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5. 24. 06:38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젊은 작가다.
두편의 장편소설 <스타일>, <다어어트의 여왕>을 읽으면서 솔직히 좀 놀랐었다.
칙릿소설이긴 하지만
그렇고 그런 흔한 이야기로 도매급으로 평가하기에는 분명 색다른 뭔가가 있다.
특히나 <다이어트의 여왕>은 섬득함까지 안겼다.
그녀의 단편집이 나온다고 해서 궁금했다.
장편과 단편의 매력이 얼마나 다른지 알고 싶었고
어쩐지 그렇게 긴 이야기를 참신하게 만들 수 있는 작가라면
단편에서는 더 번득임이 드러날 것 같아서...



아주 보통의 연애
육백만원의 사나이
청첩장 살인사건
가족 드라마
강묘희미용실

미라
고양이 샨티

 


8편의 단편 하나하나가 다 흥미롭고 간절하다.
현대인의 단상들을 보는 것 같아 안스럽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취향이라는 이름의 정체된 현대인의 일상.
그 포장된 세상의 우울함과 텅빈 모습이 왠지 허전하고 막막하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들의 가짜 이해가
난데없는 오해보다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졌다.
왜 그렇지 않을까?
때때로 절실하게 공감되는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백영옥이라는 작가가 참 오래, 그리고 참 깊고 넓게 생각하는구나 싶어서 은근히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이 사람은 또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를 착실하게 작가로서 이루고 있구나 싶어서...
다 보여주지 못한 건 내 잘못이며 전부 보길 원치 않은 건 그의 잘못이므로
이것은 우리 모두의 실패일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실패다.
그러나 그 실패 속에서 홀로 처절하고 끈질기기에 그 모습 또한 열정적으로 아름답다.
꼭 공감을 얻어야만 하는가!
영수증과 사랑에 빠진들 뭐가 문젤까?
고양이가 연적이 되든, 죽기 위해 육백만원의 사나이가 되든
그건 특별한 게 아닌 보통의 일상이다.
취향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고 날마다 흔하게 하는 선택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그녀들의, 그들의 보통의 선택이
눈물나게 아름답다.
그러니 당연히 응원을 보낼 수밖에...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1. 19. 06:19
<그남자 그여자> 이미나가 쓴 책이다.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고 나름대로 꽤 많은 사람들이 읽은 것 같은데
솔직히 그녀의 책을 읽은 건 이게 처음이다.
고백컨데 이미나의 여행서인지 알고 집아들었다.
그런데 이걸 뭐라고 할까?
여행을 다녀와서 쓴 조금은 귀엽과 깜찍한 소설?
책 속의 주인공은 공연기획이 업인 행복한 아이 "행아"다.
실제로 이미나도 공연기획을 심심찮게 하는 사람이니
행아가 이미나의 일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다.
쉬는 날이면 공항을 가는 사람.
비행기만 봐도 가슴 설레는 사람.
그리고 여행으로 하나의 시절을 끝내게 되는 사람.
어쩌면 영원한 유토피아란 "여행"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포에 가깝게 있는 근무처 덕분에 나 역시도 하루에 몇 번씩 하늘 위를 나는 비행기를 본다.
마음은 이미 그 비행기 안에 들어가있는데
몹쓸 놈의 몸은 여전히...



재미있다.
태호와 행아, 태희와 건호, 경우, 그리고 은수까지
주변에서 금방 찾을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들.
무엇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전초전 같은 부분들에 공감을 하게 된다.
친구 태호와 반 고호의 동생 테오의 못한 일치감.
그리고 두 개의 여행지가 하나로 만나는 그 합치감도
읽으면서 재미있고 다행이다 싶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할 줄 알면
그 여행은 또 얼마나 편안하고 풍성해질까?
10일간의 여행을 계획 중인 내겐 약간 느슨함을 안겨주는 책이었다.
솔직히 줄거리로만 따진다면 흔한 칙릿소설이자만
다른 것을 보고 나니 귀여운 동네 꼬맹이들이 재잘거림같다.
요즘 세대들의 통통 뛰는 대사들을 읽는 것도 뭐 그런대로 재미있었고...
올 가을,
계획했던 터키로의 여행이 끝나면
개인적으로 이런 여행의 기록 하나 만들어야지 싶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9. 16. 08:05

