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3. 3. 06:46

마드리드에서의 첫날.

나는 가장 먼저 세 명의 남자를 만나기로 했고

고맙게도 세 명은 한 곳에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 센터.

세 명의 남자들은...

피카소, 후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그림을 잘 모르긴 하지만 이 화가들의 진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건

문외한의 가슴을 설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 센터.

18세기 만들어진 산 카를로스 병원을 개조한 이 미술관은

건물의 외형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투명 엘리베이터를 건물 바깥으로 빼낸 모습은 

처음엔 이질적이었는데 자꾸 바라보면 묘하게 조화감이 느껴졌다.

(이 미술관을 찾아가느라 얼마나 헤매던지...)

도착한 시간이 마침 일요일 오후여서

무료입장으로 소피아 미술관과 프라도 미술관을 관람했다.



스페인 땅이 아니고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피카소의 <게르니카>.

이 땅의 역사를 알고 작품 앞에 서니 장면 하나 하나가 전부 울음이고 통곡이다.

고백컨데... 아무것도 모르고 이 작품을 봤더라면

나는 분명 재미있는 캐리커쳐쯤으로 치부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시각이 아닌 청각이 반응하는 작품이라고...

그게 어떤 의미있지 그림 앞에 서니 이해가 됐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작품이라서 위대한게 아니라

그속에 영문도 모르고 하루아침에 폭격을 당해야 했던 소도시 게르티카의 주민들이

히틀러와 프랑코 장군이 만든 스페인의 비극의 역사가,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피카소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 담겨있어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가로 7.8m , 높이 3.5m의 대작이라 피카소가 이 작품을 그릴때도 사다리를 타고 막대에 붓을 메달아 작업했단다.

그리고 그 과정을 그의 연인이엇던 사진가 도라 마르카가 사진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피카소에게서 시작된건 아니고

세계적인 사진작가 로버트 파커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들어졌는데.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에서 아이의 시체를 붙들고 울부짖는 여인의 사진이 그것이다.

그림이 완성된 후 당시 점령군인 독일 장교가 피카소에게 물었다

"이걸 당신이 만들었나요?"

피카소는 대답한다.

"아니요! 이건 당신들이 만들었소!"

193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작품 전시가 끝난후 프랑코 군부 독재에 항거하는 의미로 

이 작품의 고국행을 피카소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래서 <게르니카>는 스페인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회복되면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한다는 조건으로

뉴욕 근대 미술관에 무기한 대여된다.

1975년 독재자 프랑코가 사망하고 1981년 스페인 내전이 종결된후

피카소의 바람대로 <게르니카>는 스페인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작품은 단 한 점도 소장하지 않는다는 프라도 미술관의 전통때문에 

프라도 미술관 별관인 "카손 델 부엔 레티로"미술관에 전시된다.

그러다 1992년 보관상의 문제로 현재의 왕립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전됐고

이전과 동시에 외부 출입을 금지하는 법안이 스페인 의회에 통과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오직 스페인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 됐다. 

스페인의 뼈아픈 근대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작품 <게르니카>

또 다시 가슴 끝이 묵직해온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피카소전이 있을때도 일부러 찾아갔었는데

그때 본 작품들과는 배교할 수 없는 작품들을 실제로 보는 기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짜릿하고 흥분됐다.

개인적으론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사이에 교착점 같은 화가가 후안 미로인 것 같다.

이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히 어떤 연쇄적인 영향을 순차적으로 내려가지 않았나 싶다.

사물의 형태를 파괴하는 건 세 화가 모두 같지만

피카소에겐 기괴한 천진함이, 

후안 미로에게는 온화함이, 

살바도르 달리에겐 좋은 의미의 광기와 분열이 느껴졌다.

이 세 명의 남자를 한자리에 모아놓을 생각...

과연 누가 했을까?

그 최소 발상자에게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다.

게르니카를 제외하고는 사진촬영이 허용돼서

아쉬운 마음에 핸드폰으로 사진 몇 장을 찍어 간직했다.



벽의 배색과 액자, 그리고 그림의 색감들이

어쩌면 그렇게 서로를 잘 품고 있던지...

게다가 그림을 향해 바로 떨어지는 조명없어 원작이 갖는 순수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둘러보는 내내 우리나라 미술관이 떠올라 많이 부러웠다.

우리나라 미술관을 가면 

특별전이나 기획전시일수록

작품이 하나의 데코레이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두꺼운 화장과 조명으로 진짜 얼굴을 다 가려버린 느낌.


화장한 일요일 오후,

세 명의 남자가 아낌없이 드러낸 말간 민낮은 

그 어떤 청순한 여인의 모습보다 더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그렇게 내 사랑은 세 명의 남자들과 함께 시작됐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