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1. 3. 08:08

<베르테르>

일시 : 2013.12.03. ~ 2014.01.12.

장소 :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

원작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극본 : 고선웅

연출 : 조광화

음악감독 : 구소영

출연 : 임태경, 엄기준 (베르테르) / 전미도, 이지혜 (롯데)

        이상현, 양준모 (알베르트) / 이승재, 최성원 (카인즈), 최나래 외

제작 : CJ E&M (주). 극단 갖가지

 

우여곡절 끝에 2014년 나의 첫번째 관람작 된 <베르테르>

2000년 초연때부터 2012년까지, 이 작품은 괴테의 원작 소설 그대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됐었다.

13년차의 이 작품은 2012년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의 재앙에 가까운 이력만 빼면 흥행도 매번 나쁘지 않은 "꽤 괜찮은" 창작뮤지컬 중 하나다.

한때 남자배우들이 한번쯤 하고 싶은 배역에 손꼽혔던 베르테르.

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플"이 13년 만에 "베르테르"로 제목이 바뀐 건,

이번 공연에서 타이틀을 맡은 두 명의 남자배우가

한 명은 불혹을 넘겼고, 한 명은 불혹을 바라보고 있어서란다.

더이상 "젊지" 않아 차마 "젊은"이라는 단어를 차마 쓸 수 없어서 그냥 "베르테르"가 됐다는 우스개소리.

그런데 이 우스개 소리가 왜 이렇게 민망하게 느껴졌을까?

2012년의 재앙에 가까운 유니버셜 아트센터의 상흔이 꽤나 깊었던지

조광화 연출과 구소영 음악감독이 초연의 서정성을 최대한 구현하겠노라 공언했다.

그래서 믿었다.

결론부터 말하자!

초연의 서정성은... 구현되기는 했다.

단지 음악에서만,

무대와 의상, 조명은 중구난방이었고 오히려 너무 수다스러워져서 놀랐다.

시대배경이 뭉개진 것도 개인적으론 안타까웠다.

나는 예전에 느꼈던 베르테르의 고전적인 서정성을 다시 느끼고 싶었던건데...

아무래도 2004년 공연을 최고의 기억으로 남겨놔야 할 모양이다.

도대체 마지막 장면은 왜 그렇게 바꿔버린걸까?

베르테르에서 가장 깊은 여운을 남겼던 장면을 없애버린건 너무나 치명적이다.

총구를 머리에 겨낭한 베르테르와 점점 붉은 핏빛으로 변하는 하늘.

느닷없는 쓰러지는 해바라기이 내는 무더기의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있던 감성마저도 달아나겠다.

이건 확실히 엄청난 소음이자 충격이었다.

 

베르테르가 자신의 장례식으로 보이는 곳에 귀신(?)으로 등장하는 첫장면은

너무 귀기(鬼氣)가 흘러 청승맞았고

소복을 떠올리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 무리도 개인적으론 참 싫었다.

그냥 소풍 장면으로 시작되는 예전 버전이 훨씬 좋았는데...

게다가 불혹을 넘긴 황태자 임태경에게 흰양복과 샛노란 조끼를 입히다니...

커다란 해바라기 그려진 노란 조끼는 어딘지 모르게 트롯트가수의 밤무대 의상을 떠올리게해 민망했다.

심각한 조증을 앓고 있는듯한 롯데는 1막 내내 구름 위를 떠있는 사람같았고

발하임 주민들의 정체도 참 모호했다.

그리고 그 나팔소리...

정적을 깨는 재앙이더라.

1막 후반부 카인즈가 베르테르에게 자신의 기쁨을 말하는 장면은

취객 3인으로 인해 난동부리는 왈패를 보는 느낌이었다.

무대는 크리스마스 카드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든건가?

예전에 쓰던 무대와 소품들이 새로운 무대와 서로 충돌하더라.

 

임태경 베르테르를 후반부에 본 건 확실히 현명한 선택이었다.

노래는 정말이지 아주 좋다.

그런데 공연 후반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영혼없는 대사들을 하더라.

뮤지컬 연기 경력이 10년을 훌쩍 넘어서는데 참 신비스러울 정도로 연기에 발전이 없는 배우다.

가끔 뮤지컬계의 손지창이라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나, 임태경 무지 좋아한다.

그가 뮤지컬 배우 하기 훨씬 전부터 아주 좋아했었다.

그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받았던 충격.

그건 누구도 지금껏 해주지 못했던 깊은 위로였고 다독임이었다.

그 위로 때문에 터널 같은 시간을 버텨냈었다.

그래서 크로스오버 테너 시절의 그 연주를 이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다는 게 늘 안타깝다.

지금은 "불후의 명곡"으로 아이돌 못지 않은 스타가 되버렸지만...

임태경이 출연하는 공연장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

아줌마들이 사춘기 여고생처럼 눈에 핑크 하트를 그리고 앉아 계신다.

재미있는게 아니라 이거 직접 보고 있으면 정말 무섭다. 

임태경 이외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지 않기 때문에...

관크도 엄청나고 관람매너도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그래서 가능하면 임태경 공연은 1층 관람은 피하는 편이다.

이지혜 롯데와눈 목소리톤과 발란스가 잘 맞았고

두사람 다 클래식한 느낌이라 전체적으로 괜찮았다.

이날 공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알베르트 이상현.

캐릭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였고 연기도 노래도 느낌도 아주 좋았다.

롯데와 함께 하는 장면들은

귀족적이면서도 다정하고 듬직한 알베르트의 모습 딱 그랬다.

아쉬움이 있다면

베르테르와 부딪치는 장면에서 좀 더 강하고 단호하게 표현했으면 하는 정도!

그래도 전체적으로 이상현의 표현은 아주 좋았다.

노래 정말 잘하더라.

듣기 참 좋았다.

 

엄기준 베르테르로 한 번 더 볼 생각인데 좀 걱정이 되긴 한다.

요즘 엄기준의 노래 실력이 워낙 좋아서!

엄기준의 절절한 연기와 임태경의 노래를 섞으면 최상의 베르테르가 탄생할텐데...

더불어 <베르테르>가 아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다시 돌아오면 좋겠다.

고전적인 서정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그런 작품으로 말이다.

특히 그 마지막 장면!

그것만은 제발... 되돌려주길...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