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9. 4. 08:20

<SPAPALOT>

일시 : 2013.05.16. ~ 2013.09.01.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연출, 안무 : 데이비드 스완

음악감독 : 변희석

출연 : 서영주, 정준하 (아더왕) / 이영미, 신의정 (호수의 여인)

        윤영석, 고은성 (갈라하드) / 정상훈 (렌슬럿 경)

        조형균 (로빈 경), 이훈진 (베데베르 경), 김호 (팻시)

        정철호 (잭), 공민섭, 박경동, 윤민우, 정성진

제작 : (주)오디뮤지컬컴퍼니. CJ E&M

 

유머가 간절히 필요했다.

비록 허탈한 빈웃음일망정 아무 생각없이 한바탕 웃어보고 싶었다.

빈깡통처럼 요란하게...

처방전을 찾아 방황하다 하루 전에 급히 예매해서 본 뮤지컬 <스팸어랏>

코믹 페러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는 광고문구에 혹했다.

성배를 찾아 떠나는 아더왕 이야기. 

심지어 뮤지컬 넘버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의 가사는 사뭇 유혹적이기까지 했다.

인생 뭐 있냐며, 별 거 없다며 웃어보란다.

고민하지 말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즐기란다.

(이 넘버는 확실히 후크송이다, 동영상으로 한 번 봤을뿐인데도 리듬과 멜로디, 가사까지 그대로 접수됐다.)

페러디의 진수.

그래, 잠간이라도 게거에 한 번 빠져보자 다짐하고 공연장을 찾았다.

 

결론은...

그리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다.

노골적이고 실날한 세태풍자와 패러디를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좀 약했던 것 같다.

더 과감한 B급 패러디 작품이었다면 훨씬 더 유쾌했을텐데...

부상해서 복귀해 오랫만에 무대에 선 윤영석이

<오페라의 유령>, <지킬 앤 하이드>, <명성황후>를 패러디할 때와

서영주, 이훈진의 <맨 오브 라만차>를  패러디할 때 여기저기에서 팡 터진 걸 재외하면

페러디 자체로 큰 재미를 주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론 패러디의 코믹함보다는

배우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화학작용이 훨씬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1막 초반에 조형균 로빈과 서영주 아더 왕, 이훈진 베데베르가 처음 만나는 장면은

마치 탁구경기를 보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탁구경기라는 게 서로 마주 보고 하는 게 아니라 나란히 서서 하는 거라면 이해가 될까???

서로 주고받는 대사들이 여기저기 부딪치며 통통 제 멋대로 튄다.

아주 유쾌하고 깔직하게.

거기다 배우들 네 명의 타이밍과 표정도 아주 좋다.

가히 고전 만담의 정수를 보는 느낌.

 

이 작품은 서영주와 이영미를 제외한 모든 배우가 멀티맨이다.

심지어 앙상블 네 명의 배우(공민섭, 박경동, 윤민우, 정성진)까지..

<라카지> 이후에 오랫만에 또 다시 대단한 시스터들(?)을 목격했다.

정상훈은 코믹물에 완전히 물이 올랐다.

아마도 조만간 임기홍과 함게 코믹연기의 지존이 되지 않을까 강하게 의심(?)된다.

(두 사람이 한 무대에서 코믹 연기를 펼친다면? 상상만으로도 불꽃이 튄다) 

이 작품 덕에 11월에 정상훈의 "산초"가 무지 기대된다.

(두 번의 관람 전부 정상훈 산초를 선택했다. 이훈진은 몇 번 봐서....)

조형균은 노래할 때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었고, 연기와 딕션, 표정도 참 좋다.

정철호도 1막과 2막 시작 부분을 여는게 자칫하면 참 뻘쭘할 수 있는 장면인데 잘 끌고 간다.

그리고 정상훈 애드립처럼 정말 '구성진 소리'를 가졌다.

오랫만에 무대로 돌아온 윤영석은

어떤 면에서는 관객들보다 더 즐기면서 작품을 관람하는 느낌이다.

늘 무겁고 심각한 배역만 해오다 이런 가벼운 역을 하는 게 관객입장에서는 아직까지도 어색하지만

배우 본인의 표정이 너무 밝고 즐거워서 그걸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론 작품 자체의 매력보다는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적인 매력에 빠져서 관람했던 것 같다.

(내용은 기억에 별로 안 남고... 그래서 아무래도 나중에라도 다시 보게 되진 않을 작품...) 

이날 공연은 관객과 함께한 애드립도 아주 쫀쫀했고

(서영주와 배우들의 관록에 박수를....)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깜짝쇼도 재미있었다.

호수의 여인 이영미가 "내 배역 왜이래?"를 부를 때 더블이었던 신의정이 같은 무대 의상을 입고 등장했고

커튼콜에는 정준하까지 깜짝 등장했다.

간혹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관객 입장에서 재미있고 유쾌하게 관람하는 작품도 좋지만

출연하는 배우들이 스스로 재미있고 유쾌하게 공연하는걸 목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비록 개인적인 바람이었던 박장대소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재미있고 유쾌한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건 의외의 격려였고 위로였다.

그래!

때로는 이런 게 꼭 필요한 때가 있다.

확실히!

 

* 코믹과 비련 전부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서영주가 요즘 코믹으로만 소모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몽유도원도>에서 서영주가 보여줬던 연기를 다시 볼 수는 없을까?

   그의 표현과 감정, 순간 몰입과 촉촉한 목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더 늦기 전에 그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날이 한번쯤 다시 온다면 정말 좋겠는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