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8.04 <숨그네> - 헤르타 뮐러
  2. 2009.07.20 달동네 책거리 55 : <추 락>
  3. 2009.07.10 <추락> - J.M 쿳시
읽고 끄적 끄적...2010. 8. 4. 06:41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
스웨덴 한림원은 그녀를 선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응측된 시와 진솔한 산문으로 박탈당한 삶의 풍경을 그녀내는 작가" 라고.
(정말로 그녀의 글 속엔 이 모든 게 다 들어있다. 시, 산문, 그리고 그림까지...)
그녀는 비밀 경찰의 눈을 피해 남편이자 동료 작가인 리할트 바그너와 함께
조국 루마니아를 떠나 독일로 망명했다.
이로써 루마니아는 위대한 유산인 그녀를 잃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녀의 작품에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낯선 시선" 이라고...
헤르타 뮐러가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이 작가를 알 수 있었을까?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 한림원의 선택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1944년 여름 붉은 군대가 루마니아를 깊숙이 점령해 들어가고
파시즘을 신봉하던 독재자 안토네스쿠는 체포되어 처령당했다.
소련에 항복한 루마니아는 그때까지 동맹국이었던 나치 독일을 향해 급작스레 전쟁을 선포했다.
1945년 1월 소련의 장군 비노그라도프는 스탈린의 이름으로,
나치에 의해 파괴된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루마니아에 살던 1세에서 45세 사이의 독일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빠짐없이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유형을 갔다.
헤르타 뮐러의 아버지 또한 이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되었다가 돌아왔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오 년간 노역했다고 한다.
수용소 이야기...
또 다시 안네의 일기의 반복이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게 된다.

책 속의 주인공은 17살에서 22살까지 5년 동안
독일인의 러시아 수용서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는 상태다.
벌건 양배추스프와 아침에 배급되는 자그마한 빵으로 하루를 연명하면서
밤새 배고픔을 먹어야 하는 생활.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배고픔이 담겨져 있다.
책 속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훔친 도둑이었고 단어들이 불시에 나를 덮쳐 붙잡았다" 라고...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잃고 수용소에 갇히게 될 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가 될까?
바보가 되든, 아니면 체념을 하든, 혹은 깨달은 자가 되든....
그러나 이 책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단어 선택 하나하나조차도 감탄스럽다.
책 장을 넘길수록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묘한 편안감에 빠져든다.
수용소 이야기를 이렇게 편하게 읽어도 되는 건가 싶어 미안한 마음마저도 든다.
책의 언어는 몹시. 몹시.
아.름.답.다.
줄을 바꿔 짧게 나열하면 그대로 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될 만큼.
그러나 무기력하거나 허물어져 있지도 않다.
"너는 돌아올거야"
떠나는 그에게 남긴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그는 생각한다.
"두고 봐, 간단한 계획이지만 오래 버틸테니까."
그 다짐은 아주 건조하고 낯선 언어로 다가온다.
수용소에서 바라보는 모든 사물에 대한 시선이 시적이고 낯설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상황인데도 때론 몽환적일만큼 아름답다.
읽으면서 순간순간 섬득함마저 갖게 된다.
이런 감정을 갖는게 과연 정당한가???



주인공 소년은 청년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왔을 때 그가 느끼는 것 또한 "낯섦" 그것이다.

... 수용소로 가기 전 우리는 십칠 년을 함께 지냈고 문, 장롱, 탁자, 양탄자 같은 커다란 물건들을 공유했다. 접시와 컵, 소금통, 비누, 열쇠 같은 작은 물건들도 그랬다. 창과 전드의 빛도. 그러나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 더이상 우리가 아님을. 다시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낯선 존재가 된다는 것은 분명 부담이지만, 믿을 수 없이 가까운 거리에서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내 머리는 트렁크 안에 있었고, 나는 러시아식으로 숨을 쉬었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낯선 냄새를 풍겼다. 하루 종일 집 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침묵을 떠나기 위해 일이 필요했다. 나는 스물두 살이었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숨그네>는 인간의 숨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네처럼 가쁘게 흔들리는 것을 상징하는 제목이라고 한다.
스웨덴 한림원이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그녀를 선정하지 않았다면
헤르타 뮐러의 책은 결코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았을 거다.
(노벨상 수상으로 올해 그녀의 책이 2권 출판됐다. <숨그네>와 <저지대>
 내게는 더없이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시의 옷을 입은 비극"
숨그네를 말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헤르타 뮐러는 말한다.
"...... 상황은 처참했다. 문자는 아름다웠다. 나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문학의 명예였다 ......"

