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4. 16. 06:12

<메피스토>

일시 : 2014.04. ~ 2014.04.

장소 :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원작 :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대본 : 한아름

무대 : 여신동

작곡 : 황호준

연출 : 서재형

출연 : 정동환(파우스트), 전미도 (메피스토), 이진희(그레첸) 외

주최 : 예술의 전당

 

난 서재형과 한아름 콤비의 작품들을 정말이지 미치도록 좋아한다.

<왕세자 실종사건>, <메디아>, <더 코러스;오이디푸스>,

이 작품들을 보고 받었던 충격은 가히 해비톤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내겐 이 둘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황홀하다.

그런데 거기에 황호준이 음악을, 여신동이 무대까지 가세했으니 " Must see"  해야 할 이유가 더 생겼다.

(사족이긴한데 황호준은 소설가 황석영의 아들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무지 좋아하는 고전 중 한 편인 <파우스트> 원작이라니!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 작품을 여성성이 강한 메피스토펠러스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더 강렬하지 않을까 하고...

그러면 이 "유혹"이라는 부분이 훨씬 더 강렬하고 필사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니...

묘하게 섬득해지는 반가움이 느껴졌다.

 

 

작품은 원작의 깊이를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신선했고 게다가 꽤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특히 삼류건달을 떠올리게 하는 메피스토 전미도에게 놀랐다.

성실하게 꾸준히 성장하는 배우라는 건 매번 느끼고 있었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확신했다.

이제 그녀는 몸과 소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잘 아는 배우가 됐다는 걸!

쇠를 긁어내는 듯한 가공되지 않은 불편한 소리와 백발의 머리,

껄렁껄렁한 자세와 기괴한 표정들, 움직임들을 보면서

그녀가 이 작품을 위해 쏟은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느껴져 뭉클했다.

(검정 배바지 정장과 붉은 블라우스 셔츠는 또 왜 그렇게 작품과, 배역과 잘 어울리던지...)

쉽게 감당하기 힘든 작품이고, 역할이었을텐데...

놀랍다.

감탄스러울만큼 매혹적인 메피스토였다.

능수능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그 악 속에 순진한 선이 보이더라.

그건 아마도 역할과 별개로 전미도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필모그라피 때문이었으리라.

의도되지 않은 그 느낌이

의외로 극의 표현과 꽤 적절하게 어울리더라.

("악"인들 방황하고 주저하지 않을까! 비록 그게 절대악일지라도...)

 

파우스트 정동환.

파격적인 전미도에 의해 오히려 포커스가 덜 맞춰지는 느낌이 있지만 역시나 노련하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정동환 파우스트가 아니었다면 전미도가 이렇게까지 날개를 활짝 펼 수 있었을까?

다음 세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기위해

뒤를 확실하게 서포트를 해주는 노장의 연기를 본다는 건,

관객 입장에선 극진한 감동이다.

(몇 년 전 공연된 <벚꽃동산>까지 오버랩된다. 그 연극에서 정동환의 모습, 참 아득했었는데...)

젊음을 되찾은 파우스트의 모습이 충분히 젊지 않아 당황스럽긴 햇지만

정동환의 연기는 명확했고 확실했다.

 

발푸르기니의 밤은 다소 과하게 표현되긴 했지만

(오히려 더 극단적인 몽환의 느낌이었다면 어땠을까?)

육중한 쇠가 갈리는 소리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느낌이더라.

무참하게 도륙되는 육체 위에 펼쳐지는 악의 향연.

어쩌면 구원받은 파우스트를 보면서 신에게 외친 메피스토의 물음은

자기방어같은 최후변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에게 달라붙었습니까? 아니면 그가 날 불러들였습니까?

 대답해주십시오! 그가 옳은가요? 난 항상 틀린가요?"

우리가 선하다고 믿는 신(神)은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선했던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 신께서도 "메피스토"에게 대답을 해야 할 것 한다.

 

바로 지금이다!

악마가 될 시간.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바로 파괴의 시간이다.

그러니 기억하자.

선이란 아직 저지르지 않은 악일 뿐이라는 걸.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1. 6. 06:02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똑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나는 슬프다.

이 사람도 쉽게 살아내는 사람은 아니겠구나...

덜컥 덜컥 덜미를 잡히는 감정들에 휩쓸려 흔들리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삶.

마치 conjoined twin 같았다.

정여울의 글.

