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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4 설공찬전
  2. 2008.12.18 달동네 책거리 14 : <조선의 뒷골목 풍경>
보고 끄적 끄적...2009. 6. 14. 23:11

 

오랫만에 대학로에 나가 연극 한편 봤다.
내가 좋아하는 연출가 이해제의 작품 <설공찬전>
고전소설 <설공찬전>을 각색한 연극,
고소설은 귀신이 강림해서 저승에 머물면서 들은 이야기로 현실을 비판한다는 내용이란다.
지금 연극에선,
사촌 아우의 몸을 빌려 이승으로 돌아온 설공찬이
아비에게 못다한 효를 행하기 위해 권력을 얻으려 하는 내용이다.
재미있다. 충격적이고 실랄하다.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꼭 보게 만들고 싶은 연극,
솔직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두 진짜 빙의된 자들은 아닐까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 그건 확실히 아닌 것 같다.
그려려면 최소한 해학이나 풍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순전 막가파들의 투전판 같으니....



아비보다 먼저 저승으로 떠난 아들 설공찬은
효를 행하기 위해 20일의 기한을 받아 사촌동생의 몸을 빌어 이승으로 돌아온다.
관직에 오르기 위한 숙부와의 거래.
그러나 현실의 부정함과 아비의 간절함을 깨닫고 부패한 사람들의 몸 속을 넘나들며
거침없는 비판과 독설로 투전판같은 세상을 휘젖는다.
오늘날의 위정자들께서도 아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더 가지려고 아둥바둥하지 마시라고.....
그런 빙의된 모습으로 살다가는
언젠가 영매에게 쫒겨 쥐고 있던 모든 건 훌훌 놓고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손 안의 것 전부 가지고 가지 못한다면,
당신네들은 그 손을 여기 두고 가실텐가????
아무리 가지려고 쥐고 또 쥐어도
당신 손이 거머쥔 것이라고는 "귀신놀음",
그 뿐이라는 걸 저기 저 사람들이 모두 알았으면 좋겠네.

"가진 손보다 빈 손이 더 무겁구나..."
무섭고 두려운 말이 아닌가 !
투전판 위의 당신들에겐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18. 16:00

<조선의 뒷골목 풍경> - 강명관


 

조선의 뒷골목 풍경


 

지난번에 주로 명문가의 이야기를 했다면 오늘은 그 반대편 이야기를 좀 해보려구요.

이 책 역시도 우리 병원(미즈 메디)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던 책입니다.

조선시대라는 건 참 이야기의 보고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는 너무 먼 이야기인 것 같아 어쩐지 신화나 전설같은 느낌이 들지만 조선은 그래도 시간적으로도 제일 가까운 시대의 이야기라 그런지 왠지 더 친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요즘의 시대와 이상하게 비슷한 구석이 많이 있다는 걸 점점 더 알게 됩니다.


유교를 앞세운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면에 이런 모습이 있었다니... 어느 면에선 놀라게도 되고 어느 면에선 섬뜩함마저 느끼게 됩니다.

“뒷골목”이라는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나 풍경들을 나열한 게 아니라 요즘 말로 하면 그야말로 야생 그 자체의 보고서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은근히 그렇쟎아요.

정설보다는 속설에 귀가 댕기고, 그리고 정사보다는 야사에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어디서 이런 자료들을 채집했을지 작가의 정보수집력이 그저 감탄스럴 뿐입니다(거의 무림고수를 만나는 기분이라면 이해가 되실지...)


그렇다고 이 책이 어디 조선시대의 불법이나 범죄를 다룬 그런 책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뭐랄까... 한마디로 재치와 해학이 묻어나는 책입니다. 그러면서도 적당한 비판과 예리한 통찰력도 함께 지니고 있고요.

저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령 “반촌” 같은 이야기 말이죠.

지금 혜화동 일대를 조선시대엔 반촌이라고 했었는데요, 그 거주민들은 반인이라고 하는 소를 도축하는 "백정” 비슷한 이들이었습니다.

상놈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았던 조선시대 직업군들이죠.

그런데 이 반촌이 형성된 배경이 성균관 유생들에게 고기를 대주기 위해서였다고 하네요.

그 당시 소는 노동력과 직결되기에 함부러 도축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도살이 가뭄을 초래한다고 믿었다고 하네요.

이 반촌은 “치외법권의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죄를 짓고 반촌으로 숨어들면 잡을 수 없었다고 하네요.

한번은 영조가 반촌을 뒤져 찾아내라는 명을 내렸는데 성균관에 기식하는 유생들이 요샛말로 하면 스트라이크를 벌였다고 합니다. 그것도 단식투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요...

이 반인들이 성균관 유생들의 손, 발에 해당했었거든요.

즉 이 반인들에 의해 성균관 유생들이 먹고 살 수 있었던 겁니다.

유교사상의 몰락과 함께 성균관이 몰락하면서 이 반촌도 사라지게 됐다고 하는데 지금 대학로 일대가 조선시대 반촌이었다고 하니 어쩐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어쨌든 성균관은 남아 있네요...^^


이 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모두 10편 나옵니다.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 등 조선 3대 의적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가 땡추라고 부르는 타락승(사실을 시대에 거부당한 이들이죠)과 함께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과거시험의 패단에 대한 옹골찬 비판도 있고, 타짜를 앞세운 사기도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도박이 성행하게 되는 이유는 시대의 불확실성이 분명 한 몫을 할 겁니다.

조선시대에는 내부적으로는 당쟁이니 당파니 하는 파벌 싸움도 많았고, 외부적으로는 서양 및 일본의 눈초리도 심상치 않았으니 살기가 퍽퍽하긴 했을 겁니다.

이런 시대의 불확실성은 미래의 한방이라는 허황된 꿈을 심어주고 그러다 패가망신하여 가문을 소위 말아먹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멸문지화는 역적들만이 당하는 일이 아니게 된 거죠.

노름이 나왔으니, 그와 발 맞춰 동일한 속도로 성장해 주시는 음주문화 또한 어찌 이야깃꺼리가 없겠습니까.

주..색...잡기...

솔직히 점잖은 역사책에선 이런 이야기들을 대놓고 말하지도 않고, 어쩐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급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쟎아요.

어찌 생각하면 우리네 이야기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이야기인데도요...


조선의 생활상, 그것도 평민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거울 앞에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재미있어요. 이런 책.

계속 읽다 보면, 지금이 마치 조선시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장 한 장 읽을 때면 재미있어 손에서 놓기가 싫어지고, 그러면서 읽다보면 어느 순간 심각하게 그 시대에 빠져 현실을 읽게 됩니다.

심지어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제 자신이 노름판에 뛰어 들어 금주령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말술을 들이키며 마작에 눈이 벌건 사내같이 느껴진다니까요...(드디어 일심동체의 경지에 도달한 건지... 아님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정신적 해리상태에 놓인 건지...)


혹시나,

저 역시도 조선 시대에 살았다면 왈자나 왈패 비슷한 모습으로 살았을지...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