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2. 24. 06:39
법학을 전공한 법대 교수,
그리고 실제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기도 한 베른하르트 슐링크.
소설을 쓰는 사법인이라...
이 사람의 책을 전부 3권 읽으면서도 난 이 조합이 여간해선 잘 믿기지 않는다.
선입견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섬세한 감성을 가진 문학적인 판사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니...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귀향> <다른 남자>
세 권의 책은 경이로울만큼 아름답고 집요하고 끈질긴 이야이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내 속에 남아 계속 살아있는 그런 이야기.
장편이 주는 울림도 잊을 수 없었는데 6편의 단편이 주는 울림도 만만치 않다.
전후 독일, 그리고 죄와 책임에 대한 문학적 화두(話頭)
어쩌면 그가 독일인이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남과 북, 동과 서로의 분리.
독일과 우리의 역사적 테제는 그렇게 문학적 테제가 되어 원죄처럼 남아있다.
독일은 과거란 시점으로, 그리고 우리는 아직 현재진행형의 시점으로...



소녀와 도마뱀
외도
다른 남자
청완두
아들
주유소의 여인



6편의 단편 중 책의 타이틀인 <다른 남자>는
스트븐 달드리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처럼 영화화가 됐었다.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트 윈슬렛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바로 그 작품... 챙겨서 봐야 하는데... 쩝!)
리처드 이어 감독이 만든 영화 <다른 남자>는
2008년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공식 개막작이기도 했단다.
책에 나오는 여섯 명의 다른 남자.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곳에서 이곳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살았고, 그리고 기억되는 남자.
그 모습을 목격하거나 혹은 뒤늦게 알게 된다면
가장 가까이 있었던, 가령 부인이나 남편은 그 뜻밖의 사실을 알고 어떻게 할까?
의외로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담담해서 처연하다.
인간의 추한 이면과의 대면의 까발림을 기대했다면...
글쎄...
내겐 이 여섯 명의 다른 남자들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하고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일부러 꾸민 모습을 전부로 아는 누군가가 저쪽에 있다는 건,
어찌됐든 살아가는 데 또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진실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어쩌면...
나도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다른 세상을 원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그가 이번에도 나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놨다.
그러니 이곳에서 잠시...
살아봐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20. 06:14
이제야 읽었다.
연극의 명성으로만 들었던 책.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지만 선듯 손에 잡지 못했던 책.
연극도, 책도 명성으로만 알고 있던 책.
너무 진지할까봐 혹은 너무 민망할까봐 사뭇 걱정스러웠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모든 여성은 대개 성기에 대한 엄청난 부담과 부끄러움을 안고 성장한다.
성기에 대한 부끄럽지 않아도 되는 때를 희망하며
이 책은 비밀시되고 은밀하게 취급했던
여성 성기게 입을 달고 말을 시작한다.
가령, 여성 성기에 옷을 입힌다면 적당한 옷은 어떤 것일까?
대표되는 냄새는 어떤 것일까?
그리고 말을 건다면 그 처음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당신도 한 번 답해보라 은근히 부추킨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 책을 처음 출판하기로 했던 출판사는
작가에게 계약금가지 지불했지만
결국 출판을 포기했하고 원고를 반환했다고 한다.
그 내용이 파격적이거나 과격하지도 않았는데
단지 여성 성기 운운하는 것에 지례 겁을 먹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강간이나 할례!
여성 성기에 행해지는 저급하고 치명적인 불행.
이 불행을 멈추는 시작은 은어나 속어로 불려지고 있는 여성 성기에
제대로 된 이름을 당당하게 부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단다.
불행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종식될 수 있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은 여성 스스로 처벌이나 응징에 대한 두려움 없이
여성 성기에 대해 말하게 하는 것이라는 게 이 책의 요지이기도 하다. 



초경의 기억, 여성의 오르가즘, 신음소리
그리고 버자이너의 질감과 클리토리스에 대한 독백들.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별 기대는 마시라.
어쩌면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절대 아닐 수 있으니...
읽을 수록 왠지 서글퍼지는 책이다.
왠지 여성이, 여성을 여성이게 만드는 생물학적 성적 차이가
성적 차별보다 더 접근하기 힘든 철옹성처럼 느껴진다.



1996년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초연됐다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우리나라도 지금 대학로 소극장에서 오랫동안 공연되고 있다.
위노라 라이더, 우피 골드버그, 케이트 윈슬렛, 브룩쉴즈, 기네스 펠트로 등
전 세계 유명 여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출연하게 만든 연극
그 출연료는 보스니아 등 소외된 세계 여성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 마디로 무지 착하고 기특한 연극!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찾아서 보고 싶다.
혼자 조용히 버자이너의 독백들.
대꾸하게 될까? 나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4. 19. 23:00
 
<책 읽어주는 남자 > - 베른하르트 슐링크


오늘도 역시 특별한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자극적이고, 관능적이며 모호하고, 몽환적인 책, 심지어 무기력하기까지 한 책.
먼저,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네요.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이력이 참 재미있습니다.
판사가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
논리적이고 너무나 현실적인 직업의 판사, 그리고 비현실과 상상 세계의 탐험자인 작가... (우리나라에도 어느 날 이런 조합이 한 번 나타나주면 참 좋겠습니다)
올 2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가 바로 이 책을 가지고 만든 영화죠.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은 책 표지가 “케이트 윈슬렛”의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예전에 출판된 책의 표지는 지금과는 많이 다릅니다.
빨간 배경 한 켠에 그림이 보이네요. 한 남자의 손. 여자의 벗은 몸에 손을 올리고 있는 성장한 남자의 손. 책의 뒷면으로 가면 그림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꽤 오래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표지가 좀 더 강렬한 빨간색이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림은... 약간 카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여서요.
그 손은,
그러니까 한 여자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막 그녀의 첫 페이지를 넘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왠지 떨리네요. 마치 주인공의 간절함처럼...


