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8. 23. 05:38
세계사의 흐름을 다섯 가지 코드로 분석한 역사서다
당연히 역사학자가 쓴 책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이 글을 쓴 사이토 다카시는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다.
그렇다면 팩션류의 글일까?
이번에도 아니다.
아주 재미있고 그리고 쉽게 이해되는 정말 착한(?) 역사서다.



욕망 (Desire)
1. 세계를 양분하는 근대의 원동력 : 커피와 홍차
2. 세계사를 달리게 하는 양대 바퀴 : 금과 철
3. 욕망이 사람을 움직인다 : 브랜드와 도시

모더니즘 (Modernism)
1. 근대화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2. 자본주의는 기독교로부터 생겨났다.
3. 경시된 근대의 '신체'

제국주의 (Imperialism)
1. 야망이 만들어낸 '제국'이라는 괴물
2. 성공하는 제국. 실패하는 제국
3. 세습은 제국 붕괴의 첫걸음

몬스터 (Monsters)
1. 현대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2. 20세기 최대의 실험, 사회주의
3. 위기가 만들어낸 파시즘이라는 괴물

종교 (Religions)
1. 세계사를 움직이는 일신교 3형제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2. 암흑이 아니었다! - 재인식되는 중세
3. 이슬람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것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 강사 우석훈의 해제도 흥미롭다.
이 책을 두고 "백과사전적 지식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아주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한 분야에 대해서 깊게 파고 들어가는 전문가적인 지식이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을 쉽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글이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게 해준다는 의미다.
흩어져 있는 퍼즐들이 하나로 맞춰지는 재미랄까?
5개의 코드를 다시 세 개씩 세분화해서 설명하는 방식도 간소하니 좋다.
때로는 비교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역사를 풀어서 이해시키는 방식으로.
또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꽤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책을 엮어간다.
큰 틀 안에 나름대로 변화가 많아 읽는 동안에 지루할 틈이 없다.
"시선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 책도 확실히 어느 정도는 지배적이리고 할 수 있겠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파시즘 등 자칫 딱딱하고 정치적일 수 있는 부분까지도
재미있고 부드럽게 설명한다.
몰랐던 이슬람 종교가 가지는 "느슨함"을 알게 됐고
종교의 이면에 숨어있는 끝나지 않는 제국주의 욕망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유일신을 믿는, 사랑을 최우선으로 손꼽는 일신교 3형제(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왜 늘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을까?
한번쯤 궁금해했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주기도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 "파시즘"의 아이러니와
노동자를 해방한다는 사회주의가 오히려 노동자를 국가의 노예로 만드는 현실,
붕괴된 소련의 모습에 대한 설명도 독자의 이해를 쉽게 끌어낸다.
색다른 시각을 갖게 하는 놀라운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누구라도 한 번즘 읽어보면 괜찮을 책 (^^)
상식을 조금 넓혀준다고나 할까?
혹 전문가를 꿈꾼다면 나머지는 자신이 할 몫이다.
사실 이만큼만이라도 알고 있다는 게 어딘가?
상식이 무너진 시대에...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8. 4. 06:41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
스웨덴 한림원은 그녀를 선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응측된 시와 진솔한 산문으로 박탈당한 삶의 풍경을 그녀내는 작가" 라고.
(정말로 그녀의 글 속엔 이 모든 게 다 들어있다. 시, 산문, 그리고 그림까지...)
그녀는 비밀 경찰의 눈을 피해 남편이자 동료 작가인 리할트 바그너와 함께
조국 루마니아를 떠나 독일로 망명했다.
이로써 루마니아는 위대한 유산인 그녀를 잃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녀의 작품에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낯선 시선" 이라고...
헤르타 뮐러가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이 작가를 알 수 있었을까?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 한림원의 선택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1944년 여름 붉은 군대가 루마니아를 깊숙이 점령해 들어가고
파시즘을 신봉하던 독재자 안토네스쿠는 체포되어 처령당했다.
소련에 항복한 루마니아는 그때까지 동맹국이었던 나치 독일을 향해 급작스레 전쟁을 선포했다.
1945년 1월 소련의 장군 비노그라도프는 스탈린의 이름으로,
나치에 의해 파괴된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루마니아에 살던 1세에서 45세 사이의 독일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빠짐없이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유형을 갔다.
헤르타 뮐러의 아버지 또한 이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되었다가 돌아왔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오 년간 노역했다고 한다.
수용소 이야기...
또 다시 안네의 일기의 반복이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게 된다.

