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6. 8. 10. 08:16

납골당을 나오니 머리 위 구름빛이 범상치 않다.

그 흔한 지나가는 소나기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굵은 빗줄기가 인정사정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열주광장을 지나 황제 알현실로 뛰어들어갔다.

궁전 지하도 있었는데 굳이 천장이 뚫린 황제 알현실로 들어간건

사람이 몇 명 없어서기도 했지만

거기서 열주광장 바닥으로 쏟아지는 비를 내려다보고 싶었다.

 

 

후두두둑.

호기롭게 내리는 빗줄기는 유쾌했고,

비를 피해 건물 안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동작은 경쾌했다.

반복되는 유쾌와 경쾌의 변주곡.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기습같은 소나기는 멈출 줄 모르고 점점 굵어어더니 

급기야 기세등등한 바람까지 가세한다.

그때 깨달았다.

황제 알현실로 사람들이 피하지 않은 이유를...

머리 위 뚫려있는 천장과 앞뒤로 연결되는 통로에서 인정사정없이 비바람이 들아치고

나는 점점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간다.

그렇게 40여분이 지났을까?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재빨리 궁전 지하로 뛰어 내려갔다.

 

 

비를 피해 여기저기 피난민처럼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냥 위에 계속 있을걸 후회가 됐다.

마침 건너편 가계에서 일회용 비닐 우비를 팔길래 30kn에 사서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왔다.

(카메라만 아니면 그냥 비 속을 걸어다녔을텐데...)

심난은 했지만 덕분에 사람들로 북적이던 골목길이 뻥하게 뚫렸다.

기회다 싶어 서둘러 북문(北門)인 황금의 문으로 향했다.
그레고리우스 동상을 독차지 하기 위해!  

 

 

 

예상은 적중했다!

스플리트 인증샷 장소로 유명한 그레고리우스 동상 앞이 고요하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현지인 몇 몇 뿐.)

혼자서 그 큰 동상의 앞태, 뒷태, 좌우 옆태에 손끝, 발끝까지 두루두루 꼼꼼히 봤다.

이 동상 역시 주피터 동상처럼 검은색에 손가락이 길어서 좀비기 떠올랐지만

풍성한 옷 덕분에 호러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레고리우스는 닌이라는 지역의 주교였는데

바티칸 시국에 라틴어가 아닌 크로아티아어로 미사를 드리게 해 달라고 청원을 올린 인물이다.

(그때까지 모든 미사는 무조건 라틴어로만 할 수 있었단다)  

이 청동상은 크로아티아의 위대한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차의 작품이고

높이는 무려 4.5m에 달한다.

동상의 왼쪽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때문에 저렇게 반질반질하게 닳아버렸다.

작년까지만해도 보수중이라 발가락만 빼고 가림막으로 막아놨었는데

지금은 보수가 끝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난 왜 발가락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었던거니???)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젖은 옷때문에 몸은 점점 추워지고...

계속 버티다가는 내일 일정까지 엉망이 될 것 같아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천천히 비에 젖은 골목골목을 돌아 은의 문을 나서는데

공갈빵같기만 했던 스플리트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 너 때문이로구나.

드라미틱한 감정의 변화.

아무래도 옷을 챙겨입고 다시 나오게 될 것 같다.

 

다시 시작되려는 스플리트 여행.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