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1. 30. 05:39
또 봤다.
그리고 또 가슴이 먹먹하게 아파왔다.
그래서 또 다시 울었다.
마치 처음 본 것 처럼...
<next to normal>
평범함 그 어디쯤.
죽어라 도달하고 싶어도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그 곳!
꿈꿔본 사람은 안다.
그 끝없는 한계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간절한 열망을...



개인적으로 뮤지컬 1세대 배우인 남경주, 최정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두사람의 노력과 공로도 알고 있고
물론 인정도 하지만 이상하게 목소리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이 작품을 처음 관람했을 때도 굳이 이정열 댄을 선택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박칼린, 남경주, 한지상.
첫번째와 댄이 바뀐 두번째 관람.
이정열 댄을 보면서 그의 울움 섞인 목소리에 가슴이 아팠는데
남경주 댄은 확실히 그런 느낌은 없다.
단지 반복되는 아내의 병에 지치고 찌든 남자만 있을 뿐.
(어쩌면 현실적으로 이런 남편의 모습이 더 사실적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내가 본 남경주 작품 중에서는 제일 괜찮았다.
작년 11월 공연 초반때보다 6명 배우들의 연기도 확실히 훨씬 더 깊어졌다.
발음 전달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박칼린도 비교적 다 잘 들렸다.
특히 1막에서 아들과 왈츠를 추는 장면의 감정 표현은 많이 뭉클했다.
(아무래도 박칼린은 연출보다는 연기를 하는 게 여러가지로, 여러 사람에게 더 편할 것 같다)
이 부분에서 게이브 한지상의 노래도 좋았다.
잔잔하면서도 치명적이게 유혹적이라 정말 같이 가고 싶게 만들더라. 
정신과 의사역의 최수형도 두 명의 역할을 확실하게 분리해서 표현했다.
예전에는 다른 듯 같은 의사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으로 연기하는 것 같다.
최면요법에서 치고 나오는 최수형의 목소리는 정말 압도적일만큼 강렬하다.
(개인적으로 최수형이라는 배우가 다음 작품으로 어떤 걸 선택할지 무지 궁금해졌다.)
등장인물 중에 제일 비중이 적은 헨리 역의 이상민,
첫번째 관람에서도 느낀 건데 목소리에 장점이 많은 배우같다.
탈렌트 공유를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인데
작은 목소리에도 관객을 집중시키게 하는 장점이 있다.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할 수 있는 배역에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극~~~뽁 하시길...)
오소연과 한지상은 역시나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배역에 딱 맞아 떨이졌다.
특히나 게이브 한지상의 발군의 실력이 이 작품 재관람의 이유이기도 했다.
똑똑하고 현명한게 연기하는 젊은 배우를 무대 위에서 본다는 건 확실히 축복이다.
가끔 뮤지컬 <알타보이즈>의 한지상이 떠오를때면 혼자 흐뭇해진다.
앞으로가 정말 기대되는 꽤 괜찮은 배우 한지상.
(생각해보니 그래도 이 녀석 작품을 제법 봤다. 
 볼 때마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 점점 기대치가 상승하는 중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안다.
이 내용이 단지 "그래, 그럴 수 있겠다"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너무나 절실하고 현실적인 내 삶이라는 걸.
한 걸음만 걸어가면 바로 벼랑 끝인 막다른 경계면에서
신문의 부고란에 질투를 느끼는 그런 사람들.
견디기 위해 키워낸 것이라고는 고작 환상이 전부인 사람들!
환상은 다 자기방어라고 했던가!
맞는 말이다.
자기방어!
그러나 자기방어라도 해야 그나마 버텨지는 거다.
next to normal
거울 앞에 마주선 나를 보다!

* 다시 봐도 음악과 무대가 참 굉장하다.
  한국어 OST를 판매하던데 오래 고민하다 그냥 나왔다.
  아무래도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노래라 극에서 느낀 감정들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OST를 사서 후회한 적이 꽤 많이 있다.
  심지어는 전혀 다른 곡처럼 느껴지기도...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좋은 감정이 혹시라도 OST 때문에 어긋날까 싶어서 그냥 왔다.
  개인적으로 1층보다는 2층 맨 앞자리에서 관람하는 걸 추천한다.
  단, 2층 중앙열 한 가운데는 피할 것!
  극장 천장에 있는 구조물(?) 때문에 3층에서 연기하는 게이브의 모습이 대부분 가려진다.
  꼭 팔다리만 허적거리는 괴물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1. 11. 06:31
한 인간이 완벽한 타인이 돼서 산다는 게 가능할까?
우발적인 살인으로 시작된 다른 사람 되기!
그것도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뉴욕 월가의 잘나가는 변호사가
부모가 남긴 신탁기금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숱한 잡지사에 매번 퇴짜를 맞는 별볼일 없는 삼류 사진가로 살아가기로 했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적어도 내겐 일종의 환상이자 유토피아다.
책을 쓴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
어딘가에서 그를 두고 "듣보잡" 작가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그의 책 <빅 픽처>는
발간된지 한달도 되지 않아 5쇄에 들어갔을 만큼 현재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다.
블로그나 독서 모임 카페에서도 한창 블루칩인 소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조국인 미국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란다.
이미 10권이 넘는 소설과 여행집까지 발간한 더글라스 케네디.
미국 태생이면서 영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
그야말로 그로벌한 인물이다.
2007년 4월에는 심지어 프랑스에서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단다.
2009년 11월에는 또 다시 프랑스의 유명 신문 <피가로>지에서 수여하는 그랑프리상을 받고...
정치적으로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열광하고 있다지만
<빅 픽쳐>를 읽고 나면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력에 천상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작가의 꿈을 아버지로 인해 접고
월 스트리트의 잘나가는 변호사가 된 벤 프레드포드.
공교롭게 이웃집 별볼일 없는 삼류 사진작가 게리 서머스와 아내의 불륜을 알게된 그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낯선 곳에서 게리 서머스가 된다. 
완전범죄를 꿈꾸며 철저하게 증거인멸을 하는 그의 솜씨는
과히 충격적이고 섬뜩하다.
(와인병에서 냉동고로 급기야 전기톱까지 등장하니 그럴 수밖에...)
사람은 자신이 가진 걸 모두 잃게 되면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어한다는데
벤 이 사람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요트사고로 스스로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벤은
되도록이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살고자 서부의 허름한 마을에 게리 서머스란 이름으로 정착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찍은 인물 사진과 산불 사진이 미국 전역의 신문과 매스컴에 실린다.
하루 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 벤.
급기야 의도적으로 떠나온 뉴욕 <타임>지에서도 함께 일하고 싶다며 연락이 오고
전국에서 전시회와 책 출간 제의가 쏟아지듯 들어온다.
여기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이 독백처럼 나온다. 
꽤나 재미있고 상당히 예리한 조롱이다. 
 
