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4. 4. 1. 12:48

<프랑켄슈타인>

일시 : 2014.03.11.~ 2014.05.11.

장소 : 충무아트홀 대극장

원작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극작 : 왕용범

작곡, 음악감독 : 이성준 

연출 : 왕용범

출연 : 유준상, 류정한, 이건명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은태, 한지상 (앙리 뒤프레) / 리사, 안시하 (줄리아)

        서지, 안유진 (엘렌) / 이희정 (슈테판), 강대종 (룽게)

        최민영, 오지환 (어린 빅터) / 김희윤, 김민솔 (어린 줄리아)

제작 : 충무아트홀

 

정말 많이 기대하면서 기다렸던 류정한 빅터와 박은태 괴물.

드디어 이 두 사람의 조합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이 작품에 매혹당해버렸다는 건 애초부터 깨끗하게 인정해버렀지만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하고, 듣게 하고, 느끼게 했다.

그걸 말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남루하고 구차하게 느껴질만큼... 

완벽한 그로기(groggy) 상태.

가차없이 쏟아지는 무차별 폭격앞에 지금 폐허가 되버렸다.

과연 나는 복구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는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까지 극한으로 몰고갈 수 있을까?

참 잔인하게 아름답고 처절하게 아프다.

 

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하나뿐.

광기(狂氣)

도대체 주말 첫공연에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아버리면 남은 3회 공연은 어찌 하려고...

No day but today!

무대 위 그들의 모습이 딱 그랬다.

젠장, 너덜거리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그야말로 완벽한 패배를 인정하게 만드는 작품이로구나.

 

빅터 류정한.

미친 연기고, 미친 노래고, 미친 표현이다.

특히 "나는 왜"에서는 정의와 욕망의 충돌에 따라 순간순간 변하는 얼굴 표정이 정말 압권이었다.

당장 줌인으로 클로즈업시켜 보고 싶을 정도로...

이 매력적인 기괴함을 대체 어찌할까!

"위대한 생명창조..."는 이 곡만으로 하나의 완벽한 작품이라 명명해도 무방할 정도다.

눈 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이해라는 게 되지 않았다.

이렇게 다 쏟아내고 어떻게 다음 장면 연기가 가능할까!

무대에 서있는 것 자체도 거의 기적처럼 보이던데...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류정한이라는 배우를 창조주라 부를 수밖에는 없겠더라.

 

그리고 빅터일 때 살짝살짝 드러나던 자크의 모습과

반대로 자크일 때 살짝씩 드러나던 빅터의 모습은

인간이 갖는 이중성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을까?

술집에서 빅터가 앙리에게 살인이라도 하고 싶다고 고백할 때는 자크의 잔인함이,

자크가 괴물에게 실험일지를 읽어줄 때는 확실히 빅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부분은 유준상, 이건명과 확실히 차이가 나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류정한이라는 배우는 또 다시 레벨을 벗어나려는 모양이다.

(나 역시도 또 다시 깨끗하게 인정하자!)

게다가 박은태와의 발란스는 <엘리자벳>때 이미 알아챘지만 이 작품에서 레전드를 찍는다.

"단 하나의 미래'와 "한 잔의 술"은 두 사람의 음색이 너무나 잘 맞아서 정말 황홀하더라.

 

박은태 앙리.

아마도 나는 그의 "너의 꿈 속에서"를  최고의 연가(戀歌)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이보다 더 절절한 사랑이 세상 어디에 존재할까?

지금 나는 동성애를 운운하려는게 결코 아니다.

앙리가 빅터에게 보여준 사랑은 인간의 한계와 범위를 벗어나는 사랑이다.

가히 신성(神性)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런 사랑.

빅터는 "생명창조"로 신의 영역을 침범했고

앙리는 "신성의 사랑"으로 신의 영역을 침범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신의 심판에서 도저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다.

 

그리고 시종일관 표정없는 얼굴과 속삭이듯 읊조리던 박은태 괴물.

속에 괴물의 모든 히스토리가 다 담겨있는 것 같아 나는 참 슬프고 아프고 저렸다.

울부짖음도, 서러움도, 원망도, 분노도, 희망도,

다 담겨 있더라.

그러다 빅터의 입에서 "앙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돌변하는 표정과 격양되는 목소리.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상처"다.

한지상 괴물은 존재를 부정당한 자의 상처가

박은태 괴물은 관계가 거부된 자의 상처가 보인다.

그런 생각도 들더라.

한지상 괴물이 바랐던 건 복수 혹은 심판이었지만

박은태 괴물이 바랐던 건 구원이었다고...

그래서 한지상 괴물에게 빅터의 실험일지는 일종의 "살생부"처럼 느껴졌고

박은태 괴물에게 빅터의 실험일지는 "기도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박은태 괴물의 마지막 대사가 나는 오히려 평온하게 들렸다.

"혼자가 된다는 슬픔, 그게 나의 복수야."

그 말을 끝으로 괴물은 "쉼"의 상태로 침잠한다.

그토록 바랐던 구원의 세계로...

(총구를 빅터에게 넘겨준 행위엔 그런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창조주여! 당신이 나를 창조했듯 이제 나를 구원하소서!)

혼자 남은 빅터는.

이제 스스로를 구원해야만 한다.

그게 삶이든, 죽음이든.

 

이 작품은 참 많이 불친절하다.

심지어 배우들은 관객을 향해 수시로 등을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불친절한 "외면"이 품고 있는 간곡한 진실을...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

볼 수 있는 것과 봐야만 하는 것.

빅터와 앙리, 빅터와 괴물 사이에서 나는 그걸 내내 생각했다.

 

문득 공포감이 밀려온다.

이 작품은 과연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까?

 

이건 정말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