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09. 1. 19. 06:15
 

<붉은 애무> - 에릭 포토리노


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프랑스 작가입니다.

이 사람은 작가로써도 유명하지만 2008년 1월 경영난에 허덕이던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지의 회장으로 임명돼 파격적인 구조 조정으로 르몽드지를 구해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보면 확실히 신이 가끔은 불공평하단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엔 (1월 5일) 이 “르몽드”지에 우리나라 보수신문 “조중동”에 대한 상당히 긴 불량의 정면비판 글이 실려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글의 요지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 일간지가 역대 독재정권에 봉사한 댓가로 조세 면책의 특권을 보장받아 왔고 현재도 이들 일간지들이 보수진영과 재벌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꽤 정확한 지적을 하고 있어 오히려 민망하기까지 했답니다.


<붉은 애무>... 제목 참 강렬하죠?

처음 이 책을 알게 됐을 때, 그 제목의 강렬함에 당황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죠. 대중교통 안에서 읽고 있으면 사람들이 좀 쳐다보겠구나...(그런데 실제로 정말 그러던데요~~~)

그 사람들, 어떤 내용을 상상하면서 절 바라봤을까요?

프랑스의 대표적인 립스틱 브랜드명이기도 한 “붉은 애무”는 프랑스어로 잔잔하게 불에 타 들어가는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불에 타 들어가는 데 잔잔하다니요......

어쩐지 꽤나 치명적일 거란 확신이 들긴 하네요.


이 소설은,

네,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이고 파괴적이기까지 한 사랑이죠.

이렇게 고백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홀로 된 여자의 아들에게는 아이가 될 권리가 없다”라고...

정상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 이름도 모르는 아비와 아이를 짐스러워하는 어미,

그렇게 아이인 적 없이 커버린 한 남자.

어느 날, 그 남자에게 마리라는 여자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아이를 낳아서 걸을 때가 되면 아이를 당신에게 주고 떠나겠다...”

실제로 그녀는 정확히 아이가 첫 걸음을 떼는 날  두 사람 곁을 떠나죠.

아이인 적이 없이 자라버린 남자는 이제 자신의 힘으로 어린 아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엄마의 부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남자...

아직 어린 아이에게 있어 부모의 존재라는 건, 거의 엄마의 존재가 대부분이라는 걸 이 남자는 너무 잘 알고 있었죠.

“엄마 보고 싶어!”

엄마를 찾으며 떼를 쓰는 아들에게 손찌검을 한 남자는 아이에게 말합니다.

“약속할게. 매일 저녁 엄마가 와 있을 거야”

아들을 위해, 이 남자는 그토록 혐오하던 게이샾에 들러 원피스를 사고, 금발의 가발을 사고, 포근하고 따뜻한 2개의 스펀지 공을 사고, 얼굴과 다리의 털을 면도합니다.

그리고 매일 밤 아들에게 선택권을 주죠.

엄마, 아빠 중 누구를 원하는지...


처음엔 밤에만 엄마로 변장했던 남자는 아이의 요구에 따라 점점 낮에도 엄마의 모습이 됩니다. 그리곤 함께 외출을 하고 공원으로 소풍을 가고 그리고 써커스를 보러 가죠.

잠이 깬 아들에게 “엄마 여기 있어, 푹 자!”라고 말하면서 이 남자는 느낍니다.

자신이 점점 엄마로 변한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아들이 3살이 되는 날, 평온하게 유지됐던 두 사람의 가정에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그녀... 아이의 진짜 엄마인 “마리”가요.

여자는 말합니다.

“이제 아이를 위해 엄마로 살기로 했다”고... (아내의 역할은 제외하고 말이죠)

그 순간 그 남자는 자신이 방금 잃어버린 모든 것을 떠올립니다. 금발의 가발, 시폰 원피스, 스펀지 공, 머플러......

이제 아이는 일주일의 반은 아빠와, 일주일의 반은 엄마와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제 점점 진짜 엄마를 더 많이 요구하게 되죠.

마리로 변장한 남자를 보며 3살 아들은 웃어버립니다.

그 순간, 남자는 깨닫습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수렁으로 되돌려 보내졌다는 걸......

아들이 마리와 보내게 되는 날이면 남자는 엄마가 되어 마치 아들이 집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엿보기가 시작되죠.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남자는 마리 집 창문 맞은편에 주차한 체 자신의 아들과 그 아들의 엄마를 훔쳐봅니다.

그 남자의 눈길....

뭐였을까요?

엄마의 시선? 아니면 아빠의 시선?

어쩐지 참 잔인하기까지 한 시선이라 섬뜩함조차 느껴집니다.

엄마(진짜 엄마)의 손을 잡고 유아원으로 향하던 이른 아침,

남자는 두 사람의 깍지 낀 손가락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때, 갑자기 울린 핸드폰을 받기 위해 엄마가 잠시 잡은 손을 놓은 사이 아이는 콩콩 거리를 뛰어다닙니다.

그러다 돌진해오는 스포츠카에 순식간에 뺑소니 사고를 당하죠.

범인은 밝혀지지 않고...

결국 이 남자는 아들을 잃고 맙니다...


이 남자....

이제 어떻게 될까요?

이제부터 “붉은 애무”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남자의 마지막 모습은, 그리고 마지막 시선은, 그리고 마지막 증거는.....

아빠여야 할까요? 엄마여야 할까요?


책을 덮으면,

마치 독한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느낌입니다.

잔잔하게 불에 타 들어가는 느낌이네요.

부드럽지만 겉잡을 수 없는 광기.