일주일 동안 나는 미국 생활의 자명한 진리 중 하나를 깨닫게 됐다. 일단 인기를 얻으면 어디서나 그 사람을 찾는다. 미국 문화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늘 무시된다.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발행인, 잡지 편집자, 제작자, 갤러리 주인, 에이전트들을 설득하려고 필사적으로 앴는 사람은 낙오자로 취급될 분이다. 성공할 수 있는 길은 각자 찾아내야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을 이룰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명성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를 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더라도, 자기 판단만 믿고 무명의 인물에게 지원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무명은 대부분 계속 무명으로 남는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온다. 행운의 빍은 빛에 휩싸인 후로는 갑자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반드시 써야 할 인물이 된다. 이제 모두 그 사람만 찾는다. 모두 그 사람에게 전화한다. 성공의 후광이 그 사람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그러서였나?
더글라스 케네디가 미국인이면서 영국에 사는 이유가...
어쩌면 벤은 케네디 자신의 대리인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스타 산업에 대한 염증과 허상.
이 소설 속에는 미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은근한 조롱과 비웃음이 깔려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빅 픽처>란 제목에도 암시성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사실적으로 찍었다고 해도
사진(picture)은 찍은 사람의 의도와 왜곡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사물이 커질수록(big) 왜곡은 심해진다.
어차피 그 전부를 온전히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진 전시회 오프닝 행사.
새로운 연인 앤의 앞에서 그는 전처 베스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는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기자 루디와 함께 달아나듯 도망치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자신은 가까스로 빠져나온다.
다음날 발행된 신문의 헤드라인에 기사!
"천재 작가 게리 서머스 교통사고로 사망"
벤은 앤과 함께 했던 오두막에서 혼자 중얼거린다.
"나는 이제 또 죽은 사람이 됐다"
또 다시 반전이다.
벤은 어떻게 될까?
(궁금한 사람은 직접 책에서 확인을...)
영화로 만들기에 딱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만들어졌고  프랑스에서 11월에 개봉했단다.
현재 프랑스에서 최고 인기라는 로맹 뒤리스가 주연이고 (누군지는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가트린느 드뇌브도 출연한다.
(국내에 개봉하면 꼭 챙겨봐야겠다.)
인생을 몇 번씩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그 최종 결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꽤나 부러울 따름이다.
하긴 이런 걸 꿈꾸기엔 내가 가진 재능(?)이라는 게.
참 치명적으로 전무(全無)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2. 25. 06:00

오늘 같은 날씨에 읽기에 딱 좋은 소설.
그동안 폴 오스터의 책들을 그래도 꽤 읽었고
그 책들 모두 재미있었지만
이번에 읽은 <환상의 책>이 제일 마음에 든다.
왠지 묘한 이질감과 미궁 속에 빠지는 느낌.
책을 읽는 내내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의 "미궁"을 떠올렸다.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괴기스러운 음악을 차마 끌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말 그대로 나는 완전히, 그리고 완벽히 얼어있었다.
그대로 고정돼버렸던 무시무시한 기억.
내가 간직한 최고의 아름답고도 섬뜩하고도 그리고 끔찍했던 음악 "미궁"
물론 그 정도의 충격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이 책도 왠지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관음의 시선과 귀를 갖게 한다.



"Book of illusion"
원제가 더 매력적이고 직접적인 책.
"illusion"이라는 뜻에는 왠지 은밀하고 비밀스런 느낌이 있는데
"환상"이라고 번역했을 땐 왠지 허황된 눈속임같은 느낌가 강하다.
그래서 번역된 책을 볼 때는 항상 그 원제를 찾아보는 게 중요한 포인트!
탐정소설과 연예소설이 영화적으로 뒤섞여 있는 책.
책을 보면서 스크린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책.
그러면서도 열렬히
인간의 주체성과 자아에 대한 깊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
스스로에 대한 진실성에 연타를 가한다.
그래서 읽는 사람을 당혹하고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는 책.



오래 전에 실종된 무성 코메디 영화배우 헥터 만과
평행이론 같은 삶을 사는 대학교수이자 작가 데이비드 짐머.
그 두 사람의 같지만 다른 이야기, 그리고 추적과 멈춤, 끌어당김과 거부들...
책의 시작에는 샤토브리앙의 글이 헌사처럼 적혀있다.
...... 인간은 하나의 동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끝에서 끝까지 이르는 여러 다른 삶을 살며 그것이 바로 비극의 원인이다 .....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유쾌한 희망을 함께 건네는 결말에
유난히 나는 신나했다.
"믿거나 말거나"의 뉘앙스로 끝을 맺는 폴 오스터의 글들은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모든 이야기가 마치 사실이었던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어딘가  헥터 만이 출연한 <마틴 프로스트의 내면적인 삶>, <투명 인간> 같은 영화가 있을 것만 같고
어딘가 데이비드 짐머가 쓴 <헥터 만의 무성 세계>라는 책이 있을 것만 같아
그것들을 찾아 나서고 싶은 욕구마저 안긴다.
마치 삼원색 같은 책,
그러면서도 어느새 무지개의 다채로움까지 선사한다.
폴 오스터의 세계.
늘 유사하면서도 결코 한번도 같지 않았던 그의 세계.
그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세계들이 나는 아직도 많이 궁금하다.



