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4. 2. 11. 08:58

작가 황석영 1973년에 썼던 중편 <비탈진 음지>

그 소설이 38년이 지나 장편으로 개작돼서 2011년 다시 출판됐다.

<황토>와 <비탈진 음지>

비슷한 이력을 지닌 이 두편의 소설 속에는

과거보다 먼 역사의 일부가 되버린 70년이 담겨있다.

내 아버지, 어머니의 젊은 시절이 있고 그리고 내가 태어난 그때.

생각해보니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렸던)에 다닐때만해도

겨울이면 연탄가스 중독으로 결석하는 아이들이 심심치 않았다.

나 역시도 한 방에서 언니와 동생이랑 오글거리며 자다가 연탄가스를 마셨더랬다.

놀란 엄마가 우리를 깨워낸 후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동치미 국물"을 마시게 하는 일이었다.

일종의 응급처치였는데 그 가물가물하던 와중에도 살얼음이 살짝 낀 동치미 국물이 그렇게 맛있고 시원할 수가 없었다.

소위 말하는 정신이 번쩍들고 감긴 눈이 저절로 떠지는 청량함이었다.

그냥...

소설을 읽으면서 오래된 기억들, 그게 하나 둘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의 "가난"과 지금의 "가난"이 얼마나 다른지 까지도...

 

장편으로 개작된 조정래의 <비탈진 음지>

참 구질구질한 현실이고 비루한 일상이다.

"음지"만으로도 서러운데 거기에 비탈까지 졌다니...

시난고난한 복천의 일생에 한번쯤 빛이 반짝하길 바랬는데

그게 거짓없는 현실이기에 오히려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그게 비단 1970년대의 일일 뿐인까?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좀 더 지능적인 야반도주가 있고,

좀 더 지능적인 몰락이 있고,

좀 더 지능적인 파괴가 지능적으로 남아 있을뿐이다.

 

복천의 잘려나간 다리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절망했다.

그래도 살다보면 아주 잠깐이라도 음지에 반짝하고 빛이 들지 않을까 희망했는데... 

조정래는 끝까지 정직했다.

그 정직이 나는 너무나 무섭다.

마치 너는 지금 어디로 무작정 상경하고 있느냐고 묻는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8. 19. 08:15
나이가 들면 반추( )라는 걸 하게 된다는데...
아마도 대가 조정래도 그런 모양이다.
그에게 과거 중단편이었던 <황토>가 내내 아픈 손가락이었던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장편으로 달바꿈된 <황토>를 출판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이 책을 정본으로 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제 조정래의 <황토>에 대한 생손앓이는 끝났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엔 그가 책에서 말한 시대도
그가 살아온 시대도 너무 우울하고 암울하다.
조정래 새대에 문학적 대가들이 많았던 게 이런 이유도 상당부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선가?
나는 우리가 문학적으로 참 빈곤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한참 앞세대의 사람들을 잔인하게 질투하고 싶어진다.
 


모두 다같이 전쟁이라는 흙탕물을 뒤집어썻으면서도
그녀를 향한 사람들의 따돌림은 인정사정없이 맵고도 짰다.

과거의 역사를 되집어 보는 건 언제나 잔인하고 죄스럽다.
부모를 살리기 위해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 주임 야마다의 첩이 되어 낳은 첫째 박태순
해방 후 독립투사 아들 박항구에게 어찌어찌하여 처녀 시집을 가서 낳은 둘째 박세연
그리고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어 나타난 남편이
다시 미군에 의해 북으로 홀로 올라가서 갗은 고초를 겪게 된 점례.
서양 군의관 프렌더즈의 신원보증으로 풀려났지만
프란더즈는 본국으로 떠나고 파란 눈의 아이 동익은 그녀에게 남겨진다.
이런 인생사!
구질구질하다못해 신물이 날 지경이다.
아비가 다른 세 명의 아이!
게다가 그 아비가 일본인, 한국인, 미국인이라니 이런 비극도 없다.
첫째는 그나마 생김새에 차이가 없지만
파란 눈의 셋째는 주변의 시선 외에도 큰 형의 모진 모욕과 굴욕이라는 고통을 겪는다.
병적일 정도로 산에 집착하는 셋째.
그가 말한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정복해서 나도 당당한 사람이라는 걸 꼭 보여주고 말겠다"
그게 인생의 목표라면
그 삶 또한 얼마나 비참하고 아플까!
당당한 사람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이런 인생은 정말이지 없었으면 좋겠다.
이런 역사는 정말이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토.
그 붉으죽죽한 흙탕물이
나는 철철 흐르는 피처럼 두렵다.

견딜 수 있겠는가?
피칠갑된 이 시간들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7. 15. 05:50
최인호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K에 대해 언급하더니
황석영은 <낯익은 세상>으로
소비와 생산의 세상이 남긴 인간 세상의 폐허를 이야기한다.
이러다  정말 "낯익은 OOO"이 문학적 화두가 되는 건 아닐까?
최인호, 황석영, 조정래...
요즘 문학계 노장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리고 그 심상치않음이 나는 신명나고 즐겁고 그리고 고맙다.
(장편으로 새롭게 탄생된 조정래의 <황토>도 어여 읽어봐야지!)