40대를 바라보는 여자가 20대를 위해 쓴 글은 40대를 넘긴 내가 읽는다.

20대도, 30대도, 40대로 틀린 건 아무것도 없다.

다 똑같다.

자기의 일이 있어도, 자기의 사람이 있어도, 자기의 생각이 확고해도

사람들은 늘 방황하고 절망하고 흔들린다.

20대는 20대의 방황이 있고

30대는 30대의 절망이 있고

40대는 40대의 흔들림이 있다.

그 시간대를 지나오는 거.

20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끔찍하진 않다.

 

여행을 가면,

언제나 풍경이 먼저 들어왔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 그때서야 알게 된다.

아, 이번에도 내 사진이 한 장도 없구나...

책읽는 사람을 기웃거리는 모습도,

박물관과 박물관에 숨어있는 쉼터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본능도,

길거리 묘지를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을 머무르는 습관도

"출구"라는 단어 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미련도

거리의 악사가 연주를 시작하면 다시 되돌아오는 걸음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까!

정여울은 첼로를 배운다고 했다.

첼로까지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번 해금을 배우는 낯선 적응까지도 똑같다.

연주를 잘 하는 게 목적이 아닌 것까지도...

정여울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도플갱어" 같았다.

나도 모르게 정여울이 지나갈 40대가 그려진다.

그래도 정여울은 자신을 다독이는 법을 알고 있으니 잘 지나갈테wl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나는 참 힘들게 지나왔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때때로 힘들고 지치는데...

몸이 아픈건 이젠 이력이 나서 아무렇지도 않다.

더 정직하게 말하면 육체적인 아픔에 대한 감각은 거의 무뎌졌다.

얼마나 아파야 아프다는 말할 수 있는지 솔직히 이젠 모르겠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다.

내가 힘들게 지내온 그 시간을 지나는 20대에게.

참지말고 아프면 아프다고 꼭 말하라고.

그게 비록 타인에게 엄살로 보인다해도 아픔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아픔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지는 걸 그냥 지켜보지 말라고.

참는다고, 숨긴다고 강해지는 걸 절대 아니라고.

위로받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그리고 기억하라고.

때로는 모르는 사람에게서, 혹은 낯선 풍경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그런 위로도 있다는 걸!

매번 사람이 답은 아니라고.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너무 많이 떠나고 싶어졌다.

어쩌나...

나는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흔들리고 있다.

음악과 책으로 어떻게든 달래보다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면.

제대로 사고를 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어떤 거래라도 할 수 있는가?"

멜피스토펠레스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파우스트가 되어 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11. 23. 06:15

<Next to normal>

일시 : 2011.11.18. ~  2012.02.12.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출연 : 박칼린, 김지현(다이애나), 남경주, 이정열(댄),
        한지상, 최재림(게이브), 오소연(나탈리), 이상민(헨리), 
        최수형(정신과 의사)
연출 : 라우라 피에트로핀토(협력 연출 : 변정주) 
대본, 작사 : 브라이언 요키 (Brian Yorkey)
작곡 : 톰 킷(Tom Kitt)

20년만에 칼마에 박칼린을 뮤지컬 배우로 돌아오게 만든 작품이다.
한지상과 함께 게이브 역을 맡은 최재림은 "영혼을 팔아서라도 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며 파우스트적인 욕망마저 드러냈다.
남경주는 또 어떤가?
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돈을 받지 말고 돈을 내고 공연해야한다고까지 표현했다. 

오디션 공고를 보고 첫날 접수를 하러 간 이정열은 접수번호를 보고 놀랐단다.
아침 일찍이라 앞번호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번호가 500번대 였노라고.
군을 제대한 한지상은 복귀 첫작품으로 <Next to normal>의 게이브를 주저없이 선택했다.
심지어 일본 사계의 잘나가는 한국배우 김지현도 이 작품을 위해 일본에서 날아오기까지했다.
이정도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을만큼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각오가 이래적이으로 남달랐다.
2009년 브로드웨이 토니어워즈 3개 부분 수상,
(최고 음악상, 최고 오케스트레이션상, 여우 주연상)
그리고 2010년 플리쳐상 수상.
<뉴욕타임즈>는 "좋은 느낌을 뛰어넘어 완벽한 느낌이 드는 뮤지컬"이라고 극찬했다.
도대체 이 작품이 뭐가 있길래!
정말 뭐가 있기는 있는건가?
이게 다 초연되는 작품에 대한 밑밥이고 거품은 아닐까?