<마이 짝퉁 라이프> - 고예나

마이 짝퉁 라이프

1984년생 작가 고예나.
이 책으로 2008년 제 32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26살이니 그야말로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춘이죠.
일종의 칙릿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그것보다 조금 더 가벼운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심각한 고민없이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죠.
딱 20대의 여자가 쓸 수 있는, 그리고 딱 20대의 여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아니 현실이라고 해야 할까요?
주인공 나(이진이)는 현재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휴학생입니다.
그리고 그녀 주위의 인물들인 가슴 큰 친구 B, 남자만 생기면 연락두절이 되버리는 R, 그리고 우정과 사랑 사이의 아는 남자 Y, 매일 다정한 문자를 보내주는 K까지...
이런 내용의 책을 읽다보면,
내가 사는 현실이 정말 이런 곳인가 싶어 덜컥 겁이 날 때도 있습니다.
아무 감정 없이 원나이트를 즐기고, 카드 빛에 쪼들리면서도 연예인을 꿈꾸며 성형수술을 감행하고, 순결서약한 애인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민하고. 브랜드에 과도한 열광과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 그래서 진짜가 아니라면 그럴싸한 “짝퉁”이라도 들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짝퉁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그들은 말합니다.
“그래도 내가 하면 진짜처럼 보일 거라고...”
그들의 삶 자체가 “짝퉁 라이프”로 변해가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죠.

예전에 친구와 동대문에 가방을 사러 간 적이 있습니다.
가방을 구입할 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딱 두 가지, 바로 크기와 무게입니다.
웬만한 두께의 책 2권 정도는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여야 하고 거기에 개인물품까지 넣고 다니려면 무게 역시 최대한 가벼운 게 좋죠.
한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찾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말하더군요.
“특A 있어요~~” 라고...
저는 처음엔 특A라는 게 S, M, L, XL 처럼 가방 크기를 의미하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친구한테 특A면 크기가 얼마나 되는 거냐고 물었죠.
그때 친구를 저를 한참동안 저를 빤히 쳐다보더군요.
그 뒤에 알았습니다. 특A라는 건 가방의 사이즈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미테이션, 바로 짝퉁을 이야기하는 거라는 걸...
어쩐지 아저씨가 은밀하게 귀에다 말하시더라... ㅋㅋ
책의 이야기 속에서 짝퉁으로 치장을 하고 친구들 앞에 나타난 R이 말합니다.
“가짜가 많다고 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어, 가짜를 진짜처럼 생각하면 되는 거야. 가짜로 인해서 이렇게 행복할 수 있잖아.”
그녀의 말처럼 우리나라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짝퉁을 만드는 이미테이션 천국이 되어 버린 건 어쩌면 충분히 행복하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가짜가 진짜일까. 진짜가 가짜일까. 진실이 거짓말을 하는 세상이다. 세상이 만든 진실이 미워지면 너만의 가짜를 만들어라. 네가 원하는 그 상상이 진짜다. 네 진심이 깃든 상상으로 이 세상에 복수하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 ......

