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10. 11. 10. 15:25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 가지> - 오츠 슈이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사실 저는 이런 노골적인 제목의 책들은 거의 안 보는 편입니다.
얼마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그리고 영 못마땅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도 꾸준히 유행하고 있는 “죽기 전에 OO해야 하는 OO가지”의 시리즈의 일환이라고 생각했죠.
그런 책들은 솔직히 “~카더라” 통신과 똑같이 별로 써먹을 데도 없고, 신빙성은 더더욱 없는 일부 선택된 자들의 배부른 취미 생활을 떠올리게 해 불쾌한 감정까지 갖게 됩니다.
뭐, 지들한테 좋았던 게 나한테까지 굳이 좋아 죽겠는게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제발이지 나도 죽기 전에 그 좋다는 곳 다 다녀보고, 그 맛잇다는 거 다 먹어보게 돈벼락이나 떨어지면 좋겠다는 시비조의 불평만 갖게 하는 소위 저에겐 지극히 불건전한 부류에 속하는 책이죠.
그런 제가 이 책을 손에 잡은 건,
순전히 표지에 있는 사진 한 장 때문이었습니다.
사막과 하늘에 남겨져 있는 흔적들이 제 눈을 파고들었죠.
긴 발자국이 찍혀 있는 저 사막은 건조하거나 메마른 사막이 아니었습니다. 저 마른 땅 바로 가까이에 물기가 느껴지는, 그러니까 생명력이 느껴지는 사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들. 그런데 그 구름의 끝도 자세히 보면 물기를 머금고 있네요.
사막 위의 발자국의 방향을 보면 누군가 그곳을 방금 떠나갔다는 걸 알게 됩니다. 뜨거운 사막의 모래바람도 그 발자국을 지워내지 못했네요.
이 사진 한 장이 이 책의 내용 전부를 저에게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그 순간 더 이상 “~카더라” 통신으로만 취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이 책은.
그러니까 생명을 가진 누군가가 이제 금방 비가 쏟아질 그곳으로 향하면서 남긴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흔적을 기꺼이 읽기 위해 책장을 넘깁니다.
 
글을 쓴 오츠 슈이치는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완화 의료(호스피스) 전문의입니다.
일본 최연소 호스피스 전문의였던 그는 현재 도쿄 마츠바라 얼번클리닉에서 말기 환자를 돌보면서 저술, 강연 활동을 하면서 완화의료 및 존엄한 죽음을 함께 나누고 있다고 하네요.
어느 날, 병실 침대에 누워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선생님도 무언가를 후회한 적이 있나요?"
그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천 명이 넘는 환자를 떠나보내면서 "후회"에 관한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았던가!’
환자에게 남은 시간은 며칠 혹은 길어야 몇 주일이 고작입니다.
그들의 몸은 이미 자유롭지 못합니다.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도 없고 낮에도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암 말기에 흔히 나타나는 체력 저하를 수면으로 보충하려는 현상 때문에...
이 시기가 오게 되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물론 이성적인 판단까지도 혼미해집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하는 후회가 인생에서 미루고 미루던 숙제 탓이라면 그 후회는 스스로의 가슴을 더욱 깊이 후벼 팔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고백하는 사람들의 곁에서 오츠 슈이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합니다.
"무엇을 가장 후회하시나요?"
그들은 천천히 입을 열어 자신들의 후회를 하나하나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후회들은 이렇게 이곳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덜컥 겁이 납니다.
지금도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 많이 인정하고 공감하고 있는데 죽음을 앞에 둔 나중의 시간에 나는 얼마나 많은 후회로 더 가슴을 치게 될까가 생각나서 말이죠.

첫 번째 후회,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두 번째 후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세 번째 후회,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네 번째 후회,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다섯 번째 후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여섯 번째 후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일곱 번째 후회,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여덟 번째 후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아홉 번째 후회,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열 번째 후회,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열한 번째 후회,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열두 번째 후회,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열세 번째 후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열네 번째 후회, 고향을 찾아가보았더라면
열다섯 번째 후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열여섯 번째 후회, 결혼을 했더라면
열일곱 번째 후회, 자식이 있었더라면
열여덟 번째 후회, 자식을 혼인시켰더라면
열아홉 번째 후회,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스무 번째 후회,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스물한 번째 후회,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스물두 번째 후회,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스물세 번째 후회,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스물네 번째 후회,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스물다섯 번째 후회,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스물다섯 가지의 후회들.
어쩌면 하나 같이 제 등을 쳐대는 것들 뿐이던지...
세세한 내용을 읽기도 전에 스물다섯 가지의 제목만으로도 덜컹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후회라니...
늘 하고 또 하고 있는 그 후회, 후회하는 걸 또 다시 후회하면서 그래도 또 후회하게 되는. 제 모습들에 또박또박 제목을 달아놓은 것만 같아 당황스러운 부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렇게 잔인하면서도 그만큼 선한고 솔직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책.
그리고 책 속에 담겨있는 사진들.
그 흑백의 사진들은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들로 가득합니다.
일본인이 쓴 글에 우리나라 사진이라니, 순간 화들짝 놀랐습니다.
출판사가 각 나라 별로 사진 편집을 다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 가물가물해진 기억들이 하나씩 들춰지는 기분입니다.
그러지 않았을까요?
죽음을 앞에 둔 그들도 자신의 과거를 조용히 하나씩 흑백사진처럼 반추하면서 하지 못한 뭔가를 조용히 털어놨는지도, 그리고는 조금씩 가벼워 졌는지도...
1000여 명의 사람들을 떠나보내면서 작가는 말합니다.
“죄를 반성할지언정 자책하지는 말자!”고.
지나친 죄책감은 자신을 파괴할 뿐이라고 말이죠. 단지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도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형벌 때문이 아니라, 죄를 범했다는 죄책감이 자기 자신을 공포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것이라고요.
아직 어린 나이였을 때,
저는 삶이 “소풍”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마도 그쯤에 읽은 천상병의 “귀천(歸天)”이라는 시가 가슴에 담겨버려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시의 구절처럼 “죽음”이라는 삶의 최후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로 만들자 그랬더랬는데...
어느새 제는 후회 하나를 또 추가하고 있네요.
아름답죠? 이 세상.
아름다운 것도, 미운 것도 다 내 것으로 만들어 가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래야 아름다운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 아름다웠노라 말하면서 추억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후회와 추억.
내 발목 잡는 아득한 꿈이 이만큼 다가옵니다.

귀천(歸天)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8. 31. 05:55

<The Road> - 코맥 매카시

로드(THE ROAD)

“미국 현지에서 감히 <성서>에 비견되었던 소설”
이런 광고와 함께 2008년 6월 우리나라를 그야말로 강타했던 소설입니다.
<The Road>
책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일관성(?)있게 계속 길 위를 떠도는 (도저히 목적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정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기에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고 심지어는 거부감마저도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소설입니다.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왜 이 소설이 성서에 비교되고 있는 건지 납득은 잘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독특한 메시지를 준고 있다는 사실이죠.
“인류 대제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 묵시론적 이야기”... 이 책에 대한 평들의 대부분을 장식하는 해드라인 문구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제에게 설득력이 좀 없어 보입니다.(또 저의 찌질한 이해력 부족이 그 밑바닥에 깔려있긴 하겠지만요)
그들이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도 아니고, 그리고 이 책엔 어떤 묵시론적인 암시나 계시 혹은 계명 같은 것들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폐허와 추위의 땅 위에서 살아남는 10가지 방법쯤을 알려주는 길 위의 삶을 다룬 실용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주인공인 남자와 소년은 "불을 운반하는 사람"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의 존재입니다.
불이라… 인류의 문명이 시작이 불에서 비롯됐던가요?
그렇다면 그들을 계속 걷게 만들었던 건 다시 꽃피워야 할 새로운 문명에 대한 책임감이었을까요? 아니면 모든 회복의 근본이어야 할 선한 인간성 회복이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항상 무엇인가의 완벽한 해답인 사랑? 아니면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절망을 이겨낼 희망?
어쩌면 그 모든 것 다 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일 수도 물론 있죠)

