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10. 12. 07:57

<번지점프를 하다>

일시 : 2013.09.27. ~ 2013.11.17.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대본 : 이문원

작사 : 박천휴

작곡 : 월 애런슨 (Will Aronson)

무대 : 여신동

연출 : 이재준

출연 : 강필석, 성두섭 (인우) / 전미도, 김지현 (태희)

        이재균, 윤소호 (현빈), 임기홍 (대근), 진상현 (기석)

        박란주 (해주),  이지호 (재일) 외

제작 : (주)뮤지컬해븐, CJE&M

 

다시 본 <번지점프를 하다>의 무대는 정말 훌륭했다.

여신동 무대감독은 어떻게 이런 무대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프롤로그 왈츠에 맞춰 천천히 돌아가는 무대와 점점 위로 올라가던 상들리에는 마치 시간의 테옆이 아주 조심스럽게 과거의 한때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시간처럼 공간을 완전히 가로지르는 기다란 칠판.

그 칠판 위에 백묵으로 하얀 선을 그리며 지나가는 인우.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도, 가슴속에 담겨진 오랜 인연의 시작도 이제부터다.

길고 낡은 파이프를 관통한 망치 소리처럼 둔탁하고 끈질기게 귓가를 파고 드는 기억 속의 그날.

단단한 걸음인 척 과거를 지나서 앞으로 걸어가는 인우.

찾을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을 봉인한채 살아가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통.

그 고통을 우리는 과연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인우의 울음을 나는 이해한다.

때론 어른도 아이처럼 울어야만 살 수 있다는 걸...

 

성두섭의 인우는,

과거의 모습보다 현재의 모습이 훨씬 더 좋았다.

1막에서는 배우의 감정이 너무 깊어 오히려 그걸 밖으로 꺼내놓지 못했다.

그게 음정까지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래도 2막에서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 깊은 감성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목소리톤도 좋았고...

(그래도 인우는 역시 강필석이다.)

재미있었던 건 성두섭 인우는 전미도 태희보다는 이재균 현빈과의 장면이 더 애뜻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이 "그게 나의 전부란 걸" 을 부르면서

두 손을 잡고 천천히 뒤돌아서는 장면은 실루엣도 참 예쁘고 여운도 깊었다.

이재균 현빈은 전체적으로 좀 가볍고 실없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인우의 바보스런 웃음을 닮은 현빈의 웃음은,

기억 속 인우의 모습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의도였을까?

개인적으로 너무 현빈이 가벼워서 "내 잘못이 아니야?"도 받아들이기가 좀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난 현빈은 윤소호 쪽이 더 괜찮은 것 같다.

귀염성 있는 학생같은 느낌도 들고...

 

시간과 인물, 상황과 대사를 교차시키는 마술같은 연출은 다시 봐도 감탄하게 한다.

라이터가 커지면서 깨어나는 현빈(태희)의 기억.

무대 위에 나란히 서있는 태희와 현빈.

과거와 현재를 나란히 보여주는 교통사고 장면에서

현빈, 태희 - 현빈 - 태희 - 현빈으로 크로스되는 그 순간은

어떤 영화기법으로도, 어떤 CG 기술로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 미안! 내가 너무 늦게 왔지?

- 아니, 늦게라도 와줘서 고마워.

- 약속했잖아!

이 장면에서의 대사,

가슴이 울컥한다.

길고 긴 파이프에 위로 또 다시 둔탁한 망치가 떨어진다.

이 파동을 당분간 견뎌야 한다...


 

현과 피아노가 중심이 되는 연주는

감성적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떠올리게 한다.

이 가을에 감성에 젖기 좋은 곡들로 가득하다.

특히 태희의 "혹시 들은 적 있니?는

전미도의 음성으로 듣는 것도 아주 좋고

연주에 조금 더 집중해서 들는 것도 아주 좋다.

피아노로 조용히 시작되다가 하나씩 악기가 추가되고

허밍 부분에서는 묵직한 베이스의 현이 치고 올라온다.

이 한 곡에 고요한 클라이칵스가 다 들어있다.

평온한 떨림.

이 곡의 느낌이 딱 이랬다.

 

<번지점프를 하다>

피해야 하는 작품임에 확실하지만,

아마도 한 번 쯤은 더 보게 될 것 같다.

가을이니까...

스스로 좀 견뎌내라고 말하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