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12. 28. 06:20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조선의 유토피아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되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꿈속에서 본 장면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
이것을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견을 부른다.
그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해주고 이를 그리라 명했는데
안견은 사흘 만에 그림을 완성해 안평대군에게 바쳤다.
그림은 받아본 안평대군은 별도로 <몽유도원기(夢遊桃源記)>라는 글을 통해
자신이 꿈 꿈과 이것을 그림으로 남기게 된 사연을 자세히 설명했다.
안평대군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림 첫머리에 큼직하게 제목 글씨를 써 붙이고
집현전 학사 등 당대 쟁쟁한 문인 스물한 명에게 이를 기리는 시와 문을 받기까지 했다.
이로써 몽유도원도는 20여 미터가 넘는 길이의,
당대 최고의 문인과 예술가들의 그림과 글이 한 편의 두루마리에 다 들어간 역작이 된다.
그러나 원본은 1453년 계유정난 때 누군가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
그러다 1800년대 후반에 일본 유력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1939년에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는 비운의 운명이 된다.
현재 <몽유도원도>는 일본의 덴리대에서 소장중이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주 가끔 일본에 빌려서 전시하는 상태다.
가장 최근의 전시는 2009년 9월 29일부터 10월 7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있었다.
어물쩡거리다가 이것도 어이없이 놓치고 말았다.
언제 다시 또 오게 될지 모르는 상태였는데....
뉴스를 통해서 본 길게 늘어선 관람줄에 그만 덜컥 겁이 났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 책을 읽고 안평대군의 꿈 속에 박팽년, 신숙주, 최항이 등장했다는 걸 알게 됐다.
박팽년은 처음부터 안평대군과 동행했고
신숙주와 최항은 나중에 뒤에서 나타났다고 하는 꿈의 내용은
마치 계시나 혹은 암시처럼 섬득하게 다가온다.
...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도원을 본 것은 그의 나이 서른인 1447년이었다. 그후, 그의 형인 수양대군이 자신의 지지자들과 힘을 합하여 계유정난을 일으켜 원로대신 김종서를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때가 단종이 즉위한 이듬해인 14532년이다. 수양대군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많은 이들의 신망을 받고 있는 안평대군의 존재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양대군은 계유정난 당시 안평대군을 역적으로 몰아 강화 교동도로 유배 보냈다가 결국 죽여버린다.
수양대군이 1457년에 이름뿐인 왕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로 유배 모내고 마침내 거기서 죽이는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박팽년은 끝까지 수양대군, 즉 세조에게 협조하지 않고 단종복위 운동을 벌이다가 1456년에 죽임을 당했다. 반면 신숙주와 최항은 수양대군의 편에 서서 정난의 공신이 되었다. 특히 문종으로부터 단종을 도울 것을 부탁받았던 신숙주는 오히려 단종의 처형을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

안평대군은 혹시 자신의 처지를 어느정도 예상했을까?
그래서 그토록 자신이 본 꿈의 장면에 집착하고
심지어는 인왕산 기슭에 무계정사(武溪精舍)를 지었던 건 아닐가?
세상 번뇌와 아픔과 고통이 없는 세계를 꿈꾸며 무계정사를 지었을 안평대군은
오히려 이 건물 때문에 상당히 심한 비판을 받고 더 많은 이들로부터 경계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형 수양대군의 수하에 의해 강화도로 유배되고, 이후 죽음을 맞는다.
지금 그는 자신이 그토록 꿈꿨던 복숭아꽃 가득한 "몽유도원"에 있을까? 
왕실의 인척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피비린내 진동할 일인데
왕의 형제라는 자리는 얼마나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자리일까?
피가 피를 부르는 왕위 자리를 보면서
안평대군은 꿈 속에서 본 그 세계 속으로 간절히 들어가고만 싶었을 테다.
어쩐지 처연하고 가련하다.



우리 조상들이 꿈꾼 이상사회는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세계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일하면서 노동에서 오는 풍요와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세상을 뜻한단다.
인간이 자연을 존중하고 절제하면서 이용함으로써
자연도 그 정성에 충분히 감응하는 세상이 바로 이상공간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즐기며 사는 모습.
꼭 조선까지 시간을 뒤로 돌리지 않더라도
참 훌륭하신 대통령 덕분에 나도 이 세상이 꿈 속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중이다.
어째 몽유의 대상이 완전 뒤바뀐 상태라 여러모로 민망스럽긴 하지만
어찌됐든 이 또한 지나갈 것임을 간절히 믿는다.
(안 믿으면 이걸 어찌 살아~~~!)
파란 지붕에 계신 겁도 안 나게 훌륭하신 분은 알까?
백성들이 속세를 떠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유가
국가 권력에서 비롯된 폭정에 대한 도피라는 걸.
(이것도 좀 코믹하게 말고 제대로나 하시던지... 쯧쯧!)
혹시 내가 언제 폭정을 했냐고 말하신다면...
대략 난감이다...
어쩐지 이 멋진 공화국에선
무병장수의 기원마저도 허당같다.