그의 세계를 하나하나 섭렵해나가는 재미는 그래서 항상 새롭고 신비롭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읽은 세계들이 더 많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게 되는 이유는
내게 늘 실종을 꿈꾸게 한다는 사실.
그게 포인트다. ^^

<국내에 소개된 폴 오스터의 작품>

  • 고독의 발명 (The Invention of Solitude) (1982)
  • 뉴욕 삼부작 (The New York Trilogy) (1987)
  • 폐허의 도시 (In The Country of Last Things) (1987)
  • 달의 궁전 (Moon Palace) (1989)
  • 우연의 음악 (The Music of Chance) (1990)
  • 거대한 괴물 (Leviathan) (1992)
  •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Auggie Wren's Christmas Story) (1992)
  • 공중 곡예사 (Mr. Vertigo) (1994)
  • 빵굽는 타자기 (Hand To Mouth) (1997)
  • 동행 (Timbuktu) (1999)
  • 환상의 책 (The Book of Illusions) (2002)
  • 신탁의 밤 (Oracle Night) (2004)
  • 브루클린 풍자극 (The Brooklyn Follies) (2005)
  • 어둠속의 남자 (Man in the Dark) (2008)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09. 11. 14. 15:59
    오랫만에 대학로에서 소극장 뮤지컬을 봤다.
    한동안  큰 작품들만 열심히 본 것 같아서...
    연극 <마라, 사드>를 봤을 때는 여름의 끝이었는데
    그날의 대학로는 완전히 가을 속에 젖어있었다.



    참 좋은 공연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었는데
    <판타스틱스>
    이제서야 나와 인연이 닿았다.



    "Try to remember"
    여명이 영화 "유리의 성"에서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노래.
    이 노래가 바로 뮤지컬 <판타스틱스>의 넘버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반세기동안 공연된 세계 최장수 뮤지컬이라는 <판타스틱스>
    뮤지컬 넘버들도 참 좋다.
    소소한 재미와 아기자기함.
    그리고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배우들의 모습
    어쩌면 저렇게 가까이에서 천연덕스럽게 연기할 수가 있을까?



    세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
    벽을 사이에 둔 애뜻한 두 연인
    두 집안 사이에 벽이 놓이게 된  배경은 (실제로 벽이다... 담벼락)
    사실 두 아버지들의 합동잔적에 의해서다.
    일부러 둘을 연결시켜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한 원수지간이라는...
    (아버지들은 사실 둘도 없는 "베프"였던 거쥐~~~)
    자식들은 부모의 말에 엇나가려는 경향(?)이 다분하기 때문에 두 아버지는 이런 속임수를 쓰기로 한거다.
    이제 어떤 사건을 만들어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화해하게 만들어 두 연인을 연결시켜줘야 한다.
    루이자가 꿈에서 본 모습 그대로 일을 꾸미기로 한 아버지들.
    그리하여 LPG  엘가로(가스 배달부 아님 ^^)를 고용해
    아주 최신식 버전의 인디언식 겁탈 시나리오가 시작된다.
    두 아버지의 모습이 무지 귀엽고 사랑스럽다.
    (실제로 극을 보면서 이 두 사람 때문에 정말 많이 웃었다)



    11월 8일 casting - 마트 : 김산호    헨리 : 서현철



    해설자이자 극의 작가인 김태한의 노래로 시작되는 <판타스틱스>
    어쩜 저런 코믹한 얼굴에서 이렇게 감미로운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좀 죄송...)
    항상 그의 코믹한 배역에 익숙한 나는
    잠시 놀란다.
    (뮤지컬 "그리스"에서 케니키의 현란한 춤과 엘비스 프레슬리 같던 목소리가 생각나 혼자 웃었다)
    무엇보다 이 뮤지컬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건
    헨리 역의 서현철과 머티머 역의 김지훈 때문이었다.
    이렇게들 잘 생기신 분들었구나...
    의상이 누더기가 될 정도로 가난한(?) 떠돌이 유랑극단의 유일한 단원들.
    그 허름한 옷이며, 얼굴이며, 목소리며, 동작이며...
    일주일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인디언식 겁탈"의 두 주역 (^^) 

    관객을 한 명 동참시킨 그들의 연기는
    능청을 넘어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더라.
    30년 동안 줄리엣만 한 배우라면서 앞 자리에 앉아있는 여성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 니 이름이 뭐야?
    - OO요.
    (앞에 나온 관객은 실제로 자신의 이름을 댄다)
    - OO! 니 이름은 줄리엣이라고 했지? 너는 신입단원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냐?

    - 내가 늘 말했지? 배역을 생활화하라고!
    - 어째 너는 30년을 해도 연기가 늘지를 않냐...


    두 사람의 만담같은 대사가 자꾸 귓 속을 맴돈다.
    한번만 로미오를 시켜달라는 머티머에게 죽는 장면을 해보라면서 헨리가 한 말

    - 헨리 : 줄리엣이 왜 죽었어?
    - 머티머 : 정확한 건 부검을 해봐야 알 것 같은데요...
    - 헨리 : 너 땜에 죽었쟎아~~~ 너 땜에~~~ 속 상해서....
    (줄리엣의 손에 있는 독약을 마시려는 머티머에게)
    - 헨리 : 니꺼 먹어! 니꺼! 왜 남의 꺼 먹어~~~

    따지고 보면,
    로미오는 정말 줄리엣 때문에 속 상해서 자기가 가지고 온 독약을 먹고 죽었는데
    난 왜 이렇게 웃기기만 한건지...

    중간에 마트 김산호의 입으로 꽃가루가 들어가 상대역 루이자 최보영까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 장면이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관객들까지 한참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생생하게 귀여운 모습이여서...


    모든 사랑은 "환상"이다.
    그리고 모든 공연도 역시 "환상"이다.
    사랑과 공연.
    두가지 환상이 만났으니 그 궁합 한 번 제대로다.
    오랫만에 무대 위에서 본 최보영과 강인영도 너무 반가웠다.
    (강인영씨 다리 참 아팠겠어요... 당신의 멋진 노래를 많이 들을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존재감은 좋았어요...)
    무대 양 옆에서 초대형 필 하모닉 오캐스트라 못지 않게
    멋진 반주를 해줬던 두 대의 피아노까지...
    오랫만에
    알차고 풋풋한 공연을 봤다는 풍성한 만족감.
    소문날만 하다는 생각도 더불어 하게 된다.



