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6. 7. 11. 08:41

2016.05.31.

전날 일찍 잠이 들어선지 새벽 일찍 눈을 떴다.

(밥도 안먹고 그대로 숙면 모드...)

새벽 5시가 좀 넘은 시간인데도 해는 이미 쨍하다.

커튼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어찌껏 뭐하냐며 빨리 나오라고 신나게 타박 중이다.

그래서 서둘러 뒹글뒹글 모드를 해제하고 조식 전에 한적한 플리트비체를 산책하기로 했다.

카메라와 핸드폰만 챙겨들고 Go out! ^^

 

 

아뿔싸...

카메라에 사진을 찍으려는데 밧데리가 없음 표시가 뜬다.

어젯밤에 충전기에 끼워놓고 그냥 나왔다는게 생각났다.

단출하게 나오느라 여유분이 들어있는 파우치도 침대 위에 곱게 올려뒀는데...

다시 돌아갈까도 살짝 고민했는데 그냥 아침의 고요를 즐기기로 했다.

그래도 핸드폰까지 두고 오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아쉬운데로 아침 산책 사진은 핸드폰으로!

 

 

와... 그런데...

플리트비체 최고의 풍경은 나는 그 새벽의 산책에서 맞닥드렸다.

E코스를 따라 P1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

아무도 없는 호수 안에 생각지도 못했던 비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완벽한 데깔코마니.

넋을 놓고 한참을 잔디밭에 앉아있었다.

이른 시간에만 볼 수 있는 멋진 풍경.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사람들에게 어서 빨리 와서 다들 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만 몰래 품고 싶은 마음.

설핀 보면 앙코르 와트를 보는 느낌.

모든게 일시 정지된 순간이었다.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완벽한 내 세상.

이 말도 안되는 주인의식^^

그게 내가 아침 산책을 고집하는

단 하나의 이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7. 1. 08:05

플리트비체에서 세번째로 큰 Galovac 호수와 Veliki 폭포를 지나

가장 큰 Kozjak 호수를 향해 길을 나섰다. 

호수를 지나는 배를 타기위해 P2 선착장으로 가는 길.

풀숲과 나무에 넋을 뺏겨 자주 멈추고, 자주 뒤돌아봤다.

혼자 걷는 길인데도

마치 누군가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 막 시작된 연인처럼

걷는 내내 설래고 또 설랬다.

 

 

P2에서 P3까지 배로 30분이 걸린다는데

실제 이동한 시간은 20분 정도.

배 위에서 바라본 에메랄드 호수는 청량하다는 단어가 무색할 지경이다.

저 호수 아래로 금방이라도 아바타가 불쑥하고 올라올 것 같다.

물에 녹아 들어간 석회암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색.

호수가 자꾸 나를 끌어당기는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주 노골적인 유혹이라 그대로 빨려들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서...

 

 

P3 선착장에 내리면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나오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전기구이 통닭을 파는 "Kozjačka draga"이다.

(맛있어서가 아니라 이것밖에 먹을만한게 없어서...)

오전에 트레킹을 시작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치킨이나 피자로 점심을 해결한다.

하지만 나는 두브라비카에서 사온 빵과 물로 배를 채웠다.

그것도 길 위에서 걸으면서.

 

눈(目)의 "허기(虛飢)"는 참 무섭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어 결국 입(口)까지도 꿀꺽 삼킨다.

의도치않은 1일 1식.

크로아티아에서 나의 눈(目)은 위(胃) 대신이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6. 6. 27. 08:32

2016년 5월 30일 월요일.

플리트비체를 가기 위해 자그레브 버스터미널에서 7시 30분에 출발하는 첫차를 탔다.

조식 전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야해서

아침으로 간단하게 씨리얼을 준비해준다고 했는데 결국 우유를 찾지 못해 빈 속으로 나왔다.

그래서 터미널에 있는 그 유명한 두브라비카(dubravica)에서 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6시 30분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는데

밖은 이미 한낮의 햇빛이다.

거리에 나혼자 있는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거리도, 트램도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더라.  

 

 

50년이 넘었다는 dubravica는 늘 손님으로 북적인다.

이른 아침인데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

아침으로 먹을 라코다치즈가 듬뿍 들어있는 샌드위치와 플리트비체에서 점심으로 먹을 가벼운 빵 2개를 샀다.

가격은 20 Kn.

갓 구은 빵냄새에 잠깐 자제력을 잃을뻔 했지만 

오래 걸어야 한다는걸 되새기며 아쉬움을 안고 돌아섰다.

자판기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4kn)을 뽑아 2층 206 플랫폼으로 올라갔다.

역전 앞 노숙자 버전이긴 했지만 의자 한켠에서 서둘러 먹은 샌드위치는 맛은 그만이더라.

아. 이래서 사람들이 두브라비카 드부라비카 하는구나...

양이 좀 많긴 했는데 아주 깨끗하게 클리어한 후 버스를 타러 1층으로 내려갔다.

(도대체 왜 2층으로 올라가게 만든건지... 어차피 다시 내려가야 하는데...)

짐값은 7Kn.

 

 

버스 안에서 본 멋진 풍경들.

급기야 라스토케 지나가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그 즉시 결정했다.

스킵하기로 했던 라스토케를 꼭 가야겠다고!

오늘 저녁이든, 내일 아침 일찍이든.

작은 플리트비체라 불리는 라스토케.

이만큼 떨어진 곳에서 바라봐도 그대로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그래, 저긴  꼭 가야겠다.

스치듯 지나가게 되더라도.

 

 

플리트비체 입구 1을 지나 입구 2에서 내려 찾아간 벨뷰(Bellevue) 호텔.

역시나 일관된 길치답게 바로 앞에 호텔을 두고 캐리어를 끌고 한바퀴 크게 돌았다.

(그것도 수십 번은 물어 물어 겨우 찾아갔으니... 쯧!)

체크인 시간보다 훨씬 먼저 도착해서 일단 가방을 맡겨놓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이날 거의 8시간 정도 걸었던 걸로 기억된다.)

다시 호텔로 돌아왔을 땐 발바닥이 활활 불타오르는 느낌.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가 아닌 나혼자 오롯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게 참 행복하더라. 

여행 전에 이 호텔이 시설도 낡고 룸도 작아 불편했다는 말들을 많이 들어 걱정했는데

난 뭐 이 정도면 혼자 묵기에 아주 훌륭하더라.

창문 바로 옆에 침대가 있는 것도 좋았고

커튼을 열면 햇빛 가득한 공원이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지는 것도 좋았고 

샤워실과 화장실도 저 정도면 깨끗한 편이었고.

리셉션의 스텝들도 다들 친절했다.

(내일 아침 조식까지도 훌륭해주면 그야말로 완벽인데...)

 

오래되긴 했지만 소박하고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던 곳.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에 느낀 뜻밖의 편안함.

소박한 여행자의 작은 행복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