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9. 20. 06:37

작가 김주영(71)이 올해로 등단 40년을 맞았다,
칠순을 넘긴 노작가는 그러나 여전히 왕성하다.
<멸치> 이후 8년만에 새롭게 쓴 장편소설 <빈집>을 보며
허랑한 바람앞에 서있는 인간이 다시 떠올랐다.
왠지 허깨비같은 사람들.
장터같은 너저분한 마당에는 그러나 치열한 삶의 기운같은 것이 느껴진다.
한 편으론 바짝 마른 나뭇잎 한 장을 손에 들고 있는 것 같다.
조금만 힘을 줘도 그대로 부서져 버릴 것 같아 들고 있는 두 손은 점점 난감해진다.
"...... 내 안에 터질 듯이 더부룩한 탐욕이 있다. 그것이 나를 천성적인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내 일생이 소멸될 때까지 이 탐욕과 껴안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가늠은 계속될 것 같다."
<객주>, <활빈도>,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화척>, <홍어>, <멸치>, <아라리 난장>
숱한 장편을 쏟아낸 작가에게 아직 겨안고 엎치락뒤차락할 탐욕이 많다는 것은
순전한 독자에겐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의 글을 읽는 건,
펄떡이는 날 것을 바라보는 비릿한 생동감이다.
<빈집>의 처음 장면인 털게의 탈출처럼...
...... 바다를 떠난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가. 기력도 소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몰골조차 쪼그라든 게들이 물사레에 떠밀리며 마지못해 수족관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의 글은 고요하게 기습적이다. 
내리쬐는 탱볕 속에 딱 한 방울의 물방울이 이제 막 바짝 마른 흙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중이다.



1998년 발표한 전작 <홍어>에서는 아버지가,
2002년 발표한 <멸치>에서는 어머니가 집을 비웠다.
급기야 <빈집>에서는 도박판을 쫒아 집을 비운 아버지를 찾으러 어머니마저 수시로 집을 비운다.
가족이지만 모여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 부재는 다름 아닌 가족의 누군가를 찾아나서기 위한,
혹은 가족을 지켜내기 위한 부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말 가족은 울타리 안에 곱게 지켜졌던가?
책을 읽는 눈길이 가파르고 숨차다.
놀음판의 타짜, 그래서 늘 집을 비우는 아버지,
그 스트레스로 딸을 구박하다가 본인도 집을 나가는 재취 어머니,
빈집에 홀로 남은 어린 딸 어진.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영원한 가출은 결국 어진이 홀로 지키던 빈집마저 내주게 만든다.
쫓기듯 한 결혼생활.
벌레 취급하듯 자신의 존재를 혐오하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피해 외딴집을 도망친 어진은
그 옛날 아버지가 오동나무에 묻어둔 주소지를 찾아 이복언니 수진에게로 간다.
비곗덩어리 안성댁(수진)과 거식증으로 비쩍 마른 검불데기 절름발이 어진.
둘은 아마도 첫눈에 두 사람이 자매간인걸 알아봤으리라.
알면서도 서로 모른척하며 아무렇지 않게 언니, 동생하고 불러대며 말을 섞었으리라.
서로의 근본을 뻔히 알면서
한껏 다정한 이복자매의 모습은
가족의 부재만큼이나 아득하고 안스럽다.
빈집을 빠져나와 또 다시 빈집으로 건너가는 여정들...
그게 삶이었던가?



......내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어머니의 상처였다. 그래서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감정과 혼란의 파괴로 이루어진 최악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겉치레뿐인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것이 가능했고 모든 것이 정당화되면서, 결국은 모든 것이 괴멸되어버린 결과를 낳았다......
백수진, 백어진.
두 자매의 어머니는 평생을 서로 숨바꼭질을 하며 지냈다.
한쪽이 한쪽을 피해 도망치면 며칠 안에 어떻게든 귀신같이 알아내고 찾아오는 여자.
그럴수도 있겠구나.
그런 숨바꼭질 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도 있었겠구나.
결국 책을 읽고 있는 나까지도 그 관계 속에 위로받고 있다.
.... 엄마는 죽기 몇 년 전까지 줄곧 그 여자하고 술래잡기를 한 거야. 엄마가 사고무친한 객지를 떠돌면서 살았지만, 무엇하나 엄마를 흥분시키는 일이 있었겠어? .... 그 여자하고 숨바꼭질하는 흥분도 없었다면, 우리 엄마 살맛이 없었을 거야. 우리 엄마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면 그 여자한테 쫒겨다니면서 이사하고 살았을 때야. 이번에는 그 여자가 며칠 만에 집을 찾아낼까 긴장하면서 기다렸겠지. 나도 그 속내를 엄마 죽은 다음에야 깨달았지. 그 숨바꼭질이 그나마 폐병 앓앗던 우리 엄마를 예순 살까지 살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시켜준거야.....
......엄마가 참고 또 참았던 건 외로웠기 때문이야. 그런데 외로움을 타고 있기는 그 여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엄마는 하고 있었던 거야.... 미친년처럼 남편을 찾아 안가는 곳이 없었을 만큼 설레발치고 나섰던 그 여자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외로웠다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었던 거지.
이 세상에 나 빼놓고 엄마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그 여자 딱 한 사람뿐이었다면 이해가 돼?......