 다이아나 : 박칼린        댄 : 이정렬        게이브 : 한지상

   나탈리 : 오소연        헨리 : 이상민        의사 : 최수형

 

프리뷰 공연을 봤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와 음향 등의 기술적인 실수가 여러 차례 보이긴 했지만
나는 지금 완벽하게 이 작품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앞으로 한동안 계속 빠져있을 것 같다.
쏟아지는 모든 찬사 다 집어치우고 이 작품!
나에겐 일종의 빛(light)이고 결정적인 위로였다.
Next to normal 이라니...
이건 내가 늘 꿈꾸던 간절하고 간절한 희망사항 아니던가!
아주 오래전 나도 누군가에게 나탈리가 했던 말을 그대로 했었다.
"평범같은 건 안 바래. 그건 너무 멀어.
 그 주변 어딘가면 다 괜찮아. 
 평범함! 그 주변 어디, 거긴 가보고 싶어.
 그 근처 어디라면 견딜께"
비록 나는 나탈리처럼 견뎌보겠다는 말은 못했었지만...
내겐 평범에 도착하는 것도 너무 어렵고 숨이 턱까지 차는 일이었니까.
그렇다고 내가 지금 normal할까?
여전히 normal은 내겐 불멸의 희망사항이고 next to normal 거기까지만이라도 갈 수 있다면 좋겠다.
16년 동안 조울증을 앓고 있는 다이애나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꼭 내 미래의 모습 같다.
나도 두렵다.
어느날 이 오랜 우울증이 날 잡아먹을까봐.
그래도 그녀가 나보다 더 괜찮은 거 아닌가?
내겐 죽었지만 내내 함께 곁에 살면서 나이 먹어가는 자식도,
멀쩡히 살아있지만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린 자식도 없다.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곁에 있겠다는 남편 역시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는 그런 가족을 남겨두고 자신을 견디기 위해 떠난다.

얼마나 아팠을까...
보고 있는 내내 꾹꾹 올라오는 통증을 삼키느라 나는 너무 힘들었다.
 



불이 켜진 집 앞,
어두운 골목을 서성이며 사랑하는 가족을 오랫동안, 그것도 간절하고 애타게 기다리지만
결단코 단 한 번도 만나지지 않는 가족들.
가슴이 그걸 느낄때마다 내가 다 안타깝게 무너진다.
이 사람 아니면 당작 죽을 것 같은 절절한 사랑이라도 이 느낌은 모른다.
확 뛰어내리고 싶은 벼랑끝 인생을.
내내 죽은체 사는 이 더럽게 끈적하고 너저분한 기분을.
그래서 다 놓고 싶은 마음을.
나는 다이애나의 간절한 통증, 그 마디마디까지도 선명히 느낀다.
그리고 이건 확실히 불행이다.
<Next to normal>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다.
마치 겨울 앞에 발가벗고 선 느낌!
내 모습을 이렇게 대놓고 봐버렸는데 더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뮤지컬 넘버도 그대로 하나하나 가슴 속에 수직으로 꽃힌다.
다이애나의 노래도, 댄의 노래도, 그리고 게이브의 노래까지도...
너무 아파서 질근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리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도 없다.
이 이야기의 끝을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지켜보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 같다. 
힘들다.
어쩔 수 없단다.
버티란다.
어떻게든 버텨보란다.
그런데 버티면?
그러고나면 정말 올까?
힘겨워도 버텨내면 한줄기 빛이 정말 올까?

행복만을 위해서 사람이 사는 건 아니란다.
그러니 운명이 자신을 잡아채기 전에 모험을 시작하란다.
그러면 살 길은 또 생긴단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내겐 더없는 위로가 됐고 결정적인 힘이 됐다.
이제 어쩌면 나는 다시 next to normal을 꿈꿀 수 있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래, 다시 견뎌보자!
So Anyway!



