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고 끄적 끄적...2014. 9. 15. 07:04

망설이다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이번에는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를 만나면 주저앉아 읽으려고 책까지 챙겼다.

우유랑 콘프레이크 약간, 그리고 물까지...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그런데...

만약 계속 망설이다 나가지 않았으면 많이 후회했을것 같다.

어제 만나 하늘빛, 물빛, 세상빛은 정말이지 너무 예쁘고 상쾌했다.

여름과 가을의 중간을 지나가는 풍경 속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대로 그 속으로 스르륵 형체도 없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요즘 하늘이 그야말로 너무 유혹적이라 자꾸 카메라를 챙기고 싶어진다.

핸드폰 말고 제대로 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에...

당분간은 좀 자제를 해보겠지만

어느날 등짝에 커다란 배낭이 매달려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면서 뛰고 싶어 안달난 상황 ^^ 한 손 놓고 타는 것도 못하면서...)

어제는 구리에서 서울러 넘어가는 초입 벤치에서 한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요즘 다시 오르한 파묵의 책들을 읽고 있는데

역시나 몇 번씩 읽어도 좋다.

(아마 수백 번, 수천 번을 읽는다해도 오르한 파묵의 책은 실증날 일이 없을거다.)

한강이 전면에 펼쳐진 벤치에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그러다 잠깐 고개를 들면 눈부신 풍경에 넋을 잃고...

 

진심으로,

"천국"이더라.

세상 모든게 그곳에, 그 순간에 다 있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는 완벽한 시간이었고, 완벽한 장소였다.

아마도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었던 것 같다.

 

아주 많이 편안했고

아주 많이 포근했다. 

그거면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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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끄적 끄적...2014. 8. 12. 08:02

언니랑 조카가 배웅하고 자전거를 탔다.

처음엔 양화대교까지 다녀오려고 했는데

오후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계획을 바꿔서 조금만 더 달려보기로 했다.

결국 동작대교와 한남대교를 지나 동호대교까지 다녀왔다.

집에서부터 계산하면 대략 28 Km를 달린 셈.

정신없이 패달만 밟은건 아니고

중간중간 멈춰서 풍경도 보고 핸드폰으로 변화되는 하늘과 길도 찍으면서 달렸더니

왕복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나더라.

또 다시 절감하는건,

나는 달리는걸 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거다.

사실은 한때 마라톤을 해볼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실제로 도전 비슷한 것도 해보긴 했는데

발이 살짝 평발이라 생각처럼 잘 뛰지는 못하더라.

그런 의미에서 자전가는 달리고 싶어하는 내 소박한 욕망을 잘 제어해주고 실현하게 해준다.

입추가 지나서 그런지 바람도 제법 선선해졌다.

시간이... 계절이 조금씩 물러가고 있다는게 선명히 느껴진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지만

하늘색과 물색, 길색이 변하는데 다정하고 신비롭다.

속도를 즐기다가도 색이 변하는 풍경을 목격하면

어쩔 수 없이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월요일이라 그랬겠지만 어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적어서

다행히 자전거도로가 한가로웠다.

자주 멈추고 자주 시작하는 게 타인에게 민폐가 될 수도 있는데

꽤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자전거길을 다 차지하고 달린 구간도 많았다. 

고백컨데 아주 근사한 호사였다.

 

그런데 그 즐거움에 살짝 무리가 됐던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꼬리뼈가...

아프다. 

 

오늘도 또 달리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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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끄적 끄적...2012. 6. 29. 07:42

한강과 김영하.

늘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젊은 작가다.

참 다른 두 사람인데 이렇게 연달아 읽고 나니 묘하게 닮아있다.

이 두 사람...

앞으로도 계속 내내 소설가였으면 좋겠다.

내가 이 사람들을 계속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다만 바라는 건 그것 뿐 ^^

 

2005년 한강이 <몽고반점>으로 제 29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때

그 단편을 읽고 좀 황당했었다.

그로테스크하고 싸이코적인 내용이 그닥 호감가는 작품은 분명 아니었다.

형부와 처제의 미친 행각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하지!

연작 소설 중 가운데 토막만을 덜렁 읽었으니 앞뒤가 황량한 벌판 같았던 게 그러니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채식주의자 - 몽고반점 - 나무 불꽃

연작들을 차례로 읽으니 비로소 소설들이 갖는 무게감과 존재감에 어깨가 뻐근하다.