    맘이 우울한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환상적으로 맘이 풀릴테니까...
    극장을 나오면
    사랑에 대한 "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유쾌한 웃음이라는 동반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꽤 좋은 입소문이 나지 않을까 기대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1. 11. 06:18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나?
    아님 "기억" 혹은 "추억"들에 대한 오마쥬?
    누군가는 자신이 계획했던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변수와 의외성에 의해
    어쩌면 임기응변의 가지를 늘리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독한 건,
    오래 기억에 담기기 때문에...
    그래서 때로 살을 저미게 하고
    때로는 현실 속에서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은 하는 순간에도 환상 속으로 걸어가는 거지만
    끝나는 순간부터도 여전히 환상 속의 걸음마다.



    "상실감 앞에선 기억 따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 했던가?
    묵묵히 다가오는 9편의 단편들의 무게감에 어깨가 묵직하다.
    따지고 보면 문제작들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개인적인 일들에 대한 기록.
    익숙한 결험도 흔한 이야기도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도 "평범"한 우리네 일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종의 "데자뷰" 현상까지...
    억지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김연수라는 남성 작가에게
    여성성에 대한 데자뷰가 있었던 모양.
    그의 감성은 연했고 다정했고 그리고 부드러웠다.



    18세의 찬란한 소녀를 향해
    "여름 바다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늙어가고 있었다"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시작)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라는 단편 세계의 끝 여자친구>
    한 일들은 마음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안 한 일들은 해봤자였다고 생각하는데도 잊히질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
    하지도 않은 일들이 잊히지도 않는다고...
    작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주 노동자의 떠듬떠듬한 한국어 발음처럼
    어쩐지 생경하다.
    그러나 그 생경함을 충분히 이해하게 만드는 낯선 친근함!!!
    "김소진"의 글들이 생각났다.
    우리 곁에 더 오래있었으면 참 좋았을 소설가 김소진을...
    왜 그가 떠올랐을까?
    그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을 찾아봐야 겠다.



    <달로 간 코미디언>
    붕괴와 상실로 실종되는 인간의 삶.
    바보스런 슬랩스틱 코미디 안에 갇힌 인간의 삶이
    문득 서럽고 처연하다.
    아버지가 스스로 선택한 실종을 바라보며
    딸은 그 사막 속에서 다시 아버지를 조우하게 될까?
    한쪽 끝을 건드리면 다른 한쪽 끝이 열린다고 하는데...
    새롭게 열리는 그 끝을 보면
    아마도 작가는 모든 연결되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라는 건 결국
    나와 너, 우리에 의한 소통이라는 것.
    세계를 거부하겠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소통"의 끈을 끊으면면
    모든 것은 거부된다.
    밑바닥만큼 처연한 끝이라는 자리...
    다시 시작되는 끝이라면 오히려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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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 봤어 :
    두 사람은 서로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고독 속에서 몇 달을 보내야만 했다. 고통을 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고통을 피하려고 스스로 죽기도 한다. 해피에게는 아이없이 살아가는 삶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건, 희망을 찾은 게 아니라 희망을 버렸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만은 남편과도 공유랄 수 없었다.

    해피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저 불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더 오랫동안 타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안에서. 내부에서. 그 깊은 곳에서. 어쩌면 우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 :
    마흔세 살이란 이런 나이야. 반환점을 돌아서 얼마간 그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무득 깨닫는 거야. 이 길이 언젠가 한번 와본 길이라는 걸, 지금가지 온 만큼 다시 달려가야 이 모든 게 끝나리라는 걸. 그 사람도 그런 게 지겨워서 자살했을 거야.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
    수많은 첫 문장들. 그 첫 문장들은 평새에 걸쳐서 고쳐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 그러부터 인생은, 쉬지 않고 바뀌게 된다. 우리가 완벽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전까지 이야기는 계속 고쳐질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첫 문장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어둠 속 첫 문장들 속으로 걸어갔다.

    달로 간 코미디언 :
    보지 못하게 되면서 시각적 세계가 사라졌듯이 그 시각적 세계 안에서 자신의 몸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 투명인간의 존재, 유령의 존재가 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마주 앉아 있어도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어차피 나는 앞을 볼 수 없으니까. 그 말은 어차피 남들이 나를 볼 수 없으니까, 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내 존재 자체가 사라져요. 시각장애의 핵심은 내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보여져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잇다면, 견뎌질 수 있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김연수 (작가의 말) :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앙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잇는 것으로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8. 30. 15:30
    "내가 찍은 사진들로 글을 쓴다면 이렇게 만들어야지!"
    혼자 생가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는....



    마치 내 생각들을,
    누군가 여기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던 책
    <끌  림>
    내가 이 단어에 항상 얼마나 절절매는지 아마 이 책은 알리라.



    이.병.률.
    이 젊은 작가의 고백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신의 느낌을 담담히, 때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써 내려간 글.
    이 책을 여행서에 넣는 건 아무래도 옳지 않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담다.



    "열정"이라는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그걸 모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어둠에 놓여 있는 상태가 되고,
    그걸 갖지 아니하면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낯선 도시에 떨어진 그 암담함과 다르지 않다.
    사랑의 열정이 그러했고 청춘의 열정이 그러했고 먼 곳을 향한 열정이 그러했든,
    가지고 있는 자와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것,
    이를테면 열정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넌 자와 건너지 않은 자로 비유되고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을 던져 물살을 타고 먼 길을 떠난 자와 아직 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은 자, 그 둘로 비유된다.
    열정은 건너는것이 아니라, 몸을 맡게 흐르는 것이다.




    쓸쓸한 그 사람은 먼 타국에 혼자 살면서 거북이 한 마리를 기른다.
    근데 왜 하필 거북이었을까?
    "거북이의 그 속도로는 절대로 멀리 도망가지 않아요
    그리고 나보다도 아주오래 살테니까요?
    도망가지 못하며, 무엇보다 자기보다 오래 살 것이므로
    내가 먼저 거북이의 등을 보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
    이 두 가지 이유가 그 사람이 거북이를 기르게 된 이유.
    사람으로부터 마음을 심하게 다친 사람의 이야기....