<Next to normal 1>
01. Prelude - 0:26
02. Just Another Day - 3:49
03. Everything Else - 1:49
04. Who's Crazy/my Psychopharmacologist And I - 5:02
05. Perfect For You - 2:03
06. I Miss The Mountains - 3:46
07. It's Gonna Be Good - 1:25
08. He's Not Here - 1:15
09. You Don't Know - 1:30
10. I Am The One - 3:16
11. Superboy And The Invisible Girl - 2:08
12. I'm Alive - 3:14
13. Make Up Your Mind/catch Me I'm Falling - 3:58
14. I Dreamed A Dance - 2:20
15. There's A World - 1:34
16. I've Been - 2:44
17. Didn't I See This Movie? - 1:30
18. Light In The Dark - 2:45

<Next to normal 2>
01. Wish I Were Here - 3:06
02. Song Of Forgetting - 3:23
03. Hey #1 - 1:39
04. Seconds And Years - 0:39
05. Better Than Before - 4:28
06. Aftershocks - 1:47
07. Hey #2 - 1:24
08. You Don't Know (reprise) - 1:27
09. How Could I Ever Forget? - 2:50
10. It's Gonna Be Good (reprise) - 0:32
11. Why Stay?/a Promis - 2:35
12. I'm Alive (reprise) - 1:11
13. The Break - 1:23
14. Make Up Your Mind/catch Me I'm Falling (reprise) - 1:40
15. Maybe (next To Normal) - 4:00
16. Hey #3/perfect For You (reprise) - 2:23
17. So Anyway - 3:08
18. I Am The One (reprise) - 2:16
19. Light - 4:21



                                        You Don't Know + I Am The One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10. 25. 06:07

<신의 아그네스>


일시 : 2011.10.01. ~ 2011.10.31.
장소 : PMC 대학로 자유극장
출연 : 윤소정, 이승옥, 선우
극본 : 존 필미어(John Pielmeier)
연출 : 이대영

미국의 인기 희곡작가 존 필미어(John Pielmeier)의 세계적인 명작 <신의 아니그네스>는,
1982년 초연이래 지금까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우니나라에는 1893년 초연됐고
아그네스역엔 윤석화가 캐스팅됐었다.
그후에 신애라, 김혜수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아그네스를 연기해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선지 작품이 공연될때마다 매번 작품성과 대중성에서 엄청난 흥행을 일으켜 소위 "아그네스 신드롬"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는 초대 ‘리빙스턴 박사’로 활약한 ‘윤소정’이 다시 리빙스턴으로 무대에 섰다.
아그네스를 보호하려는 원장 수녀 마리암 역은
오랜 기간 국립극단에서 활동해 온 원래 연극배우 이승옥이, 
아그네스 수녀역에는 뮤지컬에서 연극으로 영역을 넓힌 선우가 맡았다.
신이 주신 특별한 재능, 천사의 목소리라는 축복을 받은 아그네스 역에 선우를 선택한 건 
KBS 남자의 자격 하모니편과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살짝 속보이는 캐스팅은 아닌가 생각됐다.
연출 이대영은 이 현대적인 고전물에 조명과 음악적 요소를 더해서
극적 효과를 끌어들이려 노력했다는데 배우 선우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한 듯 느껴진다.
개인적으론 이 연극을 선택한 건 순전히 배우 "윤소정" 때문이다.
세 번째 리빙스턴 박사를 맡게 된 배우 윤소정은 스스로 이 작품을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말했다.



21살의 어리고 순진한 수녀가 어느날 아기를 낳는다.
그리고 그 아이는 탯줄로 목이 감긴채 휴지통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다.
과다출혈과 정신적인 충격으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그네스 수녀.
아그네스는 기소됐고 그녀의 정신감정을 위해 수녀원으로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박사가 찾아온다.
<신의 아그네스>는,
이렇게 엄청나게 충격적인 소재와 섬세한 심리묘사로 인해
"현대인의 성서" 혹은 "여자들의 에쿠우스"로 불린단다.
순수함 속에 광적인 모습이 내재된 ‘아그네스 수녀’
그런 그녀를 신의 가까이에서 보살피려는 ‘원장수녀’
진실을 밝히는 것으로 아그네스를 구하려는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박사’
두 시간 동안 세 명의 배우가 펼치는 열연은
논쟁이고, 소통이고, 이해고 ,치유고, 구원이다.
윤소정, 이승옥 두 노장의 연기는 어떤 젊은 배우들보다 더 열정적이고 진지하고 확고했다.
순간순간 두 개의 불꽃이 맞부딪치면서 타닥거리는 강렬함!
<에쿠우스>에서 느꼈던 트라우마(trauma)의 충돌이 이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아그네스의 트라우마, 리빙스턴의 트라우마, 그리고 원장 수녀 마리암의 트라우마.
그건 모두 모성을 가진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어쩌면 유일하게 공통된 감정일지도...
그래서 이 작품이 종교가 그 배경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신과 모성이라는 유일하고 절대적이며 맹목적인 사랑과 집착!
마리암 원장수녀는 은폐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아그네스에게 일어난 일이 신의 기적이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게 다 신의 뜻이자, 신의 증표(證標)라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던 아그네스는
모든 걸 너무나 명확하고 분명하게 기억 속에 담고 있다.
신만큼 유일하고 절대적이던 어머니에게 박은 어린 시절의 학대와 성폭행.
나는 그런 아그테스가 스스로 자신과 계약을 했다고 생각한다.
마치 파우스트처럼...


