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4. 12. 06:28


일 시 : 2010.04.06 ~2010.05.05
장 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출 연 : 박지일, 서주희, 김세동, 오지혜
극 본 : 야스미나 레자
연 출 : 한태숙



수컷들의 수다, 연극 <아트>의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또 다른 사회 풍자 코메디 연극 <대학살의 신>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그 치열(?)하고도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유쾌하면서도 히스테릭한 이야기다.
출연하는 배우들의 내공만으로도 기대가 됐던 작품이다.
초연이라 망설이지 않았느냐고?
대답은 "Never!"다.
배우도 그렇고 연출가(한태숙)도 그렇고 기본 이상은 일단 베이스에 깔고 생각해도 무방한 작품.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100분 동안 두 부부의 기상천외한 행동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이 코메디가 웃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현실이라는 걸 절감하게 만드는 그 씁쓸함이라니...
글쎄, 이게 우리나라 상황이라면,
미안하지만 솔직히 상상만으로도 겁이 난다.
결코 코메디가 아닐 것만 같아서...
(아이 문제라면 왜 부모들은 이성과 상식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



이렇게 멀쩡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거실이
(비록 그게 상대편에게 보여지기 위한 가식일지라도 말이다)
이야기의 끝엔 결국 난장판 초토화가 된다.
아주 고상하고 예의바르지만 그러면서도 묘하게 신경전으로 시작되는 연극 <대학살의 신>
이야기의 발단은 분명 11살 사내 아이들이었다.
"그러니까... 4월 3일 오후 5시30분 뒤낭 공원에서 막대기로 중무장한 열한 살의 페르디낭이 우리 아들 브루노의 안면을 정통으로 가격했습니다. 이 결과로 우리 아들 브루노는 앞니 두 개가 나갔고 그 중에서도 오른쪽 앞니는 신경이 끊어졌습니다."
검사가 사건 개요를 읽어나가듯,
피해자 브루노의 엄마 베로니카(오지혜)가 두 부모가 이렇게 모이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가해자 페르디앙 부모는 지금 그 "중무장"이란 단어가 몹시 거슬리는 중이다.
그러니까 브루노의 부모는 이 사건을 명백한 "아동 폭력 사태"로 보고
재발 방지를 위해 마녀사냥을 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있다.
그러나 모르시는 말씀!
자기 자식이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되는 걸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그 자식이 비록 야만인(?)일지라도 말이다.
페르디앙의 부모는 오히려 철저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폭력의 원인을 누가 유발했는가?"가 중요하다는 입장.
(그 이면엔 당신 아들이 원인제공자라는 노골적인 질책이 담겨있다.)



연극은 다채롭고 그리고 확실히 재미있다.
자기 아들을 다치게 한 아이의 부모에게
우리는 이렇게 교양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일종의 기선 제압 목적으로...)
일부러 비싼 꽃을 사서 집안을 꾸미고 차와 파이를 대접하는 브루노 부부의 교양을 가장한 속물근성과
어찌됐든 사과하기 위해 찾아온 브로노 집에서
끊임없이 전화를 받는 변호사 알랭(박지일)의 모습.
게다가 페르디앙의 엄마 아네뜨(서주희)는 급기야 추대라고 할 수 있는 행동까지 보인다.
멋지게 꾸며놓은 거실에 토사물을 뿜어놓는가하면
젠 체하기 위해 꾸며놓은 꽃들로 거실 여기저기를 그야말로 완벽하게 패대기친다.
(근데 도대체 왜 내 속이 다 시원한거지??? 어찌됐든...)



품격과 교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네 사람.
(순전히 희망사항이지만)
그러나 이야기는 점점 어이없는 분노와 폭력성에 사로잡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고상과 교양이 서서히 분노와 이기의 본능으로 바뀌는 걸 바라보는 건,
유치하면서도 솔직히 뜨끔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의 문제에 관해서라면
명확한 이성과 지성의 작용이 쉽진 않겠지만
이런 상황이 심심치 않게 현실로 나타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다소(사실은 많이) 민망하고 부끄러워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부부로서 대비되는 두 커플의 성향(?)도 참 재미있지만
순간순간 편이 바뀌는 모습도 독특한 재미를 준다.
부부로서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어느 순간 남자 대 여자로 또 다시 으르렁거리고
약과 관련되서는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로 으르렁거리고...
이 연극은 일종의 거짓과 은폐.
그리고 교양인의 탈을 쓴 위선에 대한 유쾌한 조롱이라고 할 수 있다.
까발려지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물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한 통쾌함은 솔직히 속을 시원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남편의 휴대전화를 화병속에 담그는 장면이라던가
붉은 토사물을 거침없이(?) 뿜어내는 야만에 가까운 분출이 주는 즐거움은
분명 엄청난 대체 만족을 주는 카타르시스다.
코믹하면서도 야비함까지 느껴지던 배우 박지일의 핸드폰 받는 표정이라든가
그걸 바라보며 어이없어 하던 브루노 부부의 표정,
그리고 민망해하면서도 어딘지 고소해하는 알랭의 부인 아네트의 표정까지
네 명의 표정 속에 스스럼없이 나 자신의 표정이 겹쳐진다.



