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7. 5. 08:29

<Hedwig>

일시 : 2013.06.08. ~ 2013.09.08.

장소 : 백암아트홀

극작 : 존 카메론 미첼

작곡, 작사 : 스티븐 트래스크

음악감독 : 이준

연출 : 이지나

출연 : 조승우, 송창의, 손승원 (헤드윅)

        구민진, 조진아 (이츠학)

제작 : 쇼노트

 

2005년 초연 이후에 굳건한 마니아층을 형성된 뮤지컬 <헤드윅>이 벌써 올 해 공연이 여덟 번째 시즌란다.

8번 공연 중 2005년, 2009년, 2011년, 2012년, 2013년의 <헤드윅>을 봤다.

심지어는 초연을 기다리면서 존 카메론 미첼의 영화까지도 찾아봤었다.

첫인상은 엄청나게 그로테스크하다는 것!

그런데 그 기묘하고 기괴한 분장의 <헤드윅>에 묘한 연민의 정이 생기면서

점점 깊은 일체감 비슷한 동류의식까지 느껴게 된다.

(뭐 내 성적취향이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이젠 취향 따위도 없는 단계에 이르러서...)

 

지난번 시즌과 이번 시즌의 텀은 유난히 짧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조승우의 파워가 아닌가 생각된다.

원래 <헤드윅>을 할 예정이었는데 드라마 "마의" 때문에 엎어지게 된 게 결정적 계기!

조승우가 <헤드윅>을 하고 싶어한다는데 어느 제작자가 그걸 마다하겠는가!

텀이 길든 짧든 일단 추진하고 볼 일이다.

조승우가 출연한다기에 사실 티켓팅을 완전히 포기했었다.

그러다 이 녀석의 인터뷰를 보게됐는데,

그걸 읽고 나니까 이게 또 막 궁금해지기 시작하는거다.

“무대 위에서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정말 놀아보고 싶어서 <헤드윅>을 선택했다. 나를 불사를 수 있는 힘이 있는 작품으로, 본질은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걸 항상 유념하고 있다. 작품의 주제, 메시지 모두를 관객들에게 맡기는 프리스타일 공연을 하고 있다. 대본 수정 후 한번도 대본을 보지 않았을 정도로 일부러 외우려고 하지 않고, 헤드윅이라는 사람이 펼치는 쇼, 그 공연 안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좀 놀아보겠단다!

그것도 본질은 놓치지 않고서!

도대체 뭘 어떻게 놀겠다는건지 궁금해서 예매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지?

의외로 아주 쉽게 괜찮은 자리를 한 번에 예매했다.

(스탠딩 압박이 없는 구석 자리 하나 잡겠다 생각하고 예매처에 들어갔던건데....)

 

조승우 헤드윅!

결론만 말하자.

정말 미치게 잘 논다.

자유자재로 대사를 치고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애드리브을 연출하는데 가히 물만난 고기같다.

텍스트(대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헤드윅!

물론 기본 구성과 스토리를 파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헤드윅>이라는 기본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면 그 안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뭐랄까!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one man band를 보는 느낌!

끝나고 나서 알았다.

완전히 그에 의해서 놀아났다는 걸.

누가? ......... 내가!

나, 스탠딩 정말 싫어한다.

근데 저절로 일어나게 되더라.

이 녀석 정말 그동안 무대가 이렇게까지 그리웠구나 싶어 주책없이 연민의 정도 생겼다.

(그동안 도대체 어떻게 참아냈던 걸까?)

목소리도 일부러 여성스럽게 내려고 애쓰지 않으면서도

여자처럼 감정에 빠질 때는 한없이 깊게

그러면서도 치고 나올 곳에서는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뛰쳐 나온다.

솔직히 무림고수의 현란한 칼솜씨를 보는 느낌이었다.

 

특히 이번 헤드윅은

(송창의와 손승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츠학의 비중이 많이 줄었다.

Sugar Daddy도 그렇고 청혼 장면도 그렇게 헤드윅에 의한 1인극처럼 진행된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바뀐 구성이 아주 좋았다.

개인적으로 이츠학이란 인물은 공연 내내 존재감이 없이 소품과 다름없이 있다가 

헤드윅에게 가발을 건네받는 장면에서부터 존재감이 커졌으면 하고 바랬었다.

핸드폰 운운 하던 장면이 없어진 것도 개인적으로 너무 좋다.

(이렇게 바뀐게 이지나의 생각인지, 조승우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런 발언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겠지만

2005년에 비하면 조승우도 확실히 나이를 먹었다.

그때는 펄떡펄떡 튀어오르는 날 것의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산전수전을 겪은 헤드윅의 완숙미가 느껴진다.

그래선가?

이 작품을 조승우가 마흔이 넘어서 하게 되면 또 다른 느낌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기획도 괜찮지 않나!

20대, 30대, 40대 헤드윅을 한 시즌에서 만나보는 그런 기획!

 

이덕화의 "하이모" 카피나

첫공연에만 하고 안 할 예정이었다는

JCS의 "I only want to say"는 일종의 팬서비였던 것 같은데 재미와 놀라움, 두가지 전부에 성공했다.

"Origin of love"에서는 본인 말처럼 주책없이 눈물을 보였지만

그 느낌이 나는 너무 좋았다.

그런데 이 노래 사실은 정말이지 눈물나게 아름답다.

OST로만 들고있어도 울컥해지기 일수다.

wicked little town은 헤드윅과 토미 버전 둘 다 너무 좋았다.

특히 토미의 버전은,

그야말로 속죄, 참회의 투어 딱 그 느낌이었다.

중반부에 바뀐 바바리 의상과 썬글라스는 정말 헐리웃 여배우의 포스를 풍겼고

(진심으로 너무 예뻐서...)

끝부분 헤드윅이 옷을 벗어던지며 토마토를 짓이기는 장면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그동안 바닥을 나뒹구는 퍼포먼스에 익숙했었는데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었다.

무대 위에 우뚝 서서 이 모든 감정과 상황들을 오로지 표정의 변화로만 표현했다.

고통스런 기존의 퍼포먼스보다 나는 이 모습이 훨씬 더 강렬했다.

(이건 또 이지나, 조승우 중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사실 이럴 줄 몰랐다.

조승우라는 배우가

본인에게도 관객에게도 익숙한 <헤드윅>에 다른 표정을 입혔다.

몰랐다. 이런 느낌일 줄...

이번 시즌 헤드윅은 이번 한 번으로 만족하려고 했었는데

이 녀석 또 다시 나에게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졌다.

아무래도 다시 한 번 봐야할 것 같다.

이 녀석의 헤드윅을.

 

 

Posted by Book끄-Book끄