한 남자가 있습니다.
세 번, 이 남자는 “한나”라는 이름의 한 여자와 일생동안 세 번 관계됩니다. 그것도 아주 깊게 그리고 은밀하게 마지막엔 지배적으로 말이죠.
첫 번째는 15살 어린 소년이었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귀가하는 길에 소년은 느닷없는 구토 증상을 경험하죠. (이 부분, 참 재미있습니다. 예전 책엔 “황달”이라는 병명으로 나오는데 지금 책은 “간염”이라고 나오네요. 해석의 오류였을까요?)
오물로 더럽혀진 소년을 데리고 들어가 깨끗이 씻겨 집까지 데려다 준 사람이 바로 36살의 그녀, “한나 슈미츠” 입니다.
도덕성에 대한 비판의 여지가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처럼 이야기되고 있지만,
어쨌든 15살 소년은 36살 한나를 통해 육체적인 성에 눈 뜨게 됩니다.
결과는 뻔하죠, 꼬마(그녀가 그를 그렇게 부릅니다)는 도무지 그녀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급기야 학교 공부도 소홀하게 되죠.
그런 소년에게 한나는 말합니다.
“공부를 하지 않으려면 다시는 찾아오지 마!”...
그들에겐 어떤 의식 같은 절차가 있습니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같이 누워 있기
그녀는 항상 그에게 책을 읽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의식의 시작은 “책 읽어주기”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죠.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소년을 본 그녀는 다음날, 사라져 버립니다. 살고 있던 집을 비우고 승진시켜주겠다는 전차 회사도 그만둔 체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녀의 실루엣은 그대로 소년에게 남겨집니다.

다시 그녀를 보게 된 건,
나치 강제 수용소와 관련된 법정에서였죠.
그녀는 가스실행 인원 선별 작업을 수행하던 여자감시원 중 한명으로 기소되어 있습니다.
다른 모든 피고인들이 문서와 보고서는 한나가 썼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심지어 스스로 시인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죠.
그러나 그는 알게 됩니다.
그녀가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는 걸...
그는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자, 이제 그도 더 이상 자유로울 순 없게 된 셈이네요.
법정에서 한나는 판사에게 되묻습니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라고...
어쩌면 그는 판사를 향한 질문을 자신에게 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나에게 향하는 손가락질에 개입하지 않고 그 손가락질을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스스로 수치심의 고통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죠.

세 번째 그녀와의 대면,
그는 지난 10년간 한나에게 책을 녹음해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편지를 보내진 않았죠. 심지어 그녀가 편지를 보냈을 때조차도 그는 답장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교도소장이 그에게 연락을 합니다.
그녀의 사면을 알리면서 18년 동안 갇혀 지낸 한나의 사회적응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죠.
한나에게 우편물을 보낸 유일한 사람이 바로 그였으까요.
마침내 사면되는 날 아침, 한나는 스스로 목을 매 자살을 합니다. 그녀가 남긴 유품들을 정리하던 그는 오래된 신문 기사를 발견합니다.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 실린 신문 기사를 말이죠.
교도소장이 말합니다.
“그녀는 당신과 함께 글 읽기를 배웠어요....”

문맹은 미성년 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한나는 그를 통해 읽고 쓰기를 배움으로써 드디어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성장한 셈이죠.
그가 한나를 통해 비로소 성년이 된 것처럼...
그렇다면 이 책,
사랑에 대한 책일까요?
전 사랑 보다는 지독한 그리움에 대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관통한 강렬한 그리움. 그 날카로운 대한 기록이라구요.
때론, 누군가에겐 패배가 승리가 될 때가 있습니다.
평생 한나의 실루엣에 휘감겨있던 그.
이제 그는 고향에 돌아온 셈이네요.
약간의 위장도 이젠 필요하지 않을 테죠.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유를 손에 쥐었으니까요. 그녀의 자유 그리고 그의 자유 모두를 말입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선택했다”
그의 고백입니다.
이쯤 되면, 당신의 표정 또한 궁금해지네요....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케이트 윈슬렛에게 2009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겨줬습니다.

그런데 이 배역에 많은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 아세요?

원작자는 처음부터 케이트를 주연으로 원했는데 당시 한창 촬영중인 영화가 있어 그녀 스스로 캐스팅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티븐 달드리 감독과 <디 아더스>에서 함께 작업했던 니콜 키드먼에게 그 역이 돌아갔고 촬영이 시작됐다고 하네요. 그러나 그녀의 임신으로 촬영은 중단되고 말죠.

그 사이 전작의 촬영을 다 마치고 쉬고 있던 케이트 윈슬렛에게 다시 한나 역이 돌아가게 된 거라고 합니다. 결국 그녀는 이 역으로 아카데미의 꽃이 됐구요.

소년을 연기한 데이비드 크로스 역시도 사연이 있네요.

촬영 시작 당시 그는 미성년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작진들은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닥칠 후폭풍을 염려해서(의외로 미국이란 나라 보수적이쟎아요...) 영화에 등장하는 베드신은 그의 18세 생일에 급히 촬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화 시사회 후 몇몇 장면들에 대해 윤리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원작을 보면, 처음엔 강한 거부감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처음 생각과는 분명 달라져 있을 거예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대체 어떤 내용이 기다리고 있길래 달라지게 되는지.....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