“짝퉁”으로 치장한 사람들의 “짝퉁 라이프”
단순히 손가락질과 혀를 차며 쳐다볼 일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짝퉁 라이프”가 급기야는 우리의 인간관계까지도 매우 “짝퉁스럽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나의 “짝퉁스런 삶”을 보고 누군가 부러워해주길 바라는 마음.
나의 “짝퉁스런 감정”에 누군가 깜박 속아주길 바라는 마음.
그 “짝퉁스러움”이 이제는 사랑이라는 영역에까지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죠.
주인공 진이는 매일매일 세심한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K의 문자를 받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우산을 챙기라는 문자를, 그녀가 입으면 어떤 옷이든 귀여울 거라는 다정한 문자를 보내는 K.
진이는 그 K의 문자에 위로받고 힘을 얻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구질구질한 거라고 말하는 주인공 이진이.
하지만 그녀의 K는,
사실 이동통신사에서 제공하는 가상 애인 문자 서비스였습니다.
사랑에 매번 실패하는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할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함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감정을 받아들일 자신이 이제는 없었던 거죠. 왠지 옛날과 똑같은 절차를 밟을 것만 같았기에...
그러면서도 결코 타인에겐 사랑 못하는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녀.
사랑을 하는 척, 연애를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던 겁니다.
“..... 난 지속적으로 변함없이 내 곁에 있어 줄 누군가가, 내 존재의 증명이 되어 줄 누군가가 필요했어. 사람들은 같이 있을 땐 얼마든지 척할 수 있어. 척하는 건 쉬우니까. 중요한 건 같이 있지 않을 때야. 나에게는 매일같이 오는 문자가 소중했어. 내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직 보지 않은 문자 한통을 보면 온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사랑받는 사람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혹은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하지 못하는 사람.
그 “OO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삶이 바로 “짝퉁 라이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이 일류 브랜드에 열광하는 이유는 타인이 나를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본다는 “착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착각의 늪”이 결국 숱한 “짝퉁 라이프”를 만드는 원인이 되는 셈이죠.
그러나 특별함의 가치라는 건 더 심오하고 더 깊은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말 특별한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면 우리는 지금의 열 배, 스무 배는 더 노력해야만 하겠죠.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모든 사람에게 특별할 필요는 절대로 없을 겁니다.(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온전히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짝퉁”의 오명을 벗고 “명품”의 가치를 획득하게 될 거라 믿습니다.
그런 이유로 당신 삶의 가치,
그 “명품”과 “짝퉁”의 차이가
오늘 하루 당신의 삶 속에서 그대로 나타나길 희망합니다.

* 글을 쓰다 보니, 왠지 책의 내용과 많이 동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이 책에서부터 생각이 시작된 셈이니까요... ^^
  Killing-Time 소설입니다.
  요즘 20대의 삶과 성, 생각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20대의 삶이 다 이렇다는 건 아니지만요.
  어쨌든 30대 끄트머리에 있는 저에게 이 세계는 너무나 비현실적일 뿐입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 바로 그거네요...
  책과 관련해서 어쩔 수 없이 요즘 한참 이슈가 되고 있는 "4억 명품녀 김경아"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네요.
  기사를 보면서 이 정도면 정신병 수준이다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문제가 점점 더 시끄러워지네요.
  오늘 아침에는 의사인 전남편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여자 때문에 결국 파산했고 병원도 잃고 현재는 봉직의를 하고 있다면서 그녀 삶이 거짓이 아니라고 하네요.
  참, 세상 무서운 곳입니다.
  이제는 차라리 "짝퉁스러움"의 미덕을 찬양해야할 것 같네요.
  이 정도면 순도 100% 무결점 "짝퉁"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쩝!
  누구 말이 맞든, 틀리든 이런 걸 프로그램이라고 내보낸 케이블 TV도 제 눈에 한심할 뿐입니다.
  짝퉁도 못되는 것들의 진흙탕 싸움이 지저분하게 게속되겠네요.. 끌끌...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 18. 06:09
<너는 모른다> - 정이현

너는 모른다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저는 이렇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끔찍한 공포소설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혼자 생각해봤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실존적인 의미인지, 가치의 의미인지, 혹은 구성원 개개인이 가지는 익명성의 비밀을 완벽하게 보장해주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들의 집합체인지를...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로 대한민국 칙릿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정이현이 2년 만에 내놓은 신작입니다.

그녀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는 드라마에 이어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지금 초연 중에 있을 만큼 성공가도를 열심히 달리고 있죠.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치밀하면서도 냉소적인 소설을 썼다는 게...

2008년 8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근 1년간 인터넷교보문고에 연재했던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 그 모르는 타인들의 삶 속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모든 걸 알게 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책을 읽는 바로 “당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읽는 이의 개입을 전적으로 그리고 지배적으로 선동합니다.

이제 선택만이 남은 셈이네요.

공모자가 되든, 은폐자가 되든, 혹은 폭로자가 되든 말입니다.

  

2008년 2월, 서초구 방배동 서래마을의 고급빌라.

중국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는 김상호와 화교 출신 부인 진옥영, 초등학교 4학년인 바이올린 영재 딸 김유지. 그리고 김상호와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큰 딸 은성과 둘째 아들 혜성.

타인보다 더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가족”이란 테두리.

전날 진옥영은 대전 친정에 다녀오겠다며 의붓아들 혜성에게 유지의 바이올린 레슨과 강습비를 부탁하죠. 아버지 김상호는 사업상 만날 사람이 있다며 혜성에게 집과 유지를 맡기고 일요일 낮부터 집을 비웁니다.

