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6. 11. 3. 08:03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같은 세상.

비겁하지만 나는 추억 속으로 숨기로 했다.

지난 여행을 복기(復記)하다보면 적어도 웃을 수 있는 순간과 만날 수 있으니까.

사실 이 복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싶다.

하지만 끝이 보인다.

탐독(耽讀)도, 복기(復記)도 끝장나버리면...

아무래도 제 3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물과 나무 그리고 길.

바빈 쿡은 걷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햇빛과 바람길을 따라 수시로 달라지는 물빛.

그걸 사진으로 담는다는건,

그래 어리석은 짓이다.

게다가 이렇게 작렬하는 태양과 정면승부를 해야한다면 완패는 뻔한 일이다.

하지만 괜찮다.

머릿속에 선명히 찍어놨으니까.

 

 

물 속에 먼저 들어간 여자는 남자를 향해 빨리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망설이나 싶던 남자가 이내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한다.

물에 들어감고 동시에 남자의 입에선 탄성이 흘러나온다.

'Lovely!"

순간 발길이 우뚝 멈췄다.

세상에... loverly라니.

남자가 내뱉은 lovely라는 단어 속엔

러블리한 날씨, 러블리한 애인, 러블리한 바다, 러블리한 상황 등 수많은 러블리가 담겨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런 울렁하는 느낌, 예전에도 한 번 느낀 적 있었다.

2015년 2월 스페인 마드리드.

혼자 코르도바를 가기 위해 아토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남자의 핸드폰이 울렸고 남자는 전화를 받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Sweety!"

그때도 지금처럼 순간정지가 됐었다.

Loverly와 Sweety.

단어가 주는 말랑말랑한 느낌때문이 아닌 두 남자의 어감이 지금도 선명하다.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

그래서 마치 우주에 남겨인 유일한 단어처럼 생각됐다.

Lovely가 불러낸 Sweety의 기억.

 

타인의 시선이 오래 머무는게 싫었을텐데

두 연인은 오히려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들어오란다.

아니요, 당신들을 보는 걸로 나조차도 충분히 loverly 한걸요.

그들에게 질세라 나도 커다랗게 손을 흔들어줬다.

두 연인과 나.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함께 했던 짧은 추억.

 

 

되돌아오는길,

꼬마숙녀의 뒷모습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소녀는그러니까 지금 삐져있는 중이고 그걸 표현하기 위해 최대한 애쓰는 중이었다.

이건 정말 lovely + sweety다.

소녀의 삐짐은 곧이어 쫒아온 가족에 의해 금방 풀어졌지만 솔직히 난 많이 아쉬웠다.

정말 정말 loverly한 모습이었거든...

 

바빈 쿡은 이렇게 온통 lovely 천지였다.

그렇구나.

그해서 이렇게 선명하구나.

Lovely Babin Kuk.

지금도 바빈 쿡을 떠올리면

난 여전히 심쿵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