<대학살의 신>이란 제목은 지성인인 척 고상을 떨지만,
결국 다들 서로 헐뜯고 싸우는 인간의 잔인함을 조롱하는 말이란다.
연극적인 코믹이 주는 불편함과 유쾌함은
기본기 빵빵한 네 배우들을 만남으로써 그 재미가 한층 더해진다.
나 자신에 대한 속물근성과의 불쾌한 마주침이기도 하지만 
더불에 유쾌한 반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토사물...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제대로, 손 쓸 수도 없을만큼,
대책없이, 황당하게 뿜어낼 수 있었을까?
그게 연기라면... 이건 정말 완전 대단한거다. ^^



오늘 하루의 "지랄 같음"을 호소하는 아네트의 마지막 모습.
한쪽 알이 빠진 선그라스를 쓰고 철퍼덕 퍼져 앉아 있던 모습이 아직도 임펙트 강하게 남아 있다.
그 모습이 하도 나 같아서...
나 역시도 숱한 지랄 같은 하루 속에 대책없이 퍼질러 앉아 있는 중이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2. 25. 06:00

오늘 같은 날씨에 읽기에 딱 좋은 소설.
그동안 폴 오스터의 책들을 그래도 꽤 읽었고
그 책들 모두 재미있었지만
이번에 읽은 <환상의 책>이 제일 마음에 든다.
왠지 묘한 이질감과 미궁 속에 빠지는 느낌.
책을 읽는 내내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의 "미궁"을 떠올렸다.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괴기스러운 음악을 차마 끌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말 그대로 나는 완전히, 그리고 완벽히 얼어있었다.
그대로 고정돼버렸던 무시무시한 기억.
내가 간직한 최고의 아름답고도 섬뜩하고도 그리고 끔찍했던 음악 "미궁"
물론 그 정도의 충격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이 책도 왠지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관음의 시선과 귀를 갖게 한다.



"Book of illusion"
원제가 더 매력적이고 직접적인 책.
"illusion"이라는 뜻에는 왠지 은밀하고 비밀스런 느낌이 있는데
"환상"이라고 번역했을 땐 왠지 허황된 눈속임같은 느낌가 강하다.
그래서 번역된 책을 볼 때는 항상 그 원제를 찾아보는 게 중요한 포인트!
탐정소설과 연예소설이 영화적으로 뒤섞여 있는 책.
책을 보면서 스크린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책.
그러면서도 열렬히
인간의 주체성과 자아에 대한 깊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
스스로에 대한 진실성에 연타를 가한다.
그래서 읽는 사람을 당혹하고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는 책.



오래 전에 실종된 무성 코메디 영화배우 헥터 만과
평행이론 같은 삶을 사는 대학교수이자 작가 데이비드 짐머.
그 두 사람의 같지만 다른 이야기, 그리고 추적과 멈춤, 끌어당김과 거부들...
책의 시작에는 샤토브리앙의 글이 헌사처럼 적혀있다.
......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이르는 여러 다른 삶을 살며 그것이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유쾌한 희망을 함께 건네는 결말에
유난히 나는 신나했다.
"믿거나 말거나"의 뉘앙스로 끝을 맺는 폴 오스터의 글들은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모든 이야기가 마치 사실이었던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어딘가  헥터 만이 출연한 <마틴 프로스트의 내면적인 삶>, <투명 인간> 같은 영화가 있을 것만 같고
어딘가 데이비드 짐머가 쓴 <헥터 만의 무성 세계>라는 책이 있을 것만 같아
그것들을 찾아 나서고 싶은 욕구마저 안긴다.
마치 삼원색 같은 책,
그러면서도 어느새 무지개의 다채로움까지 선사한다.
폴 오스터의 세계.
늘 유사하면서도 결코 한번도 같지 않았던 그의 세계.
그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세계들이 나는 아직도 많이 궁금하다.



그의 세계를 하나하나 섭렵해나가는 재미는 그래서 항상 새롭고 신비롭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읽은 세계들이 더 많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게 되는 이유는
내게 늘 실종을 꿈꾸게 한다는 사실.
그게 포인트다. ^^

<국내에 소개된 폴 오스터의 작품>

  • 고독의 발명 (The Invention of Solitude) (1982)
  • 뉴욕 삼부작 (The New York Trilogy) (1987)
  • 폐허의 도시 (In The Country of Last Things) (1987)
  • 달의 궁전 (Moon Palace) (1989)
  • 우연의 음악 (The Music of Chance) (1990)
  • 거대한 괴물 (Leviathan) (1992)
  •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Auggie Wren's Christmas Story) (1992)
  • 공중 곡예사 (Mr. Vertigo) (1994)
  • 빵굽는 타자기 (Hand To Mouth) (1997)
  • 동행 (Timbuktu) (1999)
  • 환상의 책 (The Book of Illusions) (2002)
  • 신탁의 밤 (Oracle Night) (2004)
  • 브루클린 풍자극 (The Brooklyn Follies) (2005)
  • 어둠속의 남자 (Man in the Dark) (2008)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