두 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90% 이상 등장하는 리빙스턴 박사!
배우 윤소정의 존재감은 고요한 폭풍과 같다.
결코 고성을 지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사람을 몰입시키는 엄청난 집중력.
그녀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그래서 때때로 소름이 끼친다.
원장수녀 이승옥은 처음엔 낯설었는데
극이 진행할수록 시선을 사로 잡는다.
시선처리와 대사 속에 담긴 감정표현이 정확하고 성실하다.
연륜이라는 건 정말 무시할 수 없음을 절감했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극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리같아 깨지기 쉬운 아이 아그네스.
선우의 첫 정극 도전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순수하다기엔 그녀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는 안스러움과
(그래서 종종 순수라기보다는 몸만 자란 지진아 같은 느낌도 든다)
성가가 성가처럼 들리지 않았는다는 건 확실히 귀에 거슬린다.
장중하고 성스러운 느낌이 들기보단 가요나 팝을 듣는 느낌이다.
직접 불렀다면 어쩌면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MR로 처리한 게 많아서 아쉽다. 
딕션과 액팅은 좋았지만 표정과 감정표현이 아직 미숙하다.
어쨌든 시작이니까...

<신의 아그네스>
오랫동안 궁금했던 작품이었는데
드디어 봤다.
그것도 다행스럽게도 윤소정,
그녀가 리빙스턴으로 분한 그 <신의 아그네스>를...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2. 3. 22:18
 <막스 티볼리의 고백> - 앤드루 손 그리어


막스 티볼리의 고백 


오늘은 참 특별하고 슬픈 사람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시간 역행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혹 있으신가요?

70세 노인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 갓난 아기의 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그러나 마음과 생각은 시간의 흐름 그대로인 사람... 35살 지점에서만 자신의 몸과 생각이 유일하게 만나지는 그런 사람이요...

일생동안 “앨리스”란 여자와 세 번의 사랑에 빠졌던 사람...

그리고 자신이 아들 “새미”를 키우는 그녀의 집에 양자로 입양돼 살아야만 했던 사람...


주인공 “막스”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아이의 몸이 신의 저주를 받은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조금씩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삶이 어떠하리라는 것을요...

그가 아이였을 때 어머니는 말합니다.

“사람들이 네 나이가 얼마쯤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라고.


이 이야기는,

1930년 4월 어느 날, 꼭 열두 살 소년처럼 보이는 막스가 쓰는 편지로 시작됩니다.

......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열두 살 소년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때는 총을 들고 가스 마스크를 쓴 스물두 살의 멋진 청년으로 보였다. 그전에는 지진이란 재앙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나선 삼십대 남자였다. 그리고 그전에는 열심히 일한 사십대, 세상을 두려워한 오십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시기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늙어갔다.” ......

그는 이 편지를 통해 남들과 다른 이유로 고독과 슬픔 속에서 일생을 살아야 했던 비극적인 날들과 평생 동안 계속됐던 앨리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처음 막스가 앨리스에게 반한 건 그의 나이 17살, 앨리스가 14살 때였습니다.

앨리스에게 “아저씨”란 호칭으로 불려야 했던 막스는 그녀의 어머니와의 충동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딸마저 유혹하려고 하는 파렴치한이라 생각한 앨리스의 어머니는 결국 이사를 하게 되고 그들은 그렇게 스치듯 헤어지죠.

시간이 흘러 막스의 몸과 마음이 딱 일치하는 35살 무렵에 두 사람은 우연히 재회하게 됩니다. 그가 어린 시절 알았던 아저씨라는 걸 모르는 앨리스는 그를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그 둘은 결혼을 합니다.(그때 막스는 앨리스 앞에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게 되거든요.)

