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8. 19. 06:28
필립 리브.
처음 듣는 작가의 처음 듣는 책이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또 다시 영웅 이야기의 시작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래서 솔직히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
그런데 의외로 재미 있는 관점을 가진 소설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아서왕 이야기를 묘하게 비튼,
그것도 10살 여자 아이의 시각에서 본 이야기다.
...... 아서는 그저 폭군의 시대를 살았던 한 명의 폭군일 뿐이었다.
중요한 건 이야기였다 ......

아서가 신화와 전설의 용사가 된 건,
그 자신의 노력과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게 누군가의 입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에 의해서였다면?
이 책에서 아서의 이야기와 전설을 만들었던 "마르딘"이라는 음류시인은 말한다.
“사람들은 보게 되리라 기대하는 것만 보고, 진실이라 말하는 것만 믿는다.”
그러니까 아서왕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에 의해 미화된 것에 불과할 뿐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서를 단지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영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욕망에 부응하기 위해  이 모든 이야기가 만들어 졌다는 거다.



지금껏 읽어왔거나 혹은 봤었던 아서와 이야기는
영웅적이고 정의로운 소위 "완소남" 혹은 "엄친남"  캐릭터였는데.
이 책의 아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누구보다 속물스럽다.
마법이니, 환상이니 하는 것들을 가차없이 팽개치고
인간에 속성을 발가벗기듯 그대로 들어다 보는 재미가 은근히 있다.
그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이다.
혼란의 시대, 탐욕의 군주 아서!
실제로도 아서가 대량학살을 자행한 잔혹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실제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말도 있고...
어쨌든 역사를 한 번 비틀어 꽤나 재미있는 성장 소설 한 편이 만들어졌으니
아서로서도 나쁘진 않겠다 (^^)

책에선 아서왕 보다 "그위나"라는 계집아이의 삶이 오히려 더 파란만장하고 역사적이다.
아서의 이야기를 만드는 "마르딘'에 의해 선택(?)된 아이.
계집아이였다가 남자였다가 다시 여자가 되는 아이.
그 아이의 눈을 통해 보는 아서와 그 시대의 이야기는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다.
전설의 검 "칼리번"이 아서왕의 손에 들어오는 장면은 아주 유머러스하고 황당해 웃음이 난다.
이렇게 만들진 이야기가 반복되고 또 끊임없이 들려지게 된다면
사람들은 결국 이야기를 몽롱하지만 현실로 받아들이고 믿게 될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하다.
어쩌면 정말 아서왕이 그런 인물이고 그 시대가 그런 시대였는지도...
누가 알겠는가?
만나보지 않고 살아보지 않았는데...
썩 좋은, 괜찮은 소설이라고 말하긴 아무래도 좀 어렵지만
어찌됐든 작가적인 상상력만큼은 꽤 괜찮은,
재미있는 성장소설이다.
인간의 속성이 결국 "아서왕"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영웅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의 속성 속에서 영원히 잠들어 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다.
단순하고 명확하게 만들어진 이야기,
단지 그것만이 필요할 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6. 30. 06:08


연극 <이(爾)>
작.연출 : 김태웅
2009. 06.09 ~ 07.08.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구 아르코시티극장)
평일 : 8시      토요일 : 3시, 7시            일요일 : 4시
출연 : 김내하/박정환 (연산) , 정원영 (공길), 진경/이화정 (녹수), 이승훈 (장생), 정석용 (홍내관)




<爾> 볼 때면 왜 항상 맘이 아플까?
난폭함을 가장한 갓난쟁이 연산의 슬픔도
연산을 휘두르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녹수도
끝끝내 자신을 버리지 않는 왕을 둔 공길도
그리고 그런 공길을 품는 장생의 마음도
모두 다 서글픔이고 안타깝다.



2006년 극장 "용"에서 봤던 <이>를
다시 만나다.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영화와 연극이 비슷할 거란 생각은 그러나 하지 않는 게 좋을 듯....
정말 다른 느낌이다. 물론 근복적인 차이는 아니지만)




아르코시티 극장을 들어서면
내벽이 온통 공연장이다.
약간 올려다보는 눈높이가 오히려 시야를 가리지 않아
기특하다는 생각도...