글은 소제목에 따라 아주 잘게 부서져 있다.
어떻게 이런 제목들을 가지고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 수가 있었을까?
명아주, 시멘트, 손수건과 쥐, 슬래그 벽돌, 지팡이, 공책...
직물적인 것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목격하는 건 심지어 경이에 가까웠다.
마치 일기를 읽는 것 같기도, 아름다운 산문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한,
그러면서 아주 잘 만들어진 거부감 없는 예술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기도 한 소설.
그래, 확실히 아름다운 건 분명 힘이다.
그리고 헤르타 뮐러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아름답고 강한 무기의 소유한 작가다.
찾아봐야겠다.
그녀의 또 다른 강한 무기가 세상의 어떤 것을 막아서고 아름답게 정화시키는지...

<숨그네>를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그녀의 <저지대>를 눈독들이기 시작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7. 20. 06:21
 <추락> - J.M. 쿳시


 추락


지적이면서 끔찍하게 치열한 책을 만나게 되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나면 정말 미칠 정도로 그 내용 속에 빠져들게 되죠.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그런 경험을 다시 했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추락>이 바로 그런 충격을 안긴 책입니다.

오싹하다 못해 머릿속까지 서늘해지는 느낌.

J.M. 쿳시라는 작가의 책을 처음 읽게 된 게 도무지 억울하고 속상해서 화가 다 날 정도라고 하면 이해가 되실까요?

이 소설의 원 제목은 <치욕>입니다.(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왜 “추락”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번역가 왕은철이란 분이 작가와 합의해서 제목을 고쳤다고는 하는데 “치욕”이라는 원제가 더 책의 내용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J.M. 쿳시!

가장 타협하지 않는 작가이자 가장 분명하고, 가장 용감한 작가로 알려진 사람!

2003년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96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플리처상보다 더 권위 있다고 알려진 부커상을 그것도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겠다는 전례를 깨고 세계 최초로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부커상 심사위원들은 “쿳시가 수상식에 참석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 이후의 만찬장에서도 그의 자리가 비어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를 선택했다”고 밝히기까지 했네요.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의 글은 아이스 피겔로 얻어맞은 느낌"이라고....

누군가는 또 말합니다.

"심오한 정치의식을 지니면서도 모든 단어들을 아름답게 조합하는 작가"라고요.

그의 글은 비록 이 책이 처음이긴 하지만,

실제로 여기에 나오는 모든 단어들은 에너지로 충만합니다. 그 에너지는 때론 “파렴치”한 욕망의 형태로, 때론 걱정 가득한 “부성애”의 마음으로, 때론 비난과 욕설, 그리고 원망과 싸움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살아 있기에 인정해야 하는 혹은 살아 있기에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

이 소설 안에는 그런 살아 숨쉬는 현실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글의 위대함이란,

그 안에 살아온 시대가 거짓 없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균형과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품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시도하기조차 어려운 일일 겁니다.

J.M. 쿳시, 이 사람의 글은 그래서 그대로 현실이 되어버립니다.


50을 넘긴 “데이비드 루리”.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대학교수 루리는 스무살 제자 멜라니와 충동적인 사랑에 빠져 잠자리를 함께 합니다. 결국 멜라니 부모의 고발로 진상위원회가 열리게 되고 루리는 추문의 한가운데 위치하게 되죠.

사과문 발표를 강요하는 그들의 요구를 거부한 루리는 결국 대학을 떠나 딸이 살고 있는 남아프리카 농장에 잠시 머무르게 됩니다.

루리는 말합니다.

“내 사건은 욕망의 권리에 관한 것이다. 어떤 동물도 본능을 따랐다는 것 때문에 벌을 받게 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야기의 초반은 이렇게 좀 불편하고 파렴치하기까지 합니다.