당신은 지금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그 눈길이 진짜 자신의 눈길이라고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11. 16:22
  <전태일 평전> - 조영래


  전태일평전


새해에 꼭 소개하고 싶었던 책이었습니다. 

이제 낯선 이름이 되어 버린 사람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아직 살아 펄펄한 청춘으로 아들의 뒤를 이어가고 있는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그의 평전을 쓴 이미 고인이 되어 버린 인권 변호사 조영래.

같은 꿈을 꾼 사람들, 아니 같은 세상을 희망한 사람들이라고 말할까요?

내 세상이 얼마나 풍족하고 내 세상이 얼마나 유복한지, 그리고 내 세상이 얼마나 무심하고 내 세상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게 한 사람들.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과연 지금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홍경인이라는 배우가 분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 속 픽션의 인물로만 남겨져 버린 건 아닐까요? (...비록 픽션의 인물로라도 그가 아직 남겨져 있다면 참 다행이겠습니다...)


자. 여기에 어떤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3세의 어린 계집아이가 있습니다.(우리 눈엔 새초롬한 표정에 인형 같은 예쁘장한 조카의 모습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정도의 그 계집아이는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며 6시 30분경에 일어납니다.

금방 허기로 채워질 보잘 것 없는 아침을 먹고 1시간을 걸어 평화시장 피복공장 그 고된 일터로 출근이란 걸 하게 되죠.

이제부터 계집아이의 노동의 시간은 시작됩니다.

8시 출근 11시 퇴근.

한 달 3000원의 월급을 벌기 위해 15시간이라는 살인적인 노동 시간을 견뎌야 하는 어린 계집아이의 몸이 이제 서서히 그러나 파괴적으로 무너집니다.

기관지염, 안질, 빈혈, 신경통, 위장병, 피부병, 영양실조, 생리불순, 폐병...

어른들이 가질 법한 각종 질병을 훈장처럼 달고 어린 그녀들은 일터에서 쫒겨나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체 어둔 골방에서 서서히 죽어갑니다.


이 이야기가 단지 과대망상이고, 비현실인 이야기라고 차라리 비난 받을 수 있다면 참 다행이겠습니다.

그런데 고작 70년대 우리에게 이런 세상이 있었다는 거...

단지 운 좋게 우리가 피해왔던 시간들을 우리보다 조금 일찍 태어난 그들은 온 몸으로 겪어냈던 겁니다.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시간은...


그냥 우연히 손에 들었던 책입니다.

사실 별 느낌이나 감정의 동요 없이 읽어나가게 될까봐 좀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참 먹먹한 가슴 때문에 오래 힘들었습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 자체가 미안했고 아팠습니다.

1948년8월 해방 직후 태어나 1970년 11월 스물 두 살의 나이로 온 몸을 태워 세상을 향해 알리고 싶었던 전태일이 하고 싶었던 말은, 단지

인간으로써 살아갈 최소한의 대접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인간이지만 단지 누군가의 비료가 되어 짓밟혀버린 사람들, 새 시각을 갖게 해준 근로기준법, 그러나 그 법의 존재로 인해 노동자들의 참상은 더욱더 숨겨지고만 있는 현실.(법과 현실이 만나질 수 있는 방법은 도무지 없는 모양입니다.)

부스러기 인생들을 위한 각성된 밑바닥 인간의 최후의 결단.

그는 그 결단을 두고 “완전에 가까운 결단”이라 이름 짓습니다.

살면서 과연 몇 명이 “완전에 가까운 결단”이란 걸 할 수 있을까요?

발목을 붙잡는 숱한 이유들과 극단에서 더 절실해지는 자기애,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 대한 송구함과 미련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릅니다.

옳지 않았다고, 그렇게 자기 몸을 죽이는 방법으로 해결되는 게 뭐가 있느냐고, 그전에 행동했어야 했다고...

세상에 그 만큼 거대한 산을 향해 행동했던 사람이 또 있을까요?

22살 영양부족의 작은 체구를 가진 사람, 그는 한명의 사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곳까지 행동했고 그리고 끝까지 믿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그렇게 많은 구체적인 행동들과 믿음으로 버텼던 사람... 또 있을까요?

아들을 잃은 그 어미는 아들이 남긴 말을 또 다시 따릅니다.

“어머니, 내가 못 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

온 몸이 오그라들고 뒤틀려버린 생명같던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을 어미는 끝내 거역하지 못합니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정신병을 앓기도 한 그 어미는 다시 펄펄한 청춘이 되어, 당신을 앞서 간 그 아들이 되어, 아들이 남겨놓은 일을 합니다.

어쩌면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되물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동자의 어머니"로 알려진 이소선 여사는 분신한 아들의 뜻을 이어 청계피복노조를 만드는 등 평생 노동·민주화운동에 헌신합니다. 그 탓에 180차례 ‘"범법자"라는 훈장을 달고 늙은 어미의 몸으로 3차례 옥고를 겪기도 했습니다.

팔십을 넘긴 그분은 말합니다.

“주야장천 싸움하면서 얻어맞고 잡혀가고... 우리 아들이 죽었는데 우리야 죽으면 뭐 어떠냐면서 싸우지. 사실 시위도중 경찰에게 많이 맞아서 지금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 오늘같이 흐린 날은 온 몸이 쑤셔. 그래도 애쓰는 사람들 입장을 봐서 안 갈 수가 없지. 하나하나 싸우면 안 돼. 같이 싸워야지.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그리고 또 한 사람...

전태일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남긴 인권 변호사 조영래.

1990년 12월 12일 43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가 해 온 일들 역시 전태일 못지않게 고난하고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의 모임”을 만들기도 한 그는 깨어있는 선각자 중 한명이었죠.

