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9. 1. 09:01

피렌체에서 12시 38분에 출발한 기차는

오후 2시 10분에 로마 테르미니역에 도착했다.

여행을 준비할때부터 로마의 극악스런 소매치기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고

그 중에서도 테르미니역이 가장 위험하다고 해서 조금 겁이 나긴 했다.

그래도 다행히 숙소가 테르미니역과 가까워 그다지 헤매지 않고 San Marco hotel를 찾았다.

조카와 동생을 이끌고 들어가 호텔 프런트 여직원에게 바우처와 여권을 내밀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여직원이 예약자 명단을 한참 확인하더니 연방 미안하단다.

순간 느낌이 오더라. 별로 좋지 않은 느낌이...

어쩐지 이번 여행은 숙소와 교통편이 매번 수월했다 싶었는데

결국 마지막 여행지에서 호텔 오버 부킹과 맞닥뜨렸다.

다행히 호텔측에서 연계된 근처 동급 호텔로 예약을 해놔서 문제는 간단히 해결이 됐다.

Hotel Galles라는 곳이었는데 결론적으론 괜찮은 곳이었다.

살짝 고풍스럽고 아늑한 호텔이었고 무엇보다 프런트에 계신 할아버지가 아주 친절했다.

어떻하냐면서 이 호텔에 있는 동안 불편한게 있으면 말하란다.

매번 얼굴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면서 오늘은 어디를 갈거냐며 물어보셨다.

낯선 사람에게 대체적으로 무심한 나지만 할아버지의 관심과 친절이 싫지 않더라.

(아무래도 꼬맹이와 두 명의 여자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숙소에 집을 풀고 나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테르미니역에서 84유로를 내고 로마패스(Roma Pass) 3 매를 구입한 일이다.

로마 패스만 있으면 2박 3일 동안 로마의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박물관과 유적지 두 곳도 로마 페스로 입장이 가능하고

세번째 부터는 학생이나 단체 요금으로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할 때도 개인이 아닌 단체관람 라인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대서 아무 고민없이 구입했다.

그런데 현실은...

대중교통만 몇 번 이용했을뿐 박물관과 유적지는 단 한 곳도 이용하지 못했다.

시간 안배도 제대로 못했고 

어찌어찌 도착하면 closing time에 걸려 입장도 못했다.

84유로면 여행자에겐 엄청난 금액인데...

 

 

테르미니역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베네치아 광장에 있는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로마인들은 이 통일기념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주변 건물들과 이질적인 구조와 색감이라 타자기, 절단된 웨딩케익이라고 놀리듯 부르기도 한다고.

하긴 이 건물이 로마의 황갈색의 로마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때 철거론도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단다.

아마도 고대 로마의 중심지인 포로 로마노 일부를 대범하게(?) 가리는 황당함도 못마땅했을테고!

하지만 난 이 건물이 꼭 보고 싶었다.

그 이유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왕 엠마누엘레 2세의 기마상 때문이었다..

건물 아래에서 올라다보면 사실 그 크기가 전혀 가늠이 안되는데

기마상이 완성된 후 청동 말의 뱃속에서 관계자들이 파티를 열었단다.

 

 

로마에 대한 책을 읽다가 그 현장을 찍은 사진을 봤는데

술잔이 놓인 기다란 탁자 주변에 19~20명 정도의 성인 남성이 한 곳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책을 보면서도 에이, 설마... 조작 아니야... 그랬더랬는데...

(그 순간 현대의 로마가 고대의 로마만큼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거대한 위엄보다는 장난감같은 귀엽성이 느껴졌다.

거대한 기마상의 아무렇지 않게 집어 삼킬만큼 통일기념관의 크기가 큰 게 원이이었겠지만 말이다.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로마 패스를 사용할 수 있겠구나 좋아했는데 입장시간이 종료돼 결국 겉에서만 둘러봤다.

가장 신성한 곳인 베스타 신전과

농업의 신을 모시던 샤투르누스 신전,

시저가 부루투스에게 암상당한 원로원을 눈 앞에 있는데 들어갈 수 없다니 너무 서운했다.

일정이 짧아 다시 오지도 못하는데...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는 여행객들이 불같은 질투의 눈길만 퍼부었다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은 르네상스시대의 최대 피해자다.

그 당시 엄청난 권력을 가졌던 교황과 귀족들은

이곳의 석재들을 무분별하게 가져다가 자신들의 저택을 지었다.

아마도 그들의 눈에는 고대 로마의 중심지가 거대한 채석장으로 보였나보다.

권력이란 이름으로 파헤쳐지고 파괴되는 역사의 흔적 앞에 코끝이 찡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길은 역시 로마로 통하더라.

 

 

포로 로마노 주변의 아름다운 길들.

포로 로마노에 들어가지 못한 서운한 마음이

이 길들을 천천히 걷는 동안 말끔히 지워졌다.

저물어가는 햇빛과 촘촘한 돌길.

따지고 보면 그저 길일 뿐인데

이 길 앞에만 서면 세상에 부러울게 전혀 없다.

 

길이 없다면 떠날 이유 역시 없다.

그리하여

여행은 항상 내겐 "길"이다.

 

포로 로마노.

과거와 연결과 로마의 현주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