이상문학상 작품집 출판 당시 작가 자선 대표작에 <채식주의자>를 수록했다면

나처럼 미련 떠는 독자가 좀 줄지 않았을까 뒤늦은 아쉬움을 토로해본다.

2011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 같은데 본 사람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일본에서도 이 책이 출판되고 큰 반향이 있었단다.

읽어 보니 확실히 문제작이긴 문제작이다.

1970년 출생한 작가 한강.

따지면 나와 동시대쯤에 태어난 사람인데 어쩌면 이렇고 풍부하고 가차없고 기괴하고 아름다울까?

한때 나는 우리 세대는 작가가 되기엔 너무 평탄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오만과 아둔함에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

어느날 꿈에서 본 핏빛 환영때문에 갑자기 모든 육류를 먹지 않게 된 몽고반점을 가진 여자 영혜.

<채식주의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몽고반점>은 그 여자의 형부가,

그리고 마지막 <나무 불꽃>은 그 여자의 언니가 화자로 등장한다.

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자신의 동맥을 그어버린 여자.

그 여자와는 도저히 함께 살지 못하겠다는 남편.

이혼한 여자는 온 몸에 꽃으로 바디페인팅을 한 채 작품을 찍어달라는 비디오 아트스트 형부의 부탁을 들어준다.

급기야 형부도 온몸에 꽃을 그리고 묘한 예술혼에 사로잡혀 체제와 성관계를 갖는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을 보게 된 언니.

모든 가정은 그야말로 사단이 나고 결단이 난다.

추잡하고 사이코델릭한 막장 드라마?

아니다. 

인간이 원초적인 식물로 정화되는 이야기라고 해두자.

그 여자는 분명히 깊고 굵은 뿔리는 내렸을테다.

물과 햇빛.

그걸로 삶은 충분하다!

그녀는 무덤처럼 지쳐있었다.

 

"언니!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돼. 살 수 있어. 햇빛만 있으면"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어미가 녹슨 가위로 탯줄을 잘라 세상에 나오게 한 아이 제이.

그리고 함구증(啣口症)을 앓았던 아이 동규.

세상 모든 것의 목소리와 고통을 듣는 제이.

이야기는 동화일까? 아니면 환상일까? 아니면 단지 소설일까?

확실히 나는 처음에 이 소설을 동화처럼 읽었다.

아주 순수하고이쁘게... ^^

그런데 젠장!

이 한 권의 책 속에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비참하게 그려져있다.

난장을 까는 십대들,

야생에 가까운 무절제한 폭력과 섹스,

친구들에게 집단 구타당하고 학대받는 장애인 소녀, 

가출한 소녀들이 원조교제를 통해 벌어온 돈으로 살아가는 소년들.

인간(人間) 에겐 무수한 틈(間)이 있고 무수한 타락의 본능(奸)이 있다.

마지막 부분은 사족같아 힘이 좀 빠지긴 했지만

매력적이고 집요한 이야기다.

처음에 이 책표지를 봤을때 촛불집회와 관련이 있나 싶었는데

김영하에게 또 여러 가지로 한 방 제데로 먹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김영하의 한 방은 참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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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끄적 끄적...2012. 3. 26. 05:59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넘김과 동시에 다시 첫 장을 펼쳤다.

연거퍼 두 번을 읽고 나서야 조금 숨이 쉬어졌다.

급작스런 실명(失明)같은 침묵이 밀려왔다.

난.감.하.다.

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읽어가는 남자의 이야기에 내가 휘둘리다니...

그 남자의 빛과 그 여자의 침묵은 가깝고도 멀다.

그들의 빛과 언어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을 돌려주기 위해 나는 투쟁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연약함을 증언하는 한국의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

우리나라에 교환교수로 왔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는 한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국(異國)의 작가도 진즉에 알아본 한강은 나는 좀 뒤늦게 앓고 있는 중이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며 읽게 만드는 힘!

내가 지금 읽음으로 앓고 있는 한강은 이렇다.