오랜 수배생활을 겪기도 한 그는 수배의 시간 동안 이 책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책이 나왔을 당시 책의 저자는 “김영기”라고 표시되어 있죠.

일종의 불온서적으로 찍혀 출판금지의 낙인이 찍히게 된 이 책은 지은이에 대한 소문만 무성한 체 노동자의 필독서로 확산되게 됩니다..

조영래 그 자신은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을 보지 못한 체 세상을 떠납니다.(1990년 12월 15일 조영래라는 저자를 밝힌 개정판이 출판됐지만, 그는 그보다 3일 앞선 12월 12일 지병이던 폐암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제가 조영래라는 변호사에 대해 알게 된 건 “EBS 지식채녈”을 통해섭니다.

1986년 부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 권인숙.

아무도 변호하려 하지 않은 그녀를 변호한 사람이 바로 조영래, 이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패소했을 때 남긴 말입니다.

“아무리 뼈아프더라도 이 말만은 들어주십시오. 사법부는 오늘 그 사명을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기소 끝에 결국 그는 피해자 권인숙을 석방시키고 성고문의 가해자 문귀동에게 5년형을 안깁니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만난
깨어있음으로 깨어진 3명의 혁명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그들에 의해 세상은 “되물림”되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
이 믿음이 언제나 옳은 것이길 바래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10. 14:55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1,2> - 현각

 

책 이미지

 

오늘은 좀 색다른 책을 소개해 드리려구요.

개인적으로 여러번 읽었던 책이고, 그리고 제가 즐겨 사람들에게 선물했던 책 중 하나였는데 현재는 절판이 돼서 여러 가지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책입니다.(절판된 이 책이 우리 병원 도서관에 있답니다.^^)

1964년 태어난 현각이라는 스님이 2002년에 출판한 <만행>이라는 책입니다.

현각(폴 뮌젠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아직 수도자가 되기 전이니까 ^^)은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엘리트 미국인입니다. 그리고 예일대를 졸업하고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석학들이 모인다는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한 그야말로 수재 중 한 사람이죠.

독실한 카톨릭 가풍에 형제도 꽤 많습니다. 게다가 형제들 모두 엄청난  엘리트들입니다. 부모님들은 그가 한국에서 구도자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실망했다고 합니다. 부모는 그가 오히려 신부가 되길 바랬다고 하더군요.

참 종교라는 거...

우리가 "베리타스"라고 말하는 진리을 추구하기 위해 희생과 고행, 그리고 절제를 향해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희생과 끔찍한 전쟁이 수반되기도 하는 종교적인 분쟁...


개인적으로 전 기독교인이지만 이 책은 거부감이 느껴지는 내용이나 불교를 강요하는 교리를 해석한 책은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고백을 담은 책, 그렇지만 그 개인적인 고백들이 누구나 고민하고 공감했던 내용들이며 그래서 혹은 어떤 이유였든 심각하고 처절하게 고민했던 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을 읽은 어떤 분은 최루성 글이란 표현을 쓰더군요.

눈물샘을 극도로 자극하는 것도 아니고, 펑펑 울게 만드는 엄청난 감동적인 사건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은 확실히 그렇습니다.

사람을 울게 만드는 아니 눈물이 촉촉히 스며들게 만드는 책입니다.

많이 혼란스럽고 힘들었을 때 만났던 책이었고, 그래서 저에게는 제 살점같은 느낌이 드는 너무 애뜻한 책임을 고백하게 되네요.


이 책은 현각 스님의 지나온 삶이 마치 여행기처럼 서술되고 있습니다. 미국 뉴저지주 중산층 가정에서 시작하여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원, 다시 뉴욕, 파리, 보스턴을 경유해 중국의 남화사를 거쳐 한국의 화계사와 계룡산 신원사에 오기까지 계속되는 한 인간의 고민의 행보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죠.

책에는 그의 전생에 대한 언급도 잠깐 나옵니다.

이상하게 한국과 관련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그...

아직 스님이 되기 전에 한 노스님에게 들었다고 하네요.

그가 전생에 조선독립군이었는데 죽으면서 다음 생에는 큰나라에 태어나 조선을 위해서 일하겠노라는 다짐을 하면서 죽었다는....

이 부분이 전 참 천진하게 들렸고 그래서 이 분이 지금 이렇게 구도자의 길을 천진하게 가는구나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먹먹한 가슴을 안고 사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구나... 많이 위로 받기도 했구요(어쩐지 저의 고백서 같네요..)


현각 스님은 자신의 삶 전체를 만행의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숭산 큰스님의 강연을 듣고 스님이 되는 과정을 ''오직 진리를 찾아 떠나는'' 만행의 또 다른 행로라고 말하죠.

특히 중산층 미국인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약혼자와 헤어지면서 한국불교의 파란 눈의 승려가 될 때까지 겪었던 내용들을 서술할 때는 너무나 인간적이라 차라리 승려가 되지 말라고 말리고 싶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숭산 큰스님의 삶을 읽는 것 또한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세계 4대 성불로 알려졌던 숭산 큰스님은 1927년 태어나서 1994년 11월 30일 입적한 분으로 우리나라에서보다는 외국에 더 많이 알려진 분입니다.

그 분이 쓰신 <선의 나침반>이라는 책은 모든 불교 수행자들이 꼭 찾아 읽는 책이라고 하네요(현각스님은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했답니다)

폴이 스님이 되겠다고 했을 때 숭산 큰스님이 물었다고 하네요.

“형제는 있느냐?”고...

