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6. 10. 08:26


2007년 초연된 <쓰릴미>는 류정한, 최재웅이 "나"를
김무열. 이율이 "그"를 했었다.
그리고 나는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초연의 <쓰릴미>를 놓쳤다.
그리고 재공연이 됐을 때도 또 다시 몇 번을 놓치고...
겨우 작년 봄에 김우형/정상윤, 김산호/정상윤 페어의 <쓰릴미>를 두 번 관람했다.
그때 받았던 충격이란...
정상윤이라는 배우의 새로운 발견은 놀라움 그 자체였었다.
극 자체가 보는 사람을 완벽하게 집중하게 만들긴 하지만
정말 끔찍하게 집중해서 봤던 공연이다.
그리고 그 여운이 얼마나 깊고 그리고 오래 가던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리고는 또 얼마나 후회했던지... 류정한의 "나"를 보지 못한 것을...


       2007년 류정한(나), 김무열(그)                         2009년 정상윤(나), 김우형(그)

2010년 다시 돌아온 <쓰릴미>는 무려 4쌍의 페어가 "그"와 "나"로 나온다.
내가 선택한 페어는 "최재웅-나, 김무열-그"
공연 시작 한참 전부터 예매 싸이트에서 완판이 된 페어다.
(무섭더라. 엄청난 속도로 좌석이 빠져나가는게...)
다행히 무대 위 양 싸이드에 위치한 배심원석 예매에 성공했다.
무대 정면을 볼 수 있는 좌석이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그래도 배심원석이 어딘가 싶다.
시야장애는 있지만 현장감 하나는 최고였으니까.
그리고 어쨌든 예매에 성공했으니...
(실제로 시야장애는 좀 있더라. 그것도 배우 최재웅의 탁월한 두상에 의한 시야장애 ^^)



<쓰릴미>는 1924년 시카고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유괴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뛰어난 두뇌, 부유한 집안 등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 두 명이
어린 소년을 유괴하고 급기야 살해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동성애와 방화, 유괴, 살인 등의 내용이 거부감을 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보고 있으면 극 속에 완전히 몰입하게 된다.
그 오묘한 긴장감과 부도덕이 주는 은밀함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들을 충분히 들쑤시고 자극한다.
기꺼이 공범자가 되어 협조도 은폐도 동조도 다 하고 싶다.
"그"와 "나"
동성애의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든 붙어있고 싶은 심정이 절절해진다.



단 두 명의 배우와 한 대의 피아노로 이루어진 공연.
그 피아노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 또한 놓쳐서는 절대 안 되는 부분이다.
내 귀엔 피아노가 마치 배우처럼 대사를 하는 것 같다.
감정의 변화와 분위기를 타이밍 정확하게 치고 들어오던 피아노.
예전 공연에서는 배우들의 동선보다 다소 아래 위치했던 피아노가
이번 공연에서는 공중으로 올라갔다.
덕분에 배우들의 동선은 더 자유로워졌고 피아노는 은밀해졌다.
(그리고 연주자, 정말 잘 연주하더라.)
몇 번씩 뒤집히는 반전과 치밀한 심리묘사.
몸싸움(?)같이 치열하고 처절하던 그와 나의 행동과 다툼같은 이유들이 
피아노 연주와 함께 숨통을 조였다 놨다를 수없이 반복한다.
"치명적인 유혹"
그건 다름 아닌 나를 향한 정확한 멘트였다.



무대석인 배심원석에서의 관람은 극의 타이트한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극중 "나"의 위치였던 오른쪽 배심원석은
가끔 최재웅의 표정을 보지 못하게 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의 김무열의 표정을 샅샅히 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무열은 데뷔작인 <지하철 1호선> 때부터 느꼈던 건데,
표정이 참 풍부하고 조명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배우다.
그리고 내가 생각할 땐 본인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적절하게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
(무대 위에서 이런 영민한 배우를 보면 무지 즐겁다)
<지하철 1호선>에서 제비 역을 했던 그를 보면서 "젊은 놈이 잘하네!" 했었는데
그도 이젠 제법 선 굵은 배우가 되어 무대 위를 부지런히 꽉 채우고 있다.
그 또래 배우들 중에서 딕션도 가장 정확하고 선명하다.
TV 에서도 꽤 비중있는 역할로 많이 나와서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한 인지도까지 확보한 상태.
최재웅과의 12회 공연 완판의 혁혁한 공을 세운 것도 그의 역할이 상당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최재웅도 우스개소리처럼 말했었다.
"우리 팀의 강점은 김무열이 있다는 것이다"



