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4. 27. 05:49

 

<해마>

 

일시 : 2012.03.31. ~2012.06.03.

장소 : 소극장 모시는 사람들

극본 : 김인경

연출 : 김정숙

출연 : 윤상호, 정종후, 오현석, 차명옥 (어르신)

        윤영걸, 이재훤, 박호산, 고훈목 (자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 연극 한 편을 봤다.

hippocampus.

인간의 두개골 속에 보호되어 있고 중추 신경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뇌의 기관 해마.

해마는 온 몸의 신경의 지배하는 부분으로 기억 중추의 핵심이다.

인간의 기억은 극 속 어르신의 대사처럼 "부조리"하다.

일방적인 왜곡과 오류를 의도적으로 반복할 수 있다.

예전에 감동 깊게 본 연극 <염쟁이 유씨>의 김인경 작가의 또 다른 작품 <해마>

대학로의 장기 공연 작품이었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 작전>의 김정숙 연출.

등장인물은 어르신과 자네 두 사람뿐이다.

무대로 심지어 조금은 조악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연극.

꽤 흥미롭고 재미있다.

만 원의 관람료가 퍽이나 미안해질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성실하고 섬세하다.

총 4팀이 페어를 이뤄 열린가격으로 3월 말부터 공연 중이다.

연극판에서 거의 20년을 넘긴 배우들의 연기와 해석을 찬찬히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솔솔할 것 같다.

게다가 재관람시는 50% 할인이란...

솔직히 이런 가격으로 극단이 운영 될까 싶다.

vateran 해마(윤영걸, 윤상호), analyze 해마(이재훤, 차명옥), detail 해마(오현석, 박호산), active 해마 (정종훈, 고훈목)

모든 페어를 다 본 게 아니라 타이틀의 의미를 이해할 순 없지만

오현석, 박호산 페어의 해마는 확실히 섬세하고 팽팽했다.

예상된 반전과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주는 묘미도 확실히 재미있다.

배우들의 표정 변화를 쫒으며 극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도 꽤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2인극의 묘미의 완성은

두 배우간에 서로 주고 받는 모든 연극적 요소와 더불어 관객의 집중도에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해마>의 완성도는 상당하다.

기억은 부실하고 부조리하다.

그래서 왜곡을 일삼기도 하고 타인의 기억을 자기화 시키기도,

때로는 의도된 기억상실을 불러오기도 한다.

잊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나눠준 팜플렛에서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아버지의 극단적인 마지막 선택에 대한 이야기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게 봤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갈망 이야기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이 안스럽다.

기억을 있든, 없든

자네는 마침내 살아 남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 연극은 여지를 남기며 우리 뇌의 해마에 더 많이 혹은 더 오래 각인됐으리라.

물론 완전한 기억은 없다.

모든 기억은 결국은 왜곡된다.

그게 기억의 의무이자 책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2. 3. 05:49
 
<염쟁이 유씨>

극 본 : 김인경
연 출 : 위성신, 박정석
출 연 : 유순웅, 임형택, 정석용
일 시 : 2010.11.10 ~ open run
장 소 : 대학로 이랑씨어터


2004년 청주에서 초연돼서 연극계에 무명의 유순웅을 알린 작품이다.
3년 전쯤인가 대학로에 봤던 연극을 정말 오랫만에 다시 관람했다.
1인 모노극.
원만한 내공과 집중력이 없다면 90분의 시간을 꽉 채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테다.
7년 동안 "유순웅"이란 배우에 의해 공연된 이 작품이
이번엔 임형택, 정석용까지 가세해 1년 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캐스팅 공지가 안 돼서 공연장을 찾아가면서도 누굴까 궁금했는데
초반부는 아무래도 유순웅 배우가 이끄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다행이었다.
유순웅 배우의 염쟁애 유씨를 꼭 다시 보고 싶었던지라...



망자를 염하고 입관하는 그 모든 과정들,
엄숙하고 낯설고 그리고 조금은 두렵고 아득한 절차들이
이 연극 속에서는 일상처럼 그대로 녹아있다.
삶과 죽음은 서로 가깝다지만 산 자들에겐 여전히 멀게만 여겨지는 죽음.
그래서 엄숙하고 안타깝다.
낯선 장례 용어들.
시신의 팔다리를 주물러 펴주는 "수시"부터
시신을 누위는 "시상판"과 숨물을 빼내는 "칠성판",
시신을 몸을 씻기는 "향탕수", 시신의 입에 구슬이나 불린 쌀을 넣는 "반합"
시신에 수의를 입히는 "소렴"과 소렴이 끝난 시신을 대렴포에 감싸서 입관을 하는 "대렴",
이 모든 습염(염습)의 장의절차은 낯선 이국으로의 여행보다 오히려 더 생경하다.
과장되고, 부장되고 사장되고 회장되도 결국은 송장으로 마감하는 게 세상이라고 말하는 염쟁이.
그가 말한다.
사람들이 다 잘 살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냐고.
다 잘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7년 내공의 유순웅 배우는 능수능란한 광대가 되어
걸판진 모노극 한판을 90분 동안
때론 장엄하게, 때론 절절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놀아난다.
배우에 의한 일방적인 모노극이 아니라
관객 전체를 아울려 문상객으로 만드는 한판 어울림이기도 하다.
전국을 유랑한 7년의 시간동안
대본 수정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이 극의 탄탄함을 알게 한다.
그리고 배우의 손놀림 하나까지도 정성스럽다. 
특히나 소렴이 끝난 망자의 몸을 대렴포로 감싸는 모습은
흡사 종교의례를 보는 듯 성스럽기까지 하다.
1인 15역의 변화무쌍함은
동일인이면서 타인을 보기에 충분했으며
그 모든 모습 속에 하나의 인간을 들여다 보게 한다.
이 연극이 보여주는 건,
살고 죽는 게 아니라 "삶" 그 자체였음을 거듭 깨닫게 되면서...
아버지이자 아들이자 조폭이자 귀신이자 장사꾼 염장이자 치매 아비의 관을 앞에 둔 자식들.
이 모든 아귀다툼스러운 모습이 다 나였으며, 내 삶의 축소판이었다.
문득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그만 창피해져버렸다.



...... 죽어서 땅에만 묻히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묻히지 못하면, 그건 헛 죽는 거여.
또 살아남은 사람들도 한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거야
가슴 속에 안아 담느냐, 그냥 구경거리로 흘리느냐,
억울한 죽음을 앞에 두고 구경꾼처럼 보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자기 죽음도 구경거리가 되고 마는 거네 ......
염쟁이 유씨는 말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남아있는 삶을 좀 더 의미있고 뜻깊게 살겠다는 다른 표현이라고.
아비의 시신을 첫 염으로 시작해서
아들의 시신을 마지막 염으로 마무리하는 염쟁이 유씨. 
깨끗이 씻겨 입관을 마친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죽는 다는 건 말이다. 생명이 끝나는 거지, 인연이 끝나는 게 아니거든"
산다는 건,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는 거란다.
그러니 죽는 것 무서워들 하지 말라고.
죽는 것 보다 잘 사는 게 더 힘들고 어려운 법이라고...

"편히들 가시게~~~"
아들의 입관에 함께 해준 문상객에게 남긴 유씨의 마지막 말이
꼭 이 다음에 생을 마감할 때 그렇게들 하라는 당부같아 가슴이 뻐근해진다.
편안히 갈 수 있게 잘 살라고...

나는 지금 무엇에 정성을 쏟고 있는가?
내가 내게 묻는다.
진심으로 편안하게 가고 싶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