행복한 시간도 역시 흘러가기에 막스는 앨리스보다 점점 더 어려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피하지 못합니다.(피할 방법이 있었다면 그는 정말 뭐든 했을 겁니다.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처럼요...)

또 다시 떠나야 했던 막스는 이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앨리스” 옆에 있습니다.

그녀와 자신의 아이 “새미”의 친구로, 그리고 아내의 양자로...

그런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너무 짧은 인생. 슬픔만 가득한 인생. 그러나 난 내 인생을 사랑했소"라고 적혀 있습니다.

도저히 세상을 제대로 살아 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이런 최후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건...

역시나 “사랑”이라는 통속의 그러나 절실한 이유 그 하나였습니다.

겉모습은 반바지를 입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지만 지혜로운 노인의 시선으로 삶을 관조하는 막스의 고백은 시간이라는 상대성과 외모의 허망함, 그 교차와 어긋남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이 세상 어딘가에 시간 역행자가 꼭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꾸며낸 사실인지, 정말 역사적인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책의 내용 중 일정 부분은 시간 역행자들이 실제로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그건 분명 뚜렷한 공포가 될 겁니다.

그것도 자기 자신만이 평생 끌고 가야하는 비밀스런 공포...

이런 생각을 해 보면 비록 소설 속의 인물이긴 하지만 그런 인생을 살아낸 “막스”가 위대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비록 토막난 인생일지라도 “막스”는 순간순간 분명 누군가의 삶에서 소중한 존재였음을 저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각각의 장마다 주인공은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죠.

1부에서는 “티볼리”로, 2부에선 “막스”로, 3부에선 “아르가스”라는 이름으로 불려 졌던 주인공은 4부에서는 “리틀 휴이”가 되어 여전히 앨리스의 곁에 있습니다.(휴이는 그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친구 휴이의 아들 행사를 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이의 곁에 남고 싶었던 그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는 친구 휴이에게 자살을 종용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야만 아비를 잃은 그가 앨리스의 양자가 되어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끔찍한 상황까지 만들어가면서 사랑하는 이의 곁에 남고 싶어 했던 주인공의 마음...

휴이에게 어린 모습을 가진 막스가 말합니다.

"난 이제 남편이 될 수 없어! 아버지도 못 된다고!" "쉬잇! 난 아들이 될 거야. 잠시 동안이라도."

분명 그는 끔찍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로서는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는 절실한 마음이었기에 차마 응원한다고는 말하지 못할지언정 잠시 눈길을 돌림으로써 그를 인정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샛강 갈대숲 사이를 떠돌던 작은 배에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리틀 휴이 “막스”.

시간을 거슬러간 남자, 티볼리이자 막스이며, 아르가스이자 리틀 휴이로 평생을 한 여자만을 사랑하며 비밀을 간직한 체 죽음을 택한 그의 마지막 모습.

그에게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모두에게(심지어 우리에게까지) “사랑”이란 뭐였을까를 묻게 만듭니다.

“비극”이라고 이름 붙여진 모든 것들...

그러나 저는 결코 그를 비극적으로 살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 또한 그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해야 그가 덜 비극적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람들을 꿈꿉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그러나 누군가에겐 그 타임머신의 꿈이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거, 혹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모든 상상과 환상은 공포와 절망의 바탕 위에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는 작은 배 안에 누워 꿈을 꾸고 있지 않을까요?

그의 아들 새미와 사랑하는 여인 앨리스와 함께 다정하게 손잡고 산책하는 모습을요.

혹 어는 샛강 작은 배 안에 아직 그의 꿈이 누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희망합니다.

이제 그 꿈은 더 이상 시간 역행자의 모습이 아니었으면 하고요...

* 2월 12일에 드디어 영화도 개봉을 하네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브레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주연으로 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라와 있는 작품입니다.
   <조디악>과 <패닉 룸>을 만든 데이빗 핀쳐 감독이 매가폰을 잡았습니다.
   어쩐지 기본 이상은 해 줄 것 같은 예상이네요.  지금 브레드 피트는 이 영화 홍보를 위해 안젤리나
   졸리, 그리고 그들의 숱한 아이들과 함께 일본에 머물고 있다고 하네요.
   좀 잠깐 여기도 들려주지 싶긴 한데...
   브레드 피트가 연기할 시간 역행자의 모습...
   일단은 매력적이긴 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