나는 대답한다.
그래, 이제 이해할 수 있노라고.
모든 것을 놓듯 떠난 이복자매 두 사람만의 여행길.
수진은 방파제 앞에 푸른 재킷을 벗어놓고 사라졌다.
어진은 생각한다.
...... 방파제 앞에 끝간데없이 펼쳐진 곳을 바다로 생각했다면, 신발을 벗어놓았을 텐데,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사막으로 알았기에 껴입고 다녔던 재킷을 벗어놓고 떠난 것이었다. 이제 사막으로 떠난 수진이 언니처럼 바다 끝에 서 있는 나 어진이 역시 온전히 혼자가 된 것이다......

파도같은 설움이 울컥 밀려온다.
사막의 냄새가 이럴까?
비릿하고 짭조름하다.
산다는 건,
늘 듬성듬성한 빈집으로 겅중겅중 뛰는 뜀뛰기같다.
손끝으로 푸른 사막의 비릿내가 진동한다.
어진이는 아마도 또 어딘가 빈집 속에서 오동나무 둥지같은 똬리를 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온 가족이 모이려나...
아득한 먼 길.
굽이굽이 돌아 이제 다시 모이려나...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 4. 05:45
 <노서아 가비> - 김탁환 

 
노서아 가비: 사랑보다 지독하다


유난히 추운 날씨와 어머어마한 폭설이 계속 이어지고 있네요.

뭐가 됐든 따뜻한 OO거리가 절실해지는 그런 날씨죠.

따뜻한 방에서 따뜻한 먹거리를 놓고 따뜻한 이야기를 듣거나 아니라면 차선책으로 따뜻한 책을 읽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 그다지 신빙성은 없으나 왠지 그럴싸하게 들리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죠.

몇 년 전 베스트셀러가 됐던 파리의 조선 궁녀 이야기 <리심>을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신비로운 조선의 궁녀 리심을 이야기 속에서 재창조했던 팩션소설가 김탁환의 따뜻하고 재미난 책 <노서아 가비>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진하거나 혹은 달콤한 한 잔의 커피를 준비한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야기 디자이너 김탁환, 그가 커피 디자이너인 조선 최초의 여자 바리스타를 <노서아 가비>에서 창조해냈습니다.

잠깐 소설가 김탁환에 대해 소개하자면 직장인처럼, 심지어는 고시공부하듯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으로 유명하죠.

매일 무슨 일이 있어도 원고지 50매 분량의 글을 그것도 꼭 아침에 쓰기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소설은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쓰는 것이라고 종종 말하기도 하죠. 스스로 소설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10년 동안 40여권의 책을 쓴 작가 김탁환!

그는 글씨기도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생일대의 대작을 꿈꾸며 열심히 숫돌에 칼날을 가는 게 아니라면 다작을 하는 게 소설가로서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작의 소설 노동자 김탁환의 글들은 거기다 재미까지 상당합니다. 박진감도 넘치고 재기발랄하고 무엇보다도 상상력이 풍부하죠.

그야말로 “이야기꾼”입니다.

그런 그가 <노서아 가비>에서는 경쾌한 여자 사기꾼을 등장시켜 유괘 상쾌 통괘한 사기극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노서아 가비>의 시작은 그러니까 황현의 <매천야록>에 있는 기록에서부터입니다.

고종황제의 아관파천 시절 엄청난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가(그렇다면 그가 어느 쪽 사람인지 감은 잡히시겠죠?) 몰락한, 그 몰락을 견디지 못해 실제로 왕이 마시는 노서아 가비에 치사량의 아편을 넣은 김홍륙이란 사내에 대한 기록.

이 실제 사건이 소설 <노서아 가비>가 태어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죠.

실제로 고종황제는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커피(노서아 가비)를 처음 접하게 됐고 그 이후로 엄청난 커피 마니아가 됐다고 합니다. 그 덕에 불면의 시간들을 견뎌내야 했지만 사실 그 당시에 고종에게 숙면의 희망은 아무래도 요원한 일이긴 했을 겁니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의 야만의 칼날을 피해 제 나라에서 이국의 공사관에 몸을 의탁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고종, 그 처지를 생각하면 커피로 인해 불면이 됐노라 말해야 그나마 덜 비참하지 않았을까 혼자 처량한 상상마저도 하게 됩니다.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피접 시절 그가 마실 러시아 커피를 내리던 여성 바리스타 따냐!