집에 있던 혜성은 또 다시 듣게 된 누나 은성의 자해 소식에 그녀의 오피스텔을 찾아가 함께 병원 응급실로 향하죠.

이렇게 가족들 모두가 집을 비운 일요일 오후,

딸 유지는 바이올린 과외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레슨을 취소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혼자서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지 않죠.

유지의 실종을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은 뒤늦게 돌아온 아버지 김상호였습니다.

뒤이어 집으로 돌아온 아들 혜성.

순간, 그들의 얼굴에 당혹감과 깊은 절망감이 엄습하죠.

유지는 도대체 어디로 실종된 걸까요?

유지의 실종은 스스로 선택한 가출이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목적을 위한 유괴였을까요?

유지가 실종되던 시간에 가족들 모두는 또 어디에 있었던걸까요?

잠시 이야기의 시선이 나에게 멈춰지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이들을 지금까지 지켜본 사람이 바로 당신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묻는 것 같은 시선.

순간 내가 유지를 데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어쩔 수 없이 주위를 확인하게 됩니다.


막내딸이 실종됐던 바로 그 순간 그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이제 가족들의 숨겨진 알리바이가 하나씩 들춰집니다.

화교 출신 엄마는 그 시간 대전 친정이 아닌 대만에서 그녀의 오랜 연인을 왕명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예감에 서둘러 서울로 돌아온 진옥영은 딸의 실종을 알게 된 후 친정 식구들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녀가 대전에서 그들과 있었노라고 말해달라고...

응급실에서 누나의 치료가 끝난 후 혜성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자 친구 다은을 만납니다. 사건이 터지고 며칠 후 혜성 역시 친구 다은에게 부탁을 하죠. 그날 늦게까지 둘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해달라고...

의대에 합격했지만 등록만 하고 학교를 나가지 않던 혜성은 실제로 그 시간에 길거리를 배회하다 주차된 차에 불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습관성 방화는 늘 같은 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뒤늦게 여동생의 실종 소식을 들은 큰 딸 은성은 오래전 X-boy friend와 계획했던 엄청난 장난(?)을 떠올립니다.

부자 아버지에게 돈을 뺐기 위해 여동생을 납치한다는 계획...

그리고 얼마 전 급히 돈이 필요하다며 전화를 해온  X-boy friend의 통화를 떠올리며 그가 여동생 유지를 납치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수사를 위해 김상호와 함께 온 형사 문영광.

가족들 모두는 그가 경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립형사였죠. 김상호는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철저히 숨긴 체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하며 문형사를 가족들에게 소개합니다.

자신의 아이가 사라졌는데 경찰이 아닌 고작 사립 형사라니...

이 집안 어쩐지 서로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히 있긴 한 것 같네요.

김상호의 직업은,

그러니까 불법 장기 밀매 브로커였습니다. 한국에서 의뢰가 있을 때마다 “신선하고 건강하게 살아있는(?)” 장기를 중국에서 공수해 넘기는 일을 하고 있었죠. 가족들은 김상호가 어떤 무역업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리고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는 집 안에 상당한 돈을 가져다 주는 착실한 가장이었으니까요.

그 착실한 가장이 지금 금쪽같은 딸의 실종을 경찰에 알리지 못하고 혼자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가족 모두는 생각합니다.

유지의 실종은 자신 때문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습니다.

갑갑하고 막막하고 미련한 시간들이 그들 곁을 부지런히 지나가고만 있죠.


작가 정이현은 말합니다.

" ...... <너는 모른다>에서 빠진 목적어는 바로 ”나“다. 한 가족이라도 서로 굳게 마음을 닫고 있지만 어느 날 폭탄이 떨어진다면 마음이 밖을 향하게 되는 미묘하고 작은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

그녀는 가족이라는 상징적인 단위 속에 느슨하게 묶여있는 개인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 ...... 흔히 가족이라고 하면 끝까지 서로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존재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지 않잖아요. 다 드러내는 것 같으면서도 감추고, 동시에 무언가 숨기는 것 같지만 진심을 내보이기도 하는 개인들을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관찰하려고 했습니다...... "

작가 정이현의 이 말 때문에 저는 이 소설을 공포소설로 분류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소설은 결말까지 꼭 읽어내야 하는 소설을 아닙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약간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읽는 동안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때문에 극도로 선명해지는 두려움을 대면하는 일은 분명 버거운 일이 될 것입니다.