책 제목 그대로 욕망대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추락상을 보여주고 있죠.

이 루리라는 남자의 욕망은 비난받아 마땅하긴 하지만 그래도 당당함과 이유 있음에 무조건 손가락질 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욕망에 따라 살고 있음을 확실히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잠시 가면을 쓰고 기다리라는 주위의 권고조차 거부할 정도로요.

딸의 농장에서 함께 지내던 루리에게,

어느 날, 3명의 흑인 남성이 딸을 집단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일로 급기야 딸 루시는 임신까지 하게 됩니다.

자 이제부터 이 이야기는 “치욕”의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은 단지 추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게서 생명이 시작된 딸에게 일어난 사건은 “추락”을 넘어 “치욕”으로 다가옵니다.

이 사람, 이 치욕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버텨나갈까요?

백인 지배가 종결되고 흑인 정권이 들어선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과거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도 지금 혼란과 변혁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중입니다.

수백년간 지속되어 온 흑백갈등이 단순히 정권의 교체만으로 하루아침에 모두 해결될 수는 없는 일이겠죠.

어쩌면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그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만큼의 희생과 포기가 필요한 건지도 모릅니다.

흑인지배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 백인의 선택,

만약 당신이 그 세계를 선택했고, 선택한 그 세계에 머무르기 위해서 값을 치러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추락도 혹은 어떤 치욕도 감당할 자신이 과연 있을까요?

살아가는 게 욕망의 문제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선택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흑인들의 땅을 떠나라는 아버지에게 딸은 자신의 선택을 말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다시 시작하기에는 좋은 지점일 거”라고...

딸 루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걸,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밑바닥에서 출발하는 걸 배우겠다고 말합니다.

재산도, 무기도, 권리도 위엄도 그 무엇도 없는 본질에서부터 출발하겠다고요.

아비는 딸에게 묻습니다.

“넌 그 아이를 사랑하니?”

딸은 말합니다.

“아니요.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것에 관한 한 모성을 믿어야지요. 아버지, 저는 좋은 엄마가 될 작정이에요. 좋은 엄마이자 좋은 사람이 되겠어요. 아버지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보세요“

딸은 지금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책망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불안하고 혼란한 세계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믿음. 그들이 시작할 때 반드시 지니길 바라는 그 믿음에 대한 묵시론적 바램의 표현이죠.

불안의 시대면 여지없이 나타나 점점 커져만 가는 틈.

그 틈을 매울 수 있는 건 자신에 대한 “믿음” 그 하나뿐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한 세대와 한 세대 사이에는 커다란 장막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장막이 내려오는 걸 보지 못했다고 해서 이미 내려진 장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겠죠.

누가, 왜, 어떻게 이런 장막을 내렸는가에 대한 진상규명 탁상공론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 장막의 끝을 잡아야만 하겠죠.

다시 끌어 올리든, 힘껏 끌어 내리든 말입니다.

지금 스스로 추락의 시대, 치욕의 시대를 산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정직하게 그 질문의 방향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견딜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당신의 치욕은 결코 당신을 추락으로 이끌진 않을 거라는 걸 믿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7. 10. 06:03
J.M 쿳시의 소설 <추락>
이 작가의 책은 처음으로 읽어봤는데
충격적이다. 그리고 강렬하다.



소설의 원래 제목은 <치욕>이라 하는데
난 이 제목이 더 이 책의 내용을 대변하는 것 같다.
백인과 흔인의 문제
흑인에 의해 강간당하는 남아프카에 사는 백인 여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남기를 선택한 딸



누군가를 그런 표현을 썼다.
"아이스 피겔로 얻어 맞은 는낌"이라고.
J.M 쿳시....
그의 책을 탐하게 될 것 같다.
신비하고 모호하고 그리고 명석한 사람
1940년 생, 단 아홉권의 책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사람.
가장 타협하지 않는 작가이자
가장 분명하고, 가장 용감한 작가!
심지어 그가 시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스웨덴 한림원은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줄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는
이 책 한 권으로 그 고백을 100% 이해했다.



아비도 딸도.
이 책은 이해되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너무나 강렬하게 살아있다.
책 속 곳곳을 팔딱거리며 뛰어다니는 생명력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