    탱고...
    잘못하면 스텝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돼요.
    스텝이 엉키면 ,
    그게 바로 탱고지요...




    좋은 계절이라는 핑계로 당신은 그들과의 여행을 계속했고
    한 아궁이에서 지은 여러 끼니를 나누어 먹으며
    낮선 풍경에 놀라 단체 사진을 수없이 찍으며 각별한 감정들을 나눴죠.
    심지어 돌아오기 싫었던 거예요.

    그래요.
    삶은 그런 거예요.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그런 것.




    내게도 또 한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나를 견디듯 아니 모른척 하듯 스쳐가고 있다.
    티베트 속담이라고 했던가?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때론 뭔가가 찾아올거라는 허황된 환상상이라도 아직 품고있다면 좋겠다는 바람.
    정말 그게 뭐든 상관없겠다고....
    뭔가를 아직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아직 살아갈 자신이 조금은 있는 사람이니까....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보며
    공허한 눈빛를 섞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내내 추방으로 죄를 물어도 부족하리라는 생각.
    그 최초의 유배자가 내가 될거라는 확신에
    얕은 시선을 자꾸 아래로 아래로 숨긴다.



    그럴 수 있다면....
    나 역시도 일생을 품고 살 좋은 풍경 하나
    가슴에 넣을 수 있다면...
    비록 조금 아름답고 많이 슬픈 얘기일지라도
    기꺼이 담고 싶다.

    이제 금방 꺽여진 모퉁이 끝에 서 있는 느낌.
    모퉁이를 지나면 뭐가 있을까?
    내 눈은 아직 슬프다...

    그리고 이야기 하나...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8. 26. 13:37
    <다이어트의 여왕> - 백영옥


    다이어트의 여왕 


    <스타일>의 작가 백영옥이 쉬크하고 엣지(?)한 두 번째 칙릿소설 <다이어트의 여왕>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일단 재미 하나는 정말 제대로 있습니다.  뻔한 내용을 가지고, 그것도 제목에 책의 내용을 아주 노골적으로 다 드러내고서도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썼다는 사실은 한없이 부러운 일이죠.

    전작처럼 “요리사”가 등장합니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스타일>에서는 주변 등장인물이었는데 <다이어트의 여왕>에서는 드디어 주인공으로 등장을 했네요.


    정연두!

    28세 꽃다운 나이로 신장 173cm (여기까지는 참 부러운 대목입니다), 몸무게는 85kg, 조금은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는 레스토랑 <퍼플>의 셰프.

    어느 날 그녀는 3년 동안 사귄 애인 하정민(56kg)으로부터 결별을 통보받습니다.

    뭐, 실연의 고통을 굳이 폭식으로 달랜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이별 통보 후 그녀의 몸무게는 0.1톤에서 7kg 모자란 93kg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전 그녀의 “요리사”라는 직업과 “허기”(어떤 의미에서 “체중”)에 대한 논리가 참 정당하게 다가왔습니다.

    “요리사는 절대로 배고프면 안 돼! 그러면 음식에 너무 관대해져. 그런 사람이 만든 음식에 디테일이 있을까? 좋아! 나 뚱뚱해. 근데 그건 내 직업병이야. 난 직업윤리를 가진 요리사이고, 무엇보다 내 직업병이 자랑스러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방송작가 친구 김인경의 강력한 권유로 <퍼플>도 그만두고 1억원 상금이 걸려있는 서바이벌 리얼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8주간의 합숙소 생활을 시작합니다.

    “비만은 질병이자 전염병이다”

    첫날부터 14명의 육중한 경쟁자들이 들은 첫말은 전혀 달콤하지 않은 살벌한 말이네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에게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미혼모 박순옥, “단비”라는 이름에 맞은 사람이 되어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찾겠다는 182cm, 121kg의 42세 최고령 참가자 최단비 여사, 운동할 때조차도 구두를 포기하지 못하는 악녀 캐릭터의 구두디자이너 송준희 등등....

    눈물 많고, 사연 많고, 다른 무엇보다 특히나 살 많은 14명의 참가자들.

    그들은 이제 A, B 두 팀으로 나뉘어져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미션의 결과가 나오면 패한 팀에서 스스로 탈락자 1명씩을 선정하게 되죠.

    이 상황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공개적으로 팀원을 비난하고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팀원에게 설득해야만 합니다.

    “언어”와 “감정”의 전쟁터인 셈이죠.

    어쩐지 “입”이라는 신체 부위가 범상치 않게 다가옵니다.

    “요리사의 입”과 “작가의 입”

    왜 작가들이 미각과 탐식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그와 관계된 인물들을 창조하는데 열광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의 발설 혹은 폭로의 욕구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신체기관이 바로 “입”일 테니까요.

    입의 말을 손으로 대신 말하면서 미(美)를 탐하는 작가와 손의 감각보다 입의 감각으로  미(味)를 탐하는 요리사....

    이쯤이면 썩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폭로와 발설, 비방과 힐난의 긴 8주간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최종 우승자가 결정됩니다.

    우리의 주인공 연두가 1억원의 여왕이 됐을까요?  8주간 총 48kg 살을 뺀 기적을 만든, 늘 모자를 쓰고 다녔던 최고령 “최단비” 여사가 최종 우승자로 뽑힙니다. 그리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다시 진짜로 시작됩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정연두는 “최고의 스타. 정연두 셰프 입성! <다이어트의 여왕>이 마련하는 최고의 만찬을 즐기세요!”라는 광고간판과 함께 레스토랑 <퍼플>의 부주방장이 되어 다시 주방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매스컴의 효력으로 레스토랑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고요.

    그런데 이런! 그녀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벼락 스타가 되어버린 정연두 그녀에게서 점점 이상징후가 보이는 시작하네요.

    점점 후각이 예민해지더니 급기야 야채도, 고기도, 그 무엇도 먹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의 몸이 내는 비명소리를 피하기 위해 그녀는 수면제와 알약에 의지하며 요리를 하죠. 손님들에게 음식에 대한 클레임이 들어오는 횟수도 점점 늘어납니다.

