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12. 11. 05:50

"판소리, 세계를 만나다"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자인 임동창이 10년의 칩거를 마치고 돌아왔다.
특유의 환한 웃음과 함께...
<本-Born-Burn>
한국판페라단(단장:오지윤) 주최로 12월 4일, 5일 이틀동안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이 공연은,
열악한 공연장 환경에도 불구하고 썩 괜찮은 공연이었다.

"판페라"...
어딘지 낯설고 어색한 단어다.
판소리와 오페라 (Pansori+Opera)의 조합어.
한국의 전통의 소리에 클래식한 오페라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라고 하겠다.
정체불명의 퓨전 비빔밥을 보게 되는 건 아닐까 잠깐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임동창의 열정과 깊이가 크고 깊다.
그의 "산사 음악회"를 기억하는가!
개구진 얼굴에 다정한 사투리가 남아있는 그의 말은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짓게 한다.
그리고 섬세하고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들...
오랫만에 그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게 내겐 제일 큰 이슈이자 기쁨이었다.

국악의 세계화...
공연을 보면서 이 정도라면 시작이 나쁘지는 않다고 공감하고 안심했다.
꼭 글로벌이란 단어를 굳이 네세우지 않더라도 충분히 신선하고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임동창.
재즈 피아니스트에서 국악 피아니스트로의 변신(?)
10년의 긴 칩거를 마치고 2010년 7월 창작곡집 발표와 함께 그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 첫 무대를 명창 오지윤과 크로스오버 테너 임태경과 함께 했다.
10년 동안 그가 꿈꾸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는 말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라고...



1부(東), 명창 오지윤의 "심청가"
2009년 12월 29일 서울 남산 국악당에서 총 4시간 30분 동안 심청가 완판독창회를 했던 명창 오지윤.
소리를 잘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판소리완창이란 단어를 들으면 덜컥 무섬증이 인다.
비록 한시간 남짓이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한자리에 앉아 판소리를 들어봤던 적이 있던가?
적어도 나는 처음이다.
45인조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듣는 심청가는 절묘하게 아름답다.
탁성에 가까운 사람의 소리와
그 소리를 뒷받침하던 오케스트라의 선율.
뭐 특별한 게 있겠냐며 듣고 있다가 솔직히 화들짝 놀랐다.
의외로 맞춤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서...
북, 거문고, 가야금, 해금, 아쟁, 대금
국악연주자들의 그야말로 신들린듯한 연주는
탄성과 박수를 절로 자아내게 한다.
다섯명이 차례로 독주할 때는 신명도 나고 무지 애도 탔다.
국악기의 소리는 아무래도 사람의 육성 그대로인 것 같다.
정말 다섯개의 국악기가 서로 다른 목소리로 말을 하더라.
(특히 해금 소리를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꼭 숨겨놓고 몰래 듣는 연인의  말소리같다...)



2부(西)
임동창의 피아노 반주만으로 크로스오버 테너 임태경이 앵콜까지 전부 다섯 곡의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뮤지컬 배우로 더 알려져버렸지만
임태경의 처음 연주를 알고 있는 나는 솔직히 요즘 그의 음색 변화가 많이 속상하고 안타깝다.
그의 목소리는 하나만으로도 완벽한 하모니였고 연주였는데...
그래도 근래에 들었던 그의 음색 중에서는 제일 편안해서 다행스러웠다.
양중해의 시에 임동창에 곡을 붙인 <동백아래에서>는 참 좋더라.
본격적인 무대에 해당했던 3부(和), 4부(合).
판소리와 서양음악을 오지윤과 임태경이 몇 소절씩 번갈아 부르는데
어색한듯 하면서도 의외로 꽤 잘 어울린다.
재미있다. 이런 느낌, 이런 시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판소리 "쑥대머리"와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A time for us"가 이렇게 서로 잘 어울릴 줄...
너무나 귀염성있는 두 명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 4부,
"1300년의 사랑이야기"
두 대의 바이올과 한 대의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임동창의 피아노.
오지윤과 임태경은 구음으로만 노래한다. 아니 이야기한다.
확실히 이 곡 속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리도 대사가 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임태경은 말했었다.
... 동양의 것고 서양의 것, 남자의 소리와 여자의 소라, 이렇게 극과 극으로 다르리라고 정의되는 것이 어떻게 어우러져 하나가 될 수 있는지, 그러므로 결국 음악은 하나다라는 깨달음을 공유랄 수 잇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음악은 다르지 않다.
소리는 다르지 않다.
느낌은 다른지 않다.
음악과 소리는 마음이고 대화고 눈맞춤이고 살부빔이다.
현란하고 화려한 기교의 사운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어쩌면 임동창은, 함께 연주했던 그 모든 사람들은
"쉼"을 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겟다.
참 잘 쉬었다고... 그래서 다정해졌노라고...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동백언덕에서
                        -양중해

십년 뒤에
동백언덕에 갔더니
동백꽃은 예전대로 붉게 피었구나

전에 봤던 얼굴 기억해 두었다가
어찌 혼자 왔느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것이 아닌가
그렇고 그렇더라고 했더니
어찌 그럴 수가
어찌 그럴 수가

슬픈 것은 난데
동백꽃들끼리 일제히 울음을 터트린다

십년 전
내가 동백언덕을 찾아가던 사연을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동백꽃들은 이미 알고도
모르는 척 하고 있었더구나!