다중의 화자들에 의해 꾸역꾸역 고백되는 이야기들은 때로는 충격적이기도 때로는 비상식적이기도 때로는 넌더리가 나기까지도 합니다.

처음엔 제도권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소수자를 대변하는 소설인가 생각했다가, 다음엔 우리사회에 암암리에 퍼져있는 불법의 사업과 불륜에 대한 고발인가 생각했다가, 또 다시 현대인의 부서지고 파괴된 주체성에 대한 애도인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사건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또 다른 문제, 도시인들의 부스러진 일상을 그리려 했다는데 이 말 또한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네요.

단지 책 속의 한 마디 말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유지의 실종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들어온 진옥영의 오랜 연인 밍은 유지를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스스로 위험을 자처합니다.

마지막 결정을 내린 그의 입에서 나온 말,

"어차피 나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정말 무엇일까요?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긴 마음 끝이 이제는 많이 어지럽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1. 17. 06:27
칙릿소설이라고 해두자.
모든 여자들은 아니 모든 직장인들은 꿈꾼다.
자신이 신데렐라가 되기를...
누군가 내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큰 프로젝트를 맡김으로써
신분상승을 꿈꾸는...
누군가가 나를 조용히 그러나 긍정적으로 지켜보면서
경영인으로써 비밀스럽게 테스트를 하고며 만족하고 있기를....



조그만 소도시에서 광고일로 성공을 거둔 도로시는
함께 일한 헨리 아저씨의 추천으로 도시에 있는 거대 홍보회사 오즈 컴퍼니에 입사하게 된다.
크리에이티브팀의 새로운 캡틴으로...
빨간 구두를 둘러싼 자존심 싸움 결과
엄청난 자금의 궁핍 속에서 프로젝트를 멋지게 성공시키는 도로시.
그 과정 속에서 그녀는 팀웍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발휘한다.
자금의 부족을 아이디어와 협업,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간의 우정과 이해로 해결하면서...(정말 동화적인 이야기다...)
급기야 새로운 사장의 자리를 놓고
자금 압박을 해왔던 재무팀의 웨스트와 경쟁을 하게 된다.
당연히 주인공이니까 그녀가 멋지게 승리를 한다.
그것도 또 다른 프로젝트의 최종일과 연례총회일을 정확히 일치시켜서
시각적으로도 엄청난 이팩트를 보여주면서...
(그러니까 일종의 도랑치고 가재잡고... 꿩먹고 알먹고... 식으로 ^^)
그런데...
예상했던 그대로
이 모든 것들이 그녀를 경영인으로 올리기 위한 일종의 도제수업이었던 거다.
웨스트마저도 계획된 내부의 적이었고,
자신을 추천한 헨리 아저씨는 사실은
오즈 컴퍼니의 사장이었던 거다.
이렇게 끝이 났으면 무지 재미없었을 거다.
다행히 그녀는 자신에게 신겨진 유리구두를 벗겠다고 선언하다.
"신데렐라"가 되기 보다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되기로 결정한거다.
자신의 세계에서
직접 허수아비를, 겁장이 사자를, 깡통 로봇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최종 선택이다.
누구나 그런 것 같다.
신데렐라를 꿈꾸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로시를 꿈꾸고 있기도...
당신의 현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모습은?
잠시 일터에서의 내 모습에 대한 고민을 하게 했다.
이 책의 장점을 일단은 "건전함"이라고 해두자.
^^



헨리, 당신이 직원들에게 인간적인 가치를 강조하고, 그들의 능력을 키워주고 그러면서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거 잘 알아요. 당신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서 직원들이 서로 협력하고 팀워크를 이룰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어요.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줌으로써 나를 프로로, 인간으로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왔고,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극한의 상황을 경험하게 해주었어요. 이제 나는 누가 뭐래도 최고가 되었고, 이 모든 게 당신 덕분이에요. 내가 당신을 많이 존경했으며, 평생 존경하리란 것도 잘 아실 거예요. 지금까지 아저씨의 행동이 어떤 악의가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나는 다른 모델을, 당신이 놓장에서 나에게 가르쳐준 모델을 택하겠어요.
오늘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출근할 때마다 내가 누군가의 거짓말 덕분에 이 자리에 있다는 걸 떠올리게 될 것 같아서예요. 당신과 웨스트 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이 자리를 얻지 못했을 테니까요. 내가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서는 동료들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회사의 역사에는 지나치게 많은 가짜 인물이, 지나치게 많은 걸림돌이, 지나치게 많은 속임수가 있었어요. 당신 역시 가짜 인물로 인해 현재의 상황까지 이르렀고요. 나도 똑같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빛나는 사람이며,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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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처음으로 속였을 때는 당신의 잘못이다. 그러나 두 번째는 내 잘못이다. - 아랍 속담
      