책 속의 주인공은 17살에서 22살까지 5년 동안
독일인의 러시아 수용서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는 상태다.
벌건 양배추스프와 아침에 배급되는 자그마한 빵으로 하루를 연명하면서
밤새 배고픔을 먹어야 하는 생활.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배고픔이 담겨져 있다.
책 속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훔친 도둑이었고 단어들이 불시에 나를 덮쳐 붙잡았다" 라고...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잃고 수용소에 갇히게 될 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가 될까?
바보가 되든, 아니면 체념을 하든, 혹은 깨달은 자가 되든....
그러나 이 책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단어 선택 하나하나조차도 감탄스럽다.
책 장을 넘길수록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묘한 편안감에 빠져든다.
수용소 이야기를 이렇게 편하게 읽어도 되는 건가 싶어 미안한 마음마저도 든다.
책의 언어는 몹시. 몹시.
아.름.답.다.
줄을 바꿔 짧게 나열하면 그대로 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될 만큼.
그러나 무기력하거나 허물어져 있지도 않다.
"너는 돌아올거야"
떠나는 그에게 남긴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그는 생각한다.
"두고 봐, 간단한 계획이지만 오래 버틸테니까."
그 다짐은 아주 건조하고 낯선 언어로 다가온다.
수용소에서 바라보는 모든 사물에 대한 시선이 시적이고 낯설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상황인데도 때론 몽환적일만큼 아름답다.
읽으면서 순간순간 섬득함마저 갖게 된다.
이런 감정을 갖는게 과연 정당한가???



주인공 소년은 청년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왔을 때 그가 느끼는 것 또한 "낯섦" 그것이다.

... 수용소로 가기 전 우리는 십칠 년을 함께 지냈고 문, 장롱, 탁자, 양탄자 같은 커다란 물건들을 공유했다. 접시와 컵, 소금통, 비누, 열쇠 같은 작은 물건들도 그랬다. 창과 전드의 빛도. 그러나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 더이상 우리가 아님을. 다시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낯선 존재가 된다는 것은 분명 부담이지만, 믿을 수 없이 가까운 거리에서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내 머리는 트렁크 안에 있었고, 나는 러시아식으로 숨을 쉬었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낯선 냄새를 풍겼다. 하루 종일 집 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침묵을 떠나기 위해 일이 필요했다. 나는 스물두 살이었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숨그네>는 인간의 숨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네처럼 가쁘게 흔들리는 것을 상징하는 제목이라고 한다.
스웨덴 한림원이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그녀를 선정하지 않았다면
헤르타 뮐러의 책은 결코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았을 거다.
(노벨상 수상으로 올해 그녀의 책이 2권 출판됐다. <숨그네>와 <저지대>
 내게는 더없이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시의 옷을 입은 비극"
숨그네를 말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헤르타 뮐러는 말한다.
"...... 상황은 처참했다. 문자는 아름다웠다. 나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문학의 명예였다 ......"

글은 소제목에 따라 아주 잘게 부서져 있다.
어떻게 이런 제목들을 가지고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 수가 있었을까?
명아주, 시멘트, 손수건과 쥐, 슬래그 벽돌, 지팡이, 공책...
직물적인 것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목격하는 건 심지어 경이에 가까웠다.
마치 일기를 읽는 것 같기도, 아름다운 산문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한,
그러면서 아주 잘 만들어진 거부감 없는 예술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기도 한 소설.
그래, 확실히 아름다운 건 분명 힘이다.
그리고 헤르타 뮐러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아름답고 강한 무기의 소유한 작가다.
찾아봐야겠다.
그녀의 또 다른 강한 무기가 세상의 어떤 것을 막아서고 아름답게 정화시키는지...

<숨그네>를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그녀의 <저지대>를 눈독들이기 시작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