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1. 18. 06:29
요즘도 시를 읽는 사람이 있을까?
작가도 직업이라면 그 중에 제일 고단하고 힘든 건 분명 시인일거다.
이렇게 책을 뒤적이는 사람까지도 주위사람들의 멸종된 공룡을 보는 듯한 시선을 받는데
쓰는 사람의 지난함과 헛헛함을 보는 시선은 또 얼마나 공허할까?
한번쯤 시인을 꿈꾸는 사춘기 아이의 마음도 사라지고
시는 어느새 속 편한 이의 속 편한 애장품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멀리 가지 않아도 내가 일하고 있는 곳만 보더라도
기형도니, 황지우니, 이성복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좀 안다는 사람도 류시화나 안도현에서 종갓집 대가 끊기듯 딱 끊겨있다.
씁쓸하다.
여전히 살아 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내내 살아있을테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멸종된 시의 존재가...



몇 년 전 올해의 시로 뽑혔던 문태준의 <가재미>
죽어가는 병상의 사람을 바닥에 바짝 붙어 있는 가자재로 표현했던 그 시를 읽으면서
코 끝이 찡해 울컥했던 기억.
병상 위에서 가재미 눈을 하고 세상을 보고 있는 사람이 꼭 나처럼 느껴져서
가재미 눈을 하고 한참을 막막해했었다.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시인 정끝별과 문태준이 각각 50편의 시를 소개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시의 뒷편에 서걱서걱 기록했다.
과거에 교과서에서 밑줄치며 은유법, 직유법을 체크했던 김수영의 <풀잎>, 박목월의 <나그네>부터
김용택의 <섬진강>, 정진규의 <삽>, 김준태 <참개를 털면서>까지...
대중적이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시들의 다정한 모임은
참 오랫만에 은근한 향기처럼 자유로웠다.
독자가 아닌 시인들이 추려낸 시는...
그래 어쩌면 화석화되고 멸종되는 그들 작업의 속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읽는 내내 자주 짠하고 마음이 서걱댔다.
문학과 지성사, 창작과 비평, 민음사의 시 문고판을 열심히 모았던 옛날 생각도 간절했다.
처음 구입했던 가격이 1000원이었는데 하면서 새삼 향수 비슷한 것에 젖기도 했고...
요즘도 시인들은 시로 밥 벌어 먹을가?
시인의 원고지는 뻑벅하고 눈은 시리고 팔은 저리다.
그래도 누군가의 가슴 속에는 또 다시 시가 꽃필 것을,
나는 여전히 믿는다.
꿈에서도 별은 찬 밥 같을지언정
여전히 그들은 숱하게 열리고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오지않을 너일지라도 계속 기다리고 있을테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6. 4. 06:36
의외의 책을 만나 의외의 기쁨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책 <절집기행>이 그랬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꼭 벗꽃 흩날리는 나무 아래
시간을 놓고 넉넉한 휴식을 취하는 느낌이다.
행복하다.
읽음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베낭 없이도 나는 11 곳의 천 년 고찰들을 차례로 거닐었고 
11 분의 천 년 고승들과 시간을 거슬러 대면했다.
모두 소담하고 아늑했으며 더없이 다정들 하셨다.



1. 하늘에서 꽃비 내리고, 흰 피가 솟구치니 더욱 다정하구나 
  소금강산 백률사(栢栗寺)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신라 최초의 순교자 이차돈 (異次頓, 506~527)

2. 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사람이라야 한 길에서 나고 죽음을 벗어나노라.
   봉화산 수도사(修道寺) -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원정7리
    무애행(無碍行)과 이타자비행(利他慈悲行) 원효(元曉, 617~686)

3. 못물이나 강물을 마실 수 없으면서, 어찌 큰 바다를 삼키겠는가
   조계산 선암사(仙巖寺) 대각암(大覺庵)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대장경 간행으로 일관된 삶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

4. 선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으며,
   조계산 송광사(松廣寺)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돈오점수와 정혜결사의 횃불 보조(普照) 지눌(知訥 1158~1210)

5. 더듬이 끝에 '無' 하나를 앞세우고 가는 달팽이
   속리산 법주사(法住寺) -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한국 불교 선종의 중흥조 태고((太古) 보우(普愚, 1301~1382)

6. 가는 것은 어렵지 않네 내, 아주 감세 
   봉미산 신륵사(神勒寺) -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천송리
    고려 말 비운의 선지식(善知識) 나옹(懶翁, 1329~1376)

7. 연꽃과 같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바다 위에 핀 연꽃 한 송이.
   간월도 간월암(看月庵)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조선 건국의 정신적 스승 무학(無學, 1327~1405)

8. 차 한 잔 들게나그려
   두륜산 대흥사(大興寺)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다선일미의 은자 초의(草衣, 1786-1866)

9. 아침에 우짖는 까치, 부처의 소리를 토하는구나
   덕숭산 수덕사(修德寺)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 만공 월면((滿空 月面 , 1871~1946)

10. 눈이 저렇게 오니 풍년이 들겠구나
    백암산 백양사(白羊寺)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선농일여(禪農一如)의 청정비구 선승 만암(曼庵)

11.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설악산 오세암(五歲庵) -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젊은 불교의 기수 만해(卍海) 한용운 (1879~1944)