일단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특징은 익명성에 있다 하겠습니다.
남자, 소년, 사내, 노인, 여자….
그 누구도 구체적인 이름이나 심지어는 형체조차도 소유하지 않기도 하죠.
마치 현대인처럼요…(혹시 난 이름이 있는데…. 라고 말하고 싶으신가요????)
어쩌면 불탄 거리에 꽂혀 있는 반쯤 타버린 인간 미라들과 주인공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살아남음의 이유가 어떤 목적과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 내지는 일종의 눈속임 같은 건 혹 아닐지…
실제로 이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누가 감히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의 주인공들.
그들이 실제 "부자지간"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마치 어린 신을 모시고 길에 떠나는 제자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물론 그 신의 어깨 위엔 반드시 인류 구원이라는 대전제가 걸려 있어야 하겠죠!!
그런 점에선 확실히 성경의 모티브가 느껴지긴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주인공들이 있는 지금 이 세계는 불의 재앙으로 거의 모든 인류와 세상이 멸종 상태에 있습니다.
아직 뜨거운 재앙이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이곳에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음식을 구하며 방수포에 의지하여 추위를 견디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낡은 쇼핑 카트를 끌고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만 떠올린다면 참 코믹하고 우수운 비주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두 주인공의 선문답에 가까운 단답형의 대화.
그들의 대화는 지금 그들이 처한 환경만큼이나 미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생명의 숨결이 느껴져 차라리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잠시 찾았던 완벽한 환경의 은신처마저도 그들은 버려야 했고 또 다시 굶주림과 추위의 땅으로 마른 몸과 낡은 카트를 끌고 들어섭니다. 늘 그랬듯이…
이젠 슬슬 제 몸도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때론 이런 환경에 영 어울리지 않는 아이의 동정심에 제가 다 화를 내면서 몇 개 남지 않은 깡통이 마치 내 것인냥 움켜쥐며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책의 표현처럼 순간 제가 "좀비"가 된 듯한 느낌이죠.
이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걸까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신도 살 수도 없다"고 말하는 그곳, 아니 이곳에서요.
지금 내 세상에서 "재앙"이란 어떤 형태일까요?
그 "재앙"을 뚫고 우리는 꼭 뭔가를 남겨야만 하는 걸까요?
소년은 어느 순간 묻습니다.
"아빠! 우리는 지금도 좋은 사람들인가요?"

남자는 소년을 남기고 이제 눈을 감으려 합니다.
그는 소년에게 남쪽으로 계속 가라고 말합니다.
소년은 잠시 길 위에서 마주쳤던 작은 아이를 떠올리며 묻습니다.
"하지만 길을 잃으면 누가 찾아주죠? 누가 그 아이를 찾아요?"
남자가 마지막 말을 합니다.
"선(善)이 꼬마를 찾을 거야. 언제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아빠라는 남자를 잃은 소년은 또 다른 남자를 만납니다.
함께 가자고 말하는 남자에게 소년은 말합니다.
"아저씨가 좋은 사람이란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남자는 말합니다.
"알 수 없지. 그냥 운에 맡겨야지, 뭐"
길을 잃은 소년의 앞에 나타난 남자는 꼬마를 찾아온 선(善)이었을까요?
만약 그 질문이 당신에게 주어진다면 뭐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 이상하게도 불편한 책들을 많이 읽고 좋아하게 됩니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일게 되는 건 그 불편함이 주는 즐거움과 의미 때문일겁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꾸 또 다른 불편한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됩니다.
   책 표지를 다시 살펴봤죠.
   역시나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번역했던 정영목의 번역작이네요.
   이 책의 마지막 4페이지는 옮긴이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이 부분도 꼭 읽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번역가의 작가에 대한 애정과 작품에 대한 믿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코맥 매카시"에 대해 어쩌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4. 22. 08:19

<그건, 사랑이었네>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저는 개인적으로 목소리 크고 수다스러운 사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왠지 시비를 걸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그런 저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일단 "한비야"는 좋은 점수를 받기가 아무래도 어려운 사람이죠.
참 많이 일을 만들어서, 참 많이 지치지도 않고, 참 많이 치열하게, 참 열심히 하면서 사는 사람, 한비야!
얼마 전에는 가을에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은 지식인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위는 안철수, 3위는 공지영이었죠)
“바람의 딸”로 지구를 걸어서 세 바퀴 반이나 돌아야 했고, 돌아와서는 다시 우리나라도  돌아줘야 했고, 그 뒤엔 불혹의 나이로 주위의 반대를 뿌리치고 중국으로 날아가 어학공부도 해야 했고, 그런 과정들을 또 몇 권의 책으로 열심히 써내야 했고...  다행히(?) 그 책들이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어느 정도 수확도 있었겠지만 말이죠.
참 복 많은 사람이라고 무작정 생각하기도 했었죠.
그녀의 책들을 차례차례 읽으면서도 솔직히 별다른 감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도 했었죠.
“한비야와 나는 참 궁합이 안 맞는 상대구나” 라고...
이제와 10년 넘게 안 맞았던 궁합이 돌연 한 권의 책으로 찰떡궁합이 된 건 아니지만 분명 그녀에게 받은 메시지가 있음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요!
“무릎팍 도사”에 나와 강호동 앞에서 “조조조조~~~”을 외치던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자주 “울울울울~~~”에 빠져 있던 저는 웃을 수밖에 없었죠.
우리 둘이 만나면 완벽한 “조울증”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책 <중국견문론>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길을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이고, 길을 잃으면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일단은 떠나보라는 말이었죠.
떠나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온 몸이 저릿저릿했던 저는 그녀를 향한 노골적인 부러움과 시기심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둘의 궁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란 생각도 이제와 하게 되네요.
<여행서>로만 익숙했던 한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온전히 여행서 같지 않았던 그녀의 글들.
투박하고 촌스러운 문체, 심지어는 너무나 개인적인 말투들을 남발하는 걸 보면서 사이비 작가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급기야 더 개인적인 책을 냈네요.
<그건, 사람이었네>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 그녀는 이 책을 언니로써, 누나로써 동생들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썼다고 밝혔습니다.
“청춘”들을 위한 글!
아마 이 책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내가 지금 청춘인가?’하는 애매한 시기의 사람들(?)에겐 어쩌면 이 책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제가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녀의 눈부신 “청춘” 때문입니다.
40의 나이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때도 기겁을 했었는데, 51살의 나이로 미국 보스턴 테프츠 대학에서 본격적인 구호 이론을 공부하겠다며 또 다시 작년 9월 유학의 길을 떠났습니다.
....... 현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단 한 번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청춘,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청춘, 그 청춘은 청춘도 아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청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눈부신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
그녀의 글처럼 도무지 그녀의 “청춘”은 끝이 날 줄 모르네요.
9년간 함께 했던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도 그만 두고 그녀는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청춘”이라는 건 “나이”와는 하등 상관관계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청춘”은 생동감과 활기참, 그리고 도전 정신이라면, 시간을 지나온 “성숙된 청춘”은 지식과 지혜, 명석함으로 비롯된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늦은 시작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아마도 그녀 한비야는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이기지 못했다면 적어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동행하는 방법을 알게 됐는지도요.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에는 그녀가 항상 말하는 “1년에 100권 책읽기”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책”
제게는 심장이 뛰고 가슴이 설레는 최고의 단어입니다.
어릴 적 제 꿈 중의 하나는 책을 읽다 눈이 멀어버리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어린 꿈이 “오르한 파묵”이라는 터키작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품게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 어이없고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그런 소망을 품었던 때가 정말 있었습니다.
제가 “책”이라는 세계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생각을 그녀 한비야도 하고 있습니다.
...... "독서"의 즐거움이란 책 읽는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는 기대감, 찾아내서 빌려올 때의 뿌듯함, 이미 대출된 책의 차례를 기다리는 설렘, 점심을 굶어가며 모은 돈으로 서점에 가서 내 책을 사는 기쁨, 그 책을 책장에 꽃아 놓고 보는 흐뭇함, 그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돌려받는 날까지 괜히 조마조마해지는 조바심까지를 포함한다......
저는 이런 마음을 “판타지”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돈으로 제일 먼저 한 일은,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종로서적에서 이틀에 나눠 5권씩 구입해 들고 오면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얼얼했던 손의 기억도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책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제 손길을 받고 있죠.(이 책 정말 많이 읽었네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물의 최소량은 하루에 15리터라고 합니다.
저는 그 자리에 하루에 “15장의 책읽기”가 포함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고 꿈꿉니다.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참 재미없게 그리고 참 많이 힘들게 세상을 살아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책은,
저에게 있어 생명의 또 다른 숨구멍입니다...