놀라운 것은 잠시뿐이지만 감탄스러운 것은 영원하다. - 조제프 주버트

성공을 거둔 기업에서는 누군가 한때 용감한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 피터 드러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9. 30. 06:13

1984년생이란다.
와~~ 정말 엄청난 나이의 작가다.
그것도 이 한 권으로 2008년 제 32회 오늘의 작가상까지 받았다.
부럽다. 그 재능의 눈부심이...

제목 한 번 살벌하다.
아주 캐쥬얼한 칙릿 소설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주인공 나(이진이)를 제외하고는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이니셜이다.
B, Y, K, R....
그 익명성의 은밀함.
왠지 모든 걸 까발린다고 해도 익명성으로 인해 모른 척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들.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구질구질한 거라고 말하면서
사실은 이동통신사에서 가상으로 보내주는 문자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
마치 애인을 챙기듯 다정스런 소근대는 문자들...
특별한 것 없는 여자들의 일상, 사랑이라고 이름지어진 것들,
그리고 귀엽기까지한 허영.
적당히 눈살을 찌푸려지지지 않을 정도의 요즘 이야기다.
가령 이들은 상당히 짝퉁스런 라이프를 살아가지만
그래도 그 본질을 잃지는 않는다는
결론으로 매우 치자면 교육(?)적인 내용이다. ^^



사람이 사람을 이토록이나 외롭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만날 그렇게 올인하니까 니 사랑이 파토 나는 거야.
어찌 그리 잘 하랑하는지, 매번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들만 늘 사랑하는 세상이다.

가짜가 많다고 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어, 가짜를 진짜처럼 생각하면 된는 거야
가짜로 인해서 이렇게 행복할 수 있쟎아.

진실이 거짓말을 하는 세상이다.
세상이 만든 진실이 미워지면 너만의 가짤를 만들어라.
네가 원하는 그 상상이 진짜다. 네 진심이 깃든 상상으로 이 세상에 복수하라.
그러면 해복해질 것이다.




정말 딱 20대가 쓸 수 있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아직 엉성하고 그리고 개연성조차 허술하지만
유머와 위트 그리고 경박스럽지 않은 정도의 가벼움이 있다.
한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20대도 힘들까?
참 오만하고 겁없는 질문이었다.
문득 그 질문을 하던 내 모습이 생각나 책을 덮고 웃는다.
20대도 웃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8. 26. 13:37
<다이어트의 여왕> - 백영옥


다이어트의 여왕 


<스타일>의 작가 백영옥이 쉬크하고 엣지(?)한 두 번째 칙릿소설 <다이어트의 여왕>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일단 재미 하나는 정말 제대로 있습니다.  뻔한 내용을 가지고, 그것도 제목에 책의 내용을 아주 노골적으로 다 드러내고서도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썼다는 사실은 한없이 부러운 일이죠.

전작처럼 “요리사”가 등장합니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스타일>에서는 주변 등장인물이었는데 <다이어트의 여왕>에서는 드디어 주인공으로 등장을 했네요.


정연두!

28세 꽃다운 나이로 신장 173cm (여기까지는 참 부러운 대목입니다), 몸무게는 85kg, 조금은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는 레스토랑 <퍼플>의 셰프.

어느 날 그녀는 3년 동안 사귄 애인 하정민(56kg)으로부터 결별을 통보받습니다.

뭐, 실연의 고통을 굳이 폭식으로 달랜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이별 통보 후 그녀의 몸무게는 0.1톤에서 7kg 모자란 93kg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전 그녀의 “요리사”라는 직업과 “허기”(어떤 의미에서 “체중”)에 대한 논리가 참 정당하게 다가왔습니다.

