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12. 3. 08:31

나홀로 광장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는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광장에 대한 포스팅은 잠시 미뤄두고

오늘은 분수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나보나 광장에는 3개의 분수가 있는데 그 중 두 개를 베르니니가 만들었다.

먼저 가장 유명한 건,

베르니니가 1651년에 만든 피우미 분수(Fontana dei Quattro Fiumi)다.

이 분수는 "4대강 분수"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17m의 오벨리스크 하단에

다뉴브 강(유럽), 갠지스 강(아시아), 나일 강(아프리카), 라프라타나 강(남아메리카)을 상징하는 신들이 조각되어 있다.

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놀라게도(?) 이집트에서 가져온게 아니라

도미티아누스 시절 로마에서 직접 만든 것.

 

 

4대 강 분수는 공교롭게도 베르니니와 라이벌 관계였던 보로미니가 만든 성당 앞에 설치되어 있다.

이 두 작품 사이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보로미니가 만든 건물이 너무 흉칙했던 베르니니는

4대강의 신(神) 중 2 명의 신을 성당을 외면하게 조각했단다.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진실은... 베르니니의 분수가 성당보다 2년 먼저 만들어졌으니 근거없는 가십일 뿐 ^^

4대강의 신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당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고 있는 신이 남아메리카를 상징하는 라프라타나 강의 신이고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눈을 가리고있는 신은 아프라카를 상징하는 나일 강의 신이다.

손에 커다란 노를 들고 있는 신은 아시아를 상징하는 겐지즈 강의 신이고

뭔가를 찬양하듯 두 손을 살짝 들어올린 신이 유럽을 상징하는 다뉴브 강이다.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역광의 습격이 험난하긴 했지만

바로크조각의 진수 앞에서 발걸음이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더다.

심지어 바닥에 주저앉아 올려다보기까지 했다.

대리석에 켜켜이 쌓여있는 세월의 흔적이

이방인의 눈엔 마냥 신비롭고 아릅다웠다.

돌과 물, 그리고 햇빛이 만들어내는 음영과 그늘이 오묘했다.

하루종일 이 분수만 봐야 한대도 기꺼이 그러겠노라 대답할 것 같다.

분수 주변으로 총총히 떨어지는 무지개들, 무지개들.

 

 

4대강 분수에서 광장 남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자코모 델라 포르타가 제작한 모로 분수(Fontana dei Moro)다.

이 분수는 "무어인의 분수"라고 물리는데

분수 한가운데 돌고래와 싸우는 무어인은 1653년 4대 강 분수를 만든 베르니니가 제작했다.

아무래도 자코모 델라 포르타보다 교황의 비호를 받던 베르니니가 훨신 더 유명하다보니

그냥 이 분수를 베르니니 작이라고 말하긴 하는데

실상은 두 사람이 시간차를 두고 완성시킨 분수다.

무어인 둘레에는 4 명의 반인반어 트라이톤이 바깥쪽을 향해서 앉아있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건 모두 모조품, 진품은 보르게세 미술관에 전시중이다)

트라이톤의 입에서 악기가 하나씩 물려있고

그 사이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졸.졸.졸.

무어인의 정면 모습은 제대로 된 역광의 역습 ^^

분수를 받치고 있는 분홍빛 대리석 수반이 너무 에뼈서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리고 광장 북쪽에 자코모 델라 포르타가 1574년에 만든 또 다른 분수가 있다.

바로 넵투누스의 분수(Fontana di Nettuno)

넵투누스는 바다의 신 "넵튠"의 그리스어다.

자코모 델라 포르타는 미켈란젤로에게 사사받은 조각가로

미켈란젤로 사후 그의 작품을 마무리한 작가로 유명한다.

넵튠이 거대한 문어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라는데

역동성은 인정하겠는데... 사투는... 좀...

이곳은 무어인의 분수와 반대로 뒷태가 역광의 역습!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분수는 미완으로 남겨져 "땜쟁이의 분수"라는 별칭을 갖게 됐따.

 

로마는,

확실히 분수의 도시다.

과거에는 로마의 크고 작은 분수를 모두 합치면 2,000 개를 훌쩍 뛰어 넘었다고.

아주 오래전에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단다.

한 나라의 여왕이 로마를 방문했는데 거리 거리마다 분수가 춤을 추고 있었다.

로마시민들이 나를 이렇게까지 열렬하게 환영해주는구나 싶어 머무는 동안 내내 흐뭇해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분수에서 나오는 물이 바로 로마시민들의 식수원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많이 보일 수 밖에...

여왕이 진실을 알았다면 꽤 민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수백 개가 넘었던 분수가 지금은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어찌됐든 로마는 여전히 "분수의 도시"다.

우리나라도 그 많던 우물들을 아직까지 남겨뒀다면 꽤 근사한 유물이 됐을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다.

다 없애버리고 현대화로 달려나가는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남겨둬도 좋은 것들에는 인내심을 보여도 좋을텐데...

그게 나는 참 부럽더다.

 

우물도, 펌프도,

그리고 그것들 옆에 항상 함께 있던 평상까지도...

그리움만 무럭무럭 자란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