있다고 대답하자 다행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외아들이라서 어머님이 많이 힘들어 하셨다고... 하지만 폴 당신에겐 형제가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이냐고..

모든 것을 초월한 큰스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전 너무 파격적으로 들려 사실 멍해지는 느낌마저도 있었답니다.

깨달은 사람도 출가 전의 일이 가슴에 담아있구나 싶어서....


현각 스님은 만행이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행은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는 모든 것''이라고 말하죠.

그 분은 또 말합니다.

"걷고 이야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시장에 가는 모든 것.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질주하는 차를 바라보는 것. 친구와 악수하며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수행이고 만행(萬行) 이다."라고....
내 주위가 얼마나 만행할 것 투성인지....
비록 부족함일지라도
이제서야 알게 되
그 "앎"에 의해 평온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8. 08:15

<형제 1, 2, 3> - 위화

 

형제 1
 

중국 소설이라고 하면 <삼국지>, <소호지> 같은 대작들이 먼저 떠오르는 건 비단 저 뿐만은 아닐테죠?
창검을 휘두르고 계략과 묘책을 강구하고 커다란 깃발로 우레와 같은 말발굽 소리와 함께 앞을 구분할 수도 없을 만큼 짙은 먼지를 일으키며 행진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군사들의 행렬...
광대한 대륙을 자랑하는 중국.
중국의 국민들이 한꺼번에 소변을 보면 지구가 물에 감질 거라는 말도 예전에 있었는데....(저는 아무래도 이 말이 사실일 것만 같습니다)

각설하고,
이제부터 중국의 젊은 작가(어디까지나작가로써) "위화"의 소설을 소개하려구요.
1060년 출생의 위화는 오래전부터 주목 받고 있는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현대 작가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마니아층을 이미 확보하고 있고 저 역시나 그 중 한 명에 포함됩낟.
2006년도에 이 사람의 새 책이 무려 10년만에 나온다고 해서 제 살짝 가슴이 설래기도 했답니다.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 <인생> 이라는 굵직한 소설을 통해 격변하는 중국의 현대사를 현실감 있게 표현한 작가입니다.
특히 <인생>은 "장에모" 감독에 의해 영화화 돼서 온갖 영화상을 휩쓸기도 했던 그 유명한 작품이죠.
점차 자본주의화가 되어 가고 있는 중국...
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대화 되고 있은 중국의 모습이 <형제>에서 아주 유머러스하면서도 처연하게 그려지고 있죠.

<형제>는 중국의 문화혁명부터가 그 시대적 배경입니다.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형제(의형제는 아니구요...) 이강두와 송강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죠.
이광두는 친부처럼 14살에 화장실에서 (물론 수세식은 아니겠죠 ^^) 여자 엉덩이를 훔쳐보다 추락하는 엄청난 사고(?)를 당해 그 아버지의 그 자식이란 꼬리표를 달게 됩니다.
그런 이고아두를 건져서 깨끗이 씻겨 준 사람이 송강의 친부 솜범평이죠.
송강은 한마디로 착한 모범생입니다. 얼굴도 훤칠한 것이 요즘으로 말하자면 완전 완소남인 거죠
이런 저런 사연을 겪으면서 어쨌든 이 두 사람은 새로운 가정에서 형제가 됩니다.
문화혁명이 시작되면서 송범평은 지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홍위병에게 끌려가 모진 핍박을 받기까지 합니다. 결국 상해의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아내 이란(이광두의 친모)를 퇴원시키러 가던 중 마을 사람들에게 맞아 역전에서 비참하게 죽으면서 네 가족의 새로운 행복도 산산조각이 납니다.

이 소설은 중국의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야기되는 "문화대혁명(문혁)" 속에서 자행된 인간의 만행과 현대 중국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이면을 정면에서 유러머스하면서도 노골적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인물들이 펼쳐내고 살인, 도박, 매춘, 부정부패 등을 통해 문화혁명 이후 40여 년간 진행된 중국 현대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죠.
이 책의 장점은 어찌보면 심각하고 재미없는 정치적인 사항들을 인물들의 극단적 성격과 행동, 주인공의 비현실적 인생역전, 자극적이고우스꽝스러운 대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물론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3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단지 "재미"만 남게 되는 그런 책 역시도 아닙니다.(어찌 아니 매력적이겠습니까~~~~~!!!)

<형제> 1권은 송범평의 죽음에 이어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된 이란 역시 죽는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2, 3권은 한결 희극적이며 풍자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죠.
이광두의 노골적이고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임홍(동에 최고 미인)은 준수한 외모에 착한 심성을 가진 송강을 배우자로 택하고 송강의 자전거를 통해 출퇴근을 하면서 가슴 벅찬 행복을 느끼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돈을 쫓는 이광두는 결국 엄청난 부자가 됩니다. 그의 사업 수완이라는 게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죠. 이건 기발하다 못해 공상과학의 일부분처럼 환상적이기까지 합니다.
살기 위해 정직하게 발버둥치던 송강은 가짜 유방확대 크림을 팔기 위해 수술로 여자처럼 볼록한 가슴을 만들고 온 동네를 떠돌아나니며 보따리약장수를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가정적으로도 하나하나씩 피폐해지고 파괴되어 가죠.
선량하고 착한 사람의 몰락이라...(어쩐지 너무나 비중국적인 내용이 아닙니까???)

