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6. 29. 07:42

한강과 김영하.

늘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젊은 작가다.

참 다른 두 사람인데 이렇게 연달아 읽고 나니 묘하게 닮아있다.

이 두 사람...

앞으로도 계속 내내 소설가였으면 좋겠다.

내가 이 사람들을 계속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다만 바라는 건 그것 뿐 ^^

 

2005년 한강이 <몽고반점>으로 제 29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때

그 단편을 읽고 좀 황당했었다.

그로테스크하고 싸이코적인 내용이 그닥 호감가는 작품은 분명 아니었다.

형부와 처제의 미친 행각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하지!

연작 소설 중 가운데 토막만을 덜렁 읽었으니 앞뒤가 황량한 벌판 같았던 게 그러니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채식주의자 - 몽고반점 - 나무 불꽃

연작들을 차례로 읽으니 비로소 소설들이 갖는 무게감과 존재감에 어깨가 뻐근하다.

이상문학상 작품집 출판 당시 작가 자선 대표작에 <채식주의자>를 수록했다면

나처럼 미련 떠는 독자가 좀 줄지 않았을까 뒤늦은 아쉬움을 토로해본다.

2011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 같은데 본 사람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일본에서도 이 책이 출판되고 큰 반향이 있었단다.

읽어 보니 확실히 문제작이긴 문제작이다.

1970년 출생한 작가 한강.

따지면 나와 동시대쯤에 태어난 사람인데 어쩌면 이렇고 풍부하고 가차없고 기괴하고 아름다울까?

한때 나는 우리 세대는 작가가 되기엔 너무 평탄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오만과 아둔함에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

어느날 꿈에서 본 핏빛 환영때문에 갑자기 모든 육류를 먹지 않게 된 몽고반점을 가진 여자 영혜.

<채식주의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몽고반점>은 그 여자의 형부가,

그리고 마지막 <나무 불꽃>은 그 여자의 언니가 화자로 등장한다.

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자신의 동맥을 그어버린 여자.

그 여자와는 도저히 함께 살지 못하겠다는 남편.

이혼한 여자는 온 몸에 꽃으로 바디페인팅을 한 채 작품을 찍어달라는 비디오 아트스트 형부의 부탁을 들어준다.

급기야 형부도 온몸에 꽃을 그리고 묘한 예술혼에 사로잡혀 체제와 성관계를 갖는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을 보게 된 언니.

모든 가정은 그야말로 사단이 나고 결단이 난다.

추잡하고 사이코델릭한 막장 드라마?

아니다. 

인간이 원초적인 식물로 정화되는 이야기라고 해두자.

그 여자는 분명히 깊고 굵은 뿔리는 내렸을테다.

물과 햇빛.

그걸로 삶은 충분하다!

그녀는 무덤처럼 지쳐있었다.

 

"언니!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돼. 살 수 있어. 햇빛만 있으면"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어미가 녹슨 가위로 탯줄을 잘라 세상에 나오게 한 아이 제이.

그리고 함구증(啣口症)을 앓았던 아이 동규.

세상 모든 것의 목소리와 고통을 듣는 제이.

이야기는 동화일까? 아니면 환상일까? 아니면 단지 소설일까?

확실히 나는 처음에 이 소설을 동화처럼 읽었다.

아주 순수하고이쁘게... ^^

그런데 젠장!

이 한 권의 책 속에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비참하게 그려져있다.

난장을 까는 십대들,

야생에 가까운 무절제한 폭력과 섹스,

친구들에게 집단 구타당하고 학대받는 장애인 소녀, 

가출한 소녀들이 원조교제를 통해 벌어온 돈으로 살아가는 소년들.

인간(人間) 에겐 무수한 틈(間)이 있고 무수한 타락의 본능(奸)이 있다.

마지막 부분은 사족같아 힘이 좀 빠지긴 했지만

매력적이고 집요한 이야기다.

처음에 이 책표지를 봤을때 촛불집회와 관련이 있나 싶었는데

김영하에게 또 여러 가지로 한 방 제데로 먹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김영하의 한 방은 참 세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10. 21. 06:20
오랫만에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 편 보다.
여성 연출가 박정희 연출, 극단 풍경의 <마라, 사드>
(원제 "사드씨의 지도하에 샤랑통 병원의 연극반이 공연한 장 폴 박해와 암살")
아르코 소극장의 그 따뜻함...
무대를 중심으로 좌,우로 나누어져 있는 객석
작은 소극장의 비지정석 좌석도 
가끔은 솔솔한 재미로 다가온다.
이미 무대 위에는 배우들이 자리잡고 있다.
좌석이 전부 채워지는 내내 배우들은
마치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듯 움직임조차 고요하다.
왠지 내가 보여지고 있다는 느낌.
괜히 몸이 움츠려든다.