역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러시아어와 전각(篆刻) 기술에 능했던 따냐(최월향=안나).

그녀 나이 19세, 그녀의 가족은 청나라 연행길 수행 역관이었던 아비가 천자의 하사품을 가로채 달아나다 불의의 죽음을 당했다는 전갈을 듣습니다.

외동딸이 노비가 되는 걸 막기 위해 그 어미는 청나라로 딸을 피신시키죠.

이제부터 최역관의 딸 최월향이 따냐로서의 삶이 시작됩니다.

혹한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생존 방법은 “사기”였습니다.

조선인 사내 이반(=김역관=김종식=정도령)과 함께 유럽의 귀족들에게 러시아 숲을 팔아치우는 사기로 돈을 벌던 따냐는 어느 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황제 니꼴라이 2세의 대관식에 통역관으로 위장해 참석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조선 사신들(민영환)이 러시아 귀족들에게 치욕을 당하는 걸 모면하게 해 주죠.

어쨌든 그게 인연이 되어 조선으로 되돌아온 그들은 한 명은 역관으로, 한 명은 바리스타로 러시아 공사관, 고종의 곁에 들어가게 됩니다.


혹시 “사기꾼의 철칙”을 아시나요?

“...... 사기꾼은 진실해서는 아니 되고 정직해서는 아니 되며 일이 끝난 후 같은 곳에 머물러서도 아니 된다. 쓸모가 없으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버려야 한다. 이것이 항상 바람처럼 가볍게 움직여야 하는 사기꾼들의 철칙이다 ......”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따냐는 이반에게서 “국상”이라는 두 글자를 들었을 때, 이미 이반과 자신의 게임이 시작된 것을 알게 됩니다. 따냐는 뱃속에 이반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하더라도 쓸모가 없으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버려야 하는 것이 사기꾼의 삶이기에 고종 황제의 독살함으로써 조선 전체를 러시아에 팔아넘기려고 했던 이반의 마지막 대박 계획을 수포로 만들어 버리죠.

따냐의 이런 행동은 아비를 죽게 한 이반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도, 고종과 조선이라는 조국을 위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자신 역시도 어쩔 수 없는 사기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죠.

여러 가지 경우의 수 중에서 그 어느 인정에도 기울지 않고 정확히 사기꾼의 논리에 따르는 것, 그것이 거대한 협잡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기꾼의 자세라며 그녀는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아이는 아이고 사기는 사기죠."


고종은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경웅궁으로 환궁을 하게 되고 따냐에게 계속 자신의 커피를 준비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또 유쾌하게 고종의 제안을 거절하죠.(참 쿨하기도 하시지!!)

따냐를 향한 사랑만은 진심이었노라 말하는 이반은 결국 수레에 사지가 묶여 찢기는 거열형을 당하게 되고 그렇게 조선인 최초 여자 바리스타 따냐는 다시 조선을 떠납니다.

러시아를 거쳐 뉴욕에 정착한 따냐는 “따냐의 문학까페”를 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어쩐지 전 이 부분에서 혼자 유쾌하게 웃고 말았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땅, 그 광활한 러시아를 무대로 유럽 귀족들에게 30여개의 숲을 팔아치웠던 은여우 따냐가 이제야 최고경지인 무림고수들만의 사기의 세계로 발을 들어놓은 것 같아서 말이죠.

모든 문학은 일종의 “사기 행각”과 다름이 없기에...

새로운 세상에서 펼쳐질 조선 바리스타 따냐의 뉴욕 사기극이 이제 막 시작될 것 같아 왠지  어설픈 상상력을 동원하게 됩니다.

“책”이란 깊고 깊은 타짜의 세계, 그 세계가 매번 제게 중독과 금단현상을 반복하게 만드니 아무래도 참 고약하긴 합니다.

그래도 <노사아 가비>를 읽는 동안은 전적으로 유쾌하고 즐거웠노라 고백할 수밖에는 없네요.

어떠세요?

희대의 개화기 사기극 한 편!

유쾌 상쾌 통쾌하게 시작하는 한 해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 한 모금을 입 안에 담고, 한 손에는 진하고 독한 러시아 커피(노서아 커피) 한 잔을 펼쳐보는 풍미.

이제 두 향기를 혼합시키는 바리스타의 마지막 브랜딩 작업은 오롯이 당신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18. 16:00

<조선의 뒷골목 풍경> - 강명관


 

조선의 뒷골목 풍경


 

지난번에 주로 명문가의 이야기를 했다면 오늘은 그 반대편 이야기를 좀 해보려구요.