이광두에 의해 개최된 중국의 미인대회는 성상납으로 등수가 결정되고 (소설속에서 이 부분은 참...뭐랄까, 중국의 바닥을 들여다 보는 느낌입니다), 어리숙한 송강은 사기꾼에게 속아 몸과 마음 모두 철저히 망가진 끝에 저물녘 철길에서 자살을 결행하죠. 그 사이 이광두는 마침내 임홍의 육체를 골약하게 됩니다.(그래도 엄연히 형수가 되는 사람인데....)
가족의 마지막 생존자인 이광두.... 그는 이화 2천만 달러가 해당하는 우주 여행 준비를 할 정도로 갑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 끝에서듣게 되는 형의 사망 소식....

이 소설은 친형제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달리 형제라는 말 외에 딱히 뭐라 할 수 없는 가족 소설입니다.
비극적이기도 하고, 희극적이기도 한... 그리고 더불어 엄청난 공포이기도 하고 환상이기도 한....
현재 중극의 모습처럼 참 모호하기까지 합니다.

중국....
made in china 의 오명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한 중국인은 말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중국에서 싸고 제일 질이 나쁜 물건들만 들여오면서 중국 상품에 대한 품질을 비난한다구요.
이 말 속에서
made in china의 오명이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생각케 합니다.
중국인의 능력....
진짜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은 달걀을 만들고, 멜라닌을 유포시켜 온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그리고 햄으로 소고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만들지 못할 것은 과연 있을까요?
중국....
그제 그들에게서 공포를 느낍니다.
서서히 세계를 숨통을 죄기 시작하네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7. 06:26

<책도둑 1,2> - 마커스 주삭

책도둑. 1

이 책은 슬픈 책입니다.
너무나 슬퍼서 잠깐 읽는 사람의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어 버릴 만큼요.
<전쟁> 그 낯설고 아득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너무나 천진하고 아름다워서 설핏 나도 모르게 전쟁을 꿈꾸게 만들기도 하고, 그러다 몸서리를 치며 악몽 속에서 깨어나 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죽여 가며 울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절대로 내 울음을 누가 훔쳐보게 해서는 안 되는...

여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 아니 뭔가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의 신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나'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색깔의 변화를 냄새로 음미하면서 가끔 세상에 대한 한 눈 팔기를 통해 작업의 고단함을 잠시 잊기도 합니다. 어느 날 기차 안에서 한 소년의 영혼을 품에 안다 9살짜리 소녀(소년의 누나)를 만나게 되죠.
그 소녀가 바로 우리의 책도둑... 그녀입니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리젤. 남동생을 하얗게 얼어붙은 땅에 묻은 리젤은 친어머니와도 헤어지고 양부모 밑에서 새롭게 생활합니다.(동생의 차가운 무덤 속에서 그녀는 책도둑의 첫 번째 책을 갖습니다)
극악스럽고 항상 욕을 달고 사는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과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칠쟁이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 그리고 마라토너 제시 오언스를 너무나 찬양하는 나머지 얼굴에 숯칠을 하고 온동네를 뛰어 다니던 유일한 친구 루니 슈타이너, 그리고 그들의 지하실에 잠시 숨겨 두었던 유태인 막스 판덴부르크..
그리고 그녀에게 책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시장 부인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생생하며 그리고 정말 삶을 위하여 한 순간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이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정직하게 아름다우며, 아름답게 즐거워하며, 즐거워하면서 서로 은밀히 소통을 나누는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정말이지 딱 우리네 같은 사람들입니다.

굶주림..

우리는 이 책에서 또 다른 이유의 굶주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소녀가 책을 훔치는 이유였던(그런데 솔직히 훔친다는 인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굶주림. 너무나 간절한 책을 읽고 싶다는  굶주림...
소녀는 전쟁 중에도 책과 과자가 놓여있는 탁자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오로지 책만을 집어 들고 나옵니다.
리젤이 읽은 책 속의 활자는 고스란히 말이 되고 그리고 모든 것들을 향한 소통이 되죠.
소녀는 책을 얻기도 하고 그리고 한 사람씩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합니다.
그건 책과 사람의 교환도 아니고 죽음의 신에 의한 거래나 잘못에 대한 댓가도 아닙니다.
그건 단지 전쟁이라는 상황... 그것 때문이었죠.
죽음의 신도 개입하지 못하는 전쟁의 상황.
오히려 죽음의 신은 이 상황이 신물이 납니다. 그래서 시작된 한 눈 팔기의 상대가 리젤이 됐고 우리는 분명 죽음의 신이 화자인 책에서 리젤의 시선으로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리젤의 일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는 느낌...
결코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에서 일기를 읽고 있다는 은밀함과 비밀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글 중간 중간 나오는 그림도 그리고 막스가 지은 책(리젤의 생일 선물도 건네진)에서도 모두 일기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하죠.
실제로 이 책은 안네의 일기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도 있습니다.
숨겨준 자와, 숨겨진 자의 차이라고 할까요.

작가 마커스 주삭은 나치 독일을 체험한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모티브(끌려가는 유대인의 행렬에 몰래 빵을 주는 장면)로 삼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1868년생 작가가, 소위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자신이 겪어 보지도 않는 전쟁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 낼 수 있다니...
책의 내용보다 이 작가가 더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부러운 생각까지 어쩔 수 없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은 살아남음에 대한 소설이 아닙니다.
그러나 살아남음에 대해서, 그래서 살아가야 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저 또한,
어딘가에서 책도둑으로 다시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보너스 팁...