               <송광사>

<법주사>

책 장을 넘기면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시들.
그것들은 전부 글을 쓰고 싶다며 깝죽대던 과거의 내 시간속에 등장했던 시들이었다.
오규원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장석남의 "덕적도"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이창기의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
시들은 안녕하지만 시간 속에서 시를 쓴 누군가는 이제 더이상 이 세상 속에 없다.
그리고 시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되어 남아 있다.
천 년 고찰에서 천 년 고승들을 만나는 자리에
이들도 기꺼이 동반자가 되어 안내했다.
새로운 삼위일체의 향기 속에 느껴지는 풍요로움.
몹시 탐나던 표현들은 때론 내 것인양 훔치고 싶었다.
...... 잘 그린 수묵화의 침묵같은 고요
       지나는 바람 한 자락까지도 소홀함 없이 쉬어가도록 애쓴 풍경
       가는 빗방울이 연못의 수면 위에서 까치말 뛰듯 놀고 있었다.
       자신의 도피처를 자신 안에 갖지 못한 자만이 느끼는 비장감
       버릇 같이 치미는 향수 ......

꼭 내가 찍은 것 같은 흑백사진들.
서툴면서도 다정하고 천진한 표정의 아이같다.
어설픈 "나"인것도 같은 사진들.


                                                                <수덕사>

                                                                   <백양사>
                              
역사와 이력을 만나는 글이 아니라
느낌과 향기를 만나는 에세이 한 권.
시장통에 앉아 서둘러 국밥 한 그릇을 말아먹고 훌훌 옷자락을 떨어내며
예정없이 흐르는 걸음처럼 느긋하고 소박하다.
긴 여행끝이라도 피로함을 느껴지지 못할 만큼...
아! 나는 여기서 잠시였지만
충분히 쉬었구나.
넉넉한 빈 자리를 가슴에 품고 돌아오는 길은
오랫만에 행복했고 그리고 평안했다.

<빈 자리가 필요하다 - 오규원>

빈 자리도 빈 자리가 드나들
빈 자리가 필요하다
질서도 문화도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빈 자리가 필요하다

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
빈 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
빈 자리가 필요하다

친구들이여
내가 드나들 자리가 없으면
나의 어리석음이라도 드나들
빈자리가 어디 한구석 필요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5. 21. 23:38


 


늙어
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지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 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지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지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일 것이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혹시 얼마 전에 제가 이곳에 소개했던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를 기억하시나요? 그 글을 올리면서 기회가 되면 그 시인의 또 다른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도 소개해드리겠다고 했었는데...

마침 오늘이 부부의 날이라 이 시를  올립니다.

전문은 이것보다 조금 더 긴데 제가 일부 삭제하고 올렸습니다.(다분히 의도적으로요..)

함께 늙어 가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임자, 우리 괜찮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부부의 삶은 정말 찬란했다 말할 수 있겠죠.

황혼은 그래서 세월과 함께 아름다워 지는 모양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는지...
당신 옆에 그 사람과 함께.. 

평생을 손 잡고 함께 갈 사람,
그 사람이 당신의 평온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4. 20. 23:37
 


게 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시인선 97)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 지 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지국은 

내 가슴에 서성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설레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서성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오랜만에 시 한 편 소개하려고 합니다.

기형도, 황지우, 이성복....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 트로이카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두 분의 시도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황지우님의 시 중에서 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 3편을 꼽으라면...(누가 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 신난 것 같습니다)

<뼈아픈 후회>, <너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늙어가는 아내에게>

이렇게 세 편입니다.

<뼈아픈 후회>는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시고, <늙어가는 아내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보는 느낌의 시입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란 시는 연시(戀詩)이면서 동시에 절망 속 희망을 노래하는 시입니다.

시인 황지우님은 1952년 생으로 1980년 광주항쟁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은 이력이 있는 시인이자 번역가이자 그리고 조각가에 대학총재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다니.... 역시 천재가 확실한 듯...
(저 10년도 훨씬 전에 인사동에서 있었던 이분 조각전에도 갔더랬습니다. 조각전 이름이 “뼈아픈 후회”였고 브론즈 작업이 대부분이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야말로 똘망똘망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버렸네요...^^).

이 시는 그의 네 번째 시집 <게 눈 속의 연꽃>이란 시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가 만들어지게 된 에피소드도 재미있습니다.

1986년 시인이 지명수배 되어 도피생활을 할 때 가장 많이 있었던 곳이 신문사 도서관이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아이러니 아닙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는 우리네 말이 정말 딱 진실이네요....)
그러다 그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하이틴 잡지에 근무하는 선배를 만났다고 하네요. 그 선배의 부탁으로 5분 만에 탄생한 시가 바로 이 시라고 합니다,
그 뒤에 적작 본인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시를 당시 성우 김세원 씨가 어느 FM 방송에서 낭송한 뒤로 여러 사람이 찾는 시가 됐다고 하네요.

그런 경험 다들 있지 않나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던” 경험....

그러다 “오지 않을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내가 너에게로 갔”던 경험....

혹 가슴 설레며 지금 누군가에게 서성이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렇다면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해서, 그리고 아주 먼 데서라도 천천히 그 사람에게로 계속 가라고 꼭 전해드리고 싶네요.

시인의 말을 빌려 봅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힘든 하루였습니다.

비까지 와서 그런지 약간의 울증 상태로 넘어왔네요.
햇살 좋은 남산이 생각났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햇빛 아래서 한 세 시간 정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마음이 치료되겠구나 하는 생각...

내가 지금 뭘 기다리고 있나???

희망? 아니면 절망?
그리고는,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어디서 누군가 열리는 문을 바라보며 나일 것이다를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를거란 느낌...
분명한 건,
이 시가 확실히 위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