    음식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의 몸은 이제 늘 허기에 지쳐있습니다.

    “한 번도 배고픈 적 없던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너무 배가 고파서 칼을 쥔 손가락 열 개를 베어 뼈까지 와작와작 다 씹어 먹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내 몸을 베어 먹어버린다면, 그것으로 체중이 늘어날까? 하루 종일 주방에 서서 나는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써는 대신, 상상 속의 내 몸을 씹고, 분해하고, 으깨며, 요리했다. 나는 내 살을 잘라 사람들에게 먹이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 몸속에 존재하는 지방과 살덩이들을 다 제거하고 싶었다.”

    그녀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내 위치는 분명 바뀌어 있었다고....


    93kg -> 79kg -> 52kg -> 47kg -> 41kg

    173cm의 신장을 가진 그녀의 몸피는 계속 말라갑니다.

    미각까지 상실한 그녀는 결국은 <퍼플>에서 쫒겨나기에 이르죠. 맛을 느낄 수 없는 요리사가 만든 음식에는 결코 진실성이 담기지 못할테니까요. “신경성 식욕부진증”, 그녀는 이제 거대한 “거식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미각을 잃은 세 치 혀가 내뱉는 말은 이제 그녀에게 공허할 따름입니다. 그녀의 “혀”는 드디어 “가짜”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찾아온 요요현상에 대한 두려움.

    그녀의 텅 빈 위는 금기야 그녀의 모든 생활까지도 텅 비게 만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하나씩 소위 까발려지는 참가자들의 진실들.

    쇼에 참여하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운 송준희, 우승자 최단비 여사는 성전환수술로 여자가 된 남자모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인터넷에 유포되는 모델시절의 사진들, 그리고 정연두의 사진들과 무수한 댓글들....

    그녀를 포함한 모든 괴물들의 적나라한 모습들.....

    그녀는 어느덧 뚱뚱했던 시절의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시절의 미덕들, 긍정성, 명랑함, 사랑과 동경같이 빛나는 것들을요. 그뿐만 아니라 처음엔 수첩을, 다음엔 핸드폰을 그리고 삼 년을 지켜보던 고양이와 직장, 몇몇 친구들까지도 말입니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그녀는 모두 다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식이장애클리닉을 찾은 그녀에게 의사는 거식으로 인한 “가성치매”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말하죠.

    “정연두씨는.....말하자면 이 병을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모든 거식증 환자들처럼, 낫고 싶지 않은 거죠. 먹지 않는 것이 엄청난 능력이라고 자부하고 있어요..... 정연두씨는 기억이 돌아오는 것보다, 다시 뚱뚱해지는 게 훨씬 더 두려운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사람은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보다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가 훨씬 크다고 합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이해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하네요. 바보 같고, 멍청하고, 때로 죽이고 싶을 만큼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까지도요.

    성공적인 치료로 50kg 진입을 앞두고 있는 정연두는 말합니다.

    “이제야말로 나는 진짜 내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었다. 바뀐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선 타인의 시선 역시 필요하다는 것, 거울 없이는 자신의 앞모습은 물론이고 뒷모습까지도 우리는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는 중이다.” 라고....

    결국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잃었던 미각을 찾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잃었던 귀를 잃었던 시선을 찾는 게 훨씬 더 필요했던 거죠.

    드디어 그녀도 말하네요.

    “이제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기꺼이! 온 마음을 열고서 말이다....”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한 그녀, 정연두.

    어느날 조카와 함께 찾은 서점에서 한 사람을 목격합니다.

    그녀가 그렇게 살을 찌우기 위해 노력했었던 그 남자, 하정민이 불과 몇 개월만에 후덕한 아저씨의 모습이 되어 서점 안을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그의 모습을 목격한 그녀는 생각합니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던 정민이 비로소 편안하고 온전한 연애를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고..... 뚱뚱해졌지만 활기차 보이는 그를 보면서 이제야 끝나지 않았던 정민과의 연애가 진짜로 끝나게 됐다는 걸 그녀는 알게 됩니다.


    “허기”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삶의 “결핍”이라고 하네요. 때문에 우리가 사랑에 배고프고 관심에 목마른 것도 모든 거식증 환자들의 허기와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배고픔”과 “허기”를 적당히 잘 조절하고 지배(?)하는 것!

    어쩌면 그게 내 삶의 여왕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까요?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폭식”과 “거식”의 경계선을 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14명의 참가자들이 모인 만찬의 자리.

    모든 비밀들이 하나하나 폭로된다고 해도 이제 그녀는 다시는 어떤 것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훨씬 끔찍한 것은 폐쇄된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기 마련이니까요.

    여자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날씬한 또 다른 진짜 내가 살고 있다고 믿는다네요.

    그래서 조금만 몸을 움직이고, 조금만 덜 먹으면 뚱뚱한 몸은 어느덧 낡은 코트처럼 벗겨지고 그 속에 원래의 내 모습이 들어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몸 어딘가에 달린 지퍼만 찾아 쭉 열면 지금까지의 헌 몸은 사라지고 환상적인 새 몸이 눈앞에 펼쳐질거라고....

    그러나 이런 “환상” 속에는 여지없이 “독”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환상”은 부디 “환상”속에 남겨두고 우리는 열심히 치열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라고 이 책은 말해주네요.

    세상의 모든 결핍에 대응할 준비, 이쯤이면 당신은 되셨겠죠?

    자, 이제부터 현실로 출발합니다.


    "Are you ready~~?"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7. 31. 06:27
    오랫만에 읽은 칙릿 소설
    <스타일>로 제 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던 젊은 작가 백영옥
    그녀의 발칙한 두번째 칙릿 소설 <다이어트 여왕>을 읽다.



    분량이 상당한데도
    하루만에 읽힐 만큼 일단은, 무지 구체적으로(?) 재밌다.
    백영옥이란 작가,
    특한 재미를 끌어내는 상당히 부러운 재능의 소유자임을
    인정하게 된다.



    정연두....
    잘 여문 초록의 완두공 같은 이름을 가진 이 여자는
    3년 동안 사귄 애인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는다.
    키173cm에 몸무게 98.3kg
    그녀 앞에 놓인 현실.