<이>의 첫 장면은
웅장하기도 하고 왠지 흉물스럽기꺼자도 하다.
문 뒤로 서 있는 커다란 탈과
7명의 무희들이 나와 마치 처용무를 생각케 하는 춤을 춘다.
음산하며 비밀스런 기운까지 감도는 곳



연산은 화로 앞에서 어머니 신주인 듯한 종이를 태우며
그 절절한 마음을 통곡한다.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광기의 한 표현이었을까?
아직 선택이 어렵다.
(역시 이 장면은 2006년 이남희 연산을 생각나게 한다. 충격적이었었는데.....)



희락원 광대들의 한판 굿!
살짝 현실을 꼬집는 위트까지.
같은 풍자가 항상 먹힐 수 있는 현실이 참 싫다.
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차라리 현실이 이런 놀이판이라면
적어도 열심히 박수는 칠 수 있을텐데.....
얼~~~쑤 하면서.



김내하와 더블로 연산을 연기하는 "박정환"
2006년 "공길"이 "연산"으로 돌아오다.
"공길"을 건너 온 박정환의 "연산"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다는 바램.
4대 공길의 행운을 잡은 "정원형"
오만석, 박정환, 김호영에 이은 공길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탐이 날 배역.
남자이면서 여자인 爾,
슬프게 매력적인, 그리고 모호한 이 사람.



장녹수의 옆을 지키던 또 한 남자(?)
홍내관 정석용,
베토벤 바이러스,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의 감칠맛 나는 연기를 보였던 분.
이 분의 감초연기는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계획된 애드립과 액션인 것 같은데 왜 매번
같은 대사와 몸짓을 해도 처음 보는 것처럼 재미있는거지?
신기해....
(이런 게 내공일까?)



폭군 연산이 궁중광대를 사랑했다는 파격적인 설정!
뭐 요즘 세상엔 이딴 건 파격도 아니긴 하지만...
임금의 자리에 요즘 시대의 인물을 올리면 파격이 될라나?
뭐 워낙에 그 분 자체가 파격이고 별종이라
이딴 것 정도는 파격도 아닐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
참 다양한 종류의 폭군들이 있구나 싶다.



장생의 "이승훈"
이 분의 장생 연기가 나는 너무나 좋다.
(이 분 역시 영화 <왕의 남자>에 나온다. 광대 3인방 ^^)
그가 연산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붓는 독설들....
"상감인지, 영감인지, 탱감인지...."
"저 대가리로 왕을 해도 될라나 몰라...."
(누군가 뜨끔하겠다.... ^^)
그리고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벌이는 한판 놀이판
"난 내 가슴이 벌렁거릴 때만 살아있다고 느껴!"
산송장처럼 살고 있는 내가
마치 연산이 된 것 같아 뜨끔하다.



"저 놈이 영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난 이 대사에서 "사과하십시오!"가 생각났다.....)
연산을 향해 내뺏는 공길의 말!
왜 나를 버리느냐고 묻는 연산에게
"내가 임금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라 답하는 공길!
처음으로, 다시 자유로,
물같은 자유로 돌아가는 공길의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나도 함께 눈물을 쏟게 된다.



"현실! 그런 게 있었나!"
공길을 끌어앉고 혼자 앉아 있는 연산은 공길의 손에서 빨간 천을 풀어낸다.
(장생의 눈을 가렸던 바로 그 천)
주위는 이미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고...
홀로 남아 유언같은 말을 남기는 연산.
"인생 한바탕 꿈! 그 꿈이 왜 이리 아프기만 한 것이냐....."



연기처럼 사라질 불길....
다.... 탔구나....

인생이 정말 한바탕 꿈인 건가?
그 꿈 속에 나 또한  내 놀이판을 잃어버린지 오래.
남는 건,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건가?
다 사라져 재만 남아
마침내 그것도
후~~ 불어 날아가면 그 흔적도 없어질텐데...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없다.
나를 향하는 대명사,
너 爾!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