김무열의 축복받은 체격조건 역시나 그를 돋보이게 하는 큰 장점 중 하나다.
마치 양복 카탈록 모델을 보는 느낌 (^^)
저런 색깔의 수트가 어울리는 사람 별로 없을텐데 그에게는 상당히 썩 잘 어울린다.
솔직이 이번 공연에서 "그"가 입는 수트가 개인적으론 마음에 안 든다.
예젠엔 짙은색 수트였는데 이번 의상은 어쩐지 가벼워보이고 심지어 유머러스해보이기도 한다.
조끼에 커프스까지 갖춘 완벽한 수트에 이런 느낌의 노익장이라니...
그런데 김무열 "그"는 그 옷마저도 거든히 소화하더라.
오히려 히스테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니 신체조건의 탁월함을 무시할 수는 없겠구나 싶다.
특히나 무대 위에 서는 배우라는 입장에서는 축복받은 신체조건(^^)이라 하겠다.
김무열이 반대편 배심원석에서 조명을 받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종종 감탄을 하게 된다.
야누스적인 느낌이랄까?
대사와 노래를 부를 때 확연히 달라지는 목소리 톤도
이런 야누스적인 느낌을 갖게 만든다. 
해맑은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섬득함이라면 이해가 될까?



"나" 최재웅!
박정환과 함께 내가 열심히 찾아 보고 있는 무대 위 배우.
일단 나는 그의 독특한 대사톤이 참 좋다.
약간은 무성영화 시대의 변사를 떠올리게도 하고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데도 늘 독백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시니컬한 톤.
흔들리면서도 확신에 찬 눈빛은 특히나 <쓰릴미>의 "나" 역에 딱 적격이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나"
명확히 두드러지진 않지만 확실히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목소리 톤을 따라가면
그가 "나"의 심리상태를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거기에 피아노 연주가 함께 덮일 때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이라니...
엄청난 몰입으로 스스로 "나"가 되는 그의 모습은 처연해서 안스럽기까지 하다.
그 감정을 무대 위에서 완벽히 드러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만약 극중 "나"가 완벽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면 <쓰릴미>는 긴장감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최재웅은 확실히 <쓰릴미>에서 완벽한 공범자,
그 모습, 그 자체였다.
숨통을 조이는 긴장감이 아니었을까?
"나"를 연기한다는 것은....



... 안아줘, 만져줘. 사랑해줘!
널 갖고 싶어!
한 번이라도 날 제대로 느낀 적 있어?
날 만족시켜줘!
뭐든 할께, 자기야!
너 없인 나도 없어!
상관없어.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이런 민망한 대사들은 최재웅은 참 절절하고 강하게 잘 친다.
사람들은 <쓰릴미>에서 "나"는 여성적이고 "그"는 남성적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두 사람의 페어를 보면서 정확히 그 반대를 생각했다.
최재웅의 "나"는 남성적인 심리가 강하고
김무열의 "그"는 은근히 여성적이라고...



예전 공연에서는 포인트를 주듯 웃음이 주는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들이 빠져있다.
(최재웅, 김무열 페어에서만 그런가??? 다른 팀들은 못 봐서...)
그리고 나는 그게 아주 좋다.
뭐랄까 웃음조차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 그 빡빡한 긴장감이...
단지 그 극의 웃음 요소라면 자주빛 수틀의자!
극의 분위기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하고 상당히 귀부인스러운 자태의 의자는
바라보고 있기가 민망했다.
피아노가 위로 올라간 걸 빼면 개인적으로 예전의 무대 배경이 더 마음에 든다.
너무 인위적인 나무도 그렇고...
처음 "나"의 등장 장면에서는 관객 출입구를 그대로 이용해서 훨씬 좋았다.
배심원석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배심원석 덕분에 전체적으로 무대가 타이트해진 느낌이랄까?
그래서 극의 느낌과 잘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배심원석의 관람객들 상당히 신중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관람한다. 정말 배심원같이...)



최재웅은 노래 부를 때 목소리가 참 맑고 깨끗하다.
언듯 들으면 보이 소프라노 느낌이 들 정도로...
무심한듯 하지만 수시로 변화는 표정과 대사톤을 따라가는 것도 "나"의 심리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그래서 그의 무대는 나는 가능하면 소극장에서 보는 게 더 경이롭다.
김무열. 최재웅....
이 두 페어의 만남은 참 묘하다.
여러 곳에서 "이중성"의 경험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되니까.
다시 보고 싶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다.
미치겠다.
나 역시나 "너무 멀리 왔다. 그를 따라 여기까지..."

 

   * 2009년 너무 놀라운 경험을 줬던 "정상윤- 나, 김우형- 그"의 <쓰릴미> 



                              의미심장하게 웃던 정상윤의 ending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