    그녀는
    방송작가인 친구의 집요한 부탁으로
    상금 1억원이 걸린
    서바이벌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다.
    셰프로서의 일도 그만둔데 3개월의 합숙소에
    14명의 육중한 팻걸들과 생활하면서
    알게 되는 더 육중한 삶의 이야기들.... 



    이 책이 단지 여자들의 그야말로 살 떨리는
    살과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였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노골적인 사람들의 질투와 선망
    그것으로 인한 가면과 거짓에 대한 이야기.
    때론 진한 배신감마저 느껴지게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모든 다이어트의 본질이 이렇기도 하고....



    문득,
    이 소설도 누군가 탐을 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
    <스타일>을 처음 읽었을 때도 영화나 드라마로 곧 만들어지겠구나 했는데
    1년 후 이지아, 김혜수, 류시원이라는 쟁쟁한 스타들로 구성된 드라마가
    이제 곧 SBS에서 시작한단다.
    <다이어트 여왕>
    이것 역시도 딱 그러기에 좋은 소설
    그러나
    책 곳곳에
    예리하게 날 선 요리사의 칼날같은 대사들이 나온다.
    탐욕과 탐식.....
    탐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
    칼날에 손끝이 베이지 않으려면
    순간순간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는 사실.

    여왕의 자리는 외롭지 않다.
    그저 환상일 뿐.
    환상은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혼자이게 만드는
    극단의 공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15. 06:30
     <탱고> - 구혜선


    탱고
     

    먼저 “의외다, 놀랐다”는 말부터 하고 싶은 책입니다.

    내가 아는 “구혜선”은 인터넷 얼짱으로 한동안 메스컴을 타기도 했던, 무슨 복을 타고 났는지 무명의 설움도 없이 하룻밤 자고 났더니 갑자기 스타가 되어 버린, 노래도 그림도 조금 하는 신세대 연예인 정도였는데....

    그리고 한창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캔디 걸!

    그런 그녀가 책을 출판했다고 했을 때,

    솔직히 전 그랬습니다.

    “연예인 그거 참 좋은거구나!. 치열하게 살아보지도 않고 책씩이나 낼 수 있어서... 이름값 한다고 그래도 팬들이 기본적은 판매부수는 채워주겠네!”

    어쩌면 “새파랗게 어린 나이에......”라는 괴씸죄까지 덤으로 얹었는지도 모르죠.

    인터넷을 찾아봤습니다.

    1984년생, 이제 25살....

    휴~~, 피고 싶지 않아도 향기까지 절로 나는 나이. 왠지 명확한 이유 없이도 사람 주눅들게 만들어 버리는 이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나이.

    그런 25살의 한 여자가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나이를 한참 전에 지나온 한 여자가 그 글을 읽습니다.

    제게 <탱고>는 그렇게 시작되는 리듬이었습니다.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사랑하는 남자 종운, 그리고 물질적인 풍요를 가진, 젊음을 살 수 있다면 목숨도 버릴 수 있을 것 같이 다가오는 남자 민영, 그리고 어느새 소울메이트로 스며들어 버린 또 한 남자 시후.

    그리고 한 여자 “연”

    삼각, 사각관계를 넘어 급기야 원만한 관계가 형성되는 연예소설이 그려지나요?

    연예소설이 맞긴 한데, 이게 참 묘한 느낌입니다.

    소설을 읽는 두 가지 방식!

    줄거리 혹은 등장인물을 따라가는 방식과 감성을 따라가는 방식.

    이 책은 그러니까 후자에 속하는 소설입니다.

    분명 줄거리를 가지고 있긴 한데 별로 중요하진 않습니다. 유치한 부분에 극도의 환상과 신파가 버젓이 등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유치함을 관통하는 감성으로 무장한 묘한 성장통이 있습니다.

    어른아이의 성장일기.

    어릴 때 그랬습니다.

    담배와 커피가 자유로워지는 때가 어른이 되는 시기라고...

    게다가 둘 다 중독의 위험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죠.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하나씩 하나씩 중독되는 것들의 가짓수를 늘리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탱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절도마저 느껴지는 춤. 상대방을 무심하게 바라보면서도 때론 집요하게 들러붙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시선, 그리고 완벽하게 일치되는 발동작과 호흡.

    보는 사람의 심장까지도 설레게 만드는 치명적인 유혹!

    그러나 알고 있나요?

    설렘은 단지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요.

    설렘을 선택한 사람은 그런 이유로 대부분 다시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요.

    탱고가 시작되기 전, 빨간색 장미가 강렬함으로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게 언젠가는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탱고를 멋지게 추기 위해선,

    자신을 놓을 줄 알아야 한다네요, 함께하는 상대를 믿어야 하기에 더더욱 자신을 놓아야 한다고요.


    설탕이 듬뿍 들어 있는 커피에 익숙해지면,

    에스프레소의 순수한 정수의 맛은 결코 느낄 수 없다는 사실.

    사람이 가장 먼저 느끼게 된다는 쓴맛.

    이 첫맛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일상은 더 이상 달달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예기지 않은 일들이 기본적인 간격조차 주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일어날 때 무작정 도망을 꿈꾸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춘”이라는 달달함 속에 숨겨진 방황과 헤맴의 쓴맛.

    그 사실과 현실을 깨닫는 순간.

    그토록 믿었던 사실조차도 판타지의 일부였음을 인정하게 될지도 모르죠.

    누군가는 말합니다.

    잠시 흔들리고 방황하는 것일 뿐, 우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돌아가서도 당신은 또 다시 길을 잃을 수 있고 그리고 또 다시 자신을 의심하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건,

    순수하기 때문에 헤매는 거라고 “연”이라는 인물의 입을 빌어 25살의 당돌한 아가씨가 말을 하네요.

    그러면서 덧붙입니다.

    헤매는 자신을 질책하지 말고 흔들리는 자신을 아껴주라고...