실제로 100년 정도 이어졌다던 판미동 같은 곳,
혹시 지금은 없을까?
살면서 겪는 지긋지긋한 몽환의 세계에서 이제 그만 도망치고 싶다.
참 몰염치하게 길고 긴 악몽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2. 17. 05:50
기사를 기억한다.
2009년 2월 9일 성균관대학고 600주년 기념관에서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의 어찰 297통이 공개됐다는 기사를.
그때는 임금이 신하한테 보낸 편지가 뭐 그리 특별하다고...하면서 자세히 읽지 않았었다.
지극히 편애하는 정조와 관련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조어찰첩(正祖御札帖)
흩어져 있는 것까지 합치면 모두 350편이나 되는 방대한 양의 편지다.
그것도 정조와 대립했던 인물로 알려진 노론 벽파의 핵심 인물 심환지 한 사람에게만 보낸 비밀편지.
정조는 편지에서도 폐기하라고 몇 번씩 명령했으나
심환지는 어떤 이유에선지 왕명을 거슬리고 이 편지들을 보존했다.
편지를 받은 날짜과 시각까지 따로 세세히 기록하면서까지... 
정조 독살의 주도자로 알려진 심환지에게 정조가 그토록 많은 비밀편지를 보낸 이유는 뭘까?
그리고 심환지 역시 폐기를 명령한 편지를 온전히 보존한 이유는 뭘까?
시작부터 이 책은 내 흥미를 완벽하게 잡아 끌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같은 공식적인 사료와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과는 사뭇 많이  다르다.
정조는 심환지를 조종하여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시키거나 사건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실제로 심환지를 비롯한 많은 대신들의 상소문이
사실은 정조의 지시에 의해 올려졌다는 사실도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정조는 여론을 청취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런 편지들을 이용했는데 이 편지들은 비밀스럽게 오고갔으며 
완벽히 폐쇄적인 형태의 의사소통이기도 했다.
(아마도 계산된 정치적 의도가 아니었을까?)
학구적인 성군으로 알려진 정조는 의외로 어찰에서는 거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김매순에 대해선 "입에서 젖비린내 나고 미처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이라고  표현했고
김이영을 향해선 "경박하고 어지러워 동서도 분간 못 하는 놈"이란 평가를 내렸다.
또 어용겸의 자제들에게는 "개돼지보다 못한 물건"이라는
상당히 걸죽한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말 새로운 정조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많이 봤다.)
또 주둥아리를 놀린다든가, 호로자식이라는 욕설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까지도 서슴치않고 사용했다.
한 나라의 국왕쯤 되면 항상 격있는 문장으로만 편지를 썼을 것 같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정조는 이두문자와 한글까지도 함께 혼용해서 사용했다.
(아래 사진의 어찰을 자세히 보면 한글이 보일 거다. "뒤쥭박쥭"이라는....)
이 사람이 문예반정을 추진한 그 정조가 맞나 싶을 만큼 새로운 발견이다.
자신이 비판했던 소품문의 문체를 그대로 비밀편지에 사용한 정조!
개인적으로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편지를 쓰면서 혼자서 껄껄 웃지 않았을까?)



...... 정조는 개혁을 추진한 학자풍 군주로서, 조선 전기의 세종과 더불어 성군 이미지로 한국인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 정조가 보낸 비밀편지는 자신을 독살했다고 오해할 만큼 적대적 관계로 알려진 심환지를 적극적으로 회유하고, 막후에서 비밀스런 지시와 조정을 주도하는 노련한 정치가의 수완과 동태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민감한 정치적 사인이 담겨 있어서 국왕이 없애라고 명령한 문건인데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관심을 한층 증폭시켰다. 게다가 비밀편지는 국왕 정조의 가볍고 다혈질적인 성미까지 폭로했다 ......

정조어찰은 정치사 사료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문학과 서예, 궁정의 문화와 생활사 같은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리고 정조의 사망과 관련된 숱한 의혹들에도 단서를 제공한다.
정조는 독살됐는가? 아니면 오랜 지병으로 인한 자연사인가?
1800년 6월 28일 사망한 정조는 6월 9일, 15일에도 심환지에게 편지를 보내 병세의 심각함을 알렸다.
책을 쓴 저자 안대회는
이덕일이 <조선왕 독살사건>에서 주장한 정조 독살설에 대해  6가지 논리를 들어 반론한다.
(이덕일의 책 역시도 오래전에 재미있게 봤었다)
어쩌면 사실 심환지는 정조의 명으로 노론 벽파의 핵심인물이 된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게 다 정조의 놀라운 정치적 계획이었다면?
이 책을 읽고 정조에 대해 내가 실망했을까?
정답은 "No" 다. 그것도 Never!
성군 정조가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면 이해가 될까?
덕분에 정조에 대한 애정이 더 생기고 말았다.
이러다 편애가 극심을 넘어 지극해질까봐 심히 걱정스럽다.


                               <정조>                                             <심환지>

* 정조의 초상화는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없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조의 초상화는 거의가 현대에 제작된 것들이다.
  문화의 르네상스를 만들었던 정조 입장에서 볼 때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