* 문득 궁금해집니다.
  당신에게 “책”은 무엇입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3. 4. 05:53
 <달의 바다> - 정한아


 

2008년에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가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모두가 꿈꾸던 지구 저 너머를 다녀왔던 일을 기억하시죠? 성공적으로 우주 정거장에 도킹도 하고...

그동안 파란만장한 나름의 사연도 많았고...

그때 100% 우리 기술을 가지고 우주로 떠난 게 아니라 말들도 참 많았고 그리고 고산씨의 탈락 때문에 좀 씁쓸한 분위기까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기념할 만한 일이긴 했었습니다.

(그런데 고산씨는 정말 현대판 문익점의 역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걸까요? 그렇다면 일생에 한번 밖에 없는 절호의 기회를 애국심의 일환으로 정말 그렇게 놓쳐버릴 수 있었던 걸까요???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도 저는 아직까지 정말 궁금합니다.)

우주선이 발사되는 걸 보면서 문득 <달의 바다>가 생각났더랬죠.
뭐 내용적인 면에서 그랬던 건 아니고 오로지 달이라는 우주적인 존재 때문이긴 했지만...


<달의 바다>는 1982년 출생한 작가 정한아의 첫 번째 장편입니다.

25세라는 어린 나이에 제 12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정말 파릇하게 반짝거리는 작가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젊은 여성작가의 요즘 트랜드는 적당히 가벼운 유머와 더 가벼운 성의 조합, 그리고 아직 미성숙한 찌찔이들의 독립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기대고픈 구차함을 뛰어넘는 강렬한 소망, 모든 것에 무심한 듯 대범함을 가장한 완전한 정체성 포기... 뭐 대략 이렇거든요.

처음 이 책을 봤을 땐 그런 종류의 소설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선입견을 버려야하는데...)

또 여지없이 뒷통수를 강타당했다는.....(당시에는 맞아도 싸지!!...싶었습니다.)


이 책은 5년째 언론사 입사시험에 떨어진 '나'의 이야기와 우주비행사 고모가 보내온 편지가 현실-환상(편지)의 구도로 서로 교차되는 형식입니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입사시험으로 인해 길어지는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27세 “나(은미)”는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막막함에 머리카락마저 한 움큼씩 빠지는 신세죠.  급기야 유쾌한(?) 자살까지도 대책 없이 꿈꾸게까지 됩니다.

이런 그녀는 오년 전 소식이 끊긴 고모가 미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가 되어 있다는 소식을 은밀하게 할머니에게 전달받고 그 고모를 만나러 가게 되죠.  

다른 식구들 몰래 할머니에게 보내온 고모의 편지에는 생경하기만 한 우주의 풍경과 우주비행사로서의 일상생활이 정말 실감나게 그려져 있습니다.(저 몰랐던 사실을 이 책에서 꽤나 많이 알게 됐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작가의 역량에 박수 세 번~~ 짝짝짝!!!)

은미는 단짝친구 민이(성적 소수자로 남자랍니다...)와 편지에 있는 주소만을 그야말로 달랑 들고 플로리다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만난 고모는 NASA 직원이 아닌 우주 테마파크에서 샌드위치를 파는 스낵바의 주인일 뿐입니다. 그것도 폐에 낭종이 생겨 호흡이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는...(생명의 위협까지도 받고 있는 상태인데도 고모는 너무나 생기발랄합니다.)


고모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요?

고모가 어렸을 때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할머니는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하는 모습을 보고 탄성을 지릅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어쩐지 달에 마음이 끌렸어"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보며 어린 고모는 말하죠.
"엄마, 그럼 나중에 우린 달에 가서 살아요"

할머니는 대답합니다
"그래, 꼭 그러자"

달에 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던 할머니는 우주비행사인 딸이 보낸 편지를 읽으며 그 딸이 자신의 꿈을 대신 실현하고 있는 것만 같아 가슴이 벅차기까지 했을 겁니다.

고모의 편지는 그러니까 할머니를 위한 아름다운 거짓일 수 있는거죠.
그러나 동시에 그 편지 속 고모의 현실은 무엇보다도 사실적이고 치열하기에 완벽한 진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고모는 말합니다.

“언제든지 명령이 떨어지면 저는 이곳에서 완전히 정착할 준비를 시작해야 해요. 그 때가 되면 더 이상 편지는 쓰지 못할 거예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밤하늘의 저 먼 데를 쳐다보면 아름답고 둥근 행성 한구석에서 엄마의 딸이 반짝, 하고 빛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언제나 엄마가 말씀해주셨잖아요?”

죽음을 통째로 들어 달로 옮기려는 듯한 시도처럼 보였습니다. 
이 모든 게 비록 위장된 거짓말일지라도 고모의 편지 속에는 희망이, 꿈이 그대로 살아있었네요.
묘한 울림에 가슴이 잠시 뻐근했었습니다.

통째로 들어서 제 독서노트에 옮겼던 기억이 새롭네요.


“진짜 같은 거짓말을 쓰고 싶었다”

정한아라는 젊은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고 쓰고 싶었던 글이라고 하네요.

이쯤 되는 거짓말이라면...

저는 골백번이라도 당신 말은 사실은 "진실"이었노라고 기꺼이 말해줄 수 있을것 같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2. 26. 06:02
 <희망을 여행하라> - 이매진피스 임영신, 이혜영


희망을 여행하라

혹시 “공정여행(Fair Travel)"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그럼 “공정무역(Fair Trade)"이란 단어는요?

공정무역(Fair Trade)이란 상품의 최초 생산자에게는 지속적인 자립을 도울 수 있는 정당한 가격이 지불되고, 소비자에겐 윤리적이고 건강한 제품을 구입하게 하는 새로운 글로벌 지원사업을 말합니다. 여기서 윤리적인 제품이란 아동노동을 착취하지 않고, 환경도 파괴하지 않는 그런 제품을 뜻하죠. 제품을 공급하는 나라는 대부분 제3세계 국가로 빈곤과 낮은 교육 수준, 열악한 환경의 공격을 받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현재 공정무역 제품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와 있고, 얼마 전에는 홈쇼핑을 통해 공정무역 커피가 판매되는 걸 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정무역의 대표 브랜드(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를 꼽자면 우리가 잘 아는 “아름다운 가게”를 들 수 있습니다.

공정여행은 우리가 아는 공정무역과 넓게는 그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정여행(Fair Travel)이란 우리가 여행에서 소비하는 돈이 그 지역과 공동체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여행을 말합니다. “여행”이라는 행위를 통해 여행지의 숲이 지켜지고, 그 곳의 사라져가는 동물들이 살아나고 나아가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경험하는 여행입니다. 더불어 여행자와 그 여행자를 맞이하는 원주민이 서로를 성장시키는 여행이죠.

“여행”을 준비할 때 우리는 제일 먼저 “어디로” 떠날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정여행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를 먼저 생각한다고 하네요. “어떻게”하면 그곳의 자원과 사람, 그리고 환경을 덜 파괴하는 여행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의 들뜸과 흥분보다는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여행이죠.