개인적으로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신뢰의 깊이만큼 정당하게 인정하고 믿는 연극배우 남명렬!
그가 서는 무대라면 적어도 어떤 형태로든 배신감은 없다.
<마라, 사드>
20세기에 발표된 가장 주목할 만한 희곡 중 한 편으로 꼽히는 작품.
극작가 "페터 바이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단다.
팽팽한 대각선의 구도 속에 느껴지는 긴장감.



무대의 배경은 샤랑통 정신 병원.
마르키 드 사드 후작은 실제로 이 샤랑통 정신 병원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사드(남명렬)가 직접 쓴 대본을 가지고
병원 환자들은 배우가 되어 연극을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면 마라와 사드. 두 사람의 사상에 대한 논쟁!
프랑스 대혁명의 이론가 장 폴 마라(홍원기)와의 
뒤집히고 뒤집히는 지적이고 황홀한 언어의 전쟁터.
그리고 결국의 행동의 결전장.
행동하지 않는 사상가는 과연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혹은 인간의 육체로 해방을 꿈꾸는 자는 진정한 해방을 소유할 수 있을까?
논쟁의 결말은
오로지 극을 보고 있는 관객의 선택에 달려있다.



입장시 관객들에게 나눠준 카드 한장!
한쪽은 사드의 색 검정,
반대쪽은 마라의 색 빨강.
오늘의 관객은 마라의 결말을 선택했다.
스크린에 나타나는 영상.
6.8 혁명과 베트남전쟁, 광주항쟁, 촛불집회...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와의 절묘한 오버랩.
의외의 마무리. 그러나 신선함이 느껴질만큼 강렬하다.
문득, 사드의 결말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연극은 무척 참신하고 새롭다.
정통 연극에 뮤지컬적인 요소, 스크린을 이용한 영화적 요소.
그리고 실제 밴드들이 연주하는 음악적 요소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결코 산만하거나 엉성하다는 느낌은 없다.
깊이와 선택에 대한 통찰 또한 잊지 않게 한다.
순간순간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신비감.
썰물과 밀물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느낌.
(분명 어떤 흐름과 호흡이 있디. 주술적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같은 공간에서 느끼는 타인과의 일체감.
신비로운 접신(接神)의 황홀감.



배우 남명렬...
관객에게 정확한 감정을 전달하는 그,
보고 있는 사람을 마지막 하나까지도 완벽에 가깝게 집중시킨다.
그가 말을 하면 듣고 싶지 않아도 전부 들을 수 밖에 없다.
정확한 딕션과 호흡 그리고 여백.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선한 웃음을 웃는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는
도무지 무대 위의 그의 모습이 신비롭기만 하다.
그와는 전혀 다른 인물인데 그는 그 인물을 너무나 그답게 보여준다.
좀 걱정스러웠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드"라는 성도착자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건 아닌지...
그런데 역시 기우에 불과했다.
상당히 지적이고 논리적이인 사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고 파괴적이기까지 한 모습.
인간에 대한 "충동질"
코르테를 안고 마라를 성토하는 번뜩이던 사드의 눈빛,
그 속엔 누구라도 거역못할 "광기"가 버티고 서 있었다.



"마라" 역의 홍원기.
배우로서의 이 분의 무대는 처음이라 낯설다.
신춘문예 당선,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이며
꽤 좋은 작품을 쓴 극작가이기도 한 홍원기!
음... 뭐랄까...
아마도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사드 남명렬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보여지게 연기한다는 생각을 그것도 너무 자주 했다.
의도적이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조잡한 내 이해력의 한계 때문인지도...



관객이 "마라"가 아닌
"사드"를 선택하게 되면,
극중 대본을 쓴 사드의 의도대로 마라의 죽음과 함께
환자들의 난동, 경호원들의 폭력적인 진압, 사드의 승리의 미소로 막이 내려진다고 한다.
"사드의 미소"
내가 보지 못한 그 결말,
사드의 미소 속에 담긴 언어가 궁금하다.




난 당신이 배반한 혁명을 믿을 뿐이요. 혁명은 계속돼야 해. 우리 위에 군림하던 돼지 같은 놈들을 제거하고 몰아냈지만, 그놈들의 자리를 차지한 혁명 동지들은 과거의 부귀영화에 대한 유혹을 느끼고 있어. 이제 모든 건 명백해졌어. 혁명에서 득을 본 사람은 부르주아들뿐이고 민중들은 여전히 고통만 당할 뿐이야 
                                         - 마라의 변

저렇게 떼를 지어 소란을 피우는 민중을 난 경멸한다. 난 모든 선한 의도를 경멸한다. 그런 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사라질 뿐이다. 난 모든 희생을 경멸한다. 난 나 자신을 믿을 뿐이다. 
                                         - 사드의 변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