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3. 22. 08:28

<살짜기 옵서예>

일시 : 2013.02.16. ~ 2013.03.31.

장소 :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각색 : 이희준

연출 : 구스타보 자작, 김민정

음악감독 : 권혁준

제작 : (주)뮤지컬해븐, CJ E&M

출연 : 김선영(애랑) / 최재웅, 홍광호 (배비장)

        송영창, 박철호 (신임목사) / 김성기, 임기홍 (방자)

        김재만, 원종환 (정비장), 박범정, 진상현 외

 

2월 프리뷰 관람이 너무 좋았었다.

김선영은 단연코 갑(甲)이었고, 최재웅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고, 김성기는 기는 노련미로 한바탕 신명났고, 원종환은 다재다능했다.

오랫만에 프리뷰를 보면서 재관람 의욕이 불끈불끈 솟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홍광호 배비장에 임기홍 방자, 박철호 신임목사로 캐스팅을 바꿔서 관람했다.

"미친 가창력"이라는 홍광호가 보여 줄 배비장이 살짝 궁금하기도 했고.

솔직히 말하면 홍광호는 나랑 참 안 맞는 배우다.

그런 배우군이 몇몇 있다.

최정원, 남경주, 차지연, 임혜영, 강태을, 문종원...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성향이나 오해는 마시길!)

어쨌든, 작품 자체가 워낙에 좋기도 했고

<맨 오브 라만차> 이후 홍광호의 변화도 좀 살펴보고 싶었다.

그동안 배우 홍광호의 이력을 보면서 너무 앞서가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대작의 주인공을 주로 하다보니 "미친 가창력"은 어쨌든 인정은 하겠는데

섬세한 연기나 강약 조절을 못하는 게 늘 불만이었다.

그런 홍광호가 어디까지 와있는지가 궁금했다.

(내 선입견을 깨부숴줬으면...) 

 

김선영 애랑은 정말 원숙미와 노련미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 했다.

그녀 스스로도 이 작품이 앞으로 자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거라고 말했다는데

정말 원없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녀, 진정으로 만개했다.

"양반의 상투'를 부를 땐 표정과 시선이 너무 좋았고

수포동 폭포에서의 춤은 내가 지금껏 알고 있던 그 김선영이 맞나 싶을 정도다.

배비장과의 2인무에서는 살짝 모던발레스러운 것이 고급스러운 은근함도 느껴진다.

개구멍으로 들어온 배비장과 정을 나누려는 찰나,

배비장의 진심을 알고 난 후 애랑의 감정이 반전되는 장면 표현도 정말 압권이었다.

그녀만큼 이 역할을 이렇게까지 잘 표현할 배우가 과연 있을까 싶다.

매 장면마다 작품과 배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그래서 그녀의 애랑을 보고 있으면 배비장도 아니면서 주책없이 마구 설렌다.

배우 김선영!

확실히 현명했고 탁월한 선택을 했다.

 

홍광호 배비장.

사람들이 늘 말하는 것처럼 정말 노래 잘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성량으로 승부수를 띄워 "미친 가창력"이라는 기존의 찬사를 고수하는 것보단

감정적인 측면에서 더 세밀하게 접근했어야 할 것 같다.

때론 그에게 붙는 이 수식어가 그의 한계처럼 느껴진다.

너무 가창에 신경을 써서 은근한 맛이 제대로 살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껏 홍광호가 해왔던 배역보다는 편안해보이긴 했지만

확실히 최재웅 배비장보다 전체적으로 느낌이 덜했다.

개인적으로 그가 대작보다는 중극장이나 소극장 규모의 작품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연기적인 부분이 일취월장할텐데...

임창정과의 <빨래> 이후 전무하지 않았나?

배우가 자기 나이대의 배역을 한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그도 분명 알고 있을텐데...

그럴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행운이기까지 한가!

항상 선배들과 더블, 트리플 캐스팅이라 어딘지 애늙은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뭔가 한 시기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는 안타까움도...

(이해될까?)

 

임기홍 방자는 나쁘진 않았지만

(나쁠리가 있겠는가! 멀티맨 조연계의 최고봉 임기홍인데!) 

개인적으론 김성기 방자가 훨씬 좋았다.

임기홍은 개인기 위주로 좀 깨방정스런 연기를 보여줬고

김성기는 더 능청스럽고 맛깔나는 방자를 보여줬다.

방년 19세 방자를 연기하는 48세 김성기라!

이 설정 자체가 이미 해학이고 골계미(?)다.

연륜과 경험은 확실히 무시할 수 없는 대단한 스킬이다.

원종환은 정비장도, 춘홍이도 너무 맛깔스럽게 잘했고

(성별을 넘나들며 두 배역 전부를 그야말로 떡주무르듯 주무른다.)

앙상블은 프리뷰때보다 훨씬 단정해지고 안정적이다.

의상과 무대, 조명의 색감은 역시나 활홀했고...

정성껏 잘 만든 작품이라는 게 너무 여실하게 보인다.

두고두고 꼽아봐도 짧은 공연기간이 영 아쉬운 작품이다.

이쁘고 몹시 사랑스럽다.

"살짜기"가 아니라 대놓고 자주 와줬으면 좋겠다!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