관광과 공정여행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고 합니다. 관광은 여행을 상품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소비”하는 행위이지만 공정여행은 “관계”에 그 시선을 맞춥니다. 그곳 원주민들과의 관계, 환경과의 관계, 재화의 공정한 분배에 대한 관계...

  

이제 여행에도 “페어플레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여행을 단지 “관광”과 “쇼핑”의 이벤트로 끝낼 것인가 아닌가는 온전히 여행자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책임감을 강조한 의미죠.

누구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을 겁니다. 나를 무한한 자유와 행복감에 빠져들게 하는 여행이 어쩌면 현지인에게 피해를 주고 고통을 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현지인 포터를 동반한 트레킹에서 그들의 싼 인권비에 놀라면서도 그 인권비의 얼마가 그들에게 돌아가는지, 그들의 등짐을 보면서 진기명기를 보듯 감탄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코끼리 등에서 별천지를 구경하면서 그들의 머리를 내리찍은 따거의 고통을 가늠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코끼리의 가죽은 아주 단단해서 전혀 아파하지 않는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코끼리의 이마에는 새로운 생채기에서 새로운 핏줄기가 흐르고 있다는 걸 등 위에 올라탄 우리는 결코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가이드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착한 여행객이니까요...

“여행”은 다른 문화를 단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며 경험한다는 것은 그 문화에 대한 존중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이유로 누구든 타인의 공간을 방문할 때는 예의를 지켜야만 하죠. 우리가 그들보다 더 잘 사는 나라이기에 그 나라를 함부로 다룰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기억할 수 있을까요?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일본인을 상대로 한 “기생관광”의 핵심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인이 동남아시아의 미성년자 성매매 관광의 최대 수요국으로 부상한지 오래죠. 이런 통계를 보면 어쩐지 여행이 범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미성년자 성매매는 확실히 불법행위죠.)

그렇다면 “여행”을 통해 우리가 원했던 건 정말 무엇이었을까요?


이 책 <희망을 여행하라>는 여행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책임을 묻는 책입니다.

여행을 구경을 하는 관광으로만 즐길 것인가 아니며 사람과 자연을 만나 배움을 얻고 함께 관계를 맺는 소통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죠.

꼭 전쟁과 외교로만 나라가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국의 문화를 잃는다면 삶의 역사를 잃게 되는 것이죠. 우리 역시나 문화를 잃었던 과거가 있습니다. 우리가 끝끝내 문화를 지키고 보전해 나갔던 건 결국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진보”에 대한 강한 희망이었습니다. 

지금의 거대 기업의 관광산업을 보고 있으면 과거 식민지 문화의 거대 부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행을 통한 인권 유린, 아동노동 착취, 환경 파괴는 결국 그 나라 문화를 파괴하고 급기야는 삶의 터전까지 파괴하기에 이르죠.

관광산업에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삶의 터를 빼앗기고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는 부시맨과 마사이족들. 그들은 지금 다국적 기업의 관광산업 볼거리로만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신께 올렸던 신성한 제의는 관광지의 이벤트로 아무런 믿음과 기원 없이 매일 밤 끝없이 부활하고 있죠.

이제 관광지가 된다는 것은 삶의 존엄과 더불어 진실의 기록과 기억마저 삭제해 나가야 하는 냉혹한 정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버리고, 그리고 떠나는 여행!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모든 여행도 이 과정의 반복은 아니었을까요?


리얼리티 투어, 에코 투어. 대안 여행, 윤리 여행. 공동체에 기반을 둔 여행...

“관광객”은 단지 구경하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이고 “여행자”는 만남과 배움을 위해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일본에서 시작된 피스보트(Peaceboat) 그리고 학생 안식년으로 알려진 영미권의 갭 이어(Gap Year)는 이런 공정여행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2년 일본 역사교과서에서 일본의 아시아 군사침략을 “진출”로 표현한 것에 대해 세게 곳곳에서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을 때, 이제까지 자신들이 배워 온 역사가 진실인가 하는 의문을 품은 일본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렇다면 현지에 가서 우리들의 눈으로 확인해 보자'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 피스보트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피스보트는 1년에 네 차례 지구를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는 일본의 NGO 단체로 벌써 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죠. 피스보트는 이제 일본과 아시아의 역사를 넘어 지구의 환경, 인권, 여성, 분쟁, 빈곤문제 등 다양한 세계의 모습을 직접 만나 그곳 사람들에게 듣고, 배우며 여행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제교류, 연대, 자원봉사, 구호활동 까지도 펼치고 있죠.

이 피스보트의 가장 큰 매력은 승객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주기획”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자주기획”이란 승객들 스스로 세미나나 스터디를 만들어 토론도 하고 공연 기획 등을 통해 승객들에게 의미있는 공연을 그들 스스로 보여주는 일련의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피스보트에 탑승한 600여명의 세계의 젊은이들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고민을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 배우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하며 소통하게 됩니다. 하나의 진정한 지적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죠.

“Gap Year"는 영국과 미국의 대학들이 실시하고 있는 제도로 신입생이 입학 전 1년간 입학을 유보하고 세상을 경험한 후 공부를 시작하도록 하는 방법이죠. 영국의 윌리엄 왕자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에 들어가기 전 1년간 입학을 유보하고 갭 이어의 시간을 가져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갭 이어의 목적은 자신이 살아가야 할 세계를 이해하고, 이제부터 하게 되는 학문에 대한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찾는 자기배움의 일환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휴학과 근본적인 차이는 학교가 직접 제도를 마련해 대학시절 전에 세상을 경험하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과 경험을 권장하는 공교육의 일부라는 사실이죠.

우리가 아는 취업을 위한 하나의 스팩용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책은 요즘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소위 해외봉사에 대한 위험성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결단과 뚜렷한 목적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지 취업에 필요한 가점을 얻기 위한 하나의 필수코스가 됐다고 꼬집고 있죠. “해외연수”나 “외국어능통”조차도 이제는 흔한 스팩이 되어 버렸다는 뜻입니다. 해외봉사같은 스팩을 하나 가짐으로 글로벌 인재, 희생정신, 책임의식에 대한 홍보효과를 기대한다는 엄중한 지적이기도 하죠.

그들에겐 이것 또한 “관광”의 한 형태에 다르지 않습니다.

“시선의 폭력”이라고 이 책은 말하네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반성” 그 이전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반성‘이나 ”각성“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로구나 하는 처절함. 이건 분명 생존과의 사투라는 생각.

“공정함”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공정함이 여행으로 스며들 때, 그 여행은 이미 배움과 이해를 넘어 소통과 관계의 세계로 우리를 진화하게 만듭니다.

여행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진화”를 보고 있나요, 아니면 “파괴”를 보고 있나요?

몰랐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죠.

“진화”의 반대말이 “파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공정여행자가 되는 10가지 방법>


1. 지구를 돌보는 여행 : 비행기 이용 줄이기, 1회용품 쓰지 않기, 물을 낭비하지 않기

2.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여행 : 직원에게 적정한 근로조건을 지키는 숙소, 여행사를 선택하기

3. 성매매를 하지 않는 여행 : 아동 성매매, 섹스관광, 성매매 골프관광 등을 거부하기

4.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 :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 음식점, 가이드, 교통시설 이용하기

5. 윤리적으로 소비하는 여행 : 과도한 쇼핑 하지 않기, 공정무역 제품 이용하기, 지나치게 깎지 않기

6. 친구가 되는 여행 : 현지 인사말을 배우고 노래와 춤 배우기, 작은 선물 준비하기

7.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 : 생활 방식, 종교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기

8. 상대를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는 여행 : 사진을 찍을 땐 허락을 구하고, 약속한 것을 지키는 여행

9. 기부하는 여행 : 적선이 아니라 나눔을 준비하자, 여행 경비의 1%는 현지의 단체에!

10. 행동하는 여행 :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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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책거리2010. 2. 20. 05:56
 <이갈리아의 딸들> -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이갈리아의 딸들


기발하고 재미있는 역발상(?)의  소설도 있다는 걸 아시나요?