역시나 이 소설도 지금 미국에서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 정영목님에 대해서도 한 마디..
현재 가장 활발한 활동하는 영미문학 번역가로 <눈먼 자들의 도시>(정영목의 첫 번재 번역작입니다), <눈뜬 자들의 도시>,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이 번역가의 손을 통해 우리나라에 소개됐죠.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3인의 번역가 중 한 명입니다.(정영목, 이난아, 양억관)
일부러라도 이 분이 번역한 책들은 놓치지 않고 찾아보는 편입니다.
거의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그리고 문학적인 표현이나 유머러스한 표현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문장 속에 스며들게 하는 번역가죠.
그래서 이 분이 번역한 책은 일단 기본 그 이상은 된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혹 관심이 있는 분들은 도서관에 있는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을 읽어 보시면 이 번역가의 또 다른 장점과 매력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멋진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책들도 찾아 읽어 보시라 권해드리면서,
이상 달동네 책거리였습니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5. 23:01

주목받은 젊은 작가

김영하 - <빛의 제국> 
 

빛의 제국
 

김영하...

1968년생 작가로 재미있고, 특이한 소설을 발표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파리에서도 작품들이 번역돼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입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오빠가 돌아왔다>, <검은꽃>, <빛의 제국>, <퀴즈쇼> (.... 제목들도 범상치 않은 느낌이지 않습니까? ^^)
제가 읽은 김영하의 소설들입니다.
열거한 책들 중에서 흥미롭지 않은 책은 단 한권도 없었답니다,


<빛의 제국>은 간단히 말하자면 남한에 내려와 오랜 시간 살아가고 있는 고정간첩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예 작가는 시작부터 주인공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처음부터 밝혀놓고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나갈 지 궁금증 반, 의구심 반이 들기도 했구요.
21세기에 간첩 이야기라니....
어쩌면 뻔한 내용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고, 혹은 사상과 관련된 조금은 고리타분한 내용이 아닐지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이념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린 한 남자의 그야말로 이야기 같은 시간들의 연속입니다.
이미 고정선이 끊겨져 북한에서도 잊혀 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한 남자에게 갑자기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그것도 스펨 메일 형태로... 참 기막히지 않습니까?)


주인공의 직업은 자본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산업, 그것도 수입영화 배급사의 사장입니다.
늘 야한 동영상에 미쳐 있는 위성곤이란 직원을 둔 사장님이시죠.(별 활약도 없는 이 직원에게도 주목해주세요--->왤까요~~~~?)
그의 아내 장마리는 수입 자동차 딜러고 주인공과의 사이에서의 딸 현미는 벌써 중학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연하라고 하기에는 심하게 민망한 21살 대학생 애인까지 두고 있는 그야말로 대단한 여성이기도 하죠.
물론 가족들은 그가 고정간첩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 남자의 삶과 이름은 두 개로 분리 되어 있고 그리고 정확히 각각의 삶의 절반씩을 각각 완전히 다른 이념의 세계 속에서 완벽하게 분리하여 살아 왔습니다.
평양외국어대 영어과를 나온 김성훈이라는 북한 엘리트 청년은 비밀스럽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21년의 북한의 생을 뒤로 하고 남한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21년은 김기영이라는 이름으로 완벽히 위조된 인생을 이곳 대한민국에서 완벽하게 수행하며 살고 있었죠,
아마도 이쯤 되면 본인의 정체성도 심한 혼돈과 괴리를 겪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주위 여건들의 이런 복잡성에 복잡성을 더해줍니다.

세상에 완벽한 비밀이 존재할까요?
나를 지우는 작업이 정말 가능하고 할 수 있는 일일까요?
혹시 지금의 나 역시도 또 다른 나를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가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 속에 분리된 삶을 옮겨다 놓는다면.....
그리고 다시 그 삶을 또 옮겨 놓으라고 한다면....

간첩이 되는 첫 번째 조건이 뭔지 혹시 아세요? (^^;;)
그건 매력을 없애고 따분해지라는 겁니다.
분명 그 곳에 있었는데,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맞긴 하는데 일부러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얼굴이 희미해지는 사람...
혹시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세요?
어떠세요?
그 사람 얼굴이 기억나시나요?
기억나지 않는다면.... 혹시..... (^^)

보너스 팁 하나!
그의  최신작 <퀴즈쇼>를 뮤지컬로 만든다고 하네요.
얼마전까지 간간히 소식이 들렸는데 지금은 좀 잠잠한 것 같기도 하고...
(가능할까 싶기도 하고.... 뭐 딱히 불가능하지도 않겠지만....)
<퀴즈쇼>, 요 책도 정말 물건이라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알려드리며 싶어 사족을 달았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31. 06:30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지난주에 이상하게도 제가 읽은 책들 속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책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기억에 무려 3번씩이나...)

참 신기하죠? (아마도 제게 또 말을 걸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맨 처음 느꼈던 건, 올더스 헉슬리는 천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 나오는 모든 미래소설과, 미래영화는 모두 이 책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저 역시도 생각합니다.

이 책이요... 1932년 발표된 소설입니다.

그런데 지금 읽어도 대단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게 미스터리한 미래적(?)인 글이고 그리고 그만큼 대단히 매력적인 글입니다.(적어도 저에겐)

이런 글을 1930년대 쓸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과히 평범하고 순탄하지 않게 살았으리라 짐작하게 됩니다. 이 사람의 사망일조차도 존. F. 케너디의 사망일과 같은 날이라 그의 명성에 비해 사망의 기사는 묻혀 버렸다고 하네요.

이 사람은 영화, 그것도 SF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위대한 꿈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터미네이터>, <블레이드 러너>, <데몰리션 맨>, <에일리언>, <AI>, 심지어 <X맨>을 비롯한 지금 세상에 나와 있는 온갖 “맨”들에 이르기까지 이 소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영화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지난 20여년 동안 이 소설의 영화 판권을 따내기 위해 그렇게 고분분투했다고 하는데 드디어 판권을 따내 차기작으로 지금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을 만큼 이 책의 내용은 영화인에게도 꿈, 그 자체의 작품이죠.

