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2. 9. 17. 08:38

<Hedwig>

 

일시 : 2012.08.11 ~ 2012.10.21.

장소 : KT&G 상상아트홀

출연 : 오만석, 박건형 (헤드윅) / 이영미, 안유진 (이츠학)

연출 : 김민정

음악감독 : 이준

제작 : CJE & M, 쇼노트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또 <헤드윅>을 봤다.

(그것도 평일 저녁 공연을... 쩝!)

정말 원래 계획은 오만석 헤드윅만 보고 깨끗하게 접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이게 또 박건형 헤드윅이 자꾸 궁금해지는거다.

후기도 나쁘지 않고, 박건형의 첫 소극장 뮤지컬 도전기도 한 번 목격하고 싶어 결국 의지를 꺾고 말았다.

(그놈의 결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의지!)

확실히 <헤드윅>은 참 망할 놈의 작품이다!

박건형 헤드윅!

개인적으로 내가 지금껏 본 헤드윅 중에서 가장 남성적으로 느껴졌다.

오히려 오만석 헤드윅보다 외모는 더 그로테스크해보였다.

노래는 지금까지 본 헤드윅 중에서 제일 약했던 것 같고...

그런데 참 이상한 건,

그게 지루하거나 뻔했던 게 아니라 좀 다르게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가는 건 또 오만석 헤드윅보다 훨씬 더 빨라서 이게 또 묘한 아쉬움을 남기는 거다.

쭉 뻗은 다리이긴 하지만 살잘 "O"자형 다리를 가닌 박건형 헤드윅.

성큼성큼하던 그 남성적인 걸음걸이하며 선 굵은 외모가 참 불쌍해보였다.

'아! 너 참 여자가 되려고 애썼는데 잘 안 됐구나... 그래, 너 정말 힘들겠다...'

뭐 대략 이런 측은지심 비슷한 것도 막 생겼다.

거기다가 박건형 헤드윅과 나란히 서니까 이영미 이츠학이 얼마나 여성스럽게 아담하던지... 

 

전체적으로 박건형 헤드윅은 비행기를 타고 떠나서 다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후반부가 더 매력적이다.

전반부는 약간 초짜의 아슬아슬함이 보였는데

후반부에 갈수록 감정의 흐름을 잘 이끌고 간다.

덕분에 "The origine of love"는 참 막막하고 모호한 노래가 되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박건형은 빠른 템포 노래보다는 약간 미디움 템포 노래를 부를 때 더 매력적이다.

"Tear me down"과 "Angry inch"를 부를 때는 좀 부담스러웠는데 

"wig in a box", "wicked little town", "midnight radio"는 정말 좋았다.

(이 작품에 나오는 넘버들가 쉬운 곡이 단 한 곡도 없음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헤드윅>이란 작품은 배우로서 참 많은 걸 요구하고 끌어내는 작품인 것 같다.

확실히 의욕만 가지고 도전해서는 내상(內傷)을 입을 수도 있는 작품이고 인물이다.

(박건형이 그렇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박건형의 헤드윅은 또 그만의 매력이 있어서 나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나는 헤드윅 박건형보다 토미 노시스 박건형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극의 중간중간 보이스로만 나왔을 때도 목소리 느낌이 너무 좋았다.

이건 지금껏 다른 헤드윅에게서 느껴보지 못했던 전혀 낯선 경험이라 사실 좀 놀랐다.

헤드윅의 토마토 광란이 끝난 후 등장하는 토미의 모습을 보면서

와! 박건형 이 작품 하기 정말 잘했다 혼자 감탄했었다.

(헤드윅을 보면서 헤드윅이 아닌 토미에 감탄한 사람도 흔치 않을거다)

 

이영미 이츠학은 지난번 오만석 헤드윅때보다 노래와 느낌이 훨씬 더 좋았다.

살짝 신비한 느낌도 들었다.

이츠학이라는 극중 인물 때문이 아니라

이영미라는 한 배우가 헤드윅으로 무대에 서는 박건형이라는 또 다른 배우를 서포팅하는 모습이

너무 세심하고 포근해서...

이츠학의 존재가 이런 거였구나 다시 생각했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확실하게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그런 인물.

그렇다면 이영미는 이츠학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이 날 공연에서는 확실히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드윅>을 보는 건 역시 힘겹다.

아마도 이제 정말 <헤드윅>과는 안녕을 고해야 할 것 같다.

혹시 모르지.

나중에 정성화가 뱃살 두둑한 <헤드윅>으로 분한다면 그때 옛생각하면서 다시 보게 될지도...

참 여러모로 육중하게 앵그리한 무대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참...

그림은 영 안 나온다.

그런데 이게 또 그런게...

그림이 안 나오니까 또 그렇게 꼭 됐으면 싶다.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