오늘 소개할 책이 그런 책 중 한 권입니다.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1941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출생.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했다고 하네요. 1970년대 초반부터는 여성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오슬로 여성의 집>과 <매맞는 아내들을 위한 쉼터>에서 일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쓴 또 다른 책들은 <전세계의 동성애자여, 일어나라>, <그래, 이젠 그만>, <성 크로와에게 바치는 노래>, <페리호를 타고> 등이 있답니다(작가의 성향이 조금 이해되시겠죠?) 이 책은 모국어로 출판됐을 때 보다 영어로 번역되어 나왔을 때 오히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네요.

유럽에선 연극으로 장기 공연되기도 했다고 하고요...

<이갈리아의 딸들>

이 책은 성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나라에 대한 이야깁니다.

먼저 “이갈리아”라는 단어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드릴께요.

이 책에서 나라의 이름으로 나오는 “이갈리아”는 평등주의를 뜻하는 “egalitarian” 단어와 이상국을 뜻하는 “utopia” 두 단어가 합성된 말로 “평등한 유토피아”란 뜻입니다.

좀 느낌이 오시나요? 

이 나라에서는 여성을 움(wom)으로 남성은 맨움(manwom)으로 부르고, 아내는 여전히 “wife”, 남편은 “housebound”라고 부릅니다.

여성들은 자신에게 정자를 제공한 아이 아버지에게 '부성보호'를 지명할 수 있고(쉽게 말하면 남자 가정부라는 뜻이죠 ^^), 맨움들은 부성보호를 받기 위해 다달이 행정관서에 가서 피임약을 먹고 사인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이 나라가 지정한 여자에게만 정자를 제공하겠다는 뭐 그런 서약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회를 이끌어가고 정치를 하고, 경제 주체가 되는 사람들이 wom이고 manwom은 그 여자가 벌어오는 돈으로 가정을 꾸미고, 미용실을 가서 본인 자신을 가꾸고, 자녀를 양육하는 뭐 대략 그런 나라입니다.

여성들은 당당히 윗옷을 벗어 가슴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다니고 대신 남성들이 여성처럼 “페호”라는 코르셋 같은 보호기를 착용해야 하는 나라. 댄스파티에서 수줍게 여성의 춤 신청을 받기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나라. 혹 여성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하는 남자들이 사는 나라...

그런 나라가 바로 “이갈리아‘라는 곳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생각하면 코믹한 책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심각하다 못해 공포감마저도 느껴지는 내용입니다.

성의 역할의 기존의 개념과 정확히 정반대인 나라.

남자들이 여성들에게 강간당하고,

여자들에게 구타당한 멍든 얼굴을 진한 화장으로 감추는 남자들이 사는 곳.

정자가 수치의 근원이고 월경은 힘의 원천인 사회.

어찌됐든 내용적인 면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책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저는 페미니즘 소설로 치부하기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 스스로도 이 책이 조금은 지나치다고 말하고 있지만, 어쨌든 굉장히 재미있고 신선하고. 동시에 생각거리를 만들어 주는 내용임에는 분명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아닌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죠.

갑자기 가수 김건모가 부른 “핑게”라는 가사의 일부가 생각납니다.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인간과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

“역지사지”

이런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바야흐로 "갈등" 구조가 표면화되는 거죠.

어떤 형태이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사이엔 갈등이 생기게 되면 그 구조 자체를 파괴하고자 시도하는 움직임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어떤 특정 개인이든, 상황이든요.

이곳에도 그런 사람이 존재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자아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남자, “페트로니우스”가 바로 그 도화선에 해당하는 인물이죠.

그에게 아버지는 멘토의 역할을 합니다.

강간당한 아들에게(아들을 강간한 그 여자는 임신을 하게 되고 페트로니우스에게 부성보호를 명령하죠) 아비는 말합니다.

"그에게서 부성보호를 받으면 안 된다. 페트로니우스! 삼십년 간, 아니면 네가 버틸 수 있는 한, 하루 스물 네 시간 꼬박, 처음부터 끝까지 고달프고 힘든 일이라구. 그리고 만일 세세한 부분까지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스물 네 시간 내내 일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뿐이야. 페트로니우스! 만일 내가 너라면, 지금...만일 내 입장이라면...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거야. 가정과 아이에 대한 꿈은 집어치우고 내 자신을 찾고 싶어...”


드디어 맨움들에 의한  맨움해방주의가 싹뜹니다.

맨움도 움이 가진 것과 똑같은 권리, 권력, 기회를 가져야 하며, 평등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이 변해야 한다는 정치적 신념. 이것에 근거한 사회운동을 부르짖게 되죠.

이제 그들의 외침이 순탄치 않으리란 건 예상이 되시겠죠?

언제나 힘든 시작엔 필사적인 억압이 있었으니까요. 어느 시대든, 어떤 상황이든, 그리고 누가 어떻게 시작을 했든...


그렇다면 이 책,

결국 여성해방을 꿈꾸는 내용인건가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양성해방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양성존중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네요.

여성이기에, 남성이기에 보호받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인간이기에, 사람이기에 하나의 귀중한 객체로 보호받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사실.

더 이상 누군가가 누군가의 인생에 얹혀사는 존재가 아닌, 그래서 팔자 고치는 삶을 꿈꾸는 게 아니라 내 삶을 내가 살아가야만 나에 대한 진정한 자존감을 갖게 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쓰고 보니 참 교훈적이네요....^^)

이 책을 읽고 여자란 무엇인가? 혹은 남자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을 해 봅니다.

"혁명"이라는 말...

지금 우리가 꿈꾸고 희망하는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우리에게 <혁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2. 10. 06:20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 허버트 마이어스, 리처드 거스트먼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맨 처음 책을 손을 잡게 되면 잡는 순간 느낌이 오는 책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오르한 파묵의 모든 책들이 그랬고(정말로 그의 모든 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알랭 드 보통, 주제 사라마구가 그랬습니다.

(솔직히 더 많이 있긴 한데. 뭐 하자는 플레이가 될까봐 그만 하렵니다...)

이 책 <크리에이티브 마인드>는 책 표지부터 저한테 말을 거는 느낌이 들었던 책입니다.(이런 순간엔 마치 내가 책으로 빙의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면 믿으시겠어요?)

어쩐지 자꾸 저를 부르는 것 같아 단번에 집어 들었습니다.

사실 다른 책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저의 생각을 급선회시킨 짜릿한 장본인 되시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지 무지 무지 무지 재미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 역시 엄청난 창의력을 가진 디자이너로 세계 유수의 상들을 싹들이 한 우리 기준에서 생각하면 선택받은 극히 적은 소수인들입니다.

한마디로 사람 주눅 들게 하는 인간들이란 뜻이죠.

이 책에서 우린 그런 무시무시한 인간들을 자그만치 20명이나 만나야 합니다.

근데 매력적인 건 책장을 넘길수록 이 무시무시한 인간들이 마치 바로 내 옆에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처음엔 무지 부담스러웠죠.(이들이 좀 대단한 사람들이라 말이죠... 저 실제가 아님을 알면서도 당황하고 몸 둘 바를 몰라하고 있더랬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까, 글쎄 제가 이 사람들한테 완전 집중하고 있는 겁니다. 더 이야기해달라고 떼를 쓰는 마음으로요.(이거 빙의 맞죠? 정신분열인가?)


요즘엔 사실 "창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실정이긴 합니다.

얼마나 창조할 게 많으면 정당에서도 창조를 이름으로 내세우며 목에 핏대를 세우시겠어요?(것도 영 창조적이지 않게시리... 모냥 빠지게....)

예술계는 물론이고 과학ㆍ기업ㆍ정치에 이르기까지 이 말을 쓰지 않으면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기까지 하죠. 서점에만 나가봐도 창조, 창의력 관련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져 아예 대형 서점엔 '창조력 계발'이라는 부스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을 정돕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대개 창조적인 인물들의 삶과 업적을 정말 그야말로 열심히 추적해 나열하는 수준이죠.