"어느 순간 내가 쓴 문장 자체가 너무 싫어져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어요. 머리 속에 어떤 단어를 떠올려도 견딜 수 없었어요. 진실인 것 같지 않고...... 언어에 매력을 느껴 시작한 일인데, 그 언어가 왜 거꾸로 괴로움을 주는 건지"

한강은 그 고민은 아예 소설로 써서 부딪쳐 보기로 작정했단다.

그러나까 소설 <희랍어 시간>의 기원은 언어에 대한 작가 한강의 문학적 실어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목소리가 큰 사람을 싫어한다.

큰 목소리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소란함을 나는 견뎌내기가 힘들다.

책 속의 그녀와 나는 그런 점에선 동일인물이다.

...... 말할 수 있었을 때, 그녀는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꼭 자신의 몸의 부피만큼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나는 그쪽을 택하고 싶다.

독백같은 대화만으로도 의미가 전달되길 턱없이 소망한다.

...... 세 치의 혀와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들, 헐거운 말들, 미끄러지며 긋고 찌르는 말들, 쇳냄새가 나는 말들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찼다. 조각난 면도날처럼 우수수 뱉어지기 전에, 막 뱉으려 하는 자신을 먼저 찔렀다 ......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설움을 생각하면 참 미안한 일인데

말함으로 인해 생기는 설움을 감당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말을 잃으면 글을 얻을까?

...... 말을 잃기 직전, 그녀는 어느 때보다 활달한 다변가였다. 어느때보다 오래 글을 쓰지 못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공간 속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이 쓴 문장이 침묵 속에서 일으키는 소란 역시 견디기 어려웠다 ......

점자책을 읽듯 한 줄 한 줄 손끝으로 집어가며 읽은 책.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말을 잃는 것과 시력을 잃는 것 중 어느것이 더 힘들고 서러울까를 생각했다.

수천년 전에 이미 죽은 언어인 희랍어가 배우고 싶어졌다.

사장(死葬)된 침묵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 침묵 속에 함께 사장되어 나는 눕고 싶었다.

 

가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 몸에 눈꺼풀과 입술이 있다는 건.
그것들이 때로 밖에서 닫히거나,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잠글 수 있다는 건.

 

닫을 수 있는 사람은,

걸어잠글 수 있는 사람은 편안하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3. 28. 06:35

조정래의 1970년대  초기작품을 모아 재판된 책 <상실의 풍경>
그를 두고 왜 대가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태백산맥> 10권, <아리랑> 12권, 그리고 한강 <10권>
나는 그동안 그의 대하소설이나 장편소설에만 너무 익숙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분량이 주는 위대함과 동시에 내용이 주는 거대함의 압도이기도 했다.
그의 단편들을 눈에 담는건,
조금은 당혹스럽고 익숙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몇 장을 읽지도 않았는데도 그만 그 속에 푹 빠지고 만다.
작가 조정래는 또 다시 70년대 그 격변의 현장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역사가... 그 시간이...
명확하고 분명하게 실감된다.
그의 글들은 내가 결코 알지 못할 시간들을 직접 체험하고 육화하게 한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누명
선생님 기행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빙판
어떤 전설
이런 식(式)이더이다
청산댁
거부 반응
상실의 풍경
타이거 메이저 

이젠 전부 역사 속의 일이다.
여순반란사건, 베트남 전쟁,
그리고 월북한 아비로 인한 대를 이은 빨갱이 낙인,
연좌제라는 몰상식의 폭력은 아들의 소위 임관 자격을 박탈함으로써
건장하고 유망한 청년의 일생을 하루 아침에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조정래는 말한다.
"유전병치고도 아주고약한 유전병"이라고...
그런데 지금 이 모든 것들은 정말 과거의 이야기에 불과할까?
전쟁, 피난, 미군, 카투사. 그리고 한국군에 대한 차별...
전후복구 세대들의 지독한 가난과 살아가기 위한 치열함.
한 편 한 편의 역사와 시간을 읽는 건,
곤욕이었고 비참함이었고 억울함이었다.
그리고 아련하게나마 이런 느낌을 갖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지금의 나인 것 같다.