참 좋은 시였다.
아! 그리고 3부와 4부 사이에 임동창의 피아노 독주 "4월의 신부"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참 행복하겠다.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9. 25. 06:17
 <나가사키 파파>- 구효서


나가사키 파파

 

오늘 소개할 책은 <나가사키 파파>입니다.

작가 구효서님은 1958년 생으로 신춘문예를 통해 1987년 등단해서 20 여년 동안 정말 많은 소설을 발표한 분입니다.

<카프카를 읽는 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마디>,  <그녀의 야윈 뺨>,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악당 임꺽정>, <낯선 여름>...

한 때 정말 열심히 찾아 읽던 소설가 중 한 분이었습니다.

<나가사키 파파>는 그가 6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입니다.(중간중간 중단편들은 계속 발표했었지만요)

기대했냐구요? 물론 기대했죠.

그리고 역시 기대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구요.

여성의 문체를 보는 듯한 따뜻함이며 디테일한 섬세함, 그리고 어떤 한 순간을 포착해서 멋지게 서술하는 그만의 특성들을 아주 맘껏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답니다.

이분의 단편들을 모아서 만든 아주 유명한 영화도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바로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죠.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 나가사키의 음식점 '넥스트 도어'에서 일하는 21세 한국인 “한유나”입니다.
그녀는 친부를 찾으려는 일념에 바다를 건너 지금 이곳 나가사키에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 조금은 철없는 메일을 보내옵니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아버지 찾기라는 가시적인 목적에, 그녀 주변 인물들의 사연과 어머니의 메일을 통한 과거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바리데기>라는 전형적인 “아비 찾기”의 신화 원형을 이야기의 뼈대로 채택하고 있지만 결국은 그 원형을 벗어나 “자아 찾기”로 결말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유나의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 일본 사회의 주변적 존재들입니다.

일본 원주민 '아이누' 출신으로 자폐적 삶을 살아가는 일급 요리사 “쓰쓰이”.

부락민(천민 집단 거주지) 출신 여성을 사랑하는 식당 지배인 '“오오카”.

'조선' 국적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불화를 겪는 재일동포 3세 “미루“ 언니.

이상하게 착하고 만만한 스무 살의 퀴즈왕 “히데오”

세상의 온 벽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홀 담당 “기구치”.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짓지만 죽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중국인 “아이코”.

그동안 숨겨왔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과 '출생의 비밀'을 이메일로 털어놓는 철부지 엄마 박성희도 소설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화자중 한 명입니다.

그녀의 남편 한빈, 그리고 한유나가 찾아 나선 또 따른 아빠 정민태.


궁금했습니다.

왜 <나사사키>란 지명을 차용했을까 하고요.

그래서 찾아봤죠. 그리고 나서 이해가 됐습니다.

<나가사키>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일본 주류사회로부터 배척받는 이들의 삶터가 된 곳으로 일본 개항 역사의 시발지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즉 모든 인종들이 혼합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바로 나가사키였던 거죠.

일본의 순혈주의에서 배척당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아웃 사이드적인 장소.


이 소설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 오랜 길을 통해 오히려 아버지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자신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작가의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볼까요?

"소설에서 뭘 드러내고 그러면 재미없어질까봐 (메시지를) 꼭꼭 누르긴 했지만 작품 속에서 조금씩 흘러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혈통, 고향, 넓게는 민족, 인종 등 테두리 짓고 공통의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들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고...


“스물한 살, 나를 충동한 것은 결국 방황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대목처럼 정말 그럴 때가 있습니다..

“사는 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싶을 만큼, 모든 게 만만해지며 터무니없이 행복해지는 순간, 사각형 투성이의 공간도 더 이상 답답하지 않는 순간”이..

주인공 한유나는 생각합니다.

“더 이상 헤매지 않으려면 또 다른 아버지와 가족과 고향을 찾을 게 아니라, 나를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라고요.

아버지와 가족과 고향과 나라와도 무관한 나. 기대면서 닮고, 닮아서 군림할 수밖에 없게 될 나로부터 도망친, 전혀 다른 이름의 나.

그녀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나>를 찾지 않는다면 어떤 아버지를 찾던 그 아버지를 잃게 될 거라는 거, 아니 결국 스스로 찾은 아비를 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요.


그렇다면 <아버지>란 여기서 결국 내가 품고 있던 옹졸한 꿍심의 다른 이름이었던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내 불확실성이 나 때문이 아니라 불확실한 아버지 때문이었노라 밀어붙일 수 있는 아주 그럴 듯한 보호막이 아버지였던 거죠.

“퓨전”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시죠?

별개의 재료들이 합쳐져 제3의 다른 어떤 것으로 재탄생되는 퓨전의 신비,

이 책에서도 그런 퓨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이질적인 사람들이 이곳 “넥스트 도어”에  모여 있습니다.

실제로 주인공은 이들을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은 혈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그런 형태의 가족입니다.

아마도 주인공은 그 세계에서 더 큰 아버지를 찾게 되지 않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제가 일하는 곳에서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만나서 많이 변할 수 있었음을 고백하게 되네요.

누구든 그럴 때가 없겠습니까!

나를 파괴하고 싶고, 철저하게 해체하고 싶고, 내가 내가 아니길 꿈꾸는 그런 때.

해답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이 책은 공감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공감 또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