그러면서 평범한 우리 인간들 엄청 기운 빠지게 만드는 예기치 못한 역효과를 만드는 불상사까지 낳기도 하죠.


이 책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육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저널리스트, 기자, 연출가, 극작가, 작가, 경영인, 건축가, 영화감독, 작곡가, 디자이너, 유리조형가, 화가, 퍼스널컴퓨터 발명가, 박물관장, 조각가, 사진작가....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을 즐긴다”는 아주 단순한 명제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고 싶다는 소망이었구요.

그들은 또한 말합니다.

창조적인 사람은 개방적이라고요, 그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알고 있었던 거죠. 공동 작업이 얼마나 창조적일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전체”가 창조되는 짜릿함을요.


요즘 제가 절실히 느끼고 있는 부분입니다.

공동 작업의 엄청난 “창조성”을요...

예전엔 혼자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혼자 잘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오히려 타인을 탓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실수를 습관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이 책 아주 못쓰겠습니다. 과거의 안 좋은 모습을 고백까지 하게 만드니...)

다행인 것은,

요즘은 함께 일하는 즐거움에 대해 깨달았다는 겁니다.(완전 기특한 버전...)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증대 효과도 전 정말 느끼고 있거든요.

이 책의 표현 데로 정말 짜릿한 흥분이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이 아무래도 이 책을 불렀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책에는 영혼이라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을 보면서 저는 짧은 <독서노트> 같을 걸 기록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제 노트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그리고 문장 전체를 그대로 받아 적은 부분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힘이 되는 구절들과 만나는 건 일종의 축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창조성”은 사람의 본성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그걸 어떻게 발견하느냐는 누구도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단지 내가 나의 창조성을, 타인의 창조성을 꺾는 그런 사람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이 책의 소개된 “스티븐 홀”이라는 건축가는 말합니다.

“창조성은,

예술 활동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상상력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핵심이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살아있는 걸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2. 9. 05:52
 <사막의 꽃> - 와리스 디리. 캐틀린 밀러


책 썸네일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는 여자의 다리 사이에 나쁜 것이 있다고 믿는답니다. 그래서 그 믿음에 따라 청결하지 않기 여자 성기는 반드시 어릴 때 제거해야만 한다고 믿고 실제로 그런 행동들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도 자행하고 있습니다.

“여성 할례”로 알려진 여성 성기 절제술(FGM : Female Genital Mutilation).

“관습”이라는 미개한 전통에 따라 어린 계집아이들은 녹슨 칼끝에 자신의 몸을 내어놓습니다. 살점을 마구 도려낸 상처는 핏자국과 고름이 범벅된 채 찢어지고 어린 아이들은 그렇게 여러 달, 밤낮으로 신음 소리를 내며 다리를 꽁꽁 싸맨 상태로 자리에 누워 지냅니다.

가족의 한 둘쯤은 이 관습에 의해 이미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여성 할례”라는 이름의 FGM.

FGM은 대개 미개한 환경에서 산파나 마을의 나이 많은 여자에 의해 마취 없이 시행됩니다. 그녀들은 손에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수술 도구로 사용하죠. 그 중에는 녹슨 면도날, 칼, 가위, 깨진 유리 조각, 날카로운 돌 등도 있습니다.

가장 적은 손상이라는 것도 음핵의 덮개를 절제하는 방법인데 그렇게 되면 여자는 평생 성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고 합니다. 가장 심한 방법은 “봉쇄술”로 지퍼처럼 아예 꿰매버리는 것으로 소말리아 여성의 80 퍼센트에게서 행해지고 있는 방법이죠.

그것도 아카시아 나무 가시로 찢어진 살에 구멍을 여러 개 뚫은 다음 희고 질긴 실로 엮어 꿰매는 원시적인 방법입니다.

봉쇄술을 받은 직후에는 쇼크, 세균 감염, 요도나 항문의 손상, 파상풍, 방광염, 패혈증, HIV 감염, B형 간염 등의 증세와 합병증이 올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골반이나 비뇨기계에 만성, 또는 희귀성 염증을 유발시켜 불임이 되기도 하고, 성기 주변에 낭포나 종기가 생기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신경종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 소변을 보기가 어려워지고, 생리가 복부에 고여 생리통, 불감증, 우울증이 생겨 급기야는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여성 할례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

이 책, <사막의 꽃>은 한 여자가 세상을 향해 자신의 경험을 용감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야만적인 전통에 의해 희생되는 숱한 아프리카 소녀들을 구해내기 위한 외침이며 동시에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정신적 할례”에서 벗어나길 희망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와리스 디리...

소말리아어로 “사막의 꽃”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그녀는 소말리아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유목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족의 수가 곧 노동력인 나라에서 그녀는 늘 물을 찾아 뜨거운 사막을 맨발로 걸어 다녀야 했습니다.

실제로 5살에 할례를 받았던 그녀는 그때의 고통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죠.

어느 날,  아버지에게 낙타 다섯 마리를 지참금으로 가지고 온 예순이 넘는 노인에게 시집가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것도 그녀 나이 13살에...

맨발에 문맹인 그녀는 그렇게 소말리아에서의 삶을 버리고 새벽의 길을 향해 떠납니다.

뜨거운 사막 위를 오로지 걷고 또 걸어 대도시에 도착하죠.

여기에 그녀의 삶을 전부 나열하는 것은 아마도 신파에 불과한 일일 겁니다.

와리스 디리(Waris Dirie).

그녀는 소말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슈퍼모델이자 유엔의 특별인권대사입니다. 2004년 "세계 여성의 상-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지금 그녀는 전 세계를 돌며 아프리카 자매들의 고통을 종식시키려는 FGM 철폐운동의 상징이 되어 있습니다.



                  <여성 할례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부족의 어린 소녀들>

아프리카 사람들은 4천 년이 넘도록 여성의 성기를 절제하는 할례라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코란의 가르침이라고 ale고 있지만 사실은 여성을 성적으로 소유하고 싶어 하는 무지하고 이기적인 남자들에 의해 강요되고 장려된 관습일 뿐입니다.

아프리카 남자들은 할례를 받은 아내를 원합니다. 딸을 가진 엄마들은 그 요구에 응하여 딸들에게 어릴 때 할례를 받게 하죠. 그러지 않으면 영영 남편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여자는 불결하고 방탕하여 아내로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는 결혼하지 못한 여자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엄마들의 임무는 딸들에게 가능한 최고의 남편감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서양의 부모가 딸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로 여기듯 딸에게 할례를 받게 하죠.

이렇게 일 년에 2백만, 하루에 6천 명의 소녀들이 “순결한 몸”으로 시집가기 위해 여린 살점들을 난자당합니다. 그건 종교적인 전통이 아니라, 여성의 쾌락을 용납할 수 없는 근엄한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에 근거한 것이죠.

이 불결하고 엽기적인 상상력과 정면 승부하기 위해 그녀는 현재도 전 세계를 누비며 FGM 철폐를 외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모델이 되기 전 그녀의 직업은 가정부였고, 글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맥도널드 주방 청소 담당자에 불과했죠.

그런 그녀가 우연한 기회에 모델이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는 새로운 유목민으로 나오미 캠벨, 신디 크로포드, 클라우디아 쉬퍼, 로렌 허튼과 함께 나란히 런웨이 무대를 서게 됩니다.

베네통, 리바이스, 레블론의 모델로 활동하고, “오일 오브 올레이”라는 미국 화장품 최초의 흑인 여성 모델이 되어 활약합니다. 뮤직 비디오 출연, <엘르>, <얼루어>, <글래머>, <보그> 등 세계적인 패션잡지의 표지 모델이 되어 신화적인 사진작가 리차드 애비든과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유목민 생활로 영양섭취를 충분히 하지 못해 휘어진 O자 다리를 가지고서 말이죠.

그녀의 성공을 눈여겨 본 BBC 방송국은 1995년 <뉴욕의 유목민 A Nomad in New York>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마리 끌레르>라는 잡지의 로라 지브라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실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자신의 할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죠.