조정래를 생각하면 <태백산맥>의 논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보안법상의 이적 표현물과 적에 대한 고무 찬양!
한때 이 책은 절판이 되기도 했었다.
1992년에는 이런 웃지 못한 대검 발표도 있었다.
"학생이나 노동자들이 읽으면 불온서적 소지, 탐독으로 의법 조치할 것이며,
  일반 독자들이 교양으로 읽는 경우에는 무관하다"
정말 황당하지 않나?
누가 읽느냐에 따라 위법의 여부가 결정된다는 사실이...
시덥잖은 권력에서 시작된 폭력은 그 몰상식으로인해 더 잔인하고 비열하고 비겁하다.
그 비바람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버텼던 직기 조정래가
그래서 나는 신화처럼 위대하고 거대하고 신비롭다.

확실이 전후의 우리 문단은
그로 인해 풍성했고 의미심장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28. 05:54
며칠 여행을 다녀왔다.
혼자 눈으로 쫒으며 걸었던 흙길은 충분히 포근했고
그 길에서 마주친 기백년된 나무와 쇠락한 사당들, 고택들은 신성하고 그윽했다.
처음엔 부러움 때문에 못된 심통이 일어 그만 덮어버리고 싶은 여행이었다.
그런데 눈으로 쫒는 한걸음 한걸음에 그만 내가 넋이 나갔나보다.
팍팍했던 무릎팍에 힘이 주면서 계속 걷자, 계속 걷자며
나도 모르게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직접 걸어볼 깜냥도 안 된다면
그래, 이 여행도 그리 억지는 아니라며 나를 다독이면서...



책 속에는 꼭 걸어봐야 할 대한민국 아름다운 길 50 곳이 소개되어 있다.
별로 친절하게 세세한 코스를 이야기해주는 것도 아닌고
눈에 확 띄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 지천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꼭 내 두 발로 함께 걷고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촘촘한 글자에 꽤 무거운 책의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이틀동안 지하철 안에서 읽어냈던 건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아우르는 50 곳의 도보 여행지.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무려 14시간을 걸리는 트레킹 코스를 소개하면서
중간중간 시나 옛글들을 운치있게 배치한 게 또 소박하고 정겹다.
세월과 함께 버려진 역사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걷다보면 보전되지 못하고 방치된 옛 것들이 꼭 말을 걸어오는 것 같지 않을까?
나도 한 번 기억해달라고...



몰랐었다.
서울 근교에도 걷기 좋은 곳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 길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또 그렇게 많다는 것도
억울한 생각이 들만큼 내내 몰랐다.
꼭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도 올레길이 아니라도
서울 근교에도 일부러 공을 들여 걸을 길이 얼마나 많던지...
서울 성곽, 북한산성, 남한산성 오름길도
사라진 나룻터를 떠올리며 한강 따라 걷는 물길도
라이브 카페만 떠올리는 양수리에서 광나루까지의
물안개 자욱한 신비로운 아침길도
조금만 바지런을 떨면 두 발로 걸어 느낄 수 있었을텐데...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발부터 가장 바쁘 사람이 아닐까?
피터 한트케의 글처럼 "걷는 사람"만이 세상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리라.
그래, 걷자!
지쳐서 무릎이 시큰할 때까지...
그 시큰함이 고된 상쾌함으로 온 몸을 쾌활하게 만들지도...


탈 것에 몸을 싣고 가면 나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걸을 때만 공간이 열리고 빈 공간들이 춤을 춘다!
걸으면서만 나는 나무에 달린 사롸로 몸을 돌릴 수 있다.
걷는 사람만이 머리가 어깨 위로 자라난다.
걷는 사람만이 자기 발에 발꿈치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걷는 사람만이 육체를 통한 이동을 느낀다.
걷는 사람만이 높은 나무의 소리를 정확하게 듣는다.
정적을! 걷는 사람만이 만회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에게로 갈 수 있다.
걱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이 유효하다.