사실 저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답니다.

최고의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아주 인상 깊게 봤었거든요.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너무 앞서가는 내용이라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가 몇 년이 지난 뒤 마니아들의 성원에 의해 재편집의 과정을 거쳐 재개봉하는 이변을 만들어 내기까지 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로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진 “헤리슨 포드”가 주연(무척 젊은 시절의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이었던 인간과 인조인간과의 사투, 그리고 사랑...(절대로 절대로 공상과학적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아름답고 슬프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과히 충격적인 영상과 내용이 아직까지 제 기억에 살아있습니다.

전 원편과 재개봉된 두 편을 모두 봤습니다.

음.... 좋았습니다. 신기했고 그리고 두려웠습니다.

또 다른 형태의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죠.


올더스 헉슬리...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헉슬리는 해박한 지식(제가 꿈꾸는 유토피아적인 인간의 모습이죠^^)과 날카로운 위트, 명석하고 지적인 문체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현실의 다양한 가치가 혼돈 속에서 인간 존재 자체를 완전 분해, 해체하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작품 속에서 보여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입니다.(천재 확실하죠?)

모든 세계가 철저히 계획되고, 삶 자체가 공장에서 찍어내듯 공산품화 되어 규격화 되어 있다면...

그 세계에서 정해진 계급 하에 배양되듯 인간이 탄생되고 길러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게 자신의 위치인 냥 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게 된다면...


여기,

어느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시대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아픔이나 배고픔 같은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외로움이나 슬픔 같은 정신적인 고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고 원하는 모두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곳, 죽음마저 감미로운 멋진 신세계.

이곳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그리고 엡실론까지 다섯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 시험관 안에서 자기 계급에 맞게 배양되어 태어납니다.

필요에 의해서 똑같은 일을 하도록 만들어진 수십 명의 쌍둥이들. 그들은 정해진 운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회에 순종하면서 자신의 현재 위치가 다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느끼도록 교육받았고 실제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수면학습이나 전기 자극 등을 통해 몇 백 번씩 반복하여 학습된 그 내용 그대로요.

어떤 의미에선 그들은 완벽한 유토피아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란 상스러운 단어이며 사랑이란 해서는 안 되는 금지된 행위인 이 멋진 신세계.

이곳에 세 명의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알파계급으로 태어났지만 태아과정 중 하층계급의 실수로 열등한 체형이 된 '버나드'.

알파계급에서 유난히 지적능력이 뛰어나게 된 '엘름홀츠'.

그리고 야만인 세상에서 어머니와 함께 이 곳으로 온 '존'.

다른 사람들과 달랐기에 그래서 그들과 어울릴 수 없었던 세 사람.

결국 셋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에게 맞는 지역으로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심지어 존은 자신이 불행해질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까지 합니다.

불행해질 권리라......

그러나 그런 자유마저도 허용 받지 못한 존이 최후에 선택한 자유는 자살이라는 극단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그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자유의지였기에...

고통 속에서도 행복을 찾길 원했던 유일한 “인간” 존의 마지막 자유의지...

불행해질 권리마저도 거부당한 존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몸짓이 과연 그의 영혼에 평온한 자유를 안겨 줄 수 있었을까요?

그의 죽음이 무의미했다고 누가 감히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현실적인 유토피아든, 생각의 유토피아든 말이죠.

모든 이들이 행복을 누리는 사회, 아니 그게 아니라도 나 혼자만이라도 행복을 느끼겠다는  그런 극단적인 이기주의 유토피아일지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꿈꾸게 됩니다.

비록 유토피아가 환상과 거짓으로 버무려진 한 순간의 신기루에 불과하다 할지라도요.

그게 다름 아닌 내가 꿈꾸는 것이기에 세상 그 무엇보다 절실하며 현실적일 수 있는 거죠.


이 소설은 포드사가 T형 자동차를 생산해낸 1908년을 기원 1년으로 하여 AF 632년 즉 AD 254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포드는 기독교의 예수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죠. 마치 종말론에 복종하는 사이비 종교 같은 느낌마저 드는 것도 딱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가장 윗부분을 뺀 T를 형상화하고 예배시간엔 “곧 오실 그분의 강림을 위하여” 성배를 들고, “우리가 죽으면 보다 큰 삶이 시작된다”는 영생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또한 현재의 사이비 종교의 그것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1932년 그 시대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거...

물론 작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한 단면을 예측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일부는 이미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대의 모습이 그대로 적나라하고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함마저 느끼게 됩니다. 열 가지 우울병을 치료한다는 소마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마약에 취해 쾌락으로 도망치는 현재의 모습과도 판막이죠.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은 놀라운 속도로 인간 복제 기술을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질 좋은 난자가 거액에 매매되고 복제인간 탄생도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실제로 어딘가에서 복제된 인간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그 실험이 계속 진화(?)하게 되면 언젠가 알파계급이 독점적 위치를 누리기 위해 수백만명의 일란성 쌍생아로 이루어진 보카노프스키 계급을 만들어 낼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그런 세계가 만약 당신의 현실이라면....

당신은 뭐라고 이름 붙이고 싶으신가요?

혹시.... <멋진 신세계>...

우리는 이런 세계를 정말 꿈꾸고 있는 건 아닐까요????

혹 아니라면....

조심하세요.