“요리사는 절대로 배고프면 안 돼! 그러면 음식에 너무 관대해져. 그런 사람이 만든 음식에 디테일이 있을까? 좋아! 나 뚱뚱해. 근데 그건 내 직업병이야. 난 직업윤리를 가진 요리사이고, 무엇보다 내 직업병이 자랑스러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방송작가 친구 김인경의 강력한 권유로 <퍼플>도 그만두고 1억원 상금이 걸려있는 서바이벌 리얼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8주간의 합숙소 생활을 시작합니다.

“비만은 질병이자 전염병이다”

첫날부터 14명의 육중한 경쟁자들이 들은 첫말은 전혀 달콤하지 않은 살벌한 말이네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에게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미혼모 박순옥, “단비”라는 이름에 맞은 사람이 되어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찾겠다는 182cm, 121kg의 42세 최고령 참가자 최단비 여사, 운동할 때조차도 구두를 포기하지 못하는 악녀 캐릭터의 구두디자이너 송준희 등등....

눈물 많고, 사연 많고, 다른 무엇보다 특히나 살 많은 14명의 참가자들.

그들은 이제 A, B 두 팀으로 나뉘어져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미션의 결과가 나오면 패한 팀에서 스스로 탈락자 1명씩을 선정하게 되죠.

이 상황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공개적으로 팀원을 비난하고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팀원에게 설득해야만 합니다.

“언어”와 “감정”의 전쟁터인 셈이죠.

어쩐지 “입”이라는 신체 부위가 범상치 않게 다가옵니다.

“요리사의 입”과 “작가의 입”

왜 작가들이 미각과 탐식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그와 관계된 인물들을 창조하는데 열광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의 발설 혹은 폭로의 욕구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신체기관이 바로 “입”일 테니까요.

입의 말을 손으로 대신 말하면서 미(美)를 탐하는 작가와 손의 감각보다 입의 감각으로  미(味)를 탐하는 요리사....

이쯤이면 썩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폭로와 발설, 비방과 힐난의 긴 8주간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최종 우승자가 결정됩니다.

우리의 주인공 연두가 1억원의 여왕이 됐을까요?  8주간 총 48kg 살을 뺀 기적을 만든, 늘 모자를 쓰고 다녔던 최고령 “최단비” 여사가 최종 우승자로 뽑힙니다. 그리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다시 진짜로 시작됩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정연두는 “최고의 스타. 정연두 셰프 입성! <다이어트의 여왕>이 마련하는 최고의 만찬을 즐기세요!”라는 광고간판과 함께 레스토랑 <퍼플>의 부주방장이 되어 다시 주방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매스컴의 효력으로 레스토랑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고요.

그런데 이런! 그녀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벼락 스타가 되어버린 정연두 그녀에게서 점점 이상징후가 보이는 시작하네요.

점점 후각이 예민해지더니 급기야 야채도, 고기도, 그 무엇도 먹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의 몸이 내는 비명소리를 피하기 위해 그녀는 수면제와 알약에 의지하며 요리를 하죠. 손님들에게 음식에 대한 클레임이 들어오는 횟수도 점점 늘어납니다.

음식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의 몸은 이제 늘 허기에 지쳐있습니다.

“한 번도 배고픈 적 없던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너무 배가 고파서 칼을 쥔 손가락 열 개를 베어 뼈까지 와작와작 다 씹어 먹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내 몸을 베어 먹어버린다면, 그것으로 체중이 늘어날까? 하루 종일 주방에 서서 나는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써는 대신, 상상 속의 내 몸을 씹고, 분해하고, 으깨며, 요리했다. 나는 내 살을 잘라 사람들에게 먹이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 몸속에 존재하는 지방과 살덩이들을 다 제거하고 싶었다.”

그녀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내 위치는 분명 바뀌어 있었다고....


93kg -> 79kg -> 52kg -> 47kg -> 41kg

173cm의 신장을 가진 그녀의 몸피는 계속 말라갑니다.

미각까지 상실한 그녀는 결국은 <퍼플>에서 쫒겨나기에 이르죠. 맛을 느낄 수 없는 요리사가 만든 음식에는 결코 진실성이 담기지 못할테니까요. “신경성 식욕부진증”, 그녀는 이제 거대한 “거식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미각을 잃은 세 치 혀가 내뱉는 말은 이제 그녀에게 공허할 따름입니다. 그녀의 “혀”는 드디어 “가짜”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찾아온 요요현상에 대한 두려움.