그녀는 말합니다.

“할례를 받은 이후 내게 생겼던 건강상의 문제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전 세계 수백만 명의여자들을 괴롭힌다. 무지에서 비롯된 관습 때문에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의 여자들은 고통스러운 일생을 보낸다. 우리 엄마처럼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사막의 여자들을 누가 도울 것인가? 누군가가 말없는 소녀를 대신해서 나서야 했다. 나도 그들과 같은 유목민이었으므로, 그들을 돕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살아오면서 자신이 할례를 받게 된 이유를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그럴싸한 이유를 생각해 낸다면 자신이 당한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고...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유는 찾지 못하고 분노만 더해갔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평생 담아두고만 있던 비밀을 말하기로 했다고...

그 일이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을 전 세계 수많은 어린 여성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수백 명, 수천 명도 아닌, 수백만 명의 소녀들이 할례를 받았고 그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현실. 비록 자신은 이미 상처를 받았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고백한다고...

이 인터뷰는 <여성 할례의 비극>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되어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은 변하죠.

그녀의 꿈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말리아에서는 여성 할례가 금지된 것 아니?"


야만적인 여성 할례.

그러나 이 책은 무지의 관습에서 비롯된 “육체적 할례”뿐만 아니라 동시에 더 오래고 더 집요하기까지 한 “정신적 할례”에 대한 고발이기도 합니다.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 스스로에 의해 야만적으로 도려내지고 비위생적으로 꿰매지는 “정신적 할례”의 폐해에 대한 고발!

육체의 고통도 이렇게 참혹하고 끔찍한데 정신적 할례에 대해 그렇게까지 무감하게 불감으로 살아도 되느냐 경고하는 것 같습니다.

그릇되고 왜곡된 관습의 칼날은 아름다워야 할 인간의 삶을 평생 불구자로 만듭니다.

마치 깨지 못한다면, 부서버리지 못한다며, 고백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몸은, 당신의 정신은 평생 멈추지 않을 붉은 피를 뚝뚝 흘리며 살게 되리라 뼈아픈 경고를 하고 있네요.

어느새 저도 모르게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됩니다.

열심히, 치열하게, 그리고 정당하고 바르게 살아야 할 이유,

그러니까 충분히 있었네요.


당신의 육체는, 당신의 정신은,

오랜 금기와 관습의 할례로 뚝뚝 피를 흘리고 있진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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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책거리2010. 2. 3. 06:17

 <가만히 거닐다> - 전소연


가만히 거닐다

그랬던 적이 언제였나 생각해봤습니다.

“가만히” 무언가를 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솔직히 말해서 제목에서 느껴지는 심한 질투감이 이 책을 손에 잡게 했습니다. 표지에 담긴 사진도 한몫을 했다는 말도 함께 전합니다.

가만히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또 한 사람, 그리고 약간은 몽롱한 느낌을 주는 그런 나른함까지.

오래 쳐다보니 마치 사진을 찍은 사람이 바로 나인 것만 같은 느낌도 듭니다.

책을 보면서 이런 동질감을 대면해야 한다는 건 확실히 당황스러운 일이죠.

1979년생 전소연.

본명보다 티양(Teeyang)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는 여자, 몇 번의 사진전과 그녀 이름의 책 몇 권까지 가지고 있는 엘리스같은 여자 전소연.

그녀가 교토와 오사카를 여행하고 책을 낸 2009년 그 시간에 저 역시도 간사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려 고베로 향하고 있었죠.

그녀처럼 가만가만 여행하지 못했고 발바닥에 불이 난 것처럼 매 시간을 서두르며 최대한 많이 보리라 다짐했던 수다스러운 여행이었습니다.

늘 부르튼 발과 낯선 장소에서의 잠이 달았을리 없었고 5일 동안 밤마다 불면과 피곤과 한판 대결해야하는 고단한 시간들의 연속이었죠.

그래도 아직 선명한 기억이 있습니다.

“Welcome to KANSAI"

그 문구 밑에 동그랗게 담겨있던 간사이 지역의 모습들.

허둥거리던 여행자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던 또렷한 기억.


흔히 도쿄의 번잡함을 벗어나 한적하고 여유로운 여행을 원하는 이들이 선택하는 곳이 바로 간사이지방이라고 합니다. 이국적인 풍경과 전통적인 일본의 모습을 함께 담고 있는 곳, 그러면서 일상의 편안함까지 느낄 수 있는 곳 간사이.

간사이에서 그녀는 여행이 아닌 생의 빈틈을 찾아 차분한 한걸음 한걸음의 산책을 시도합니다. 기억을 걷는 듯한 그녀의 표정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일상처럼 잔잔하고 사소하게 머무는 여행, 그리고 사소한 시선 하나로 일상이 충만해지는 그런 여행을 하고 있는 그녀의 호흡은 깊고 단정했습니다.

낯선 누군가를 보던 시선은 어느새 책과 잘 어울리는 손을 가지고 있던 당신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그렇게 기억 속을 서성이다보면 어느새 울렁증이 멀미처럼 찾아오죠.

속도를 줄인 여행이 주는 긴 여운...

“...... 어쩌면 여행지를 선택하는 일은 운명과도 같다. 시기적절하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곳에 가야지’라는 생각이 스미게 되면 그곳에 가야 하는 운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떻게든 마련하고 싶은 내 생의 빈틈은 ‘산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때로는 ‘여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행은 단순히 낯선 지역으로 가서 다른 일상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공간에 가서 일상을 천천히 다시 만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산책과도 같은 매력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산책을 기록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녀의 기록은 “오전-오후-저녁-밤새벽”의 이름을 달고 일상의 하루를 꼭꼭 집어내 일기를 쓰듯 적어갑니다.

몰래 훔쳐본 누군가의 일기에서 나를 만나는 기분이란,

때론 섬뜩하기도 하고, 때론 다행이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합니다.

그래 적어도 기다림을 잔인하고 버겁게 여기는 게 나 뿐만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

그리고 그 느낌들이 고스란히 풀어진 사진들.

“......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와 당신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까지 나는 당신을 지켜볼 것이고 가끔씩 미소를 보내기도 할 것이다. 당신과 나와의 거리는 가까워지거나 혹은 멀어질 것이다. 그러나 가깝고 먼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당신이 내 뷰파인더 안에 있느냐 없느냐이다. 당신 주변을 서성거리던 나는 호흡을 멈추고 셔터를 누르게 될 것이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불과 몇 초 안에 찾아온다. 그러니 타이밍을 놓치지 말자. 사랑이든 사진이든 타이밍이 문제다..... ”

그녀가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어딘가  엘리스의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

촘촘하지도 않고 오히려 어딘가 엉성해 보이기까지 한 그녀의 사진.

그 비어있는 여백이 그녀의 산책과 아주 많이 닮아 있어 보는 내내 따뜻했습니다.

뷰파인더로 세상을 만나는 일은.

늘 손끝을 떨리게 만드는 흥분이며 분주함입니다.

그 작은 뷰파인더 안에서 찍는 사람의 눈은 그러나 더 많은 걸 보고 더 많은 걸 알아챕니다. 그리고 기록을 다짐하죠.

그녀가 찍은 기록들을 보면서 그 밑에 하나하나 나의 기록들을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요. 사진.

“찰칵” 소리와 함께 그대로 고정되는 한 세계.

그러나 찍힘으로해서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또 한 세계.

사진을 찍으면서 저는 항상 방금 전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를 생각합니다.

그 둘 사이의 간극은 짧지만 이젠 점점 더 차이가 생기고 멀어질 세상.


여행은...

그러니까 어쩌면 보기 위해 떠나는 것도, 비우기 위해 떠나는 것도, 그래서 다시 채우기 위해 떠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계속 사는 거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짧게 또는 길게 그것도 아니라면 기약 없이 살아가는 것.

기다림을 지우기 위해 나 자신을 조금씩 잃어버리면서 다시 또 살아가는 것.

어디에도 하염없이 나를 기다릴 마음 한 조각 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여행.