이 책 역시도 우리 병원(미즈 메디)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던 책입니다.

조선시대라는 건 참 이야기의 보고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는 너무 먼 이야기인 것 같아 어쩐지 신화나 전설같은 느낌이 들지만 조선은 그래도 시간적으로도 제일 가까운 시대의 이야기라 그런지 왠지 더 친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요즘의 시대와 이상하게 비슷한 구석이 많이 있다는 걸 점점 더 알게 됩니다.


유교를 앞세운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면에 이런 모습이 있었다니... 어느 면에선 놀라게도 되고 어느 면에선 섬뜩함마저 느끼게 됩니다.

“뒷골목”이라는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나 풍경들을 나열한 게 아니라 요즘 말로 하면 그야말로 야생 그 자체의 보고서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은근히 그렇쟎아요.

정설보다는 속설에 귀가 댕기고, 그리고 정사보다는 야사에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어디서 이런 자료들을 채집했을지 작가의 정보수집력이 그저 감탄스럴 뿐입니다(거의 무림고수를 만나는 기분이라면 이해가 되실지...)


그렇다고 이 책이 어디 조선시대의 불법이나 범죄를 다룬 그런 책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뭐랄까... 한마디로 재치와 해학이 묻어나는 책입니다. 그러면서도 적당한 비판과 예리한 통찰력도 함께 지니고 있고요.

저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령 “반촌” 같은 이야기 말이죠.

지금 혜화동 일대를 조선시대엔 반촌이라고 했었는데요, 그 거주민들은 반인이라고 하는 소를 도축하는 "백정” 비슷한 이들이었습니다.

상놈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았던 조선시대 직업군들이죠.

그런데 이 반촌이 형성된 배경이 성균관 유생들에게 고기를 대주기 위해서였다고 하네요.

그 당시 소는 노동력과 직결되기에 함부러 도축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도살이 가뭄을 초래한다고 믿었다고 하네요.

이 반촌은 “치외법권의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죄를 짓고 반촌으로 숨어들면 잡을 수 없었다고 하네요.

한번은 영조가 반촌을 뒤져 찾아내라는 명을 내렸는데 성균관에 기식하는 유생들이 요샛말로 하면 스트라이크를 벌였다고 합니다. 그것도 단식투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요...

이 반인들이 성균관 유생들의 손, 발에 해당했었거든요.

즉 이 반인들에 의해 성균관 유생들이 먹고 살 수 있었던 겁니다.

유교사상의 몰락과 함께 성균관이 몰락하면서 이 반촌도 사라지게 됐다고 하는데 지금 대학로 일대가 조선시대 반촌이었다고 하니 어쩐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어쨌든 성균관은 남아 있네요...^^


이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모두 10편 나옵니다.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 등 조선 3대 의적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가 땡추라고 부르는 타락승(사실을 시대에 거부당한 이들이죠)과 함께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과거시험의 패단에 대한 옹골찬 비판도 있고, 타짜를 앞세운 사기도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도박이 성행하게 되는 이유는 시대의 불확실성이 분명 한 몫을 할 겁니다.

조선시대에는 내부적으로는 당쟁이니 당파니 하는 파벌 싸움도 많았고, 외부적으로는 서양 및 일본의 눈초리도 심상치 않았으니 살기가 퍽퍽하긴 했을 겁니다.

이런 시대의 불확실성은 미래의 한방이라는 허황된 꿈을 심어주고 그러다 패가망신하여 가문을 소위 말아먹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멸문지화는 역적들만이 당하는 일이 아니게 된 거죠.

노름이 나왔으니, 그와 발 맞춰 동일한 속도로 성장해 주시는 음주문화 또한 어찌 이야깃꺼리가 없겠습니까.

주..색...잡기...

솔직히 점잖은 역사책에선 이런 이야기들을 대놓고 말하지도 않고, 어쩐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급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쟎아요.

어찌 생각하면 우리네 이야기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이야기인데도요...


조선의 생활상, 그것도 평민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거울 앞에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재미있어요. 이런 책.

계속 읽다 보면, 지금이 마치 조선시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장 한 장 읽을 때면 재미있어 손에서 놓기가 싫어지고, 그러면서 읽다보면 어느 순간 심각하게 그 시대에 빠져 현실을 읽게 됩니다.

심지어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제 자신이 노름판에 뛰어 들어 금주령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말술을 들이키며 마작에 눈이 벌건 사내같이 느껴진다니까요...(드디어 일심동체의 경지에 도달한 건지... 아님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정신적 해리상태에 놓인 건지...)


혹시나,

저 역시도 조선 시대에 살았다면 왈자나 왈패 비슷한 모습으로 살았을지...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