그녀의 텅 빈 위는 금기야 그녀의 모든 생활까지도 텅 비게 만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하나씩 소위 까발려지는 참가자들의 진실들.

쇼에 참여하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운 송준희, 우승자 최단비 여사는 성전환수술로 여자가 된 남자모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인터넷에 유포되는 모델시절의 사진들, 그리고 정연두의 사진들과 무수한 댓글들....

그녀를 포함한 모든 괴물들의 적나라한 모습들.....

그녀는 어느덧 뚱뚱했던 시절의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시절의 미덕들, 긍정성, 명랑함, 사랑과 동경같이 빛나는 것들을요. 그뿐만 아니라 처음엔 수첩을, 다음엔 핸드폰을 그리고 삼 년을 지켜보던 고양이와 직장, 몇몇 친구들까지도 말입니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그녀는 모두 다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식이장애클리닉을 찾은 그녀에게 의사는 거식으로 인한 “가성치매”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말하죠.

“정연두씨는.....말하자면 이 병을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모든 거식증 환자들처럼, 낫고 싶지 않은 거죠. 먹지 않는 것이 엄청난 능력이라고 자부하고 있어요..... 정연두씨는 기억이 돌아오는 것보다, 다시 뚱뚱해지는 게 훨씬 더 두려운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사람은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보다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가 훨씬 크다고 합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이해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하네요. 바보 같고, 멍청하고, 때로 죽이고 싶을 만큼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까지도요.

성공적인 치료로 50kg 진입을 앞두고 있는 정연두는 말합니다.

“이제야말로 나는 진짜 내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었다. 바뀐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선 타인의 시선 역시 필요하다는 것, 거울 없이는 자신의 앞모습은 물론이고 뒷모습까지도 우리는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는 중이다.” 라고....

결국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잃었던 미각을 찾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잃었던 귀를 잃었던 시선을 찾는 게 훨씬 더 필요했던 거죠.

드디어 그녀도 말하네요.

“이제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기꺼이! 온 마음을 열고서 말이다....”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한 그녀, 정연두.

어느날 조카와 함께 찾은 서점에서 한 사람을 목격합니다.

그녀가 그렇게 살을 찌우기 위해 노력했었던 그 남자, 하정민이 불과 몇 개월만에 후덕한 아저씨의 모습이 되어 서점 안을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그의 모습을 목격한 그녀는 생각합니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던 정민이 비로소 편안하고 온전한 연애를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고..... 뚱뚱해졌지만 활기차 보이는 그를 보면서 이제야 끝나지 않았던 정민과의 연애가 진짜로 끝나게 됐다는 걸 그녀는 알게 됩니다.


“허기”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삶의 “결핍”이라고 하네요. 때문에 우리가 사랑에 배고프고 관심에 목마른 것도 모든 거식증 환자들의 허기와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배고픔”과 “허기”를 적당히 잘 조절하고 지배(?)하는 것!

어쩌면 그게 내 삶의 여왕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까요?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폭식”과 “거식”의 경계선을 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14명의 참가자들이 모인 만찬의 자리.

모든 비밀들이 하나하나 폭로된다고 해도 이제 그녀는 다시는 어떤 것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훨씬 끔찍한 것은 폐쇄된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기 마련이니까요.

여자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날씬한 또 다른 진짜 내가 살고 있다고 믿는다네요.

그래서 조금만 몸을 움직이고, 조금만 덜 먹으면 뚱뚱한 몸은 어느덧 낡은 코트처럼 벗겨지고 그 속에 원래의 내 모습이 들어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몸 어딘가에 달린 지퍼만 찾아 쭉 열면 지금까지의 헌 몸은 사라지고 환상적인 새 몸이 눈앞에 펼쳐질거라고....

그러나 이런 “환상” 속에는 여지없이 “독”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환상”은 부디 “환상”속에 남겨두고 우리는 열심히 치열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라고 이 책은 말해주네요.

세상의 모든 결핍에 대응할 준비, 이쯤이면 당신은 되셨겠죠?

자, 이제부터 현실로 출발합니다.


"Are you ready~~?"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