돌연변이를 제거하기 위해 당신 등 뒤에 누군가 서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28. 19:38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인간의 공포심과 잔혹함, 그 인간성의 바닥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단언컨대, 제가 아는 최고의 공포소설입니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보다도 더 공포스럽게 다가오죠. 헉슬리가 말한 세계는 그래도 SF적인 요소가 있어 “에이 설마...”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데 이 소설은 그냥 그 자체가 정말 너무나 현실로 다가와 사람을 섬뜩하게 만듭니다.

3년 전이네요.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게...

처음 친구에게서 이 사람의 이름을 들었을 때, 일본 사람인가? 했더랬습니다.

1922년 포르투갈 출생으로 아직까지 건장하게 활동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대가 중의 한 분입니다. 1998년 95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구요.

2008년에도 자국에서 <작은 기억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네요.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끊임없이 작품을 써내려가고 있는 그가 사실 더 공포스럽긴 합니다.

지난달 드디어 이 원작을 토대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죠.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러스는 원작을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고 그대로 살리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고 하네요.

그는 주제 사라마구 단 한 사람을 위해 포르투갈로 직접 날아가 특별 시사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주제 사라마구가 오랫동안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동영상을 통해 우연히 보게 됐는데 제 가슴까지 찡해졌었습니다.

대가에 대한 깊은 헌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작품이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정말 가능해?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만들겠다는 거지?

설마 원작에 상처를 주게 되는 건 아닐까?

특별한 느낌을 갖게 한 책에 대한 걱정과 우려. 그리고 그냥 책으로 남겨두면 안 되나...하는 개인적인 바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정말 괜찮은 영화가 만들어졌더라구요...

(저, 개봉하는 날 냉큼 달려가 봤습니다. ^^)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은 읽은 이를 긴장하게 만들기로 유명합니다.

소설 속에 쓰이는 문장 부호도 오로지 마침표와 쉼표뿐입니다. 대화나 독백 같은 대사조차 따로 구분해서 쓰지 않고 그대로 계속 문장 안에 포함시켜 버리죠. 그래서 처음엔 당혹스런 느낌마저 갖게 됩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만날 때 느끼는 불편감이라고 할까요?

지금은...

그러한 문단 자체가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는 하나의 포인터였다는 걸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의 글을 읽을 때 긴장하지 않고 읽는다면 아마도 대번에 책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쉬울 겁니다.

읽는 사람의 몸도 마음도 송두리째 몰입도록 이끌기에 그의 이름 앞에 대가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건 아닐지......(솔직히 작가에게 끌려 다니는 것도 등장인물들에게 끌려 다니는 것  만큼이나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하나 둘씩 아무 이유도 없이 눈이 멀게 됩니다.

“백색 공포”가 도시 전체를 뒤덮게 되죠.

정부는 급기야 그 사람들을 따로 격리하고 관리하기로 결정합니다.

여기에 눈이 멀지 않은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 여자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어차피 나도 곧 남편처럼 감염될 테니까......

이곳에서 여자는 눈이 먼 사람들의 모든 눈이 되어 생활합니다.

도무지 약자와 강자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인간의 탐욕은 장하게도 강자와 약자의 권력을 명확히(?) 분리해냅니다. 게다가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체 새로운 권력이 휘두르는 잣대에 그대로 따르게까지 되죠.

“먹을 것을 원한다면 당신들의 여자를 바쳐라”... 도대체 이런 상황에 성이라는 요소가 끼어들 자리가 과연 있는 걸까요? 그런데 정답은 어이없게도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눈 먼 남편들은, 애인들은 그들의 눈 먼 여자들을 줄 세워 보냅니다.

그리고 눈 먼 그녀들이 몸으로 얻어 온 음식물을 그들의 목 안으로 삼키죠.

아마도 그 순간, 그 곳의 사람들은 그들의 눈에 이어 그들의 입(말)조차도 잃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됐던 균형감이 왠지 깨지는 소리가 들리네요.

상황이든, 사람이든, 뭐든 달라지겠구나 하는 예감...

예감은 적중합니다.

수용소에 불이 나고 눈 먼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집니다.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지도 돌아가라고 명령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그들 세상 모두가 “백색 공포”에 감염된 상태였으니까요.

거리는 온통 끔찍한 형상으로 변해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기에 대소변을 아무 곳에서나 보고. 질서는 무너지고 도시는 쓰레기와 똥, 오줌으로 뒤덮입니다.

차라리 인류 심판의 날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네요.

행렬이라는 거, 줄이라는 거, 이 책에서는 마치 생명줄의 연장선처럼 보입니다.

단 한 명의 눈에 의지해 서로의 어깨를 잡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세상을 사는 방법은 단 사람에 의지해서이고, 그들의 생명도 또한 단 한 사람에 의해서만 계속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들에겐 절대자, 즉 구세주가 되는 셈이죠.

눈 먼 무리들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들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해오고 더러운 몸을 씻기고, 옷을 세탁합니다.

힘들었겠죠, 지치고 그리고 그만두고 싶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그녀는...


이유 없이 눈이 멀었던 것처럼,

다시 이유 없이 한 사람씩 시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읽는 사람도 공황 상태로 몰고 갈 만큼 갑작스런 상황이라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눈이 보이게 된 사람들 중간에 서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던 그녀는 눈이 일시적으로 하얗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갑작스런 공포로 이제 내 차례인가 중얼거리는 그녀의 눈 속에 도시는 다행히 그 모습 그대로 보여집니다.

이 모든 끔찍한 것들을 오로지 혼자서만 보고 경험한 그녀가 말합니다.

......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 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들의 눈을 멀게 만든 그들 내부에 있는 이름 없는 뭔가에 대해서였을 겁니다.

그 뭔가는 바로 우리 자신이죠.

다행히 그들은, 아니 우리는 회복됐습니다.

그러나 누군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