발한 여행에 함께 동승하고 나면 아마도 박장대소로 하차할 수 있을 겁니다.

푸.하.하.!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11. 2. 05:45
궁금하긴 했다.
김훈의 동명소설 <남한산성>이 창작뮤지컬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쉽게 만들어지기 힘든 작품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배경이며, 대사며, 심난한 독백같은 모든 느낌을 전달한다는 게
책의 표현데로 가파르지 않을까 우려했다.
오래 고민을 하다 겨우 공연이 끝 무렵에 결국 찾아 봤다.
지금은 내 심정은...
다행이구나 싶다.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묘하게도 나와는 항상 인연이 없던 배우였던.
김수용, 성기윤, 손광업, 배혜선
드디어 이 모든 사람들을 한 작품 속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명성만큼이나
무대 위에서 꽤 인상적인 그리고 꽤 괜찮은 모습을 남겨줬다.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모습엔 어딘지 묘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느껴진다.
특히 초연의 무대일 경우에는 더욱 더.
어쩌면 그들의 역량에 따라 이 초연의 무대가
초연이자 막공이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품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영웅>과 <남한산성>
지금 공연되고 있는 두 개의 대형 창작 뮤지컬은
그래서 기특하면서 동시에 절박하다.
그리고 그 양면성은 무대 위에서 그대로 긍정적인 적나라함으로 드러난다.



원작 김훈, 극본 고선웅, 연출 조광화
꽤 괜찮은 아니 상당히 괜찮은 조합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후 고선웅, 조광화 
두 사람의 멋진 콤비네이션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다.
그리고 의상과 무대...
전체적으로 대나무를 무대 배경으로 삼아 묘한 신비감을 준다.
텅 빈 대나무의 옹골찬 꼿꼿함과 수직성.
결국은 모든 이의 마음이었으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조(성기윤)의 마음.
청과의 화친으로 살 길을 도모하자는 최명길(강신일)의 마음.
청과의 무력 충돌로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김상헌(손광업)의 마음.
자신을 버린 조국을 똑같이 배반하고 청의 길라잡이가 되어버린 정명수(이정열)의 마음.
청을 찾아가 화친의 편지를 전하고 목숨을 버리는 오달제(김수용)의 마음.
그 모든 대쪽같은 마음들이 산성을 만들어 머무르게 했을 거라고...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이 모순된 명제 앞에 누구들 절박하지 않을까...
"당면한 문제를 당면할 뿐"이라 했던가...



청의 황제 홍타이지(서범석)의 등장의 웅장함과 섬뜩함은
내리는 눈을 맞으로 초라하게 남한산성으로 피접하는 인조와의 운명과 대비된다.
눈발 속에서 인조의 음성은...
날리는 눈처럼 분분했고 심난했고 아득했다.
"그것이 왕이 결정한 일이더냐?"
그 짧은 말 속에는 힘 없는 왕의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최후의 결정에 대한 절망감이 묻어 있다.
청의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인조의 모습.
어쩌면 그 고개를 다시는 들고 싶지 않았으리라.
땅의 찬 기운과 함께 차라리 사늘히 굳어지길 바라지 않았을까?
서러운 기운에 내 몸까지도 가늘게 떨린다.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이 여기까지 왔구나...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영웅>도 그렇고 <남한산성>도 그렇고...
특히 <남한산성>의 무대와 음악은 참 많은 걸 느끼게 한다.
더 좋은 작품으로 진화되길 지금 초연의 무대를 보면서
희망하게 됐다.
주연같은 열정의 앙상블까지...
그들 한명 한명에게 아름다웠다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이 모두가 쌓은 견고한 <남한산성>은
사실은 극의 결말과는 다르게
몹시 아름다웠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