- 페터 한트케 <역사의 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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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끄적 끄적...2010. 7. 9. 06:33

그런 책이 있다.
눈으로 읽다 보면 눈이 아파지는 그런 책.
그러다 마음이 아프고, 당연하다는 듯이 온 몸이 따라 아파오는 그런 책.
내게 한강의 4번째 소설이 꼭 그랬다.
자주 가슴이 먹먹해졌고 한참을 가만가만 쓸어내리며 다독여야했고
그러면서도 손에서 놓아지지 않던 책.
한강은 발레리의 시 구절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를 차용한 책의 제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생에 거센 바람이 불어 기울어지고 뿌리가 뽑힐 지경이 되어도 어떻게든 나아가라,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가라는 뜻에서 붙였다"
고...
4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질지게 동행하는 눈 덮인 미시령의 두 사고.
그리고 사람들, 관계들.
그 모든 걸 원했던걸까? 
어쩌면 인주는 모두에게 버림받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말을 쓰는 내 손 끝이 예리하게 아파온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까지 4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Breath Fighing.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스스로 숨을 쉬는 바람에
환자의 호흡과 인공호흡기의 호흡이 맞부딪치는 순간.
Breath Fighing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들숨과 날숨이 싸우듯이 인물의 감정이나 관계, 문체, 그리고 소설 자체도 들썽들썽 부딪히면서 격렬하게 싸우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어요"
소설의 계기에 대해 한강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찢겨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한 편에는 자연과학에서 보여주는 경외롭고 아름다운 세계가 있고, 다른 한 편에는 만신창이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조건, 나약함, 몸부림, 욕망, 간절한 사랑이 있어요. 찢겨진 채로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먹그림처럼 읽혀지는 이야기.
먹이 번지는 오랜 물길을 따라 가야 했었나?
낡고 오래된 흑백사진을 읽고 있는 것처럼 가슴 한켠이 무너진 기억으로 먹먹해온다.
그리고 때때로 시처럼 껑충껑충 텅 빈 여백을 읽어내야 했던 이야기.

고백해야만 한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고.
내 눈물을 믿지 않는다고.
내 진실을 믿지 않는다고.
내 기억을, 고통을 믿지 않는다고.




나는 너를 몰랐다.
네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
하지만, 어쩌면 너도 나를 모른다고 느낄 때가 있었을까.
내가 너를 몰랐던 것보다 더.


이런 이야기를 넌 이해하지 못하지.
끔찍하게 나약한 사람, 나약해서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겠니. 나약함이 죄의 시작일 수 있다는 걸.
간절함이 알 속의 죄를 깨어나게도 한다는 걸.
문밖이 낭떠러지인 줄 알면서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어리석음을.
모든 일들의 시작이 자신이었음을.
그러니 자신을 제거하는 것만이 단 하나의 논리적인 길임을 확신하는 순간을.
무의미로 무의미를, 어리석음으로 어리석음을 밀봉하려는 마지막 결단을.



네 번의 겨울을 이 소설과 함께 보냈다는 한강은 
이 소설 때문에, 여름에도 몸 여기저기 살얼음이 박힌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 조각조각 박힌 살얼음이 이번엔 어쩌자고 내게로 옮겨왔다.
난 아프고 싶지 않은데...
한 번 들어온 아픔은 오래오래 자리잡고 나를 흔드는데...

Dark side of the moon
달의 뒷면.
똑 같다.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동일하다.

내가 아픈 것은 달의 뒷면 같은 곳,
피 흘리는 곳도, 아무는 곳도,
짓무르고 덧나는 곳, 썩어가는 곳도 거기.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

인주는 정말 자살을 선택했을까?
아님 떠밀리듯 어쩔 수 없었던걸까?
사랑한다는 건, 
살아간다는 건
통증보다 더 선명한 아픔이다.
그렇다고 남겨진 사람이 덜 아플까?
인주의 마지막 일 년을 쫒아가며 정희는 인주가 되어간다.

“이런 바람이 불면 말이야.
 이만큼의 습기를 품은 바람이, 이만큼의 세기로 불면 말이야……
 혈관 속으로 바람이 밀고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져. 모든 것이 커다란 전체로 느껴져.
 언제고 내 다리를…… 단박에 목숨까지 꿰뚫을 수 있는 삶을 지금  살아내고 있다는 게,
 무섭도록 분명하게 느껴져.“


적막에도 형상이 있단다.
어떤 형상이 그려지든 나는 그대로 오래 침묵하고 싶다.
책 장의 마지막은 ...
끝까지 한결같이 아팠다.
느릿느릿 게으르게 죽을 거라는 사람이.
마지막 호흡을 또렷히 느끼면서 최선을 다해 끝까지 침착하게 죽을 거라는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