오랜 불면이 시작되면 저는 습관처럼 여행을 꿈꾸게 됩니다.

그 꿈이 만든 많은 생각들이 또 잠을 엉키게 하네요.

솔직히 한동안 낯선 여행지를 홀로 방황하는 독서가가 되는 건 아닐까 싶어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허덕이며 관광지를 읽어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죠.

그녀가 혹은 그가 다녀온 곳을 저는 꿈꾸고 싶지 않습니다.

빈틈을 향한 산책같은 여행도 그 끝은 있을테죠.

내 불면의 밤들을 그들이 차곡차곡 다독이며 위로합니다.

이제 조만간 불면의 산책도 제자리로 돌아와 잠을 청하게 되지 않을까요?

봄이 오면,

나른한 햇빛 속으로 졸음같은 산책을 떠나야겠습니다.

아마도 발걸음도 꾸벅꾸벅 졸게 되지 않을까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1. 18. 06:09
<너는 모른다> - 정이현

너는 모른다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저는 이렇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끔찍한 공포소설이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혼자 생각해봤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실존적인 의미인지, 가치의 의미인지, 혹은 구성원 개개인이 가지는 익명성의 비밀을 완벽하게 보장해주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들의 집합체인지를...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로 대한민국 칙릿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정이현이 2년 만에 내놓은 신작입니다.

그녀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는 드라마에 이어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지금 초연 중에 있을 만큼 성공가도를 열심히 달리고 있죠.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치밀하면서도 냉소적인 소설을 썼다는 게...

2008년 8월부터 2009년 6월까지 근 1년간 인터넷교보문고에 연재했던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 그 모르는 타인들의 삶 속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모든 걸 알게 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책을 읽는 바로 “당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읽는 이의 개입을 전적으로 그리고 지배적으로 선동합니다.

이제 선택만이 남은 셈이네요.

공모자가 되든, 은폐자가 되든, 혹은 폭로자가 되든 말입니다.

  

2008년 2월, 서초구 방배동 서래마을의 고급빌라.

중국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는 김상호와 화교 출신 부인 진옥영, 초등학교 4학년인 바이올린 영재 딸 김유지. 그리고 김상호와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큰 딸 은성과 둘째 아들 혜성.

타인보다 더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가족”이란 테두리.

전날 진옥영은 대전 친정에 다녀오겠다며 의붓아들 혜성에게 유지의 바이올린 레슨과 강습비를 부탁하죠. 아버지 김상호는 사업상 만날 사람이 있다며 혜성에게 집과 유지를 맡기고 일요일 낮부터 집을 비웁니다.

집에 있던 혜성은 또 다시 듣게 된 누나 은성의 자해 소식에 그녀의 오피스텔을 찾아가 함께 병원 응급실로 향하죠.

이렇게 가족들 모두가 집을 비운 일요일 오후,

딸 유지는 바이올린 과외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레슨을 취소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혼자서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지 않죠.

유지의 실종을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은 뒤늦게 돌아온 아버지 김상호였습니다.

뒤이어 집으로 돌아온 아들 혜성.

순간, 그들의 얼굴에 당혹감과 깊은 절망감이 엄습하죠.

유지는 도대체 어디로 실종된 걸까요?

유지의 실종은 스스로 선택한 가출이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목적을 위한 유괴였을까요?

유지가 실종되던 시간에 가족들 모두는 또 어디에 있었던걸까요?

잠시 이야기의 시선이 나에게 멈춰지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이들을 지금까지 지켜본 사람이 바로 당신 아니냐며 노골적으로 묻는 것 같은 시선.

순간 내가 유지를 데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어쩔 수 없이 주위를 확인하게 됩니다.


막내딸이 실종됐던 바로 그 순간 그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이제 가족들의 숨겨진 알리바이가 하나씩 들춰집니다.

화교 출신 엄마는 그 시간 대전 친정이 아닌 대만에서 그녀의 오랜 연인을 왕명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예감에 서둘러 서울로 돌아온 진옥영은 딸의 실종을 알게 된 후 친정 식구들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녀가 대전에서 그들과 있었노라고 말해달라고...

응급실에서 누나의 치료가 끝난 후 혜성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자 친구 다은을 만납니다. 사건이 터지고 며칠 후 혜성 역시 친구 다은에게 부탁을 하죠. 그날 늦게까지 둘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해달라고...

의대에 합격했지만 등록만 하고 학교를 나가지 않던 혜성은 실제로 그 시간에 길거리를 배회하다 주차된 차에 불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습관성 방화는 늘 같은 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뒤늦게 여동생의 실종 소식을 들은 큰 딸 은성은 오래전 X-boy friend와 계획했던 엄청난 장난(?)을 떠올립니다.

부자 아버지에게 돈을 뺐기 위해 여동생을 납치한다는 계획...

그리고 얼마 전 급히 돈이 필요하다며 전화를 해온  X-boy friend의 통화를 떠올리며 그가 여동생 유지를 납치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수사를 위해 김상호와 함께 온 형사 문영광.

가족들 모두는 그가 경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립형사였죠. 김상호는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철저히 숨긴 체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하며 문형사를 가족들에게 소개합니다.

자신의 아이가 사라졌는데 경찰이 아닌 고작 사립 형사라니...

이 집안 어쩐지 서로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히 있긴 한 것 같네요.

김상호의 직업은,

그러니까 불법 장기 밀매 브로커였습니다. 한국에서 의뢰가 있을 때마다 “신선하고 건강하게 살아있는(?)” 장기를 중국에서 공수해 넘기는 일을 하고 있었죠. 가족들은 김상호가 어떤 무역업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리고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는 집 안에 상당한 돈을 가져다 주는 착실한 가장이었으니까요.

그 착실한 가장이 지금 금쪽같은 딸의 실종을 경찰에 알리지 못하고 혼자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가족 모두는 생각합니다.

유지의 실종은 자신 때문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습니다.

갑갑하고 막막하고 미련한 시간들이 그들 곁을 부지런히 지나가고만 있죠.


작가 정이현은 말합니다.

" ...... <너는 모른다>에서 빠진 목적어는 바로 ”나“다. 한 가족이라도 서로 굳게 마음을 닫고 있지만 어느 날 폭탄이 떨어진다면 마음이 밖을 향하게 되는 미묘하고 작은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 ”

그녀는 가족이라는 상징적인 단위 속에 느슨하게 묶여있는 개인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 ...... 흔히 가족이라고 하면 끝까지 서로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존재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가족이 그렇지 않잖아요. 다 드러내는 것 같으면서도 감추고, 동시에 무언가 숨기는 것 같지만 진심을 내보이기도 하는 개인들을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관찰하려고 했습니다...... "

작가 정이현의 이 말 때문에 저는 이 소설을 공포소설로 분류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소설은 결말까지 꼭 읽어내야 하는 소설을 아닙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약간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읽는 동안 “가족”이라는 이름의 “타인”때문에 극도로 선명해지는 두려움을 대면하는 일은 분명 버거운 일이 될 것입니다.

다중의 화자들에 의해 꾸역꾸역 고백되는 이야기들은 때로는 충격적이기도 때로는 비상식적이기도 때로는 넌더리가 나기까지도 합니다.

처음엔 제도권 안에 포함되지 못하는 소수자를 대변하는 소설인가 생각했다가, 다음엔 우리사회에 암암리에 퍼져있는 불법의 사업과 불륜에 대한 고발인가 생각했다가, 또 다시 현대인의 부서지고 파괴된 주체성에 대한 애도인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사건 아래에 가라앉아 있는 또 다른 문제, 도시인들의 부스러진 일상을 그리려 했다는데 이 말 또한 도통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네요.

단지 책 속의 한 마디 말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유지의 실종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들어온 진옥영의 오랜 연인 밍은 유지를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스스로 위험을 자처합니다.

마지막 결정을 내린 그의 입에서 나온 말,

"어차피 나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정말 무엇일까요?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긴 마음 끝이 이제는 많이 어지럽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