    어떠한 일 앞에서도 자신을 신뢰하라고 25살 그대로 꽃인 청춘이 당부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고...
    25살 이 당돌한 아가씨의 당부가 단지 환상 혹은 건방으로 다가올지라도,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적어도 이 당돌한 아가씨는 하나의 감성을 잃지 않고 한 권의 책에 그대로 담아냈으니까요.
    어느날,
    류이치 시카모토의 "탱고"를 들었는데 번쩍 눈이 뜨였다. 한마디로 꽂힌 거다. 
    구혜선,
    그녀에게 소설의 모티베이션이 됐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탱고!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은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무언가에 꽂혀 있나요?

    그렇다면 이제 저도 궁금해집니다.

    당신의 리듬이 어떻게 시작될지.

    또 다른 “탱고‘ 혹은 다른 무언가를 들을 수 있길 기다리면서......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23. 21:51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페이퍼북)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 매혹적인 작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좀머씨 이야기>, <콘트라베이스>, <비둘기>, <깊이에의 강요>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작품 모두 하나같이 다 문제작이긴 하지만 <향수>라는 책을 읽었을 때의 그 강렬함이라니...

    작가가 만든 “신세계”의 미궁에 제대로 빠져버렸다고 한다면 이해가 되실까요?

    이 책,

    사연도 참 많습니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이 책은,

    1991년 12월 국내 초판 됐고(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파란 표지의 그 오래된 초판, 바로 그 거랍니다) 1995년, 2000년 두 차례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영화 개봉과 더불어 다시 신판이 출판되면서 폭발적인 판매 기록을 보였죠. 초스테디셀러에 등극한 이 소설은 지금까지 30쇄 이상 재판됐다고 합니다.

    (영화 예술의 힘! 작년에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베스트셀러 2위에 올려놓는 걸 보면서 또 다시 절감했죠)

    그런데 이 사실도 아세요?

    이 책이 “19금 이야기”의 선정 도서가 됐었다는 사실도요.

    책의 후반부쯤에 나오는 사형집행장에서의 집단 난교 부분과 마지막 충격적인 결말들이 이런 영예(?)를 안겨준 셈이죠.

    그것도 출판된 지 한참이 지난 후에 이런 에피소드가 생긴 걸 보면, 책은 정말 살아 있다는 환상을 여전히 품게 합니다.

    “환상”이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작가에 대한 극단적인 환상을 심어주는 사람이기도 하죠.

    전세계의 집요한 매스컴의 추적을 거의 완벽하게 피하면서 숨어있는 사람.

    대인공포가 있다는 소문, 동성연애자라는 소문, 그리고 흉한 장애가 있다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사람들과의 만남도 싫어해 문학상도 거절하고 인터뷰도 거절하며 철저하고 은둔하고 있는 작가!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한 관리 전체를 형에게 맡긴 채 현재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 잠금장치까지 하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동료 작가도 없고 심지어 자신의 신상에 대해 발설한 사람이면 친구와 부모를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절연해 버릴 정도라고 하니 오래된 사진 한 장으로만 알려진 그를 세상에 불러낸다는 건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네요.

    그러나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오두막에서 지금 <향수>보다 더 매혹적인 작품에 몰두하고 있을 거라고...

    (사실 그의 새로운 책의 출판을 전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책 <향수>의 줄거리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거예요.

    질긴 생명력으로 생선 내장 더미 위, 아무 냄새도 갖지 못하고 버려지듯 태어난 아기 그르누이.

    그의 삶의 목적, 그건 사람의 “냄새”를 내 몸에 갖겠다는 강렬한 탐욕이었습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탐욕”이라는 의미는 그러나 그에겐 적절치 않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품은 “탐욕”은 소유에 대한 집착보다 오히려 생명에 대한 무심한듯하지만 강렬한 집착에 가깝기 때문이죠.

    “생명”이라는 거,

    “향기”를 품지 않는 생명이란 죽음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르누이는 그의 살인 행각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가장 가까운 동반자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하죠.

    그를 피해 달아나는 향기가 그에게 무사히 채집되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라는 마음.

    향기를 채집하는 그의 섬세한 행동 하나 하나가 성스럽고 예술적으로 느껴지는 그 순간,

    이제 그의 옆에 제 2의 그르누이의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25명의 향기가 채집되기까지 저 역시도 그의 동조자가 되어 가만가만 숨을 죽입니다.

    어쩌면 결말 혹은 끝장을 보고 싶다는 저의 또 다른 탐욕인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향기에 취해 그를 탐하는 무리에 둘러싸이게 되는 마지막 결말.

    악마적인 황홀경에 빠져 그의 향기를 먹어치우는 무리 속에 나 자신이 없다고 과연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함께 한 사람들은 이미 무언의 합의를 끝낸 듯 합니다.

    그건 “구원”의 행위였다고......

    그의 향은 우리를 구원했고 그리고 우리는 그를 각자의 몸 안에 조각내 피난시킴으로 구원을 해줬다고......

    이제 남겨진 사람을 우리는 누구라고 불러야 할까요???.......


    서번트 신드롬 (savant syndrome)!

    지능은 보통사람들보다 떨어지지만 음악연주나 달력계산, 암기, 암산 등 어떤 특별한 부분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프랑스어로 이 말은 배우지 않고(바보 idiot) 터득한 기술(석학 savant)이라는 뜻이죠. 특히 발달장애나 자폐증 같은 뇌기능 장애를 가진 이들이 그 장애와 대조되는 천재성이나 뛰어난 재능을 보일 때 이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 석학증후군 이란 말을 하게 됩니다.

    영화 <레인 맨>에서 톰 크루즈의 형으로 나왔던 더스틴 호프만이 바로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자폐인을 연기했었죠. 

    말하자면,

    그르누이도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흔히 천재성은 그 “광기”로 인해 인생 전체를 “파괴”하기도 하죠.

    “Utopia”가 아닌 “Destopia”의 탄생.

    철저하게 파괴함으로써 이상향을 만들겠다는 “Destopia”

    <향수>

    그 위험한 Destopia의 세계.

    그 세계가 섬뜩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매혹적이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네요.


    만약, 

    당신에게 아직 향기가 있다면....

    조심하길 진심으로 당부합니다.

    조각난 그르누이가 혹 당신을 탐할 수도 있으니.....


                                                          <유일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사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