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09. 5. 21. 23:38


 


늙어
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지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 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지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지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일 것이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혹시 얼마 전에 제가 이곳에 소개했던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를 기억하시나요? 그 글을 올리면서 기회가 되면 그 시인의 또 다른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도 소개해드리겠다고 했었는데...

마침 오늘이 부부의 날이라 이 시를  올립니다.

전문은 이것보다 조금 더 긴데 제가 일부 삭제하고 올렸습니다.(다분히 의도적으로요..)

함께 늙어 가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임자, 우리 괜찮았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부부의 삶은 정말 찬란했다 말할 수 있겠죠.

황혼은 그래서 세월과 함께 아름다워 지는 모양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는지...
당신 옆에 그 사람과 함께.. 

평생을 손 잡고 함께 갈 사람,
그 사람이 당신의 평온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