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11. 9. 08:27

<빨래 2000회 기념 공연>

부제 : The Memory

일시 : 2012.10.12. ~ 2012.11.11.

장소 : 학전그린 소극장

대본 : 추민주

작곡 : 신경미, 한정림, 민찬홍

제작 : 명랑씨어터 수박

출연 : 박호산 (솔롱고) / 이보라 (서나영) / 강정임 (주인할메) 

        김송이 (희정엄마) / 윤성원 (구씨) / 김지훈 (빵)

        최호중 (마이클) / 송은별 (여직원)

 

창작 뮤지컬 <빨래>가 벌써 2000회가 넘었단다.

올 초에 12차 팀 이진규 솔롱고와 최주리 서나영을 봤었는데 특별한 기념 공연을, 게다가 박호산이 솔롱고로 몇 번 출연한다고 해서 일부러 예매를 했다.

몽고에서 온 불법체류 노동자 솔롱고와 서점 계약직 직원 강원도 처녀 서나영의 힘겹고 서러운 서울살이 이야기.

사회의 주류가 아닌 소외받고 무시받는 쪽방살이 군상이 만들어내는 서럽고 뜨거운 이야기 <빨래>

예전 관람 때도 보는 내내 좀 막막하고 서글펐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한 과장된 이야기라고 말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제 현실은 작품 속 내용보다 훨씬 더 비루하고 남루하고 서럽다.

게다가 이 뮤지컬을 본 직후 손에 잡은 책이 공교롭게도 박범신의 <나마스테>였다.

불법체류자 신세로 아무 말도 못하고 뭇매를 맞는 몽골 청년 솔롱고에 눈이 맑은 페루의 청년 카밀은 정확히 겹쳐진다.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다.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우리 자신이 솔롱고였고 카밀이었다.

코리안 드림보다 더 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솔롱고와 카밀.

그런데 이제는 다 잊었다.

......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좀 더 잘 살자고 데려오고, 오게 만든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배고프지 않은 우리가 하기 싫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들을 시키기 위해, 온갖 불법적인구조와 착취의 시스템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놓고서 그들을 불러들인 후, 이제 구조개선을 명분 삼아 그들을 무자비하게 내몰겠다는 뻔뻔하고 잔인한, 내 조국에 대해 그 순간 나는 너무도 화가 났다 ......

책 속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한국 정부가 우리에게 불법체류자가 되라고 권한다."

산업 연수생으로 들어왔다 불법체류자가 되어 여권도 월급도 받지 못하고 끝없는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

한국인보다 얼굴색이 조금 더 검기 때문에,

한국인보다 가난한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인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들 일을 하는 그들의 코리안 드림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무너뜨렀던가!

정확히 말하면,

대한민국의 산업, 그 가장 밑바닥을 채우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스리랑카, 네팔, 가차흐스탄, 방글라데시, 필리핀, 베트남...

이들이 우리 산업의 근간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너네 나라로 가!" 라며 함부러 말 할 자격이 없다!

그들이 너네 나라로 가버리는 순간 우리 산업의 근간은 무너지고 흔들린다.

우리는 왜 이렇게 빨리 말리는 시누이같은 존재가 됐을까?

우리가 그들이었었는데...

<빨래>의 한 구절처럼 그들도 때리면 아프고, 슬프면 눈물 흘리는 사람들인데...

참으라는 말,

이들에겐 너무나 잔인하고 무책임한 폭력의 언어다.

<빨래>도 <나마스테>도 참 절망적이고 아픈 현실이고, 처절한 삶이다.

그나마 뮤지컬 <빨래>는 일말의 희망을 꿈꾸고 있어 다행이다.

비록 그 꿈이 현실에서 도무지 실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나주지 않을지라도...

Korean dream은 도대체 언제까지 impossible dream이 될까!

 

배우들은 솔롱고 박호산과 서나영 이보라를 빼고는 전체적으로 좋았다.

박호산은 솔롱고를 하기에는 사실 불혹을 넘긴 나이가 너무 부담스럽다.

(보면서 내내 기념 공연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했다.)

이날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박호산의 노래는 많이 힘겨웠고

대사는 난감할 정도로 어색했다. 

한국말을 못하는 외국인이 아니라 뭐랄까 지능이 좀 떨어진 지적장애우의 느낌이랄까?

그래도 다행인 건,

극이 진행될수록 두 주인공이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는 사실.

(내가 지금까지 본 박호산의 작품 중에서 최고의 컨디션 난조를 보인 작품이다.)

확실히 현재 공연중인 12차 팀에 속해 있는 김송이(희정엄마)와 송은별(여직원)은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제 역할을 충실해 해줬고

주인할머니(강정임), 마이클(최호중), 구씨(윤성원), 빵(김지훈)도 참 잘 해줬다.

두 주인공을 제외하면 모든 배우가 멀티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많은 배역들은 참 능청스럽게 잘 해낸다.

아무리 생각해도 <빨래>의 주인공은 확실히 누가 뭐래도 이들임이 분명하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난 참 지루하고 힘들었을 것 같다.

 

기념 공연...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기념 공연일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