그에게 이 소설은 여러 의미로 남다르리라.
작가생활 50년 최초로 전작으로 발표한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
작년에 <강남몽>의 표절시비로 구설수에 올랐던 황석영은
이번엔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떠올리게 하는 "꽃섬"이라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작품을 위한 칩거였는지, 구설수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은둔(?)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그는 중국 리장(麗江)과 제주도에 거의 머물렀다고 한다.
시간이 멈춘듯한 장소였다는 중국의 리장.
그러나 그곳 역시도 대도시 뉴욕이나 파리처럼 
인간의 욕망에 의해 점령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소설의 모티브를 생각했단다.
뭐 굳이 그걸 중국까지 가서 느낄 필요는 있었을까 싶긴 하다.
왜냐하면 눈만 돌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딱 그러니까.
소비와 생산의 잔재로 점점 폐해와 쓰레기더미로 변하는 세상.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에 인접한 곳에 터잡고 산지 오래된 나는
어릴 때 문만 열면 온갖 기묘한 쓰레기 냄새가 아침을 그야말로 화끈하게 열어주곤 했었다.
그 쓰레기산이 지금 저렇게 멀쩡한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변신해서
서울시민의 쉼터가 됐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긴 하다.
내가 아는 최고의 before-after 반전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옆길로 들어와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 곳에 사람은 산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소설처럼 김서방네 가족이 사는 제 3의 공간(도깨비 세상)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극히 팡당한 시츄에이션인 도깨비를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황석영은 말했다.
"욕망의 추악한 냄새와 잿더미, 자연적 치유의 순환 고리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도깨비 정령들을 불러내 하나의 화해의 모티브로 제안했다" 라고...
글쎄...
내 지적 능력이 현격하게 떨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서방네 대가족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다.
"세상에 니들만 사는 줄 아냐?" 라는데
그렇다고 도깨비를 버젓이 등장시킨건 너무 환상적(?)이고 유아적이지 않나?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된다는데...
황석영의 친구들도 그랬단다.
만년 문학은 "치매문학"이라고.
그래서 대략 그려려니 하고 이해하기로 했다. (*^^*)



수월하고 쉽게 읽혀지는 소설이다.
환상소설? 성장소설? 어른을 위한 동화? 혹은 재난 소설?
암튼...
읽으면서 코멕 맥카시의 <The Road>와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The Road>가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황석영의 예전 성장소설들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딱히 줄거리가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깊이감이 있어 읽고 난 후에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류의 책 역시 아니다.
성찰 혹은 반성 좀 하라고 훈계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냥 도깨비 세상 같다.

열심히 필력을 자랑하고 계시는 황석영이 현재 구상하고 있는 책이 있다는데
이게 또 의외다.
"내년이면 등단한 지 딱 반세기인데 50주년 기념으로 《이야기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쓸 거예요. 황석영을 아바타로 만들어 19세기에 두고 여러 풍랑을 겪는 이야기꾼의 일생을 다룰 예정이죠.연재가 아니라 전작으로 집중해 쓸 겁니다. 저의 80세,90세 때의 모습이 보이시나요?"
그러시단다.
황석영의 아바타라...
그 연세에 참 다양한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저력은 일단 너무나 놀랍다.
결과물이 그만큼 잘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
혹시 이러다 스타워즈급의 소설 한 편이 탄생하는 건 아닐까?
문득 황석영 아바타가 광선검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대략 난감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0. 5. 5. 12:27
지난 주말에 1박 2일(5월 1일 ~ 5월 2일)로 함평을 다녀왔다.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는 팀에서
<나비의 꿈>이란 책을 읽고 계획한 여행이었다.
출발할 때는 워낙 먼 거리라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역시 다녀오길 잘한 것 같다.
책으로만 읽은 것과
실제로 내가 눈으로 보고 온 것과의 차이는 확실히 다르다.
체감(體感)이라는 거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온 동네가 전부 나비로 뒤덮여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대략 6시 시간 정도 걸려 드디어 도착한 팬션.
"황토와 들꽃세상"
폐교를 중심으로 한옥식으로 지은 작은 황토방이 주변경관과 아주 잘 어우러져 있다.
자연학습장처럼 꾸며놓은 팬션은
옛스런 정취와 함께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꽃들이 천지다. 더불어 초보자의 카메라도 무지 바빠진다)
가족 단위로 여행 온 사람들이 많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따뜻하고 흐뭇했다.



함평은 나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곳들이
보랏빛 패랭이꽃 천지이다.
바닥에 납짝 엎드러있는 겸손한(?) 패랭이꽃 무더기를 보는 건 신선한 경험이었다.
팬션 안에도 역시 패랭이꽃과 여러 종류의 작은 들꽃들로 가득하다.
제비꽃, 할미꽃, 초롱꽃...
허리 굽은 할미꽃이 지면 민들레와 비슷한 모습이 된다는 걸 이곳에서 처음 봤다.
녹조로 가득한 연못이며 키 큰 대나무 숲과 산책로.
고요한 마음으로 찬찬히 할 걸음씩 걸을 수 있는 평화를 선물받은 느낌.



팬션 주변을 다니면서 참 많은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늦어 나비축제에 입장할 순 없었지만
팬션의 풍경을 보는 것 만으로도 여행의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다.
이런 풍경들...
얼마나 오랫만에 두 눈에 담아 보는지...
혼자서 많이 애뜻하고 다정해했다.



여행의 첫 날,
작은 꽃들과 평온한 풍경과 인사하느라 내 눈은 바빴다.
피로와 낯섬과 고단함이 슬며시 자리를 물러난다.
어쩌면 이곳 사람들은
성공한 축제를 잘 유지하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가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비 = 희망"
그들이 만든 키워드는 그렇게 시간을 두고 가꿔지고 숙성되고 있는건지도...
풍경에 빠져 나는 그만 마음이 후해지고 말았다.



내게 에피타이저의 유혹은
이렇게 강렬하고
그리고 아주 은밀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